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4.10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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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동치는 그 마음을 없애고 탁 놔버리세요!
(지난 호에 이어서)
이거 보세요. ‘네가 있기 이전을 찾아라.’ 그러니까 여러분은 바깥에서 찾는 겁니다. 나 있기 이전이 바깥에 있습디까? 여러분이 생각해 봐요. 씨를 갖다 심으니까 참외가 나왔어요. 오이도 나오고 수박도 나오고 죄 나왔어요. 그런데 그 수박씨든 참외씨든 무씨든 홀딱 그 껍데기는 벗어지고 알맹이가 싹이 돼서 나오지 않습디까, 네? 그러니 싹이 돼서 나와서 한 철 삽니다. 그게 한 철이에요. 한 철 그 과정을 겪으면서 자라서 열매가 열려요. 열매가 열려서 그 열매가 그 나무에서 무르익어요. 무르익어 가지고 씨가 거기 들어 있어요. 작년에 있던 씨가 그 속에 들어 있어요. 그런데 씨가 그 속에 들어 있으니 그 속에서 찾아야 될 텐데, 이건 저 땅에 심었다고 바깥에서 그걸 찾는다 이거예요.
누구든지 바깥에서 각각 관세음보살을 찾고 지장보살을 찾고, 이거 각각 저거 각각…. 여러분에게 구비돼 있는 그 마음이라는 거, 보는 거 듣는 거 먹는 거 가고 오는 거 만나는 거 전부 여러분한테 구비가 돼 있지 바깥에 돼 있습니까? 내가 있기 때문에 상대가 있다는 걸 알아야죠. 내가 있기 때문에 부처도 있고 우주도 있다는 걸 알아야죠. 그렇기 때문에 우리 자체가 그렇게, 내가 나오기 이전의 씨가 내 속에 들었다 이거예요. 내 속에 들어 있고 씨도 그렇게 들어 있는데 아니, 참외씨를 심으면 참외 싹이 나지요. 참외 싹이 나고 참외가 열리지 다른 게 날 수 있나요? 그래서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이거지요.
그 속에 들어 있는데도, 이것이 거죽은 노랗고 속은 하얗고 뭐, 물렁물렁하고 씨가 들어 있다는 둥, 여러분은 만날 이론으로만 듣고 실천을 옮길 줄 몰라요. 실험을 통해서 체험을 할 줄 모르고 만날 이론이에요, 이론! 그리고 이론으로 하다 보니까 망상이 생기고 망상이 생기니까 놓을 줄도 모르고 놓을 줄 모르니까 만날 바깥에서 찾는 겁니다, 네? 제 씨는 제가 갖고 있으면서도 바깥에서 제 씨를 찾느라고 온통 헤매는 거지요. 10년이 되든 20년이 되든 30년이 되든 온통 바깥에서 찾아요. 이럴 수가 있을까요? 아무리 미거하더라도 이럴 수가 있느냐 이거예요. 그래도 만물의 영장이라는 이름을 타고난 사람인데, 99%가 부처라고 일컬어지는 사람인데 어찌 그럴까 이거지요, 네? 사람 되기 이전에 얼마나 쫓기고 쫓기면서 미생물에서부터 수억겁을 거쳐 나오면서 얼마나 그 시련을 겪었느냐 이거지요. 그렇게 겪으면서 경험을 얻고, 겪으면서 지혜를 넓히고, 겪으면서 좋고 나쁜 걸 알게 되고 이러면서 인간까지 됐는데도 불구하고 또 오르락내리락하고 윤회에 말려 끄달리면서 쳇바퀴 돌아가듯 끝없이 그 고통을 받아야 되겠느냐 이겁니다.
