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4.10 (음)
> 종합 > 기사보기
오신 것도 가신 것도 없이 영원히 살아계시는 부처님!
(지난호에 이어서)
우리가 한 사람을 건지고 한 사람에게 좋은 일을 한다고 그래서 내가 좋은 일 했다고 할 게 하나도 없습니다. 내가 지금 말을 하는데도 내가 말하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나는 그대로 그대로 이렇게 살면서 말하게 되면 하고 안 하게 되면 안 하지만 내가 한 것도 하나도 없어요. 내가 하고 가는 것도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나 자체도 내세울 게 없기 때문에 나 자체도 없다고 할 수밖에 없죠. 공했다 이 소리죠. 그러니까 고정된 게 하나도 없다는 겁니다.
여러분이 만약에 가정에서 “아버지!” 그러면 “그래!” 그러고 아버지가 되고 “얘, 아무개야!” 부르면 아들이 되고 “여보!” 그러면 남편이 되고, 금방금방 달라지죠? 어때요? 그렇게 자꾸자꾸 화해서 바로 바꿔지는데 아버지가 될 때 내가 나라고 할까요, 남편이 됐을 때 나라고 할까요, 아들이 됐을 때 나라고 할까요? 나라고 할 수가 없죠. 그거를 가지고 고정됨이 없으니 공했다고 하는 겁니다. 모두가 공했죠.
그러니 찰나찰나 돌아가는 그 자체가 바로 공한 도리니 거기에 착을 붙이지 말고, 하늘이 무너진다 하더라도 ‘주인공, 너만이 해결할 수 있잖아. 한마음 속에서 나온 거니까 한마음 속에서밖에 해결할 수 없어.’ 하고 놓고 편안하게 사시란 말입니다. 편안하게 살 거를 그냥 아둥바둥 아둥바둥 해 가지고 오히려 더 힘들게 해서 살아요. 남편이 승진을 해야 한다면 그냥 바깥으로 온통 쏘다니면서 야단법석들을 하죠. 왜 그렇게 해야만 합니까?
그것뿐만이 아니죠. 일상생활의 일체가 다 그래요. 내 원자한테다가 맡겨 놓으면 원자가 분자로 화해서 입자로 화해서 다 다니면서 마음 조절도 하고 안되는 거 되게도 하고 이렇게 다 할 수 있고 그렇게 편리한데 말입니다. 심성과학이라는 게 지금 생활입니다. 여러분이 심성과학을 쓰지 못하고 그냥 과학을 쓰기 때문에 그렇죠. 하하하…. 얼마나 편리하고 얼마나 좋고, ‘감사하다’ 말할 수가 없으리만큼 이 세상 만물만생이 전부 감사해요.
자비가 뭔 줄 아십니까? 자비는 사람들을, 서로를 모두 편안하게 해 주면서 서로 고통을 면하게 해 주는 겁니다. 고통을 면케 해 주면 스스로 편안해지죠? 그것이 바로 자비예요. 얄팍하게 입술에 붙여 가지고 사랑 사랑 하는데 그런 사랑은 진짜 사랑이 못되죠. 그건 사랑이 아니라 변덕쟁이를 사랑이라고 한다고 할 수밖에 없죠. 금방 ‘사랑한다’ 그러고도 고질병이 들거나 병을 길게 앓는다면 남편이든 아내든 “아이고! 나는 너 때문에 못살아!” 하고선…. 그거는 나빠서 그런 게 아닙니다. 당연히 생활이 그렇게 만드는 걸요. 그러니까 사랑이라는 것을 입가에 붙이고 사랑 사랑 하지 마십시다. 결국은 말없이 행으로써 자비를 베푸는 것이 진정 사랑 아닌 사랑입니다.
우리 생활 속에서 그대로, 여러분 마음속에 자부처가 있고 자성이 있다는 사실을 꼭 아셔야 됩니다. 나부터 알아야 일체제불의 그 마음을, 송두리째 한 찰나에 들었다가 한 찰나에 나고 하는 도리를 알게 됩니다. 그리고 부처님은 그대로 계신가요? 그대로 안 계시기 때문에 부처죠? 여래고요. 여러분의 집이 헐어지면 누가 고치죠? 누가 고칩니까? 집 주인이 고치죠? 타인이 고쳐 주는 법 없죠? 허허허…. 그런데 여러분의 몸뚱이는 여러분의 마음의 집이에요. 집과 같은 겁니다. 그 모두가 다 그렇죠. 그러니까 그 집을 고치려면 마음으로 진정코 거기다 맡겨 놓을 때 바로 마음을 통해서 대뇌를 통해서 중뇌에서 책정을 내려서 사대로 통신이 되는 겁니다. 통신이 되게 되면 모자라는 데는 보태 가면서 서로서로의 집을 고치느라고 작용을 하죠.
