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4.10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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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는 것을 쑥 빼버리고 공심으로 사세요!
벗어나려면 한 구멍에다 모든 것을 맡겨 놓아야!


계를 주고 받는 마음 자세
지극한 마음으로 법을 청하오며 질문을 올리겠습니다. 계를 받고 계를 주는 마음은 어떠한 마음이어야 하는지 그것을 여쭙고자 합니다. 가르침 주십시오.


법회를 할 때마다 여러분이 청법가를 부르시는데 저는 송구스럽기 한량없습니다. 왜냐고요? 너무나 가슴 아픈 일들이 온 누리에 나와 더불어 같이 많기 때문입니다. 간곡하고 애절하게 법문을 청하는 그 마음들을 생각할 때마다 난 왜 그런지 가슴이 뭉클하고 아픕니다. 여러분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건 여러분의 생각이고 난 내 나름대로의 생각한 바가 그렇다 이런 말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이 오계를 받는 사람이나 주는 사람이 어떠해야 받고 주는가. 내 마음같이 생각하고 내 몸같이 생각하고 내 아픔같이 생각하고 내 자리같이 생각하고, 모두가 뺏기고 뺏는 사람도 평등하게, 더불어 같이 불쌍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체가 다 사는 걸 모두 볼 때에 침착하게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 인간들뿐만 아니라 미생물에서부터 올라오면서 서로 찢기고 뺏기고 하는 그 사연들을 볼 때 너무나 아픔을 가져오게 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인간은 인간대로 정신이 갈갈이 뜯기고, 정신을 갈갈이 뜯어서 먹고, 뺏기고 뺏고, 가슴을 치면서 통곡하고 남자 분들은 술을 마시고, 허허벌판을 그냥 걷기도 하고, 당장 가정의 급한 거를 해결을 못해서 애를 쓰고…. 이거는 말로 형용을 못하는 겁니다. 여러분의 삶에 대한 거를 어떻게 말로 다 하리까.
그렇기 때문에 이 오계만 하더라도 그렇습니다. 살생을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건 왜냐? 모두가 둘이 아닌 까닭에 살생을 하면 그 아픔을 당하는 놈이나 아픔을 주는 놈이나 똑같이 아픔을 당한다 이겁니다. 그래서 살생계이니 내 생명같이 생각하고 내 몸같이 생각해서 아끼는 마음이 있어야만 된다. 남을, 남의 생명을 함부로, 우습게 생각한다면 내 생명도 역시 그러할 것이다라는 얘깁니다.
그리고 ‘불투도계이니’ 하는 것은 우리가 도둑질하지 말라고 그랬습니다. 도둑질하지 말라 하는 것은 남의 집에 가서 훔쳐야만이 도둑질이 아닙니다. 내 분수에 맞게 살지 않고, 내 분수를 지키지 못하고, 항상 남의 것을 넘겨다보는 그런 것도 도둑질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꼭 남의 거를 훔쳐야만 되는 게 아니라 마음을 그렇게 쓴다면 언젠가는 그게 그렇게 진행이 된다는 얘깁니다.
그리고 ‘불사음계이니’ 하는 것은, 내 집에 사랑하는 분을 두고도 왜 그거보다 더 예쁘거나 못하거나, 하여간에 자기 마음에 들었다 하면 쳐다보고 있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상황에 따라서 참, 자식을 못 낳거나 또는 어떠한 문제로 인해서 두 분을 두고 사는 분들도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거기에 또 충실해야 됩니다. 마음을 건드리지 말고 마음을 아프게 하지 말고, 평등하게 그렇게 이끌어 갈 수 있는 자격이 있어야 두 분도 거느리리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만약에 내 집에 이렇게 두고 남의 거를 뭐, 여자뿐만 아니라 모든 거를 겁탈하는 마음이 있다면 그것은, 또 사람이 살아나가는 데에 좋은 이미지를 지키지 못하고, 이미지를 나쁘게 손상시키고 끝까지 나간다면 그것이 요다음에 또 다시 끝까지 이어지니까요.