그러니까 지금 잘되고 못되고를 떠나서 나를 발견하기 위해서는 모든 거를 주인공에다 맡겨 놓고 ‘주인공만이 해결할 수 있다. 주인공만이 낫게 해 줄 수 있다.’ 하고 입력을 해야 합니다. 내가 엎드러져도 내가 일어나듯이, 나한테서 병난 거는 나한테서밖엔 해결할 수 없듯이 ‘내 주인공만이 해결할 수 있다.’ 하고 맡겨 놓아야 합니다. 주인공이라는 것은 뭘 가지고 그러느냐. 내 몸속에 들어 있는 생명들 의식들이 모두 한마음으로 통해서 자기가 맡은 소임을 굴리면서 돌아가니 한마음이지요. 그리고 내가 한생각 하는 건 지배인과 같다 이겁니다. 내가 한생각 잘못하면 여러 생명들이 내 생각대로 다 잘못 돌아가면서 그냥 병을 일으키고 그러는 거죠.
그처럼 아주 건강한 사람이 이렇게 됐거든요. 아까 얘기하다가 말고 또 이쪽으로 넘어왔어요. 허허허…. 고걸 마치고 해야 할 텐데 글쎄, 이게 어디로 돌아갔습니까? 어디로 돌아가든지 그저 한자립니다. 돌아간 자리가 따로 없고 돌아온 자리가 따로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마음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겁니다. 이렇게 가다가도 저렇게 돌아가고 요렇게 가고 마음대로 갈 수 있기 때문에 묘한 도리요 부처님 될 수 있는 자격을 가졌다 이 소리죠. 내가 이렇게 질서 없이 또는 체계가 없이 하는 동안에 여러분은 고런 걸 생각하시면 좋겠어요. ‘어, 이리로 가다가도 그쪽으로도 가고 저쪽으로도 갈 수 있는 자유권을 가졌구나!’ 하는 거 말이에요. 질서정연하게 하지 않아도 여러분이 그 뜻만 잘 받아들인다면 내가 체계적으로 안 해도…, 그건 체계가 없어요. 우리가 살림살이하는 도리, 시공이 없는 도리는 체계가 없고 절망이 없고 승리가 없고 모든 건 자유자재예요, 그대로!
조금 전에 뭘 얘기했죠? 네?
신도1(남): 절로 들어가는 거 얘기했습니다.
스님: 예. 절로 들어가는 거, 그리고 그 뒤에 얘기하던 거는요?
신도2(여): 건강한 사람이 별안간에 병이 났어요.
스님: 으응, 그렇죠! 난 이렇게 가다가도 잊어버리거든요. 그래서 여러분한테 길을 물어서 가면 될 거를 내가 뭘 어느 길인가 생각하고 있겠느냐 이러고 왔어요, 오늘도요. 아유! 길을 모르면 여러분한테 물어서 가면 될 거를….
신도3(남): 신발이 저기 있는데요, 뭘…. (대중 웃음)
스님: 그거예요, 바로. 그거라고요, 바로. 네? 신발이 저기 있는데 뭘, 무슨 걱정이 있냐고. (대중 웃음) 야! 그것이 참, 훌륭한 아주…, 허허허…. (대중 웃음) 신발이 있습니다, 신발.
그분은 기운이 세고 아주 건강했어요. 그런데 회사를 하다가 아마 반 이상이 잘못됐던 모양이죠. ‘될 대로 돼라’ 이런 생각을 한 거예요. ‘될 대로 돼라’ 이러곤 술 마시고 그냥 뭐 이리저리 방황하고 이러니까 자기 몸뚱이 속에 있는 의식들이 다 지배인 생각하는 대로 따라서 그냥 막 곤드레만드레가 돼서, 즉 말하자면 질서를 지키지 않고 속에서 자기소임 맡은 거를 그냥 제대로 해 나가지 않고 그랬던 거죠. 이쪽에서 술을 먹으니까 그쪽에도 술을 먹는 거 아닙니까. 그렇죠? 그 중생들을 먹이는 거죠? 내가 먹는 게 아니라. 요 입만 빌리고 식도만 빌렸죠. 그러고는 다 그냥, 식도 공장에서 일하는 직원들도 먹게 되고 위 공장에서 일하는 직원들도 먹게 되고, 소장 대장 방광 뭐, 간 쓸개 이자서껀 일하는 그 직원들이 전부 다 먹게 되죠. 다 먹게 되니까 서로 다 취한 거예요. 취해서 그냥 자기 질서를 문란하게 했어요. 그래서 그냥 그 사람이 쇼크를 받고 그렇게 자길 버려 가지곤 사흘 이내에 죽어 버렸거든요.
