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가모니부처님으로부터 미래에 용성(龍盛)부처님이 되리라는 수기(受記)를 받은 용시(龍施)아가씨 또는 용시보살은 <용시보살본기경(龍施菩薩本起經)>과 <용시녀경(龍施女經)>에 등장한다.
부처님이 비야리성의 암라나무 절에 계실 때, 탁발을 하다가 수복(須福) 장자의 집 앞에 이르렀다. 마침 열네 살의 용시 아가씨가 목욕을 하고 나오다가 부처님을 뵙고 기뻐하며, 보살행을 닦겠다고 결심한다.
이 때 악마는 용시가 큰 뜻을 내는 것을 보고, 그녀가 장차 부처가 되어서 자신의 백성을 제도할 것을 걱정한다. 악마는 용시의 아버지로 변장한 후, 불도는 얻기 어렵고 여자는 전륜성왕이 될 수 없음을 말하며 용시를 아라한의 길로 이끌고자 한다. 그러나 용시는 보살도를 받들려는 뜻을 굽히지 않는다. 악마는 용시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음을 알고 더욱 애가 타서 마침내 악담까지 한다.
“만약 보살의 행을 하려면 세상도 탐내지 아니하고 생명도 아끼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이제 네가 정진하여 능히 누각 위에서 스스로 땅에 몸을 던진다고 하면, 후에 부처가 될 수도 있으리라.”
용시는 이내 난간 가에 서서 부처님을 향하여 합장하고 말하였다.
“이제 하늘 안의 하늘(天中天)께 귀의하옵니다. 일체지(一切智)로써 제가 구하는 바를 알아주옵소서. 생명 버리기를 청할지언정 보살의 뜻은 버리지 않겠나이다. 몸으로써 부처님께 보시하오니, 원컨대 꽃을 흩뿌리듯 하여지이다.”
용시가 바로 몸을 날려 누각 아래로 던졌는데, 아직 땅에 닿기도 전에 남자로 변화되었다. 부처님께서 웃으시니, 5색의 광명이 입안으로부터 나와 한 부처님 세계를 비추었다. 그 빛은 도로 돌아가 부처님 몸을 세 바퀴 돌고 정수리 위로 들어갔다. 부처님께서 설하셨다.
“이 여인이야말로 전 세상 동안에 이미 만 분의 부처님을 섬겼고, 이후에는 갠지스강의 모래만큼 많은 미래의 부처님을 공양할 것이니라. 7억6000만 겁에 이르러서 부처가 될 것이니, 명호는 용성(龍盛)부처님이라 할 것이며, 그 수명은 1겁 동안이니라. 열반하신 후에는 경전과 도가 흥성하다가 반 겁이 지나면 스러질 것이니라.”
이 때 용시의 몸은 부처님 앞에 서 있었는데, 용시가 그의 부모에게 말하였다.
“원컨대 저를 놓아주시어 사문이 되게 하소서.”
부모가 이내 허락하자, 안팎의 권속들이 모두 위없는 도(道)를 닦겠다는 뜻을 내었다.
<용시녀경>에서 용시는 개인의 해탈을 추구하는 아라한을 넘어서, 일체중생을 제도해 함께 열반에 이르겠다는 보살도를 서원하고 실천하는 전형적인 대승의 구도자로 묘사되고 있다. 용시는 전세에 닦은 인연공덕으로 부처님을 친견하자마자, “보리심을 발하고 보살행을 닦아 부처님처럼 보리도를 이루리라” 서원하고 목숨을 버릴지언정 보살도는 버리지 않겠다는 각오를 온몸으로 보여준다. 이 정도의 원력이 있다면 세상에 못 이룰 일이 어디 있겠는가.
이는 부처님께서 전생에 설산동자로 도를 닦을 때, “모든 것은 무상하며 이것은 생멸의 이치다(諸行無常 是生滅法)”라는 게송의 뒷 구절을 듣기 위해, 절벽에 몸을 던진 후 “생과 멸이 다 소멸하고 나면 적멸한 것이 즐거움이니라(生滅滅己 寂滅爲樂)”라는 게송을 나찰귀신으로부터 듣게 된 것과 흡사하다. 진리를 위해 목숨을 두려워하지 않는 위법망구(爲法忘軀)의 간절함이 있다면, 깨치지 못할 화두가 없다.
그래서 선가에서는 “확철대오 하려면 세 번은 죽어야 한다”는 말이 있다. 나(我)라고 하는 생각, 내가 소유한 모든 것, 자존심과 명예 등등, 무아(無我)를 체득하기 위해서는 비우고 또 비우며 아상(我相)을 죽이고 또 죽이는 처절한 자기 부정과 이를 통한 대 긍정의 정반합(正反合)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수행자들이 백 척의 높은 장대 위에서 한발 내딛는 백척간두진일보(百尺竿頭進一步)의 각오로 철저히 ‘거짓 자기’를 죽이는 실험에 뛰어드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다.
김성우 기자(buddhapia5@buddhapi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