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하늘의 자손’ 잃어버린 정체성 찾자
역사학자 카(E. H, CARR)는 <역사란 무엇인가(WHAT IS HISTORY)>에서 말했다.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간 상호작용의 부단한 과정이며,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이다.’ 또한 ‘역사란 한 시대가 다른 시대 속에서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 일들에 관한 기록이다.’
한 시대의 위인이란 시대의 의지를 나타내고, 그 의지를 전하며 완성하는 인간을 말한다. 그의 행위는 그 시대의 원천이고 본질이다. 그는 곧 자신의 시대를 실현한다. 대한해협을 뗏목으로 탐험하기도 했던 불굴의 도전가 윤명철 교수(동국대 교양교육원)는 우리에게 광개토태왕 비전을 제안한다.
그가 주장하는 광개토태왕의 리더십 이론은 한민족을 중심으로 한 세계질서의 청사진이다. 윤 교수의 역사 재해석은 우리를 잃어버린 미래의 나라로 인도한다.
21세기는 인류가 가꾸어온 역사의 대지에서 가장 큰 격변기임에 틀림없습니다.
현재는 인류 역사의 전환기입니다. 저는 역사학자면서 아마추어 미래학자입니다. 큰 스케일로 세상을 바라보며 과거를 통해 미래를 전망합니다. 이제 곧 인간이 인간을 만드는 시대가 도래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현재가 인류 역사의 격동기임을 인식하지 못합니다. 그 중심에 테크놀로지가 있고 또 하나는 세계가 하나가 됐다는 사실입니다. 머지않아 동아시아 연방 공동체가 결성될 것입니다. 이미 세계 질서는 그렇게 흐르고 있습니다. 운명 공동체 의식의 항해사는 항해의 목적과 목표지가 분명해야 합니다. 그러나 불가사의하게도 우리의 역사에서 그 모델로 삼을 만한 인물을 찾기란 쉽지 않습니다. 우리의 역사가 부조리한 시대를 거치며 말살되고 왜곡됐기 때문입니다. 이런 현실에서 잃어버린 존재의 복원 이유는 극명합니다. 새로운 발전 모델의 제시를 위해 그들을 환생시켜야 할 때입니다. 지금은 한반도의 인식을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봄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4세기 말의 국제환경은 오늘날 동북아 정세와 유사합니다. 고구려는 강대국의 위치를 유지하기 위해 해양력 강화가 필요했습니다. 우리나라는 동아지중해의 중핵에 위치합니다. 동해와 남해 그리고 황해와 동중국해 전체를 연결시킨 해륙 네트워크의 허브가 우리나라입니다.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의 승패를 좌우했던 최고의 철 생산지인 안시성을 장악했던 태왕에게 주목합니다.
경제정책에서도 성공했던 태왕은 현재 북한 신의주와 중국 단동시가 마주하는 압록강 하구에 해양 물류망을 형성했습니다. 압록강은 만주에서 황해로 나가는 출구이며 황해에서 만주로 진입하는 입구입니다. 압록강 하구는 고구려의 생명선과 같은 곳입니다. 앞으로도 이 지역은 정치군사뿐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전략지가 될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통일을 이룩한다면, 좀 더 주체적인 입장에서 동아시아 질서 재편에 참여한다면, 이 지역의 영향력을 강화시켜야 합니다.
태왕이 심혈을 기울인 동아지중해 중핵정책의 백미는 경기만의 점령과 운영입니다. 경기만은 국제경제적인 측면에서 전략지구입니다. 한반도 중부의 모든 강들과 이어지는 해륙교통의 거점입니다. 또한 중국과 일본을 연결하는 동아지중해 남북연근해항로의 중간지점입니다. 태왕은 범경기만을 허브로 삼아 교역의 거점 생산 거점으로 삼았습니다.
