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3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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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타인의 아픔이 나의 아픔
“이번 여행에서 부처님께 혼났지 뭐예요. 마음을 잘 써야겠어요.”
M씨는 직장 팀의 1박 2일 가을 여행 동안 중요한 경험을 했다. M씨는 팀의 총무로서 일정을 진행하는 책임자 중 한 사람이었다. 30여명을 태운 버스가 서울을 출발하자 음료수 등을 나누어 주고 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잠시 후 뜻밖에도 머리가 슬슬 아파오기 시작했다.
한 시간 쯤 가자 이번에는 어지럽고 구토가 날 것 같았다. 차멀미 같은데 평소 멀미를 한 적이 없어 이상했다. 버스는 앞으로도 세 시간을 더 가야 했다. 눈앞이 캄캄했다. 팀장과 다른 임원들은 그 사정도 모르고 대화도 하고 일도 점검하고 있었다. M씨는 어지럽고 머리가 아파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들어오질 않았으나 아픈 티를 낼 수가 없었다. 평소 공적인 일을 할 때 개인 사정을 내세우거나 특히 병났다고 하는 사람을 싫어했던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그럴 때면 ‘핑계이거나 의지 부족’이라고 좋지 않게 생각했었다. 좀 아프더라도 웬만하면 티를 안 내야 되고, 그래야 전체에게 부담을 안 주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자신이 멀미를 해 보니 견디기가 힘들었다. 티는 낼 수 없고 간신히 필요한 말만 하고 자리로 들어와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그러나 두통이 있으니 잠도 안 왔다.
저녁에 목적지에 도착하자 식은땀이 나고 있었다. 차를 안타니 이제 낫겠지 하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웬일인가. 저녁을 먹은 후 다시 머리가 아파왔다. 체한 것 같았다. 비상 두통약을 먹었으나 이상하게 듣지를 않았다. 저녁 일정 내내 M씨는 고통을 참았다. 아프다고 말하고 방에 드러누웠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다. 그러나 임원으로서 함께 진행을 안 할 수도 없었다. 총무가 얼굴을 보고 “어디 안 좋으세요?” 하고 물었지만 “네, 조금요” 하고는 다시 이를 악물고 필요한 일들을 했다. 밤에는 노래방까지 가게 되었다. 마침내 숙소로 들어와 자리에 눕자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내일도 종일 일정, 또 저녁에는 버스 네 시간을 탈 생각을 하니 끔찍했다. “부처님, 살려주세요” 하는 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그렇게 울고 있는데 문득 ‘왜 그렇게 티를 내?’하는 소리가 들렸다. 다름 아닌 바로 자신의 목소리였다. 그러면서 바로 지난 봄 여행이 떠올랐다. 그때 옆자리에 앉게 된 동료 K씨가 버스를 타자 곧 아프다고 했었다. 그러면서 머리를 자꾸만 자기 어깨에 기대는 것이었다. 같은 여자끼리지만 M씨는 왠지 거북했다. ‘차멀미 좀 한다고 왜 그렇게 티를 내?’하며 싫은 마음이 났다. 그래서 슬쩍 어깨를 빼곤 했다. 일정 동안 K씨는 자주 방에 가서 누워 있곤 하여 다른 사람들이 걱정했었다. 그 때도 M씨는 ‘아파도 좀 참지. 의지가 강하면 견딜 수 있을 텐데 티를 내서 전체에게 지장을 주는군’하며 볼 때마다 경멸하는 마음을 가졌었다. 그런데 이제 자신이 직접 아파보니 장난이 아니었다. “아이고, 관세음보살, 도와주세요”하는 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그러나 마음에서는 ‘좀 참지, 왜 그렇게 티를 내?’하는 자신의 음성이 또 들려왔다. 너무나 차갑고 냉정한 느낌이 드는 소리였다.

이제야 다른 사람들의 아픔이 가슴 깊이 느껴지게 되었다. 참고 싶다고 해서 견딜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렇게 힘든데 내가 이해 못하고 싫어했으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참회하는 마음이 들었다. 불자로서 마음공부 한다고 하면서 남들에게 그렇게 차가운 마음을 냈으니 내가 다시 되받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타인의 아픔을 그 입장에서 이해하지 않고 부정적 마음을 입력해버렸던 것이다.
“건강한 편이라 남들 사정을 잘 몰랐어요. 지금이라도 정신 차리게 해 주신 데 대해 감사하게 되었어요. 앞으로 제가 겪지 않은 남의 사정에 대해 함부로 마음을 내면 안 될 것 같아요.”
M씨는 요즘 ‘한 생각을 어떻게 내는가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신 부처님 말씀을 새기며 혹시 다른 사람의 일에 대해 차가운 마음을 내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게 되었다고 한다.
■황수경(동국대 선학과 강사)
2008-03-01 오후 5:4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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