그러니까 우리가 죽는다 산다를 떠나서 자기를 자기가 지켜 나가려면 지배인이 한생각을 잘해야지 모든 중생들의 집을 잘 끌고 갈 수 있죠. 이 몸이 혹성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내 국토, 여기가 내 국토예요. 여러분의 국토 아닙니까? 은하계의 별성처럼, 지구 안의 사람들처럼, 지수화풍으로 바탕이 돼서 그 국토 안에 내 중생들이 많이 살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우리가 그 국토를 올바로 지키려면 한생각이 필요한 거예요. 하늘이 무너져서 망했다 하더라도 껄껄 빙긋이 웃고 말입니다. “허, 이래도 솟아날 구멍이 있겠지. 사람이 어떡하다 나왔으면 사는 거지, 뭘 그래!” 하고선 탁 놓을 수 있는 그러한 그 여여한 마음, 그것이 살리는 겁니다. 도로 일어나게 할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는 법이다 이 소립니다.
그래서 옛날에 그런 말이 있죠. 소가 달구지를 끌고 가는데 그 달구지에 짐을, 과거의 짐을 다 실었거든요. 근데 달구지를 치는 거예요. 몸뚱이, 달구지를 치는 거죠. 소를 쳐야 할 건데 자꾸 달구지를 치니 그런다고 해서 과거가 없어집니까, 소가 갑니까? 구르질 못하죠. 달구지만 부서지죠. 그와 마찬가지로 자기 안에 자기 씨가 있으니, 소는 바로 그 안에 있으니 소를 쳐야지 내 몸뚱이 이것이 나라고 하면서 나를 자꾸 볶아 대면 달구지가 망가진다 이 소리죠.
그냥 대충대충 이럭하다 보니까 좀 그렇군요. 아까 절에 들어갔던 사람 얘기로 넘어갑시다. 그렇게 공부하고 있는데, 하루는 그 은사 스님께서 “얘야! 저기 흘러가는 물 좀 봐라. 물이 틈이 있느냐 없느냐? 세상이 틈이 있느냐 없느냐? 네가 지금 돌아가고 있는 것, 공양 짓고 나무 해오고 앉고 서고 눕고 하는 게 모두 틈이 있느냐 없느냐?” 그 세 가지를 물었단 말입니다. 가만히 대답도 못하고 있다가 “틈이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습니다.” 그랬거든요. “그러면 어떠한 것이냐?” 하니까 아무 소리도 않고 일어나서 삼배를 올리고 딱! 딱! 딱! 손뼉을 세 번을 치더니만 탁 꿇고 앉았거든요. “인제는 그 사슴이 누군 줄 알았느냐?” “예, 전자의 제 어머님이요 제 형님 두 분입니다.” 하고선 눈물을 뚝뚝 흘리며 “제가 이렇게 어머니인 줄 알고 형님인 줄 알았지만 형님도 없고 어머니도 없는 줄도 알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자리에 절을 짓고 수행하면서 조상들의 마음을 둘 아니게 한자리 하도록 하겠습니다. 조상 대대로 모든 분들이 산골에서 쭉 아무것도 모르고 그 많은 짐승들을 살생하고 내려왔는데, 그것을 한마음으로 놓으면 할아버지의 마음도 내 마음이고 아버지의 마음도 내 마음이고 형제들의 마음도 내 마음인 그 마음은 체가 없으니 내 물 한 그릇에다 물방울을 수만 개를 넣은들 어찌 한 그릇이 아니오리까. 그러니 이것을 이름 해서 주인공이라고 합니다.” 하더랍니다.
