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4.11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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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마음속에 새긴 회초리
과잉반응
이씨는 어느 날 친구와 이야기하며 길을 걷고 있었다. 둘은 쉴 새 없이 이야기꽃을 피웠다. 그런데 친구가 갑자기 이씨의 말을 듣다가 “맞아. 정말 그래!”하면서 손바닥으로 이씨의 어깨를 탁 쳤다. 세게 친 것은 아니었고 조금 아프다싶을 정도였다. 그런데 이씨는 갑자기 분노가 폭발하는 것을 느꼈다. 자기도 모르게 “야, 왜 사람을 때리는 거야!”하며 소리 질렀다. 걸음을 멈추고 친구를 노려보았다. 친구는 놀라서 “얘, 내가 언제 때렸니. 왜 그 정도 가지고 그래?”했다. 이씨는 그 말에 더욱 화가 났다. “뭐, 그 정도라니. 도대체 사람을 뭘로 보고 함부로 때리고 있어. 나는 자존심도 없는 줄 알아! 얼마나 화가 나고 억울한지 알기나 해.”하며 소리를 질렀다. 이씨의 음성이 높아지자 둘이 싸우는 줄 알고 지나가던 사람들이 흘끗흘끗 쳐다볼 정도였다. 친구는 당황한 표정이 역력했다. “너 왜 그렇게 화를 내니, 난 아무 뜻도 없었는데….” 순간 숨을 헉헉거리던 이씨는 ‘아차, 내가 또 그랬구나’ 하고 자각하게 되었다.

맞기싫어요
어린 시절 이씨의 아버지는 매우 엄하였다. 조금만 잘못이 있으면 회초리로 때렸다. 6남매의 장녀였던 이씨는 초등학교 전부터 동생들을 돌보아야했다. 아버지가 집에 돌아왔을 때 동생들이 어질러놓거나 울고 있으면 모두 이씨 책임이었다. 변명하거나 반항하려하면 더 맞았기 때문에 이를 악물고 참았다. 매일매일 맞지 않고 지나가는 날이 없을 정도였다. 이씨는 맞는 게 아프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하고 나중에는 지긋지긋했다. 특히 종아리에 회초리 자국이 남는 날은 치마를 입을 수가 없었다. 학교에서 애들은 “넌 맨날 남자처럼 바지만 입고 다니니” 하고 놀렸다. 사실대로 말할 수가 없어 눈물을 삼켰다.
천만다행인지 중학교 때부터 서울로 올라와서 학교를 다니게 되었다. 자취를 하게 되어 무척 힘든 생활이었다. 그래도 이씨는 혼자 사는 것이 너무 좋았다. 무엇보다 아버지를 안 보게 되고 회초리를 맞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친척들이 “아유, 어린 것이 어떻게 혼자 밥해 먹고 학교에 다니나” 하며 걱정들을 했지만 오로지 매 맞지 않는 것이 좋아 신이 날 정도였다.
“그러면서 어릴 때 맞고 지낸 사실을 점점 잊어버리게 되었어요. 아니, 어쩌면 기억하고 싶지가 않았던 것 같아요.” 나이 들어 결혼도 하고 아이도 기르며 살던 어느 날이었다. 시누이가 와서 집을 둘러보다가 “언니는 참 살림도 잘 하시네요. 어쩌면 이렇게 어울리는 것만 골라서 사다놓았을까” 하며 이씨의 어깨를 탁 쳤다. 그 때까지 칭찬받아 기분이 좋던 이씨는 마음이 돌변하는 것을 느꼈다. 불같은 분노가 올라왔다. 시누이에게 “아가씨! 왜 때리는 거예요!”하면서 무섭게 노려보았다. 시누이는 할 말을 잃고 당황하여 쳐다보았다. “언니, 내가 언제 때렸어요.” “그럼 때린 게 아니고 뭐예요! 내가 그렇게 맞아야 하나요? 사람이 사람 같지 않아요?” 이렇게 해서 결국 시누이가 새파랗게 질려 떠난 뒤에야 이씨는 마음이 좀 진정되는 것 같았다.
생각해 보니 스스로도 어이가 없었다. 왜 그렇게 과잉반응을 했을까. 사실 시누이가 때린 것이 아닌데, 나쁜 마음이 아니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 않은가. 나중에 시누이에게 사과하느라고 진땀을 뺐다. 그런데 그 순간은 분노를 도무지 억제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왜 그랬을까. 그 후로도 간혹 누가 가볍게라도 탁 치는 일이 일어나면 자신도 모르게 화가 나며 공격적이 되는 것이었다.

마음으로 녹이는 회초리
절에 다니게 된 후 이씨는 차차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고요히 관하는 실천을 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자기 속에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매를 맞으며 울고 화내는 아이의 마음이 보였다. 사실 어린 자기는 맞기가 싫고 맞아야 된다는 사실에 너무 화가 났었던 것이다. 피하고 싶고 도망가고 싶고 아버지에게 소리 지르며 반항하고 싶었는데도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무섭고 두려워서였다. 어떻게 해볼 힘이 없었다. 그래서 그 분노와 혐오의 감정은 표현되지 못하고 마음 깊이 억눌려 있었다. 어른이 되어 다 잊은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사실은 그대로 남아있었다. 그래서 누군가가 자기 몸을 탁 치면, 회초리로 아프게 탁탁, 맞던 기억이 연상되어 올라오면서 분노가 폭발하게 된 것이다.
“자기 속의 자성중생들을 다스려야 한다는 말씀이 실감이 나게 되었어요. 아직 어린애로 살던 중생심이 해결되지 않고 있어요.” 모든 아픔과 고통은 오직 근본 자성의 자리에 놓아야만 한다는 법어를 새겨본다. 이씨는 이제 마음속에 새겨진 회초리 자국을 마음으로 녹여가려고 정진하고 있다. 황수경(동국대 선학과 강사)
2008-04-28 오전 11: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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