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모인 대중(大衆)은 역순(逆順)을 자제하는 기틀로 곧은 것과 굽은 것을 모두 놓아버리면 시방(十方)의 종지(宗旨)가 한 곳으로 모일 것이요, 정(正)과 사(邪)의 시비(是非)가 원융(圓融)을 이룰 것이다.”
조계종 종정 법전 스님이 10월 19일 ‘봉암사 결사 60주년 기념대법회’에서 내린 법어의 마지막 구절이다. 이날 기념법회는 1947년 시작된 봉암사의 결사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열린 자리였다. 이날 결사정신의 계승 결의는 최근 조계종에 불어 닥친 ‘위기의 바람’을 극복하기 위한 참회와 자정의 의지를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조계종의 위기는 어디서 왔는가? 최근 MBC ‘PD수첩’은 선거제도가 종단 부패의 중요한 원인이라 지적하며 공주 마곡사와 제주 관음사의 사태들을 집중 보도했다. 동국대에서 비롯된 신정아 사건의 이면에도 조계종의 계파갈등과 종립학교 관리에 대한 종단적 능력 부족이 매우 염려스럽게 회자되고 있다. 말하자면 조계종은 지금, 정신과 제도가 모두 위기를 맞고 있는 것으로 비쳐진다.
그러나 위기가 반드시 패망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위기라고 느끼는 순간이 희망의 길을 여는 순간이 되기도 한다. 그 전환점을 적기에 만들어 내는 지혜와 힘이 있다면 위기는 약이 될 수 있다. 조계종이 봉암사에서 그 약을 처방했다고 보여 진다.
‘참회와 자정결의’라는 두 축이 향후 조계종을 ‘부처님 법대로 살자’는 결사정신에 입각한 청정교단으로 거듭나는 힘이 될 것을 믿는다. 봉암사에 모인 대중들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올바로 받들어 실천하지 못한 점을 인정하고 참회했다.
또 중생들의 아픔을 치유해주지 못하고 오히려 아픔을 준 것도 참회했고 소임을 맡아 공정하고 투명한 집행을 하지 아니하고 사사로운 이해와 아집으로 일을 그르쳤음도 깊이 참회했다.
이렇게 모두 10가지의 항목을 낱낱이 인정하고 참회한 만큼, 이제 조계종은 새로운 종단 비전 설정과 무한한 노력의 경주를 과제로 남겨 둔 셈이다. 한 번의 법회를 통해 모든 것이 참회되진 않는다. 한 번의 참회를 통해 모든 죄업이 소멸되는 것도 아니다. 죄업은 그 죄업의 근원을 끊고 정신과 제도와 시스템이 모두 새로워질 때 완전하게 소멸될 수 있다. 하루속히 ‘역순을 자제하는 기틀’로 ‘종지를 한 곳으로 모이게’ 하는 시스템을 만들고 모든 종도들이 결속하여 일사불란하게 나아가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조계종이라는 하나의 조직을 거시적 안목으로 조정해야 한다. 조계종의 구조조정이 선행되지 않고는 참회와 자정이라는 외침과 결의는 한 편의 ‘쇼’에 지나지 않는다. 사구는 필요 없다. 활활발발한 활구만이 사람을 살리고 중생계의 복전이 될 수 있다. 참회하는 마음으로 자정을 결의하는 그 마음으로 종단을 낱낱이 해부하고 병마가 깃든 곳에 확실한 처방전을 내려야 한다. 도려낼 것은 도려내고 약을 쓸 곳엔 약을 써야 한다. 이해관계와 탐욕에 집착하면 지금보다 더 추락할 수밖에 없다.
봉암사의 결사정신, 공주규약 등이 청정 교단의 위상을 새롭게 하고 현대사회를 이끌어가는 힘이 될 수 있을 때 조계종은 중생들의 따뜻한 귀의처가 될 수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