그래서 그 스님은 거기에서 절을 짓고 사시다가 일본 사람들이 침략했을 때에도 나라를 위하여 많이 거들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누구라고 뭐 이름을 대지는 않겠지만 말입니다. 이름은 잊어버렸거든요, 또. (대중 웃음)
그러니 여러분도 가정을 이루고 나가는데 항상 평등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면서 부드러운 말 부드러운 웃음으로 대해 주고, 생활 속에서 어떠한 고통 받는 일이 있더라도 “야, 이놈의 새끼야. 뭐, 어쩌고….” 이러면서 욕하지 마세요. 한생각이 그렇게 무서워서, 모진 욕 한마디가 걔한테로 그냥 나가는 겁니다. 그러면 자긴들 좋겠습니까? 또 남편도 그렇고 모두가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 살면 얼마나 오래 살 겁니까? 한 철인데. 욕을 먹든 매를 맞든 뭐 나가서 바람을 피우든 어떻게 하든 말이에요. 사랑을 한다면 다 줘 버리지 그깟 놈의 거 뭐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네? 여기 있는 분들 중에도 더러더러 속 썩는 분들도 있기에 내 이런 소리 합니다. 그것을 다 놓고, 들어오면 따뜻하게 웃으면서 대해 주고 속은 상하더라도 속상한 건 주인공한테 맡겨 놓고 ‘당신만이 저 사람의 마음을 해결할 수 있다.’ 하고 믿고 거기 놓을 때에 그 주인공하고 내 주인공하고 둘이 아니거든요.
‘내 주인공과 둘이 아니기 때문에 주인공은 그 사람을 잘 끌고 다닐 거다.’ 하는 것을 믿고 맡겨 놓을 때 그대로 되죠. 그러고선 좋은 말 해주고요. 아주 속상하고 꼴 보기 싫더라도 그래도 그런가요? 사랑한다면 놔 주고 좋은 말 해주고 부드럽게 말해주고 따뜻하게 대해줘야죠. 추운 겨울에 따뜻하게 대해 준다면 그곳으로 고이게 마련이고 여름에 더울 때는 그 자리를 시원하게 해 준다면 바로 시원한 데로 앉을 것이고 그러다가 언젠가는 회개를 할 겁니다. 그렇게 따뜻하게 행복을 갖다 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돼야 하는 거죠.
그러니까 우리가 진짜 사랑을 하지 못해서 그렇지 진짜 사랑을 한다면 모두 다 주면 어떻습니까? 자기가 울지언정 그 사람을 울리지 않고, 내가 죽을지언정 그 사람을 죽이지 않고, 내가 괴로울지언정 그 사람을 괴롭히지 않고, 그것이 진짜 자비요 사랑입니다. 입 안에 붙은 사랑은 사랑이 아닙니다. 금방 만나면 “야! 나, 너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하다가 금방 며칠 안 가면 싸움을 하고 그냥 “야, 이 새끼야! 너하고 나하고 언제 적에 뭐 어쩌고 어쩌고….” 싸우곤 그냥 각 방을 쓰고 온통 야단이에요. 그건 사랑이 아니에요. 그거는 도깨비장난을 하는 거지 사랑이 아니에요. 진짜 사랑은 자식이 물에 빠졌을 때 아무 조건도 없이 건지려고 뛰어드는 부모의 마음 같은 거죠. 그런 마음이 자비예요.
그래서 때로는 싱긋이 웃기도 하고 때로는 참, 뼈저린 눈물이 흐르기도 합니다. ‘다 줘 버리면 그뿐인 것을 뭐 때문에 저렇게 울고 저렇게 애탄지탄 끈적끈적하게 애를 쓰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그냥 ‘못난이끼리, 너나 나나 못나서 그러니까 다 그냥 없어졌으면 좋겠다.’ 하고 옛날에 생각도 해 봤죠. 근데 그게 아니더군요. 없애야 되는 거는 바로 마음이죠. 그 요동치는 마음을 없애고 탁 놔 버리는 거예요. 이까짓 몸뚱이, 이까짓 고깃덩어리 한 철 사는 거, 가을에 낙엽이 떨어지듯 하는 거, 그거 가지고 한 철을 울고불고 애를 써요? 편안하게들 사세요. 여기 온양에도 그렇게 해서 고통받는 사람이 있을 겁니다. ‘있을 겁니다’가 아니라 있습니다.
