불기 2568. 4.11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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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삶과 죽음의 갈림길
혼자 살아남다
“제가 미쳤지, 어떻게 그럴 수가 있었는지 도저히 모르겠어요.”
지금도 김씨는 그 순간을 생각하면 오싹하다. 사고가 나기 전까지 그는 평범한 직장인이고 가장이었다. 그 날도 아내와 아들과 함께 부모님을 뵈러 가는 길이었다. 김씨가 운전을 하고 옆자리에 아내가 앉고 그 바로 뒷자리에 아들이 타고 가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대형 트럭이 중앙선을 넘어서 김씨의 차를 향해 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곧 정면충돌할 것이 명백했다! 눈앞이 하얘졌다. 불과 몇 초 정도 되는 찰나에 김씨는 엄청난 공포를 느꼈다. 무조건 피해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자기도 모르게 운전대를 왼쪽으로 있는 힘껏 확 돌려버렸다. 그래서 트럭은 김씨 차의 오른쪽과 정면충돌해 버린 것이다. 김씨는 심한 충격으로 기절했다. 중환자실에서 일반병실로 옮긴 뒤에야 아내와 아들이 현장에서 즉사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나마 너는 살아서 다행이지. 트럭이 자동차 오른쪽으로 부딪친 거야.” 부모님은 눈물을 흘렸다.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충돌하던 순간이 떠올랐다. 그 짧은 순간에 어떻게든지 피해보려고 운전대를 확 돌린 기억이 났다. 왜 왼쪽으로 꺾었을까. 그래서 오른쪽에 앉아있던 아내와 아들을 정면으로 부딪치게 만든 셈이다. 만일 운전대를 오른쪽으로 꺾었다면 하고 가정해보았다. 그럼 왼쪽에 앉아있던 자신은 즉사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내와 아들은 살릴 수 있었을지 모른다. 위험한 순간에 아내와 아들보다 나 자신의 목숨과 안전이 더 중요했단 말인가. 결국 아내와 아들을 내가 죽였다! 이때부터 김씨는 양심의 가책에 시달리게 되었다. 견딜 수가 없었다.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 살인을 한 것만 같았다. 나를 살리기 위해 사랑하는 가족을 희생시켰다는 생각이 괴롭혔다.


부모님의 눈물
당시 사십대 중반이었던 김씨는 앞으로 평생 혼자 살기로 결심했다. 그것이 그나마 죗값을 치루는 일 같았다. 부모님 집에 들어가 살면서 1년쯤 지난 어느 날 아버지가 불렀다. “너 힘든 줄은 알지만 이제 재혼을 생각해야지” 하는 것이 아닌가. 외아들인 김씨가 자손이 없으면 대가 끊긴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좋은 사람을 알아보았으니 꼭 만나보라는 것이었다. 김씨는 꿈에도 생각이 없었다. 아버지는 “넌 집안의 대를 끊는 불효를 할 거냐. 내가 며느리 손자 잃고 이제 죽어도 눈을 못 감게 되었다. 애비를 이대로 죽일 작정이냐” 하며 펄펄 뛰었다. 하는 수 없이 만나보기만 하기로 했다.
상대 여성을 만난 자리에서 김씨는 아예 이야기해버렸다. “죄송합니다만 제 마음에는 다른 사람이 들어갈 틈이 없습니다. 저의 오른쪽 가슴에는 아내가 묻어있고 왼쪽 가슴에는 아들녀석이 묻어있어 다른 사람은 들어올 수가 없으니 이해해 주십시오”라고 사정을 설명했다.
그 날 저녁 난리가 났다. 소개한 사람이 아버지에게 전화한 것이다. 김씨의 말을 그대로 전하면서 준비도 안 된 사람이 왜 나왔느냐고 화를 낸 것이다. 아버지는 김씨를 불러서 칼을 앞에 놓았다. “이 자리에서 너와 내가 함께 죽든지 아니면 내 눈 앞에서 사라져버려라. 너 같은 아들을 두어 무엇하냐.” 김씨는 용서를 빌려고 했으나 아버지가 너무 완강했다.

업을 녹이는 길
그 길로 집을 나왔다. 살기가 싫었다. 기차를 타고 먼 지방으로 가서 산으로 들어갔다. 가다보니 절이 나왔다. 절에 가서 스님에게 일해 드릴테니 며칠만 머물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다 산에서 목숨을 끊을 작정이었다. 다음날 제사를 지낸다고 하였다. 남편이 사고로 죽은 집이라는 것이었다. 이상한 마음이 들었다. 일하며 듣는 경 소리가 너무나 슬프게 들렸다.
저녁에 스님이 불렀다. “거사님, 무슨 일 있으시지요.” “왜 물으세요, 스님. 일은요.” “아까 다른 집 제사인데 거사님이 내내 마음으로 울고 계시던데요.” 스님의 자비로운 미소에 갑자기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참고 참던 슬픔이 터져 나와 자기도 모르게 목 놓아 울고 있었다.
사연을 들은 스님은 인연법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돌아간 두 사람을 위해서 제사를 지내주겠다는 것이었다.
그 날부터 김씨는 불교에 대해 배우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자살하는 것은 먼저 간 아내와 아들에게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자신의 업도 녹이고 가족들의 업도 녹여야겠다는 마음이 들어 부지런히 정진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 꿈에 아내와 아들이 행복하게 웃으며 나오는 것을 보았다. 십년이 지난 지금 자신은 딴사람이 되었다.
“그 일이 없었다면 평생 부처님법을 알려고 했을까 싶어요. 다음 생에는 좋은 인연으로 만나야지요.”
김씨의 얼굴에 사고의 흉터 위로 잔잔한 미소가 번져나갔다.
황수경(동국대 선학과 강사)
2008-05-13 오전 10:4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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