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시절에 끼사고따미라는 여인이 있었다. 여인은 젊은 장자와 결혼하여 아들을 낳았다. 그런데 걸음마를 시작할 무렵에 아들이 갑자기 죽고 말았다.
슬픔과 충격에 휩싸인 여인은 죽은 아들을 안고 여기저기 찾아다니며 아들을 살려내 달라고 애원하였다. 그러나 아무도 상대하지 않자, 마침내 부처님 앞에 이르게 되었다.
여인은 울면서 애원했다.
“부처님이시여, 제발 제 아들을 살려 주십시오.”
그러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여인이여, 사람이 죽은 적이 없는 집에 가서 겨자씨 한 줌을 얻어 가지고 오너라.”
부처님 말씀을 들은 여인은 죽은 아들을 가슴에 안고 이 집 저 집 문을 두드렸다.
“전에 이 집에서 혹시 사람이 죽은 일이 없습니까? 그렇다면 제게 겨자씨 한 줌만 주십시오.”
그러나 사람이 죽은 적이 없는 집은 한 집도 없었다. 그래서 여인은 아무리 돌아다녀도 겨자씨를 얻을 수 없었다.
여인은 지친 몸으로 죽은 아들을 내려놓고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리하여 마침내 자기만이 아니라 세상 모든 가정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리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과, 죽은 사람의 수가 살아 있는 사람의 수보다 훨씬 많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이에 여인은 부처님께서 겨자씨를 구해오라고 하신 깊은 뜻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 순간 죽은 아들에 대한 애착도 떨어져 나갔다.
<법구경> 제8장 게송114. ‘끼사고따미 이야기’에 나오는 내용이다.
만약 아들을 살려달라고 찾아간 끼사고따미에게 부처님이 “세상 만물은 생로병사를 피할 수 없다. 그러니 윤회를 끊어 생사의 속박에서 벗어나도록 하라”고 가르쳤다면 그 말씀이 전혀 먹히지 않았을 것이다. 그만큼 여인은 아들의 죽음 문제로 심각한 절망에 빠졌고, 아무리 옳은 말이라도 귀담아 들을 만한 마음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여인도 죽은 사람이 도로 살아날 수 없다는 것은 머리로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을 인정하기엔 너무도 상실감이 컸고, 자신의 아들만큼은 예외였으면 하는 불가능한 소망을 갖고 있었을 것이다. 이를 아신 부처님은 여인의 상황에 맞게 처방을 해 주었다. 역설적으로 아들을 살려낼 방도를 일러 준 것이다.
끼사고따미에 대한 부처님의 치료는 정신분석의 훈습(working through)과 같다. 훈습은 내담자가 자신의 증상에 대해 통찰에 이르렀을 때 지적인 단계에 머무르지 않고 경험적인 확신에 이르도록 반복적인 노력을 하는 것이다.
즉 통찰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환자의 마음속에 의미 있고 영속적인 변화를 가져와, 최종적으로 방어하고 있던 면들까지 전체 인격 속에 포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끼사고따미로 하여금 여러 집을 찾아다니게 함으로써 ‘죽음이란 인간이 겪어야 하는 필연’임을 몸으로 직접 체험하여 훈습의 효과를 보도록 했던 것이다.
■불교상담개발원 사무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