그러니 몸뚱이도 내 몸뚱입니까, 어디? 그 중생들의 집합소죠? 제 말이 틀린가요? 그러니 불교라는 단어가 얼마만큼 어마어마한지 모릅니다. 크다면 이 세상을 다 덮고도 남고 작다면 좁쌀, 아니 먼지 한 알갱이만도 못하다 이겁니다. 그 먼지 한 알갱이에 이 우주 삼라대천세계가 거기 다 들어가고도 남아요.
그리고 절에 가서 스님네들더러 뭘 잔뜩 차려 놓고 지내 달라고 하지 마세요. 그 조상들이 들어와서 뭘 봅니까? 돈 얼마 들여서 상 차려 놓은 것만 알아요. 그래 가지고야 어디 천도가 제대로 되겠습니까? 그러니 마음공부를 한다면, 조상들이 와서 그 마음속에 척 들어가 보니까 ‘아, 우주 삼라만상이 툭 터졌어! 벽도 없고 봇장도 없고 문도 없고 들어갈 문, 나올 문도 없어. 그리고 자유스러워.’ 아, 그러니 그냥 그 자리에서 찰나에 천도가 되는 거지 뭐가 또 따로 있습니까?
예전에 어느 선지식께서 시식을 지내 달라고, 천도를 해 달라고 가져온 돈을 가지고 나가서, 애들하고 거리에 나앉아 있는 어려운 사람에게 방이라도 하나 얻으라고 줘 버리고 설렁설렁 그냥 오시니까 아, 천도 안 시켜 준다고 야단법석이 났답니다. 그래서 “천도 안 시켰다고 생각하걸랑 이 돈 도로 가져가라.” 했다는 얘기가 있죠. 나도 그런 일 잘했으니까요. 허허허…. 그러니까 사람은 우주 천지를 한생각에, 한 찰나에 돌고도 남음이 있어요. 그러니까 떡 하나를 해 놓고 천도를 시켜도 이 세상 만물만생, 죽은 세상 산 세상 다 먹고도, 일체제불이 다 받고도 그 떡 하나는 되남아요. 얼마나 훌륭한 법입니까! 얼마나 광대무변한 법입니까!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이천오백 몇 년 전, 그때에 가신 게 아닙니다. 오신 것도 없고 가신 것도 없이 영원하게 지금도 이렇게 살아 계시지 않습니까! 여러분이 바로 그 부처의 씨앗입니다. 그 부처님의 씨앗이에요. 종자예요! 그 부처님의 종자하고 여러분의 종자하고 다른 겁니까? 깨씨 하나를 심어서 깨씨를 받아 놓았으니까 그 무수한 깨씨가 다 똑같아요. 깨씨예요, 그냥! 허허허….
그래서 우리는 마음을 좀 더 발전시켜야 하고 또 창조력을 길러야 합니다. 우리가 지금 현재에 생활하는 것이 심성과학이며 심성의학입니다. 그러니 60% 모자라는 거는 당신네들이 그렇게 해서 채워서 집을 고쳐 가지고 다니세요! 집을 고쳐 가지고 다니면 될 것 아닙니까? 왜 내 집을 남더러 고쳐 달래요? 그리고 고칠 때도 정 어디가 부러져서 남의 손이 필요할 때는 이거 좀 이어 달라고 해야죠. 일꾼을 불러다가 하듯이 의사, 박사를 불러서 할 수 있지만, 내 집이 안으로 곪아 터지고 안으로 잘못되는 거는 주인이 고쳐서 집을 사용할 수 있어야죠. 모두가 다 그렇습니다.
지금 내가 여러분한테 거짓말하는 게 아니라 우리 지원이나 본원의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공부해 가고 있어요. 내가 그래서 어떤 때는 싱긋이 웃고 그냥 돌아설 때가 있죠. 왜냐? 좋아서요. “아유! 스님, 참 감사합니다. 병원에서 내쫓긴 제가 이제는 살았습니다.” 이럴 때, 또 부부지간에 아주 헤어질 단계까지 갔었는데 “우린 지금 정답게 아주 행복하게 삽니다.” 할 때, 또 여러 얘기들이 아주 많죠. 그럴 때마다 그냥 “내가 그런 게 아냐. 당신의 전깃줄하고 내 전깃줄하고 이렇게 맺어졌기 때문에 불이 들어왔을 뿐이야.” 이렇게 말하죠. 어때요? 내 말이 거짓말입니까?
