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4.12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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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등(조계종 호계원장·경실련 공동대표)
‘바보상자’의 진화 혹은 폭력
한 때 TV를 ‘바보상자’라고 한 적이 있었다. TV가 개인의 주관적 사고를 방해하고 사회의 정서를 ‘소떼’ 몰듯 몰고 가는 것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실제로 TV를 시청하느라 할 일을 제대로 못하는 어른이나 TV에서 흘러나오는 유행어를 뜻도 모르면서 입에 달고 다니는 어린이들이 적지 않다. 코미디나 연속극이 국민정서를 이끌고 가는 힘은 놀랄 만하다.
그렇다고 부정적으로만 볼 수도 없다. TV가 기여하는 순기능도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정보 전달과 사회 현상에 대한 공감대 형성 등 TV가 국민에게 주는 영향은 선한 것이든 악한 것이든 엄청난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 정보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휴대폰이나 인터넷에 그 인기를 조금씩 뺏기고 있긴 하지만, TV는 여전히 파급력이 큰 매체다.
최근 방송위원회가 TV 프로그램 중간에 광고방송을 허용하기로 결정하자 곳곳에서 반대의 목소리가 거세다. 당연한 일이다. 현대인의 생활에서 TV가 갖는 영향력을 생각하면 중간광고 같은 중대한 결정은 공의를 모으고 수차례 토론과 시범을 통해 신중히 결정해야 할 일이다. 그럼에도 방송위원회는 ‘국민을 위한다’는 명분을 강조하며 허용 쪽으로 결정을 내려버렸으니 국민적 저항에 부딪히는 것이 당연하다. 국민들은 이 결정이 바보상자의 진화라고 보기보다 하나의 폭력이라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선진국에서도 시행되는 일이라는 이유에도 쉽게 납득할 수 없다. 미국의 경우 프로그램 한시간당 광고 허용 시간은 18분이나 된다. 일본의 민간방송도 총 방송 시간의 18%가 광고시간이다. 유럽은 좀 적은 편이어서 독일이나 영국은 시간당 12분 아일랜드는 10분 정도다. 이런 비율로 배정된 광고가 프로그램 중간에 툭툭 튀어 나오는 것이다.
미국이나 일본의 여론조사 통계에 의하면 시청자들은 이 같은 중간광고에 대해 넌더리를 치고 있다. 미국의 한 여론조사에서는 응답자의 71%가 중간광고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또 37%는 광고가 나오면 채널을 옮긴다고 답했다. 이는 “중간광고 삽입이 프로그램에 몰두하지 못하게 한다”는 일본 시청자들의 주장과 부합된다. 무엇보다 일본에서는 청소년들이 10분 내지 15분 이상 앉아 있거나 정신을 집중하지 못하는 것과 TV의 중간광고가 어떤 개연성을 가질 것으로 보고 있다고 한다. 그러므로 ‘선진국도 다 하는 일이니 우리도 하자’는 식의 안일한 변명은 설득력을 얻지 못한다.
이렇게 볼 때 방송위원회의 중간광고 허용 결정은 공중파 방송의 살림살이를 더 부풀려 주는데 기여하는 것 말고는 실익이 있는 결정이 못된다. 국민적 공감대 형성과 관련한 노력의 흔적이 없다는 점은 특히 심각한 일이다.
생각해 보라.
시청자에게 보고 싶은 프로그램을 볼 권리가 있다면 보고 싶지 않은 광고를 보지 않을 권리도 있어야 마땅하다. 그런데 프로그램 중간에 불쑥 광고가 튀어 나와 시청의 맥을 끊어 버릴 것이 아닌가? 거기다가 방영 형태가 변하는데 맞춰서 프로그램의 제작 형태도 바뀔 것이다. 광고를 의식한 프로그램의 제작이라면 그 작품성에 대한 기대는 포기해야 할 것이다. 이야기가 짧게 끊어지는 내용이 주를 이룰 것이고 이런 프로그램이 판을 치면 국민 정서가 은근히 단발성으로 변해 갈 것이다. ‘은근과 끈기’를 자랑하는 한민족의 정신이 10분 내지 15분 단위로 끊어지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다.
광고 시장의 활성화나 공중파 방송사의 재정확대가 국민의 정신세계를 불안정하게 이끌어 가는 것을 허용할 만치 중요한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언론 환경이나 미디어 환경은 급속도로 변해가고 있다. 시청료 인상이나 중간광고 같은 일차원적인 해법 말고, 보다 포괄적이고 합리적인 답을 찾는데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그런 자세야 말로 공익을 대변하는 방송의 대국민 서비스가 아닐까?
2008-05-09 오후 10:5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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