그리고 또 ‘불망어계이니’ 하는 것은 우리가 항상 입을 조심 못해서 큰 망신을 당할 수도 있고 해를 볼 수도 있습니다. 이 말 한마디 거짓말을 한번 해 놓으면 거짓말을 숨기기 위해서 또 해야 하고 또 해야 하고, 이러한 문제들이 생기죠. 그러나 내가 거짓말을 한 거를 아는 내 마음이 그렇게 알기 때문에 언젠가는 그게 모두가 퍼지게 돼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그 생명들도 다 알게 되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거짓말하지 말라 했습니다. 거짓말을 하게 되더라도 이런 좋은 거짓말은 해도 거짓말이 아니다. 남을 이익하게 하기 위해서 거짓말을 한다거나, 의절한 사람을 거짓말을 해서 붙인다거나, 부모들이 속상하고 자식들이 속상할까 봐 실질적으로 말을 못하고 거짓말을 한다거나 이런 거는 거짓말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모든 거를 적중히, 마음을 속이지 말고 그저 자기도 손해가 없고 상대방에도 손해가 없이 적중히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또 ‘불음주계이니’ 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사람이 술을 조금 먹고 얼근하면 참 쾌활한 마음이 들고, 내가 술은 안 먹어 봤지만 말입니다, 그런 것 같습니다. 술을 얼근히 그냥 조금만 마셨으면 마음이 쾌활하고 노래도 나오고 가정에도 들어와서 재미있게 할 수 있는 그런 계기가 될 텐데, 그냥 거기에 넘어가서 그냥 다 녹초가 되게 자시니까 그거는 식구들에게 부담을 주지요? 그 속썩는 마음은 말도 못하고, 자기는 몸에 지장이 되죠. 그러니 이튿날 또 속상하죠? 만약에 출근하는 사람이라면 이미지가 또 좋지 못하다 이 소립니다. 그러니 남과 남을, 나와 남을, 여러 사람을 다 괴롭히는 일들이 되니까 그게 망조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살아가면서 지혜를 좀 넓혀서 부모에게나 자식한테나 형제들한테나 또는 친구들한테나 이렇게 화를 내고 거절하고 이럴 게 아니라 여러분이 짧으면 짧은 대로 들어가 주고 길면 긴 대로 들어가 주고 둥글게, 항상 자기는 어디에고 작은 그릇에도 들어갈 수 있고 큰 그릇에도 들어갈 수 있고 바다에도 들어갈 수 있고 이러한 그릇이 돼야만이 그게 부처인 것입니다.
그러면 내가 용서할 수가 없는데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겠느냐 그러겠지만 그거는 용서할 것도 없고 용서 안 할 것도 없고, 그저 담담히 말없이 지켜보고 마음을 내 주게 되면 그것이 나중에는 그쪽 마음에도 불이 들어와서 이렇게 사과를 하게끔 돼 있거든요. 그래서 이 모두가 내 모습 아님이 없고 내 아픔 아님이 없고 내 도량 아님이 없고 내 몸 아님이 없고 내 가정 아님이 없이 생각할 수 있는 분들이라면, 하늘에서 말입니다, 일체제불의 마음 한가운데서 열쇠를 내줄 겁니다, 아마. 자유의 문서를 탁 내줄 겁니다, 아마. 이건 누가 개인으로서 줄 게 아니니까요.
전에 얘기했지요? 컴퓨터에 입력이 됐는데, 아마 수억겁 전년서부터 입력이 된 건데 내가 거기다가 다시 지금 현실에 이 공부하는 것을 자꾸 입력을 해 보니까 앞서의 게 그냥, 수억겁 전년 것이 그냥 다 뭉개져 없어져 버리더라 이런 거 말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지극하게 수계를 받았을 때에, 당시에 벌써, 일체제불의 그 도리천에 끈이 닿아 있으니까, 여러분만 잘하시면 계단 밟지 않고도 스스로 아마 인연으로서 그 업보가 다 무조건 없어질 겁니다. 앞으로 정성껏 공부해 보세요. 미생물에서부터 거치면서 우리에게 누적된 그 자체가 그대로 없어지는 공부입니다.

