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2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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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거사의 딸 영조
인도의 유마거사, 한국의 부설거사와 함께 ‘세계 3대 거사’로 추앙받는 방거사(龐居士). 본명이 방온(龐蘊, -808?)인 그는 유마의 화신, 보처대사(補處大士)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선종사에서 위상이 높다. 방거사 가족은 조리 만드는 것을 생업으로 삼고 청빈하게 살았으나 아내와 아들, 딸이 모두 도인이었다. 특히 딸인 영조(靈照)는 아버지를 능가한다는 찬사를 받을 정도로 탁월한 선적인 안목을 가진 것으로 이름이 높다.
한 번은 선정에 들어 있던 방거사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어렵고 어려우니, 백석(白石)의 유마(油麻: 참깨)를 나무 위에서 뿌림과도 같도다.”
참깨를 나무 위에서 뿌려서는 절대로 싹이 날 수 없듯, 분별로는 깨달음에 이를 수 없다는 의미를 암시한다. 아내가 이를 듣고 화답했다.
“쉽고 쉬우니, 침상에서 내려와, 발이 땅을 밟음과도 같도다.”
다만 분별에 서기 어려워질 뿐이니, 본래의 자기를 확인하여 ‘인위적이 조작이 없음’(無爲)이 어찌 쉬운 일이 아니겠는가 하는 의미다.
그러자 딸 영조도 끼어들었다.
“어렵지도 않고 쉽지도 않으니, 백초두상조사의(百草頭上祖師意)라!”
‘백초(百草)’는 온갖 사물이란 뜻이다. 온갖 사물의 있는 그대로의 실상(實相)은 명백히 나타나 있으니, 그것은 어렵다거나 쉽다거나 하는 분별을 떠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세 사람이 동일한 견처(見處)를 드러내고 있다.
“아들 있되 장가 안 들고/ 딸은 딸대로 시집가지 않은 채/ 온 식구 모두 다 단란한 중에/ 함께 무생(無生: 불생불멸의 진리)의 얘기 주고 받나니” 라는 방거사의 게송이 말해 주듯, 온 가족이 깨달음의 세계에 살고 있음을 보여준다.
세속에 있으면서도 청정한 가정생활을 영위한 방거사가 마침내, 입적을 예감하고 영조에게 말했다.
“인생이란 꿈 같고 허깨비 같은 것이다. 너는 너의 인연을 따라 살아가도록 해라.”
그러고는 지금이 몇 시쯤 되었는지, 밖에 나가 해의 위치를 알아보도록 일렀다. 밖에 나갔던 영조가 돌아와 말했다.
“벌써 정오가 될 시간이지만 마침 일식중이어서 확실치 않으니, 아버님이 직접 나가 보시지요.”
그래서 밖에 나가 보았으나 일식도 아닌 것 같아 이상히 여긴 그가 방에 돌아왔더니, 어느덧 딸은 자리에 앉아 합장한 자세로 숨을 거둔 뒤였다.
이를 본 방거사는 웃으며 중얼댔다.
“내 딸이지만, 참으로 민첩하군!”
방거사는 딸의 장래를 위해 죽음을 일주일 연기했고, 그가 죽을 때는 마침 그 고을(襄陽) 태수 우적이 찾아왔다. 우적은 그의 친구이자 사법제자였고, 후일 <방거사어록>을 편찬한 사람이다.
이 때 거사와 딸의 시신은 암굴에 있고, 아내와 아들은 집을 지키고 있었다. 거리가 너무 먼 관계로 우적은 거사를 다비해 장사지내고, 그 후에 사람을 보내 가족에게 알렸다.
“늙은이의 장례도 안 지내주고 먼저 가다니….”
딸을 나무란 방거사의 아내는, 들에 나가 있는 아들을 찾아가 부음을 전했다.
이때 아들은 ‘앗!’ 하고 소리를 질렀는데, 잠시 뒤에 보니 어느덧 선 채로 숨을 거두었다.
그리고 며칠 뒤에는 노파마저 어디론가 사라져 자취를 끊었다. ‘앉아서 죽고(坐脫)’ ‘서서 죽는 것(立亡)’을 자재히 해낸 방거사 가족의 예는 고금에 드문 일이 아닐 수 없다.
영조는 제방의 선원을 주유하는 아버지 방거사를 따라 다니며 모셨다. 대나무 조리를 저자에 내다 팔아 아버지를 봉양하고 온갖 수발을 들었다. 구체적인 수행이력은 알 수 없지만, 영조는 방거사로부터 선리(禪理)를 배워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것이 여러 선어록의 기록이다.
김성우 기자(buddhapia5@buddhapia.com)
2008-04-28 오후 2: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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