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4.11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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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다음 생에 다시 만난다면
“다음 생엔 당신 안 만날래요”

다시 결혼합시다
“난 다음 생에도 당신과 다시 결혼할래.”
뭐, 뭐라고? 남편의 말을 듣는 순간 김씨는 가슴이 쿵하고 내려앉는 것 같았다. 며칠 전 남편이 식사하면서 꺼낸 말이었다. 남편은 말을 이었다. “생각해 보니 육십 평생 내가 당신을 너무 힘들게 한 것 같아. 그러고 보니 당신 같은 사람도 없는 것을. 괜히 화만 내고 잘해준 것도 없고. 고생만 시킨 것 같아.”
그렇지, 정말 날 힘들게 했지! 김씨는 가슴에서 울분이 왈칵 치밀었다. 그리고 이제 와서 한다는 소리가 뭐, 다시 만나자고? 부부로 또?
김씨는 지난 세월이 생각났다. 지긋지긋했다. 6남매 맏며느리로 시집와서 시동생 시누들을 다 시집장가 보냈다. 시부모님도 이십년 넘게 모셨다. 그러는 동안 그나마 좀 있던 재산을 남편이 하나씩 하나씩 없애나간 것이다. 사업한다고 날리더니 몇 년 후 재기한다고 애원을 했다. 할 수 없이 어렵게 대출을 받아 빌려주었더니 또 남에게 사기를 당해서 없앴다. 그 후에도 무슨 무슨 사업한다고 돈을 해내라고 끊임없이 졸라대었다. 도대체 돈에 대한 관념이 없는 사람이었다.

난 만나기싫다
김씨가 절에 다니지 않았다면 아마 못 살고 헤어졌을 것이다. 스님이 이런 남편을 만난 것은 자신의 인연이기에 그 업을 녹여야 한다는 말씀에 조복했었다. 끊임없이 관하고 기도하며 살아왔다. 남편 속에 계신 부처님을 불렀다. ‘제발 정신 차리고 살게 해주세요.’ ‘사람 되게 해 주세요, 부처님.’ 이것이 기도 주제였다. 십여 년을 그렇게 하다 보니 미운 마음도 많이 없어지고 남편도 전과 달리 성실하게 살려고 바뀌기도 하였다.
“아무리 그랬더라도 막상 그 사람이 다음 생에 다시 부부로 만나자고 하니까 그만 기가 막히는 거예요. 도저히 상상도 하기 싫은데 말이에요” 아니 이생에 고생시킨 것도 모자라서 다음 생에 또? “그렇다고 난 싫어요, 할 수도 없잖아요. 앞으로 살면 얼마나 산다고. 굳이 가슴에 못 박는 말은 하고 싶지 않고, 거짓말할 수도 없고요” 남편의 말에 빈말이라도 뭐라고 대답해 주려고 했지만 아무 말도 나오질 않았다. 김씨가 말이 없자 남편도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다음 날 김씨는 절에 가는 길에 계속 눈물을 흘렸다. 만약 다음 생에 또 이 사람 만나 또 그런 고생을 해야 된다면 하고 생각하니 너무 서럽고 자신이 불쌍했다. 스님에게 갔다. “스님, 남편은 좋겠지요. 그동안 제가 참고 녹이고 기도하고 관하고. 아휴, 자기 가족들 다 받아주고, 빚 다 갚아가면서. 자기야 좋겠지요. 그러나 전 뭡니까. 제 입장은 생각도 안 하는 거예요.” 김씨는 “솔직히 스님, 전 다음 생에 그 사람 안 만났으면 좋겠어요. 이거 잘못된 건가요?” 하고 울었다.

고정됨 없는 도리
스님은 “다음 생에 만나고 안 만나고가 중요한 건 아닙니다. 만나도 어떻게 만나느냐가 중요하지요. 그런데 거사님을 다시 만난다면 왜 똑같은 고생을 할 거라고 생각하세요?” 스님은 김씨의 지극한 기도정진과 노력으로 업이 많이 녹았을 것이라고 하였다. “고정됨이 없는데 여자로만 태어나나요. 다음 생에는 보살님이 남자가 되고 거사님이 여자가 될지도 모르잖아요. 또 다음에는 훨씬 좋은 도반이 될 수 있을 거예요. 지금도 거사님이 변하고 있잖아요.”
그 말을 들으면서 김씨는 점차 마음이 밝아지는 것을 느꼈다. 그래, 고정됨이 없다. 내가 이생에 노력하고 있으니 업이 녹았을 거야. 다시는 그런 일이 없을 거야. 그리고 뭐가 되어 만날지 누가 안담. 왜 지금 모습으로만 생각하고 있었을까. 그러고 보니 이 마음공부를 알게 된 것이 한없이 감사했다. 안 그랬으면 남편을 원망만 하며 지내다가 다음 생에도 이대로 그 차원대로 살아갈 것이었다. 천만다행히 업을 녹이는 마음정진을 할 수 있게 되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다시 서러운 마음을 가라앉히며 법어를 떠올린다. “인과니 업보니 붙이지 마라. 고정돼 있는 건 하나도 없다.” 황수경(동국대 선학과 강사)
2008-03-17 오전 10:3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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