죽어서의 차이점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을 믿으면 천당에 가고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 마음의 도리와 인연이 되어서 마음공부를 하고 죽은 사람과 인연이 없어서 공부를 하지 못하고 죽은 사람이 있다면 죽어서의 그 차이점이 있는지요? 그리고 이 마음공부를 한 사람들끼리의 인연은 어떠한지요?


모두 마음의 차원에 따라서 돌아가는데, 이 공부를 안 한 사람들과 한 사람들의 차이가 얼마나 나는지 모릅니다. 이 도리를 진짜로 믿고 그렇게 하는 사람들에게는 그 모두를, 업연을 없애기 위해서, 즉 말하자면 무명 굴레에서 벗어나는 깨침의 도리를 일러 주기 위해서 자꾸 생활에서 닥쳐오니까 그런 수련을 하도록 하는 겁니다. 그런데 만약에 죽기 한 시간 전에 이 마음의 도리를 알고 행하다가 돌아가신다 하더라도 아주 너끈히 웃을 수 있고, 죽지 않는 방법을 아실 겁니다. 몸뚱이는 사대로 흩어져서 원점으로 돌아가지만 영혼 자체는 슬기롭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언제나 여래와 한자리를 하실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하고 같이 항상 영원토록 하실 겁니다, 아마.
그리고 그렇게 공부를 못하는 사람들, 기복으로만 끄달리는 사람들은, 그전에도 내가 말씀드렸지만 죽으면 그 의식들이 집에도 있고 무덤에도 있고 친척 간에도 있어요. 의식들이 그렇게 떠나질 못하고 자기 몸뚱이가 있는 줄 알아요. 자기 살던 그 관습이 있기 때문에 자기 몸뚱이가 있는 줄 알고 가려니 물 소용돌이를 벗어나야 될 텐데 물에 빠져 죽을까 봐 못 가는 거고 또는 불 소용돌이를 지나야 될 텐데 타 죽을까 봐 못 가는 겁니다. 마음공부 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그건 모르죠. 그러니까 타 죽을까 봐 빠져 죽을까 봐 못 넘어가고, 또 그 모든 업연들이 뭉쳐져서 보이는 곤충들, 짐승들 또는 귀신들이 모여 있는 데를 넘어서려니 그게 그림자처럼 따라다니고 보여서 못 넘어가죠. 못 넘어가니까, 그 업연 굴레에서 무명 굴레에서 악연 굴레에서 못 빠져나가니까, 그렇게 자기가 그대로 모습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살기 때문에 그것이 아주 창살 없는 감옥이죠. 그러니까 자기가 살아나간 차원 그대로 이 세상에 모습을 가지고 나오죠. 그러니 그 관습에 젖은 사람들이 어떻게 그 굴레에서 벗어나겠습니까? 그러니까 개로도 되고 돼지로도 되고 닭도 되고 뭐, 별거 별거 다 되고, 사람도 될 수 있고 이러는 거죠.
그리고 집집마다 다니면서 ‘내가 이렇게 왔는데 너희들 왜 본체만체하느냐. 왜 나는 안 주고 너희들만 먹느냐.’ 하고 귀찮게 구는 거죠. 자기 몸뚱이가 살아 있는 줄 알거든요. 지금 자기라는 착(着)이 있기 때문에 자기를 못 벗어나서, 의식적으로 자기가 있는 줄 알기 때문에 그러는 건데 ‘내가 이렇게 있는데 너희들끼리만 알아서 잘 살고 있구나.’ 이러기 때문에 그것이 문제죠. 그래서 어떻게 죽었든지 어떻게 살았든지 그게 유전이 돼서 자식들한테 내려오죠. 그러니까 ‘천도해라. 마음을 공부해라. 둘이 아닌 공부를 해라. 그렇다면 어떠한 영계성이든 유전성이든 세균성이든 업보성이든 다 한 컵의 물방울이다. 물방울을 열 개를 이 속에 넣어도 한 컵이다.’ 이거예요.