그러니까 한 눈 팔더라도 “여보, 인간으로 태어나서 당신이나 나나 뭐 그렇게 저거 했다고, 나가서 맛있는 거 잡숫고 그저 마음 편안하게 삶의 보람을 좀 잠시라도 느껴 보시오.” 이러고선 탁 줘 버리고 나는 편안하게 있으면 좀 좋겠습니까. 조용하게 말이에요. 외려 그냥 줄줄이 붙어 있는 거 다 떼버리고 편안하게 조용한 데 앉아 있으면 그 참,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을 거예요. 그거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거예요, 아마. 여러분은 붙어 있는 것만 좋은 줄 알지만 탁 털어 버리고선 훨훨 날아다닐 때가 여간 좋지 않은 거예요. 이 집 저 집 쳐다보면 집집마다 불빛이 찬란하게 그냥 별빛처럼 나오고 별빛 등처럼 불이 비치는데, 아주 순탄하게 다 좋은 거 같지만 그 안에 들어가 보면 전부 그냥 머리끄댕이 붙들려서 이리 박히고 저리 박히고 그러질 않나, 사람이 죽었다고 울지를 않나, 온통 사랑한다고 끌어안고 야단들을 하지 않나. 온통 그게 도대체, 그냥 시들부들 시들부들 도대체 그게…, 이게 감이 잡히질 않아요?
공부를 하고 보니까 아무것도…. 다 하고 보니까, ‘다’라고 한다면 틀렸지요. 그래서 ‘다 하고 보니까’ 이렇게 한 겁니다. 다 하고 보니까 공부한 것도 없고 안 한 것도 없고 그렇게 도깨비장난 같더라 이거지요. 뭐 별로예요, 그냥. 그냥 무의미해요.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돌 같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사람 같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정상적인 사람이지요.
사랑을 하려면 진짜 해야죠, 그냥 사랑한다 사랑한다 하고 그렇게 사랑하는 거 말고요. 우리 본원의 어느 신도님 동생도 그렇게 해서 다독거렸더니 지금은 사랑을 그냥 너무 자비스럽게 해요. ‘그렇게 내가 왜 그랬던고?’ 하면서요. 그러니까 그것이 누구의 탓이 아니라 자기 각자의 업보니까요. 업입니다. 자기가 전자에 부인을 그렇게 속을 썩이고 울렸고 그랬기 때문에, 지금 현실에 안고 나오고 지고 나왔기 때문에 그런 거지 누구 탓이 아니거든요. 자기 탓입니다, 모두. 남을 원망하고 그러지 마세요.
온양에서도 이 공부를 안양에서 하는 대로 항상 같이 해 나가도록 하세요. 누가 뭐라고 하더라도, 잘한다면 어떻고 못한다면 어떻습니까? 못났다면 어떻고 잘났다면 어떻습니까? 그게 무슨 상관 있습니까. 내가 올바르고 진실하게 남을 해하지 않고 그저 웃고 부드러운 말 해 가면서, 어떠한 길을 걷든지 뚜벅뚜벅 그냥 가는데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바로 내 마음이 부처면 남도 부처로 볼 수 있지만 내 마음이 마구니라면 남을 마구니로 보게 되거든요. 그러니 그게 상관이 없는 거지요.
그러니 이 온양에 있는 여러분은 공부를 열심히 하셔서 내 몸을 지키고 내 가정을 지키고 내 자식들에게 햇빛을 줄 수 있고 부모에게는 묵은 빚을 갚을 수 있는 그런 능력을 꼭 가지시기를 바라면서 오늘은 이것으로써 그칩니다.
저 부처님 상(像)이 내 상이요 내 상이 부처님 상인데, 여러분과 다 똑같이 말입니다. 그런데 글쎄 눈이 짓눌려서 눈앓이 하는 것처럼 만들어 놨어요. 이런 발칙한 사람들이 어딨어요, 세상에? 이거 다시 만들어요, 다시! 안을 지우고서 다시 금칠을 하고 다시 좀 이렇게 딱 찍어 놓기만 하면 아주 눈이 정상적으로 참, 빛이 나고 좋을 겁니다. 그래서 속도 넣고 말입니다. 그래 첫째, 속이 제일이지만 겉도 저렇게 만들어 놔선 안 돼요. 그래도 부처님 상인데요.
