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4.11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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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하는 마음은 번뇌 아니지만 집착하면 번뇌가 된다
四棄掉悔蓋 掉有三種 一者身掉 身好遊走 諸雜戱謔 坐不暫安 二者口掉 好喜吟詠 競諍是非 無益戱論 世間語言等 三者心掉 心情放逸 縱意攀緣 思惟文藝 世間才技 諸惡覺觀等 名爲心掉 掉之爲法 破出家人心 如人攝心 猶不能定 何況掉散 掉散之人 如無鉤醉象 穴鼻駱駝 不可禁制
산란한 마음이란 앉으나 서나 불안정하여 마음과 입이 전일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육근의 정신을 한곳으로 모으지도 못해 종일토록 자기의식이 가는대로 정을 따라 방탕하게 지내고 희롱하는 짓을 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같은 상태를 산란심[掉]이라고 한다.
다음으로 후회하는 마음은 고뇌라고 말할 수 있는데, 이것은 한스러움이라고도 한다. 어떤 사람이 이미 저질렀던 일을 후회하는 것이 여기에 해당된다.
그러나 후회는 본래 번뇌가 아닌데도 왜 반드시 버려야만 한다는 것일까.
후회는 자기의 잘못을 깨닫고 뉘우치는 것이기 때문에 좋은 마음에서 나온 것이기는 하지만, 이를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으면서 조석으로 근심만 한다면 이로 인해 우리의 진실한 마음이 덮여져버린다는 것을 알아야만 한다. 때문에 좋은 마음인 후회가 집착심으로 인해 오히려 번뇌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산란심은 많기는 하지만 크게 세 종류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첫 번째는 몸의 산란함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유람하기를 좋아하여 일정한 방향 없이 떠돌아다니거나, 잡스럽게 희롱하는 짓거리를 하거나, 또는 앉아있어도 안정을 얻지 못한다면 이를 몸이 산란한 것이라고 한다.
두 번째는 입의 산란함이다.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거나, 시비를 논쟁하거나, 전혀 이익 없는 것에 대해 담소하기를 좋아하는 등 세간의 일을 말하는 것을 모두 입이 산란한 모습이라고 한다.
세 번째는 마음의 산란함이다. 마음이 감정을 따라서 방일하면서 자기의 의식을 제멋대로 방자하게 노닐면서 의식 속에 나타난 그림자를 상상하기도 하며, 혹은 목전의 오진경계를 반연하기도 하면서 일체 모든 악한 생각들을 일으키는 것을 마음이 산란한 것이라고 한다.
산란심은 출가인의 마음을 파괴한다는 점을 알아야만 한다. 본래 출가하여 수도하는 사람은 마음이 가장 고요하고 안정돼야만 하는데, 마음이 한번이라도 흔들리면 곧바로 산란심을 일으켜 도업의 마음에 머물고 싶다고 해도 끝내 성취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초발심으로 입도한 사람은 마음을 거두어 한결같은 곳으로 귀결하려 해도 그 마음이 안정되기가 쉽지 않는데 하물며 산란심까지 일으킨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산란심을 일으키는 사람은 비유하면 마치 통제의 고삐에서 풀려난 술 취한 코끼리와 같다. 술을 마시지 않은 코끼리도 제지하기 어려운데 하물며 제지할 도구가 없는 상태에서 술에 취한 경우야 어떠하겠는가. 그 코끼리는 미친 마음으로 날뛰며 재앙을 일으킨다는 것을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이다.
또 산란심을 일으키는 사람은 코뚜레가 없는 낙타와 같다. 코뚜레 없는 낙타가 이쪽저쪽으로 날뛰어도 제지하기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如偈說
汝已剃頭著染衣 執持瓦鉢行乞食 云何樂著戱掉法 放逸縱情失法利 旣失法利 又失世樂覺其過已 當急棄之
출가자가 머리와 수염을 깎은 후 가사를 입고 스님이 되었다면 그는 분명히 출세간 대장부이다. 이같이 대장부로서 위의를 갖추었다면 반드시 몸소 모범을 보이면서 발우를 지니고 항상 걸식을 행하면서 중생들에게 복과 이익을 짓도록 해야만 한다. 그런데도 산란하게 희희락락하는 법만 즐기고 탐착하면서 제멋대로 방일한다면 어찌 불제자라고 할 수 있겠는가.