그러니까 어떤 애고도 생기지 않는 거죠. 그리고 더러운 물도 말갛게 맑은 물로 쓸 수 있고요. 그리고 당장 살아야 할 테니까 ‘너만이 할 수 있다. 너만이 이끌어 줄 수 있다. 너만이 나쁜 짓을 안 하게 할 수 있다.’ 하고 관(觀)하시고 속상하면 ‘아, 마음을 싱그럽게 하고도 오래 살지 못하는데, 아니 왜 마음을 이렇게 속상하게 해 주느냐.’ 이렇게 하시고요. 안 그렇습니까? 이 몸뚱이 모습을 가지고 얼마나 살겠습니까? 이 공부를 안 하면 그렇게 대대로 대대손손 그런 유전에 의해서 벗어날 수가 없는 거죠. 그러니까 지금 자기만 벗어나려고 하는 게 아니라 과거의 부모나 미래의 자식이나, 과거에 살던 자기나 미래에 자기가 갈 거나 모든 걸 한데 합쳐서 지금 막 요리를 하는 거죠. 막 그냥 용광로에다 집어넣는 겁니다. 막 용광로에다 집어넣는 작업만 한다면 그게 참선이고 관법입니다. 집어넣는 그 수행만 한다면 자동적으로 생산이 돼서 나갑니다. 그러니까 이 마음의 용광로에 집어넣는 수행만 하십시오.

오신통에 대해서

스님께서는 오신통에 대한 말씀을 자주 하시는데 저희들이 모르는 상태에서 스스로 오신통을 쓰며 살고 있다고 배웁니다. 그러다 보니 의도적으로 그런 신통을 쓰는 경우도 있다고 봅니다. 역대 조사님들은 오신통을 쓰는 것을 금기 사항으로 경계하셨습니다. 체와 용이 둘이 아니라 하나 사회생활에서는 용이 많이 필요하게 됩니다. 사회생활에 오신통을 활용하여도 부처님 법이나 역대 조사님의 가르침에 어긋나지 않을는지요. 가르침 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생활이 그냥 오신통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십니까? 여러분이 보시죠? 들으시죠? 그리고 마음으로 좋고 나쁜 걸 아시죠? 그리고 말을 통해 보면 벌써 그 사람의 마음을 읽으실 수 있죠? 그리고 가고 오는 것도 가고 오고 이러시죠? 고정된 게 없이 그냥 가고 오고, 말도 고정된 게 없이 하고 이러는 게 그대로 오신통 아닙니까? 아니, 지금 오신통을 하고 가시지 않습니까?
