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5월 휴일을 맞아 부모님 묘소를 다녀왔다. 오는 길에 언제나처럼 통도사 경내의 이곳저곳 불당에 한 아름 꽃을 놓았다. 잠시 주변의 산들을 바라보니 온통 꽃들로 둘러싸여있다. 특히 물오른 철쭉은 붉은 자태를 한껏 뽐내며 아름다운 모습을 화려하게 드러낸다.
5월은 뭐니 해도 부처님오신날이 있어 더욱 즐겁다. 그밖에도 어린이날을 비롯하여 어버이날, 스승의 날 등 온통 배려의 따뜻함과 기쁨을 나누는 날들로 가득하다. 그들에게 5월의 모든 꽃들을 가슴에 가득 달아준다.
꽃만큼 우리의 일상 깊숙이 희로애락을 함께 나누는 식물도 드물 것이다. 때로는 축하와 감사를 전하지만 한편으로는 격려와 위로의 애통함을 전달하는 감정의 전령사가 되어주곤 하기 때문이다.
한편, 꽃은 오랜 역사로 우리의 심성 한가운데를 가로지른다. 남궁억의 ‘무궁화동산’에는 “우리의 웃음은 따뜻한 봄바람 춘풍을 만난 무궁화동산”으로 노래한다. 무궁화는 아득한 고조선 단군시대로부터 5000년의 역사 속에서 겨레의 혼으로 내려왔다. 태고 단군조선이 세워지기 이전부터 나라꽃으로 등장해 신라, 고려 때의 ‘근화’라는 이름으로 있다가 구한말 다시 나라꽃이 된다. 그러다가 오늘날까지 동거동락하며 지금의 국가상징이 되었다. 길고긴 초여름부터 100여일을 꼭두새벽부터 피어서 저녁 해질 때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한결같게 꽃피우는 무궁화야말로 꽃 중의 꽃이다.
일제 강점시기에는 민족의 상징이자 독립에 대한 염원으로 가슴 속에 피는 희망의 꽃으로 역사의 중심에 있었다. 그래서 꽃은 나라이기도 하다.
올림픽으로 세계의 이목을 받고 있는 중국을 대표하는 모란은 부귀영화와 아름다움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측천무후의 질투에 얽힌 설화 때문에 권력에 굴하지 않는 절개를 의미하는 전설의 꽃이기도 하다.
스코틀랜드의 엉겅퀴는 잠입하는 덴마크 바이킹들이 그 가시에 찔려 지르는 비명을 듣고 대피해 위기를 모면했다는 설화를 지닌 호국의 꽃이다.
호주의 와틀은 18세기말 초기 원주민들이 벽화 등을 그릴 때 즐겨 쓰던 식물로 정착민들이 주택, 가구 등 일상의 모든 것의 재료로 사용한 삶 자체였고, 우아한 노란 색조의 향기로 인해 온 국민이 사랑받는 나라꽃이 되었다.
꽃은 우리 문학작품의 시로 삶 속에 녹아 있기도 하다. 김춘수의 ‘꽃’은 그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비로소 꽃이 되는 사랑으로 다가오지만 김영랑의 ‘모란’은 찬란한 슬픔의 봄을 기다리는 소망을 얘기한다. 김소월의 ‘진달래꽃’은 암울했던 일제 강점기 울분어린 민족의 정서를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라는 의지로 승화해 내고 있으며,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는 모진 고초를 견뎌낸 누님 같은 완숙함을 국화로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뭐니 해도 꽃은 아름다움과 함께 향기가 있어 더욱 매혹적이다. 그런 꽃들이 점차 향기를 잃어가고 있어 안타깝게 한다.
미국 버지니아대학 호세 푸엔테스 환경과학과 교수는 문명의 산물인 대기오염으로 인해 1km를 넘나드는 꽃향기가 200~300m에 머물러 꽃의 꿀을 찾지 못하는 벌들이 대규모 폐사하는 일들이 잦다고 한다. 벌이 없어지면 결국 꽃들도 생식을 못해 사라지고 만다. 꽃 없는 산천을 한번 떠올려 보자. 이제 꽃은 환경이며 우리의 미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