부처님의 법은 이렇게 광대무변하고 생활 속에 이렇게 가까이 있다는 사실을 아셔야죠. 생활 속의 문제들도 바로 내 마음속에서 내 마음먹는 대로 해결이 될 수 있건만 모두 유전성 영계성 업보성 세균성 인과성, 이 모두에 얽히고설켜 가지고 한 치도 그 마음을 너그럽게 낼 수가 없이 됐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그러니 이제 앞으로는 가정에서 부모자식지간에도 그렇고 부부지간에도 그렇고, 어떠한 일이 벌어졌다 하더라도 그쪽을 나무라지 말고 내 탓으로 돌리고, 마음을 너그럽게 낼 수 있고 자비를 베풀 수 있도록 하세요.
바로 내 주인공 뿌리에 함께 하고 있으니 그 남편의 뿌리, 자식의 뿌리 모두가 둘이 아니에요. 왜냐하면 전력이 전부 둘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용도에 따라서 그 전력을 끌어 쓸 뿐입니다. 그와 같이 여러분도 가정에 어떠한 일이 있든지 그렇게 끌어 쓰십시오. 전력은 다 가지고 있으니까요. 그래야 우리나라의 나쁜 짓을 하는 사람들…, 어떻게 말을 해야 될까? 난 말도 할 줄 몰라요. 그런 사람들을 좀 착하게 만들 수 있고 또 우리나라도 참, 공덕이 있게 할 수 있고, 세계 어느 나라와 비교하더라도 아주 일등으로 진행해 나갈 수 있고 인재를 배출할 수 있도록 정신계를 길러야겠습니다.
질문하실 분 있으면 질문하세요.

질문자1(남): 저는 제주지원 법형제회에 나가는 신도입니다. 지금 일각에서는 우리를 보고 사이비니 이단이니 하는 말들이 오고 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진실된 부처님의 법문을 전하려는 스님의 설법을 다 같이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는 수가 있어 안타까운 마음에서 질문드립니다. 이 점에 대해서 스님께서 정의의 말씀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스님: 지금 이 세상에는 사이비로서 사람을 속이는 사람도 많겠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부처님께서도 “내 고깃덩어리를 믿지 말라.” 이랬습니다. 그런 거와 같이 여러분한테 여러분을 믿으라는데 왜 사이비입니까? 하하하….
질문자1(남): 감사합니다.
스님: 내가 딴 거를 믿으라고 그러고 나를 믿으라고 그래야 사이비지 어떻게 사이비입니까, 그게? 나 참! 하하하….
질문자1(남): 잘 알고 들어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질문자2(남): 저는 북제주군 애월읍 장전리에 살고 있고 단군성주교 교단에 책임을 맡고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문제가, 여기 오늘 팸플릿을 보니까 불기가 2538년 몇 월 며칠이라고 나와 있는데 묻고자 하는 거는, 현재 그 2538년이라는 불기가 어느 시절에 어느 곳의 어느 부처님을 기점으로 하고 있는 것인지 잘 몰라서 충분한 대답을 청하고자 합니다. 이상이올시다.
스님: 부처님의 불기가 어느 때고, 어느 때라는 것은 이론에 불과합니다. 그것을 알려고 애쓰면 그냥 수박을 겉핥듯이 돌리다가 세월 보내고 맙니다. 그러니까 그 불기가 어떠니 저떠니 어느 날이니 그거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마는 그것을 어느 때 깨달았느니 어느 때 열반하셨느니 이런 걸 묻지도 마세요. ‘열반이다’ 또 ‘형성된다’ 하는 것은 찰나에 형성되고 찰나에 가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한번 마음을 냄으로써 그냥 일을 연구해서 잘 내놓기도 하고 또 성취시키기도 하는 것이 발전이며 그것이 바로 탄생을 시키는 겁니다. 그러니 부처님 무슨 경전에 이렇고 저렇고 얘기를 하지 말고 날짜를 따지지 말고 영원히 그냥 계시다는 그 자체를 아셔야 합니다. 4월 8일만 부처님 오신 날이 아니에요. 일분일초도 변하지 않고 항상 그저 찰나찰나 부처님 법이 있고 또 찰나찰나 부처님이 오시고 하는 거지 어떻게…. 우리들 사는 것이 즉 부처님 법이에요.
그러니 그런 거를 자꾸 따지고 이런다면 이론에 불과해서 진짜 생활로서의 진짜 실천은 할 수가 없습니다. 내가 한 걸음 한 걸음 걸으면서 실천해 가는 그 멋이야말로 참, 이 세상을 다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것입니다. 말씀하세요.

