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새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너무도 자주 듣게 되는 ‘선진화’라는 말의 진정한 의미를 새삼 다시 물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전혀 나쁜 뜻이 있을 수 없는 ‘선진화’라는 말…. 혹시 그 말에 휩쓸려가다가 어떤 터무니없는 결과를 맞을지 모르겠다는 걱정이 드는 것은 나뿐일까? 그렇게 말하고 나니 경제를 살리겠다는 말 속에 숨어있을 수 있는 어두운 그늘을 걱정해야 한다는 글을 이 난을 통해 이미 했다는 사실이 다시 떠오른다.
이제 출범한 이명박 정부나 내거는 구호들이 그 좋은 의미대로 성취되기만 한다면 더 바랄 나위 없을 것이다. 아니 어떤 정권이건 그들이 내걸었던 구호를 진정하게 성취했는가에 대하여 똑같은 물음을 던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에 대하여 이러한 물음을 던지는 데는, 다른 역대의 정권들에 대한 것 보다 좀 더 큰 걱정과 의구심이 있다. ‘오렌지’를 ‘오린지’로 발음해야 한다는 영어에 대한 이상야릇한 콤플렉스를 가진 인사를 비롯하여 자신이 생각하는 것만이 옳고, 그것을 과감하게 관철하는 것만이 이 나라를 발전시킬 수 있다는 독선에 비슷한 신념을 지닌 인사들이 대통령 주변에 많이 포진된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가진 과감한 추진력이라는 것이 혹 이러한 모습을 띄고 드러나는 것은 아닐지 두렵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지도를 바꾸고, 미래의 후손들이 누려야 할 국토 환경을 바꿀 ‘대운하’ 같은 중차대한 문제까지도 그런 식의 과감한 추진으로 결정하지는 말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기 때문이다.
진정한 개혁, 진정한 선진화는 과거를 헌신짝처럼 벗어던지고, 조자룡 헌 칼 쓰듯 과감하게 권력을 휘둘러 처리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또 우리 오랜 전통과 민족의 정체성을 내던지고 서구화 일변도, 그것도 극단적인 미국 편향의 국제화를 추진하는 것도 아닐 것이다. 정말 조심스럽게 의견을 모아나가는 과정, 절차적 정의를 지키면서 진정한 민주적 이념을 세워나가는 일이 그 첫 번째의 과제가 아닐까 싶다.
우리나라처럼 짧은 기간에 급격한 발전을 이룬 나라는 세계에서도 드물다는 것은 국제적으로 인정된 사실이다. 그런 빠른 발전 가운데서도 가장 뒤진 곳이 무엇이었던가? 바로 정치영역 아니었던가? 정치만 제대로 되었어도 우리의 발전이 이 정도에 그치지 않았을 것이라는 탄식을 수도 없이 들었으며, 국회의원과 정치인을 비하하는 유머가 인구에 회자되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라는 것을 바로 보아야 한다. 그렇기에 우선 정치의 선진화를 이루는 것이 가장 시급하다. 그리고 정치의 선진화란 국민의 여망을 대변하고 또 조직화하는 정당의 역할과 위상을 바로 세우는 것이며, 민주적 절차에 따른 대화와 타협을 통해 올바른 국가의 지향점을 세우는 것이다. 그러한 선진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채, 파행과 강행을 무릅쓰는 선진화와 개혁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된 데는 분명 그에 대한 큰 기대가 있을 것이다. 그 기대는 새 대통령이 국정을 운영하는 데 있어 큰 힘이 될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 힘은 “바로 이런 일을 하라고 나를 뽑아준 것이요!” 하고 내세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 바람을 우리 현실에 맞게 구체화 하고, 올바른 국정운영을 통해 발현하는 것이 바로 대통령의 큰 책임이다. 큰 방향에 대한 바람이 구체적인 정책을 정당화하는 것으로 둔갑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오히려 더더욱 신중하게 그 큰 바람을 구체화하는 절차를 밟아야 할 것이요, 가장 모범적인 답을 내기 위해 온 국민의 여망을 다시 한 번 모으는 겸손함이 있어야 할 것이다.
이렇게 조심스런 행보를 요구하면 결국 새 대통령의 큰 장점이 빛을 발하지 못할까 걱정하는 이들도 있으리라. 그러나 결정과정의 신중함이 없는 과감한 추진이 주는, 되돌릴 수 없는 피해가 있을 경우를 생각해 보라. 그것을 막는 길은 무엇보다 정치의 선진화를 통해 온당하고 올바른 국정운영의 기틀을 잡는 길밖에 없지 않을까? 각료의 임명과정에서부터 드러나는 파행을 보면서 다시 한 번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