여러분이 처음에 공부할 땐 저것도 다 그냥 집어 먹어 없애고, 그렇게 공부해 가지고 나중에 다시 나올 때는 다 부처 아닌 게 없어요. 거기까지…, 다 버릴 땐 다 버리고 부처까지도 버려야 되거든요. 바깥에 버리라는 게 아니에요. 용광로에다 넣어야 녹으니까 내 용광로에다 놓아라 이거지요. 바깥에 버리면 또 녹지도 않거든요.
그리고 참는 것이 놓는 게 아니에요. 그냥 맡겨 놔요, 믿고. 그러면 요다음에 내 몸뚱이도 버릴 게 없고 내 몸뚱이 부처도 부처라는 거, 즉 말하자면 가만히 생각 안 하고 있으면 부처님이지 뭐 다른 건가요? 우리 스님네들 여기 부처님들 죽 앉아 계시지 않습니까. 또 여러분도 법신이 될 수 있고 보살이 될 수 있다는 걸 아셔야 하고요. 그 마음이 부처지 보살 따로 있고 부처 따로 있는 게 아니거든요. 그리고 여러분은 가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머릴 깎아야만이 많은 중생들을 건지는 게 아니라, 지금은 보살로 계시다가 요다음에 대통령으로 태어날 수도 있고 장관으로도 나와서 건질 수 있죠. 그렇게 해서 수없이 그런 인연들을 타고나고 그런 게 자기한테 주어지죠. 배우라고 한다면 그런 역을 맡아 가지고 나오죠. 우리도 배우이자 부처이자 보살이니까요.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것도 다 지금 배우가 이러한 역을 맡아 가지고 나와서 지금 이 역을 하고 있고 여러분도 역을 맡아 가지고 지금 하고 있죠. 오늘은 너무나 끔찍하기도 하고 너무나 감사하기도 하고 그래요.
그럼 오늘 여러분한테 당부드린 말씀 잊지 마시고, 여러분 안에 그 씨는 있습니다. 여러분 안에 그 씨가 있기 때문에 레이더망이나 무전통신기나 망원경이나 탐지기나 컴퓨터나 팩스나 그런 것이 다 겸해서 거기 진실로 있다는 사실을 꼭 아셔야 됩니다. 이건 자동적인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그냥 자동적으로, 거기에 입력을 누가 해라 말아라 할 거 없이 용도에 따라서 나한테 닥치는 대로 입력을 할 수 있는 자유적인 문제가 주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물건으로 따진다면 저런 물질적인 문제는 얼마나 어렵습니까? 그거를 다 돈 들여서 설치를 해야 하고, 아니, 하고 싶어도 아마 돈이 들어서 못할 겁니다마는 그거는 한계가 있어요, 입력을 해 넣어도. 그러나 우리는 한계가 없고 무한량이거든요. 이렇게 좋은 공부를 안 하시렵니까? 모두 밥 한 그릇 놓고 떡 한 그릇 놓고 빌면서 나 좀 살려 달라고 그러다가 요다음에 또 나 살려 달라고 할 테니 그 노릇을 어떻게 합니까? 깊이깊이 생각하시고 그렇게 하십시오.
(음성공양이 끝나고)
여러분! 나툰다는 말 아십니까? 나툰다는 거 말입니다. 나툰다 하는 걸 모르면 이해가 안됩니다. 나투는 거는, 여러분이 자식을 만났다가 금방 남편이 들어왔다고 합시다. 자식을 만났을 때는 엄마가 됐죠. 그랬는데 금방 애는 비켜나고 남편이 들어왔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금방 아내가 된 거예요. 아내가 돼서 말도 아내의 말이 나가고 또는 행도 그렇게 나오고 뜻도 그렇게 가지게 되죠. 그거를 한 찰나의 나툼이라고 그럽니다. 바꿔서 돌아가는 거 말입니다.
2008-03-31 오전 11:3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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