질문자3(여): 스님 법문 중에 다 나온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제가 생각했던 거와 여러 신도님들이 궁금해하는 것 중에 여쭙겠습니다. 일반 불교에서는 몸이 아프거나 이러면 기도를 한다고 그럽니다. 그런데 제가 한마음선원에 와 보니까 스님께서는 ‘자기 자신, 본마음자리에 관해라’ 그러셨습니다. 잘 말씀해 주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다시 한 번 더 정확하게 말씀해 주시면 여기 오신 많은 불자님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고 저부터도 더 정확히 알고 싶습니다.
스님: 그 말을 또 해 달라고요? 하하하…. 이거 아닙니까? 독 안에 들어도 못 면한다 하는 거는 과거에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서 입력된 것이 자꾸 나오기 때문입니다. 내 영혼의 근본과 더불어 업식들이 뭉쳐서 부모의 정자 난자를 빌려서 내가 형성돼서 이렇게 나오는 겁니다. 과거에 산 것대로 입력이 돼서 현실에 나오는 데다가…, 그냥 화가 나도 자기한테서 나오는 것 아닙니까? 행복해도 자기한테서 나오는 거죠? 뭐 딴 데서 나오는 게 하나도 없어요.
그러니까 행복하면 ‘감사하구나!’ 하고 놓고 또 행복하지 못하면 ‘아니, 행복하게 하는 것도 너 아냐?’ 하고 마음을 돌려서 거기다가 되놓는 게 관하는 겁니다. 이게 되놓으면 그대로 실행이 돼 버리니까요. 실행이 돼 나가는 반면에 우리가 주고받는 사이 없이 주고받게 되고 가고 옴이 없이 가고 오게 되고, 찰나찰나 이렇게 돌아가는 겁니다.
그래서 이런 얘기가 있지 않습니까. 미국에 지원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미국에서 “스님, 이러이러합니다.” 이러고 전화가 옵니다. 즉 말하자면 어렵지 않은 사람은 병원에 가기도 쉽겠지만, 아주 한 푼도 없어서 병원에 갈 수도 없는 사람들이 만약에 하혈을 막 하고 콧구멍에서도 피가 나오고 그냥 입에서도 나오고 이런다고 합시다. 자식들을 조랑조랑 두고서 돈 한 푼 없어서 병원에 못 가는 사람이 “이렇게 이렇습니다. 이거를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 이랬을 때 뭐 여러 말이 필요합니까? “알았어!” 그러면 되지. 허허허….
근데 ‘알았다’ 하는 그 자체가 무엇인가? 알았다고 하는 건 내가 한다 안 한다 이런 것도 떠나서 알았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 알았다 하는 그 마음이 말입니다, 돈이 없는 사람이니까 지극할 테죠. 돈이 없는 사람이니까요 ‘아이구! 주인공, 나 좀, 나를 낫게 해 주는 것도 너뿐이야!’ 하고 그냥 막 이럴 때 이쪽에서도 지극한 그 마음이 탁 가서 한데 합쳐지니까 불이 번쩍 들어오죠. 그래 그런 거와 같은 거죠.
그러니까 마음이라는 것이 그렇게, 미국인데도 그렇게 가깝고요, 또 마음을 내지 못하는 사람들은 요 한 치도 그렇게 멀어요. 한 치인데도, 이 문지방 바깥인데도 마음을 낼 수 없는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먼 겁니다. 그래서 부처님 법이 멀기도 하고 가깝기도 하다 이런 얘기죠.
질문자3(여): 다시 한 가지만 여쭙겠습니다. 제가 선원에 나온 후인데, 딴 절에 열심히 가시는 분에게 “불교 사찰에 열심히 나가면서도 식구 중에 몸이 아픈 사람이 있으면 점을 보러 가십니까?” 하니까 “아! 그때는 당연히 가야죠” 그러더라고요.
그리고 또 저희 집안에도 그런 일이 있었던 걸로 알아서 여쭙니다. 일월이라고 그러던데요, 처음에는 ‘그게 뭘까?’ 했는데 조상 중에 혹시 높은 벼슬을 했거나 아니면 책을, 무슨 철학을 봤다든가 뭐 이런 것이 일월이라고 그럽디다. 그래서 그런 문제에 있어서도 해결을 못해서 제주도 분들이 굉장히 많이 마음고생을 하시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스님,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가르침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스님: 허허허…. 그런데요, 낮고 높고 그게 잘못하는 게 아니죠. 그 사람이 잘못하는 게 아니고요, 점을 봐 준다 하더라도 그렇고 사주를 본다 하더라도 그렇고 그게 그 사람이 모르기 때문에 그런 거지 그 사람이 잘못하는 게 아닙니다. 천차만별로 차원이 낮고 높고 이렇게 모두 생활들을 하고 계시듯이, 물건도 차원이 높은 게 있고 낮은 게 있듯이 전체가 그렇습니다. 그런 양반들도 안다면 왜 그러겠습니까? 모르니까 그러죠.
