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3.25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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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착하게 낡은 것의 영혼-정일근|시학, 2006 | 값 8000원
자연에서 배우는 아름다운 자비

정일근의 아홉 번째 시집 <착하게 낡은 것의 영혼>에 게재된 시편에는 많은 불교 제재와 어휘들이 등장한다. 시집의 첫 시 ‘녹비’는 자운영이 농경의 필요에 의해 갈아엎어져야 하는 자운영의 운명을 자비 행위로 형상화하고 있다.
논에서 자라는 자운영은 한창 꽃이 필 때쯤 갈아엎어 거름을 만드는 두해살이 풀이다.

자운영은 꽃이 만발했을 때 갈아엎는다
붉은 꽃이며 푸른 잎 싹쓸이하여 땅에 묻는다
저걸 어쩌나 저걸 어쩌나, 당신은 탄식하여도
그건 농부의 야만이 아니라 꽃의 자비다
꽃 피워 꿀벌에게 모두 공양하고
가장 아름다운 시간에 자운영은 땅에 묻혀
땅의 향기롭고 부드러운 연인이 된다
자운영을 녹비라고 부른다는 것
나는 은현리 농부에게서 배웠다, 녹비
나는 아름다운 말 하나를 꽃에게서 배웠다
꽃을 묻는 그 땅 위에 지금 푸른 벼가 자라고 있다
- ‘녹비’ 전문

자운영을 갈아엎는 것은 농부가 되겠지만, “그건 농부의 야만이 아니라 꽃의 자비”라는 것이다.
그래서 자운영을 ‘녹비’라고 부르는데 화자는 이러한 것을 “은현리 농부”에게, 그리고 이런 “아름다운 말 하나를 꽃에게서 배웠다”는 것이다. 시 ‘보일러 만트라’에서는 화자가 나무 보일러에 불을 넣었을 때 물이 끓으면서 내는 소리를 듣고 창작동기를 얻은 것이다.
화자는 나무보일러가 전생이 티베트 라마승 같다고 하고, 나무불을 넣으면 보일러는 염불부터 먼저 한다고 한다. 보일러가 옴마니반메훔을 중얼거리고, 히말라야 만트라를 노래하고, 긴 염불 뒤에 한숨을 쉰다고 비유한다.
제목이 긴 시 ‘도다리 한 마리 놀지 못하는 바다를 가지고’에서는 통도사 스님과 설날 아침에 나누었던 대화를 가지고 열심히 시 쓰기를 하지 못했음을 과거의 울산 작천정 골짜기에서 글씨를 쓰고 살았던 인물을 통해 인유한다.
시인은 ‘밥 보리살타’에서 화자의 어머니가 행하는 지극한 보살행을 ‘고양이 밥 주기’를 통해 형상화하고 있다.
다리 하나를 잃은 도둑고양이
식구처럼 돌보시는 어머니
우리 어머니 안 보살님
절에 절하러 가시면서
밥상 차려 놓았으니 너는 밥 먹고
고양이는 밥 차려드려라
꼭 데워서 따뜻한 밥 드려라
추운 날 찬밥 주는 일
그것은 죄가 된다
내게 몇 번이나 당부하시는 어머니
끼니끼니 찾아오는 도둑고양이에게
끼니끼니 더운밥 차려 주시며
다음 세상에서 만나면 갚아라
쌀가마 메고 와서 꼭 갚아라
다리 잃은 도둑고양이에게 당부하시는
어머니의 밥 보리살타

- ‘밥 보리살타’ 전문
2008-03-02 오후 3:3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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