그런데 말입니다, 오신통을 하되 오신통 안에서도 벗어나야 진짜 오신통을 굴릴 수 있느니라 이런 소립니다. 지금 오신통을 굴리고 사는데 오신통 안에서 벗어나야 된다 이겁니다. 그러니까 오신통 안에서 벗어나려면, 항상 얘기하죠. 내가 했다, 내가 줬다, 내가 살고 있다, 내 거다, 내가 번다, 내가 망했다라고 하는 이런 ‘나’라는 거를 쑥 빼 버리고 ‘나는 공체로다. 나는 공체고 지금 내 속에 살고 있는 모든 생명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 나는 그저 심부름할 뿐이야.’ 이러고 사신다면 그것이 바로 오신통을 벗어나게 되는 방법입니다. 우리가 벗어나려면 그렇게 한 구멍에다 모든 것을 다 맡겨 놓아야 합니다. 그렇게 내가 한다는 말 없이 ‘나는 관리인이요 집합소요 심부름꾼밖에는 될 수가 없다. 자생중생들을 먹여 살리면서 내 마음으로써 모두 다스려서 천백억화신으로 화현을 시켜 놔야 되겠기에 나는 심부름을 열심히 해서 보살들로 이루어 놓겠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진짜 오신통 안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오신통이 별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깨달으면 눈 가는 데 귀도 쓰고, 귀 가는 데 코도 쓰고, 코 가는 데 혀도 쓰고, 혀 가는 데 몸뚱이도 다 씁니다. 그게 오신통이에요. 그런데 우리가 그냥 따로따로 쓰는 거 보셨습니까? 오신통을 따로따로 쓰는 게 없으니까 오신통도 없다 이겁니다. 오신통도 벗어나서, 오신통이라고 이름 해서 오신통이지 오신통은 없다라는 소리가 나옵니다. 그러니 오신통이 없다는 자체는 우리가 종합해서, 밥을 지으려면 물도 들어가야 하고 불도 들어가야 하고, 안 그렇습니까? 쌀도 들어가야 하고 사람도 있어야 하고, 이렇게 한데 모여서 밥 한 그릇이 되듯이 말입니다. 그러니까 눈 가는 데 귀가 가고, 귀 가는 데 냄새 즉, 우리가 반찬 냄새 맡고 이러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살아가는 냄새와 맛, 결정적인 맛, 이런 거는 좋고 저런 거는 나쁘게 하는 것이고 ‘이건 참 좋은 사람이구나.’ ‘이건 싫구나.’ 하는 결정적인 맛, 그런 것을 아는 그 자체를 송두리째 같이 돌아가면서 하고 있지 따로따로 하는 게 없지 않습니까?
눈으로 보면 벌써 귀로 듣게 되고 귀로 듣게 되면 벌써 결정이 되게 되고, 벌써 나쁜 거 좋은 걸 가리게 되고 알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 것이 바로 우리가 오신통이 있다 하더라도 오신통이 없느니라 하는 겁니다. 없는 까닭은 무엇인가? 그것이 고정되게 하나하나 개별적으로 쓰는 게 아니고 포괄적으로 쓰는 거기 때문에 없다고 하느니라. 그리고 지금 어항 속이 오신통 안입니다. 지금 공기주머니 안이 오신통 안입니다. 오신통 안에서 아무리 해 봤던들 내가 자유스럽게 나갔다 들어왔다 마음대로 하지 못한다면, 공기 없는 데나 공기 있는 데나 마음대로 왔다 갔다 할 수 없다면 그거는 자유인이 못되고 오신통 안에서 허우적거린다고밖에 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오신통이다 하는 생각도 말고 오신통이 아니다 그렇게 생각도 마세요. 우리 생활 자체가 그대로 오신통 안에서 지금 살고 있으니까 ‘오신통 안에서도 내가 벗어나야 되겠다.’이래서 지금 공부하는 겁니다. 그 법통 안에서 벗어나야 그것을 스스로 자유스럽게 쓸 수도 있는 것입니다.

주위 사람의 일은 되지 않는데…


이 마음의 도리를 공부해 나가다 보니 제 육신에 대한 것은 근본에 맡기면서 자연스럽게 해결이 되는 것을 느끼는데 저와 관련된 주위 사람들의 일은 왜 그렇게 잘 안되는지 그걸 스님께 한번 여쭙고 싶습니다. 이것도 욕심인지요?


여러분이 다 자기 주인공을 의심하면 죄 받죠. 자기 주인공을 믿지 않고 누굴 믿어요, 세상에? 죽는 것도 누가 대신 죽어 줄 수 없고 아픈 것도 그렇고 먹는 것, 싸는 것, 자는 것, 깨치는 것 이 여섯 가지를 아무도 대신 못해 주는데 누구를 믿어요, 자기를 믿지 않고? 자기만이 자기를, 자기 몸을 이끌어 가는데 말이에요.
