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4.12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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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적 쾌락과 학대 사이 조화로운 중심점 ‘발견’
‘부처님오신날’기념 대중강좌 ‘붓다의 생애와 가르침’③
부처님 일대기를 통해서 배우는 불자 신행
첫 시간에는 붓다의 탄생에 관한 인도 문화와 환경이 지닌 다양성을, 두 번째 시간에는 그러한 다양성 속에서 가능했던 붓다의 탄생에 관한 강연이었다. 이번 강의는 붓다의 생애 세 번째 시간. 붓다의 출가와 수행을 주제로 한다. 강연을 맡은 황순일 교수는 초기 부파 불교를 전공했으며, 최초 불교가 어떻게 인도에서 발전되어 나왔는가를 연구하고 있다. Noting에서 있음을 만들어내는 창조란 없다는 견해로 인도의 저변에 깔린 인도 종교의 세계관과 정신세계 그리고 브라만과 힌두의 전통 또는 육사외도(六師外道)라는 이름으로 등장했던 신흥 종교의 관계를 고민하고 있다.
‘지금 네가 흘리는 눈물은 인생 전체의 눈물을 바다에 비유했을 때 그 바다에 던져진 조약돌의 파장에 불과하다.’ <쌍윳다니까야(잡아함경)>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붓다는 왜 출가를 했으며 어떻게 묘사되었는가.
한문 텍스트의 전통에서 거론되는 붓다 출가의 원인은 ‘사문유관(四門遊觀)’입니다. 그러나 그 내용을 있는 그대로 믿기에는 문제가 있습니다. 인도는 우리나라 보다 교육열이 높은 나라입니다. 그러한 교육 환경에서 자란 붓다가 19세에 이르도록 생로병사를 교육받거나 경험하지 못했다는 가능성을 인정하기엔 억지가 있습니다. 히나야나(Hinayana, 대승에 대한 소승불교)에서는 불교적인 세계관과 가르침을 일반 신도에게 가르치는 도구로 붓다의 일생을 활용합니다. 붓다의 생애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의 체계로 완성되는데는 700여 년이 걸렸습니다. 기원전 480년을 붓다의 열반이라고 했을 때 완벽한 결말로 완성된 것이 기원 후 약 200년경입니다. 그 사이의 기나긴 시간의 터울 동안 각고의 윤색이 이뤄졌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붓다의 탄생에는 예언이 있습니다. 당시 뛰어난 브라만이 말하길 ‘이 사람은 인생이 둘 중 하나인데, 32相의 기호(mark)를 지니게 되며, 뛰어난 전륜성왕이 되거나 종교 지도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아버지인 숫도다나왕은 아들이 종교인의 길로 가는 것을 막기 위한 갖은 방법을 모색하며 최고의 행복만을 누리게 합니다.
그러나 붓다는 왕의 권한이 미치지 못하는 세계를 경험하게 됩니다. 병든 자를 보고 사람은 언젠가 한번은 아프다는 것을 알고, 지팡이를 짚고 가는 노인을 보고 사람은 탄생과 동시에 모두 늙으며, 시체를 보고 태어난 자는 반드시 죽음을 알게 되며, 출가 수행자를 보고 인생의 방향을 결심하게 됩니다. 인도와 같이 철저한 교육을 하는 문화권 내에서 실제로 일어나기 힘든 과정이지만 관점을 조금 바꿔서 생각해 봅시다. 진짜 나의 가슴으로 나의 일로 느끼는 계기인 것입니다. 실존의 자각을 느끼는 시점의 충격이 바로 ‘사문유관’입니다. 불교에서는 행복함도 괴로움의 일부입니다. 이 행복이 순간에 그치기 때문에 이것이 과연 진정한 행복인가에 대한 의문이 생기는 것입니다.
가장으로서의 책임문제는 어떠합니까. 혹자는 붓다가 그 책임에 충실하지 않았다고 여깁니다.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지내는 것 이상으로 궁극의 더 큰 실존의 자각에 대한 해결책을 찾고자 함이 더 큰 사랑을 구현하는 것이라고 붓다는 확신합니다.붓다의 명확한 목표 의식을 위한 도구인 것입니다.
출가의 길을 떠나면서 붓다는 신흥 강국인 마가다국(왕사성)의 라자그라하에서 빔비사라왕을 만납니다. 붓다와 빔비사라왕은 협력의 약속을 하고 후에 샤르나트에서 죽림정사를 기증받습니다. 제자들과 함께 머무는 거처가 마련되면서 불교가 발전하는 초석이 마련됩니다.
자그마한 부족 국가에서 출가하여 홀로 도시로 나온 붓다는 직접적인 괴로움을 체험합니다. 사람은 병들어서, 늙어서, 죽어서만 괴로움을 겪는 줄 알았는데 삶의 도처는 괴로움에 둘러싸여 있음을 자각합니다.
