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2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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⑮ 공실도인(空室道人)
<나호야록(羅湖野綠)>은 송나라 임제종 양기파의 효영중온(曉塋仲溫) 스님이 1155년경 나호에 머물 때 지은 책이다. 출가생활하면서 보고 들었던 말씀과 행적, 여타 기록들을 소개하고 자신의 견해를 붙인 선어록이자 승보사(僧寶史)이다. 이 책에는 선사와 거사들의 일화가 중심이 되어 있지만, 비구니와 우바이 등 출ㆍ세간과 성별을 초월한 다양한 도인들의 행적이 소개되어 있다.
이 가운데 우바이 시절 공실도인(空室道人)이라 불리며 선기(禪機)를 자랑하다 뒷날, 출가하여 가부좌한 채 열반한 유구(惟久) 스님의 구도기를 소개하면 이러하다. 공실도인은 용도각(龍圖閣) 범순(范珣)의 딸로서,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슬기로워 고요히 참선하는 것을 즐겼다. 예장(豫章) 분령(分寧) 채수로 부임하는 아주버니를 따라 운암사의 사심(死心) 선사를 찾아뵈었는데, 한마디 말 끝에 요체를 깨닫고 게송을 지어 사심 선사를 찬탄하였다.
“소양의 사심 선사/ 신령한 근원 매우 깊어/ 귀로는 색을 보고/ 눈으로 소리 듣는다/ 범인은 명철하고 성인은 혼매하며/ 뒤로는 부귀하나 앞으로 가난하여/ 중생에 이익 되고 만물을 제도하니/ 쇠를 녹여 황금을 만드는데/ 단청의 겉모양은 옛 것도, 지금 것도 아니로다.”
사심 선사가 그녀에게 물었다.
“‘죽은 마음(死心)’은 참이 아닌데 어디에다 찬양하는가. 죽은 마음을 찬양한다면, 죽은 마음이란 형상이 없다. 허공을 찬양한다면, 허공은 자취가 없다. 형상과 자취가 없는데,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만일 말을 할 수 있다면 친히 사심(死心)을 보리라.”
공실도인이 응대하였다.
“죽은 마음은 참이 아니요, 참은 죽은 마음이 아닙니다. 허공이란 형상이 없고 묘유(妙有)는 형체가 없습니다. 기절했다가 다시 소생하면 친히 사심을 볼 수 있겠지요.”
이에 선사는 미소를 지었다.
영원(靈源) 선사는 공실도인이라는 법호를 지어주었는데, 이때부터 그녀의 이름이 총림에 알려지게 되었다. 그녀가 금릉에서 살 때(1111~1117년), 원오(圓悟) 선사는 장산사의 주지로 있었고 불안(佛眼) 선사도 그곳에 있었다. 거기서 기연이 맞아 두 선사가 칭찬하였지만, 그녀는 마치 말을 못하는 사람 같았다. 도(道)의 운치는 매우 담담하였으나 바른 견해를 드러낼 때는 치밀하고 엄격했다. 그의 게송 중에 <법계관(法界觀)>을 읽고 쓴 구절이 있다.
“사물과 나는 원래 둘이 아니니/ 삼라만상이 거울에 비친 상처럼 똑같구나/ 밝고 밝아 주체와 상대를 초월하고/ 분명하고 분명하여 진공(眞空)을 깨쳤네/ 한 몸에 많은 법을 지님은/ 제석천의 법그물에 얽힌 듯 한데/ 겹겹이 쌓인 끝없는 뜻은/ 움직임과 고요함에 모두 통하구나.”
또한 그녀는 보령사에서 목욕탕을 마련하고 문 위에 글을 지어 붙였다.
“한 물건도 없는데 무엇을 씻는단 말인가. 티끌 하나라도 있다면 그것은 어디서 생겨났을까. 오묘한 이 하나를 말해내야 모두가 목욕할 수 있으리라. 옛 신령스런 이는 등을 문지를 줄만 아는데, 보살은 언제 마음 밝힌 적 있었던고. ‘때묻지 않은 곳(離垢地)’을 깨닫고자 하면 온몸에서 흠뻑 땀을 빼야 하리라. 물은 때물과 때를 한꺼번에 없앤다 해도 여기에 이르러 또 한번 씻어야 하리라.”
뒷날 고소산 서축원(西竺院)에서 삭발을 하고 비구니가 되어 유구라는 법명을 받았으며, 송 선화(宣和) 6년(1124) 가부좌한 채 입적하였다. 효영 스님은 그녀를 이렇게 평했다.
“공실도인은 명문 집안에서 태어나 부귀에 얽매이지 않았고, 미련없이 월상녀(月上女: 유마거사의 딸)를 뒤따라 ‘위없는 깨달음(無上菩提)’으로 달려 나갔다. 또한 비구니로서 철마(鐵磨: 위산 선사와 선문답했던 유철마 비구니) 스님과 쌍벽을 이루었다. 생사의 갈림길에서도 법력이 비범하였으니, 가을서리 같은 매서운 지조가 없고서야 이렇게 그럴 수 있었겠는가.” 김성우 객원기자
2008-04-14 오후 1:4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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