제멋대로 방일한 자는 현생에서는 불법의 이익을 잃게 되기 때문에 불법의 이익을 잃는 과오와 허물을 깨달은 즉시 산란심을 버려야만 한다.

悔者 悔能成蓋 若掉無悔 則不成蓋 何以故 掉時未在緣中故 後欲入定時 方悔前所作 憂惱覆心 故名爲蓋 但悔有二種 一者因掉後生悔 如前所說 二者如作大重罪人 常懷怖畏 悔箭入心 堅不可拔
여기서부터는 후회하는 번뇌에 대해 밝혔다. 후회라는 말은 그 후회가 우리의 본심을 덮어버리는 번뇌가 되는 것을 말한다. 가령 산란의 번뇌를 일으킨다 해도 그에 따른 후회가 없다면 그 후회는 끝내 번뇌를 일으키지 않는다.
왜냐하면 산란할 동안은 후회하는 마음이 그 가운데 있지 않기 때문이다. 산란심을 일으킨 이후 단정히 좌선하면서 선정으로 들어갈 때 이르러서야 종전에 지었던 산란의 죄과를 후회하게 되는 것이다.
신업과 구업상 후회를 하기도 하고, 혹은 의업에서 일으킨 산란심을 후회하기도 한다. 이와 같은 갖가지 근심과 고뇌가 우리의 진심을 덮어버리는 것이다. 그 때문에 후회가 번뇌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후회의 번뇌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하나는 산란심을 일으킨 이후에 후회하는 마음을 내는 것인데, 이상에서 설명했던 것처럼 종전에 지었던 죄악을 뉘우치는 것이 여기에 해당된다.
또 하나는 무거운 죄를 지은 사람이 마음속에 항상 공포와 두려운 마음을 간직하고 종일토록 고뇌하고 후회하는 것인데, 이로 인해 후회의 화살이 가슴 깊숙이 견고하게 꽂혀버리기 때문에 독화살을 뽑아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로 인해 정도를 장애하고 번뇌의 문이 열려 지혜로운 성품이 가려버리기 때문에 열반의 세계가 어두워지게 된다. 그러므로 지관을 수행하는 자라면 그 허물을 반드시 알아서 산란심의 인연 때문에 생사대사를 방해받지 않도록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如偈說
不應作而作 應作而不作 悔惱火所燒 後世墮惡道 若人罪能悔 悔已莫復憂 如是心安樂 不應常念著 若有二種悔 若應作不作 不應作而作 是則愚人相 不以心悔故 不作而能作 諸惡事已作 不能令不作
반드시 하지 않아야만 되는데도 하거나, 반드시 해야만 하는데도 하지 않거나 하는 이 두 가지 경우는 중생의 전도망상을 밝힌 것이다.
하지 않아야 되는 데도 하는 것은 신구의로 십악업을 짓지 않아야 하는 것을 말한다. 이와 같은 십악은 본래 해서는 안되는데, 자기 마음을 제멋대로 방종하면서 힘이 다 할 때까지 하는 것을 말하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반드시 해야만 하는 데도 하지 않는 것은 일체 세간 출세간의 선업은 마땅히 마음을 극진히 하여 해야만 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세간에서 행하는 갖가지 자선사업이나, 출세간의 선업으로서 경전을 듣고 몸은 예불을 하고 입으로는 염불을 하면서 마음으로는 부처님을 관찰해야 하는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후회하는 사람은 그 후회의 번뇌 불에 자신이 타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후세에는 반드시 악도에 떨어지게 된다.
허물을 알았으면 고치는 것이 가장 훌륭한 방법이다. 이로부터 도업을 정진 수행한다면 몸과 마음이 자연히 청정하고 지혜광명이 일어나 안락자재하게 된다. 때문에 후회하는 마음에 집착을 해서는 안된다.
마음이 후회하지 않기 때문에 하지 않아야할 일을 한다면 이미 모든 악을 지었기 때문에 그에게 악업을 짓지 못하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중앙승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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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3-03 오전 11:4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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