그러니까 주인공은 이 모든 생명들의 의식을 다스리고 나가는 선장이라고요. 다스리는 선장은 바로 그 체가 없는 마음의 입자를 그냥 수없이 내보내서 어떠한 용도라도 다 해결할 수 있게끔 돼 있어요. 이렇게 말하면 모르는 사람이 생각할 때는 ‘저 스님은 저렇게 뻥이나 치고, 얼토당토않은 말을 하고 그런다.’그러겠지만 그게 아니에요. 이 세상은 그대로 여여하게 초월해서 회전되고 있어요, 그대로. 그러니까 우리 마음대로죠. 우리 마음대로 이렇게 회전을 시키느냐 저렇게 회전을 시키느냐, 그거에 따라서 살기가 평화롭기도 하고 살기가 아주 어렵고 복잡하게도 되는 거죠.
그런데 어떤 사람이 주인공을 찾아도 이렇게 안된다고 할 때 거기에 대고 내가 뭐라고 말을 해요? 알았다고 그냥 보낼 때도 있는데 그런 때는 그냥 심부름을 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 것이고, 또 “관하세요.” 이럴 때는 그 사람은 좀 나은 사람이기 때문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그거 왜 관하면 될 거를 그렇게 못 믿고선 못 관하고 그러느냐? 내가 산소에 가도 산소로 쫓아와 그거 해 달라고 그럴 테냐?”그러고 야단하죠. 때로는 그렇게 못된 사람이 될 때도 있어요. 그렇게 막 하니까요. 그렇지만 딱해서 그러지 미워서 그러는 건 아니거든요.
그러니까 지금부터라도 늦지 않았어요. 좀 미련한 듯하게, 똑똑한 척하지 말고 미련한 듯하게 ‘무조건 너만이….’ 그저 보면 보는 대로 이렇게 벌써 부(父)와 자(子)가, 주인공과 자기와 둘 아닐 때는 길에 지나가는 것만 봐도 그냥 ‘아, 저건 안됐다.’ 이러면 그냥 천가가 되는 거야. 꼭 주인공에다 맡기고 안 맡기고가 어딨어, 싹과 뿌리와 한데 붙었는데. 안 그래요? 그러면 그렇게까지 되게끔 돼야지. 텔레비전을 보면서도 일은 나가서 할 수 있게끔 돼야 되는 거예요. 구경을 하면서도 벌써 천백억화신으로 나투면서 화해서, 이 우주 전체를 그냥 한 찰나에 다닐 수도 있고 일을 할 수도 있어야 된단 얘깁니다.
그런데 주위의 사람들에게는 왜 도움이 안되느냐 하는데, 그것은 둘로 보기 때문에 안되는 겁니다. 이쪽 사람이 저쪽 사람에게 관하는 걸 가르쳐 주면 쉽죠. 왜? 이게 전력은 있되 가설이 안됐으니까 불이 안 들어오거든요. 내 전깃줄 하나만 가지고는 이쪽에 불 들어오게 할 수가 없죠. 그러나 능숙하게 아는 사람은 그냥 그리로 가서 하나가 돼 버리니까 불이 들어오게 할 수 있지만, 능숙하지 못한 사람은 ‘나로 인해서 저 사람이 잘돼야 할 텐데.’ 하는 사람들이거든요. 그러니까 둘이 되지 않습니까. 둘은 둘의 전깃줄이 있어야 맞붙어서 불이 들어오죠. 그러니까 모든 것은 지혜로써 해 나갈 수 있다 이겁니다. 그러니까 그쪽으로 가서 하나가 돼 버리든지, 그거를 끌어다가 나 하나로 만들든지, 또는 그 사람한테 관하는 것만 가르쳐 주고 내 마음을 내 주면 붙어서 불이 들어오니까 그렇게 하든지, 어떻게 하든지 불은 들어오니까 알아서 하세요
2008-05-09 오후 10:3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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