초기 불교에서 보여 지는 붓다의 인생을 무불상시대(無佛像時代)라고 합니다. 붓다의 탄생은 코끼리, 성도는 보리수, 설법은 법륜, 열반은 스투파(stupa, 塔)로써 상징적으로 표현합니다. 인도 산치(Sanchi)에 가면 동서남북의 문에 우리나라 사찰의 일주문과 같은 ‘토라나(Torana)’가 있습니다. 기원 후 1세기경에 표현된 붓다의 출가 부조입니다.
붓다는 아쉬람(수행 공동체) 전통에 따라 최고의 스승을 찾기 시작했고 ‘알라라깔라마’와 ‘웃따까라마뿟다’를 만납니다. 우리의 생각이 하나로 집중 될 때 의식 상태의 변형이 일어나면서 신비로운 체험을 합니다. 그 상태에서 우주의 최상으로 올라가는 의식 수행 방식을 경험합니다. 그러나 붓다는 끝없는 윤회를 결코 이 방식으로 해결할 수 없음을 알게 됩니다. 출가할 때 목표로 삼은 삶과 죽음의 문제라든지 우리 생애 주변에 만연한 괴로움의 해결책이 될 수 없음을 느낍니다. 그리고 전정각산으로 향합니다.
극단적인 고행의 길을 걸은 붓다는 호흡을 억제하는 수행을 합니다. 엄청난 의지와 노력을 필요로 하는 수행방식입니다. 고행자들에게 신체란 정신적 자유를 얻는데 방해물이었습니다. 우리 신체에 매달린 정신을 벗어나게 해 궁극의 자유를 경험하는 것이 최고의 수행이라 믿었습니다. 이러한 붓다의 고행을 <쌍윳다니까야>에서 생생하게 묘사합니다. ‘매번 너무 적게 먹었기 때문에 나의 신체는 극도로 쇠약한 상태에 이르렀다. 나의 팔 다리는 말라붙은 대나무 마디 같았고, 나의 엉덩이는 황소의 발굽 같았으며, 나의 돌출한 등뼈는 유리알 목걸이 같았고, 나의 갈비뼈는 스러져가는 움막의 서까래 같았다. 하지만 깊은 우물에서 반짝이는 물처럼, 나의 눈동자만은 안구 깊숙이에서 빛나고 있었다.’ 6년간 궁극의 해결책을 찾고자 했던 붓다는 극단적인 쾌락과 학대 사이의 조화로운 중심점이 있음을 느낍니다.
초기불교 경전은 붓다 당시의 자유주의적 사상가들을 육사외도라는 이름으로 열거합니다. 그 중에서도 ‘자이나교’와 ‘아지비까(ajivika)’를 중심으로 설명해보겠습니다.
자이나교를 대성시킨 인물인 니간타 나따붓따(Nigantha Nataputta)는 극단적인 고행과 생명에 대한 경외를 강조했습니다. 자이나교는 인도 이슬람의 침입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은 종교입니다. 자이나교는 일체에는 영혼이 있다고 여깁니다. 까르마(Karman)는 윤리적 개념이 아닌 물질적 개념입니다. 인간은 까르마의 무게를 지니고 있으며 영혼에 달라붙은 먼지의 행위 입자들을 제거할 때 영혼은 자유로워진다고 믿었습니다. 자이나에 의하면 선하거나 악한 모든 행위는 필연적 결과를 낳기 때문에 해탈로 이르기 위해서는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고 굶어 죽는 것이 최상의 방법임을 언급합니다.
주로 크샤트리아 계급에게 선호됐던 ‘아지비까’의 창시자는 막깔리 고살라(Makkhali Gosala)입니다. 숙명론자라고 부릅니다. 나에게 주어진 삶의 항로를 따라가는 사람들입니다. 불교에는 까르마의 개념이 있어서 선인락과(善因樂果) 악인고과(惡因苦果)와 같은 업의 원리가 있습니다. ‘아지비까’는 윤회는 믿지만 까르마는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우리의 삶은 기쁨과 괴로움이 번갈아 오는 것이라 믿으며 묵묵히 살아가는 나체 수행 집단입니다. 불교는 ‘아지삐까’를 부정합니다. 까르마를 부정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순간순간의 삶에 인간적인 행위를 할 수 없게 합니다. 불교 경전의 도처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악역으로 ‘아지비까’가 등장하기도 합니다.
윤회와 행위에 대한 관념이 명확히 확립된 인도에서 붓다는 실존의 자각을 위해 출가했습니다. 붓다는 우리 의식의 변형 상태에서 최상의 우주를 체험했습니다. 육체야 말로 깨달음의 장애가 아닐까라는 생각에 고행의 길도 걸었습니다. 이상의 과정을 몸소 체험하면서 윤회의 원동력인 번뇌를 잠재우는 수행으로써의 불교를 비로소 발견하게 됩니다.
정리=가연숙 기자 omflower@daum.net
사진=박재완 기자 jwpark@buddhapia.com
2008-04-21 오전 10:5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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