큰 나라의 완성은 강한 정치군사력과 뛰어난 경제력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무엇보다 소중한 것은 문화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가 당면한 문제도 문화의 왜곡과 혼란이 원인입니다. 고구려는 여러 종류의 문화가 섞인 지중해적 환경을 지녔습니다. 동아시아의 다양한 종족들이 함께 거주했습니다. 하나의 국가 영토 안에서 색다른 환경과 이질적인 문화가 공존된 복합적인 역사 공간이었습니다. 태왕은 제국의 유지와 번성을 위해 종족과 문화를 잘 조화시켰습니다. 참으로 이시대의 고민과 많이 닮았습니다. 현재 세계화라는 이름으로 혼란스러운 자의식을 겪는 우리들이 해답을 찾는데 태왕은 모범 답안이 됩니다. 고구려인들은 전체를 관장하고 연결시켜주는 핵심으로 ‘하늘의 자손’이라는 자의식을 채택했습니다. 이는 추모의 후예인 태왕이 천신과 수신의 직손이라는 천명을 통해 고구려가 하늘의 뜻으로 선택된 종족임을 선언한 것입니다. ‘하늘의 자손’이라는 자긍심에서 정치적인 자신감이 생겼고 이데올로기는 통일됐습니다. 더 나아가 고조선을 계승했다는 조선정통론이 분명해졌습니다.
다양한 문명과 문화들이 공존하던 시대. 태왕은 이 모든 현상을 수용하여 보편성을 획득하며 중국문명이나 북방문명과 다른 동방문명을 창조했습니다. 공존을 통한 상호 발전의 통로와 터의 제공은 생동감 있는 동아시아 문화를 형성했습니다. 오늘날 다양하고 이질적인 문화가 만나 서로 공존을 모색하는 지향점이 돼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태왕의 이름 담덕은 우리나라 최초로 불교를 들여온 큰아버지 소수림왕이 지어준 것으로 불교적 마인드를 반영한 이름입니다. 이름과 같이 태왕의 목표는 동아시아의 핵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고구려의 지중해적 성격에 국제질서의 미묘함과 시대정신을 담아 나라 발전의 전략을 계획했습니다. 동서남북에 걸친 정복 활동과 대륙 남부와 한반도 중부 이북 등 거대한 영토를 차지했습니다. 황해 중부 이북, 동해 중부 이북의 영해를 확보했습니다. 태왕의 계획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요동만과 경기만 등 전략적 거점을 확보해 질서의 축을 세우고 지정학적 위치를 활용해 자국 중심의 거대한 망(네트워크)을 구성합니다.<그림>
태왕은 장구한 우리 역사에서 개인적으로 성공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나라를 가장 멋진 나라로 만든 성공한 인물입니다. 그를 성공한 리더로 만든 내적, 외적인 힘은 바로 자의식입니다. 태왕의 충만한 정신력은 내가 바로 내 삶과 일의 주체임을 자각한 것에서 나옵니다. 이런 고민과 과제는 현대의 우리가 당면한 문제이기도 합니다. 인식하고 받아들인 정체성을 어떤 방식으로 정책에 반영해 구체화시키는가. 태왕은 자신의 비전을 실현시키기 위해 개방의 거센 물결을 수용하면서도 자문화의 고유성을 유지하고 정체성 확립에 힘을 기울였습니다. ‘광개토대왕릉비’가 그 증거입니다. ‘고구려의 임금과 백성은 하늘과 땅의 자식이다.’ 하늘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극명한 자의식의 표현인 것입니다.
우리는 잃어버린 자의식과 민족의 정체성을 찾아야 합니다. 고구려가 700년 동안 동아시아의 위대한 나라로 존재한 힘이 자의식이었음을 명심하십시오. 21세기는 문화와 정신의 시대임을 강조합니다. 고구려를 통해 현재를 바라봅시다. 나라모델, 정책모델, 인물모델. 잃어버린 우리의 미래를 광개토태왕에게서 찾아야합니다. 가연숙 객원기자 omflower@daum.net
참여불교재가연대
교단과 사회의 청정한 변화와 봉사와 회향의 삶을 지향하는 재가불자들의 네트워크이다. ‘비영리, 비정부, 비제도적(비종단)’ 성격의 단체로 지난 1999년 3월 28일 창립하였다. 2008년 현재 재가연대는 1000여명의 개인회원과 45개의 단체회원을 둔 한국의 재가불자 네트워크로 운영 중이다. 참여불교리더스포럼 2008년 강좌는 매월 첫째 화요일 오후 7시에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