그러니 여러분도 물질계에 너무 집착하지 말고 정신계로 들어야 자유스럽고 편안하게 살 수 있는 것이니까 그런 거를 흉보지 마시고 될 수 있으면 그저 내가 ‘저 사람도 저러지 않도록 했으면….’ 하는 마음을 관해 주시도록 하세요. 그러니까 우리가 흉볼 게 하나도 없죠. 전자에 내가 모를 때 그렇게 했던 내 모습으로 본다면 아주 좋죠. 모두가 남의 모습으로 보지 말고 내 모습으로 보면서 잘못한다 잘한다 그렇게 흉볼 것도 없이 잘해 나가야 되겠죠. 부처님의 제자들이라면 진짜 부처님의 법을 따라야 하죠.
여러분! 제주도에 와 보니 이 공부를 한 번도 접해 보지도 않았던 분들이 많으시기 때문에 ‘어떻게 말을 해 드려야만이 이해가 될까?’ 하는 마음에서 했던 겁니다. 그것이 사실이지 거짓이 아닙니다. 오늘 나눠 줄 게 있는데, 그거를 받아 가지고 가서 보면서 우리가 자꾸자꾸 개선해야 할 건 개선해야 하고, 마음속에 들어 있는 이 의식들도 개혁하고 개선해서 자유인이 되도록 발전을 시켜야 됩니다. 내 마음이 발전을 못한다면 한 치도 자유스럽게 살 수가 없습니다. 정말입니다.
그리고 그 도리를 완전히 알게 되면 부처님 형상이 진짜 부처님으로 보입니다. 처음에는 형상으로 보이겠지만 진짜 부처님으로 보여야 됩니다. 그래서 법당에 들어가면 부처님도 내 몸, 내 형상, 부처님 마음도 내 마음, 부처님의 생명도 내 생명이니 공부할 때는 둘로 보지 말라는 겁니다. 그렇게 해 가지고 공부를 다 해 놓으면 진짜 부처님으로 보입니다. 그때는 진짜 부처님을 압니다. 그렇게 된다면 다 은혜를 갚기 위해서 일체 만물, 돌 하나라도 모두 스승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스승으로 보이는 그 모든 일체 만물에게 정법으로써 법을 설해 주어야…, 여기 앉아서 듣는 분들만 듣는 게 아닙니다.
오늘 천도되신 분들도 지금 여기에 잔뜩 있습니다. 또 보이지 않는 세계의 사람들, 그 사람들도 여기 잔뜩 있습니다. 여러분 육안으로는 보실 수 없을 겁니다. 하여튼 그렇게 묘하고 광대한 부처님 법이기 때문에 저렇게 부처님을 모셔서 점안식을 하고 모셔 놓았지 않습니까? 근데 그분은 앉아 있어도 못하시는 일이 없습니다. 천리만리를 오고 가면서 말입니다. 이 도리를 접하지 않고 알지 못하고는 그런 도리를 모릅니다.
그러니까 나부터 먼저 알아야 하겠기에 여러분이 모두 과거에 살던 나부터 잡고 들어가야 바로 문 없는 문을 접하게 되고 그놈을 붙들어야만이 죽은 세상을 다 알게 되는 거니까요. 죽은 세상을 다 알아야 자유자재할 수 있는 세상도 나오고 그런 거죠. 그러니까 우리는 한 치도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없고, 마음대로 하지도 못하고 살아요, 모두.
그런데 그렇게 마음대로 하고 살려면 정말 반찬 가게를 노리는 고양이처럼 내면의 자기 뿌리 주인공을 진짜로 믿고 ‘너만이 할 수 있어. 너만이 나를 이끌고 갈 수 있어. 너만이, 네 몸뚱이니까 네 시자니까 네 시자를 네가 건강하게 고칠 수 있어. 고쳐서 끌고 다녀야 하잖아!’ 하고 일체를 일임할 수 있어야 되겠죠. 그래야만, 즉 말하자면 용두의 법왕이 되고 또는 평등공법의 문 없는 문을 찰나찰나 들고 나면서 이 세상을 그대로 자유스럽게 살 수 있겠죠?
2008-05-13 오전 10:44:11
 
 
   
   
2024. 5.17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원통스님관세음보살보문품16하
 
   
 
오감으로 체험하는 꽃 작품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