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2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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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우주 전체가 그대로 한마음으로 돌아갑니다!
식물 하나, 무정물 하나도 나 아님이 하나도 없어!
(지난 호에 이어서)
▲질문자3(女): 스님, 저는 제가 체험한 걸 좀 얘기할까 싶어서요. 얼마 전에 이렇게 공부를 하고 나가다 보니까 부엌에 개미가 참 많았어요. 그런데 일을 하다보면 개미가 물에 씻겨가기도 하고 죽기도 하고 그러는지라, 마음이 참 아프더라고요. ‘아휴, 개미야. 제발 부디 네가 살 데서 살아다오. 여기서 살지 말고 네가 살 곳에서 살아야지 왜 여기서 사느냐.’ 하는 마음으로 언제나 부엌에 들어가면서 일을 했었거든요.
그랬는데 제가 가게 가서 일을 하다가 어느 날 저도 모르게 ‘아휴, 개미야!’ 하는 마음이 되더라고요. 그러면서 ‘제발 거기서 나가줘!’ 하는 마음. 그러니까 무심(無心)에서 그게 일어난 것 같아요, 제가 생각하기로는. 그냥 그렇게 하다보니까 그날 저녁에 집에를 들어가 보았더니 부엌 씽크대 위 같은 데 개미가 참 많았는데 개미가 없어진 거예요. 한 마리도 안 보이는 거예요. ‘어머, 이상하다. 왜 개미가 한 마리도 없지?’ 하는 마음이…. 그래서 이상해서 개미가 좋아하는 설탕이니 빵 부스러기니 하는 거를 일부러 놓아보았어요, 부엌에다가. 그랬는데 개미가 없는 거예요. 그 다음부터는 개미가 안 오는 거예요. 부엌 옆에 다용도실이 있는데 거기에는 개미가 좀 있더라고요. 그러다가 며칠 지나면서 거기도 개미가 하나도 없이 사라진 거예요.
그때 제 마음은 그랬어요. ‘아! 이 마음과 풀 한 포기가 본래 하나로 다 연결이 돼있다고 스님은 말씀하셨는데 아! 그런가봐. 내 마음이 개미와 통했구나! 내가 그렇게 안타깝고 가슴 아파했던 게 개미하고 한순간에 통했구나!’ 저는 그렇게 느꼈는데요. 그건가 아니면 개미가 여기가 살기 싫어서 갔는가….
▲스님: 좀, 좀 믿어 봐요. 하하. (대중 웃음) 이 우주 전체가 그대로 한마음으로 돌아가요. 그런데 고거 하나를 체험했을 때는 그 줄을 잡고선 자꾸자꾸 체험을 하고 가야 돼요.
▲질문자3(女): 네.
▲스님: 풀 한 포기, 지렁이 하나, 또 진드기 하나, 그리고 이 땅에 발을 딛고 있는 전부가 다 부처님의 뜻이니까. 전부 불성이 있으니까. 그러니까 부처님 아니 되는 게 하나도 없어. 그렇게 연결이 돼서 돌아가니까. 그래서 우주와 직결이 돼 있고 세상과 가설이 돼 있다 이 소리입니다.
이런 예가 있죠. 어느 스님이 중단을 다 치워버렸어요, 부처님 한 분만 모셔놓으려고. 그랬더니 자기 몸을 막 때려서 그냥 죽었대요. 그러니까 물건을 치우되 그 마음과 마음이 연결이 돼서 나한테로 다 넣고 그 물건만 치워야 되는데, 마음과 마음이 통하지도 않는 데서 너는 너고 나는 나인 데서 치우니까 그 쪽에서는 내 몸을 치죠. 이렇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몸속에 있는 모든 중생들이 화해서 보살이 되면 모든 각처 각급의 자기가 생각하는 대로 돌아가면서 벌써 무심 도리(無心道理)에서 중용을 하게끔 돼 있습니다. 그게 왜냐하면 인간의 몸에도 모두가 응집을 해가지고 같이 이끌어주는 중생들이 보살이 되어서 그렇게 하는 거죠. 그래서 보현(普賢)이라고 하는 겁니다.
▲질문자3(女): 제가 생각하기로는 ‘내 마음이 그 많은 개미에게 다 마음이 전달이 될 수가 있구나!’ 하니까 이제는 풀 한 포기를 보아도 함부로 뜯지도 못하겠고요, 어느 벌레 한 마리나 사람 누구를 보아도 나라고 생각이 되는 거예요.
▲스님: 그러기에 옛날 선지식들은요, 짚신을 신고 방울을 달아서 저렁저렁저렁 하고 딛고 다녔어요. 미리 달아나라고, 그 소리를 듣고 밟히지 말고. 음, 이 식물 하나 무정물 하나도 전부 나 아님이 하나도 없어요. 그러니까 이 몸뚱이 속 내면의 세계에서 나 아님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자기를 자기가 죽일 수는 없다는 결론입니다.
아픈 사람들이 와도 낫게 되는 동기가 이 모든 걸 한마음 속에서 해결을 할 수밖에 없다 하니까 자기가 자기 죽일 수는 없거든. 이래서 성사가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자기가 자기 길을 막히게 할 수는 없거든, 또. 그러니까 길을 틔워주지. 남이 사기를 치려고 할 때 여기선 벌써 알고 자기가 자기를 사기당하게 할 수는 없거든. 그러니까 싹 돌아서 옆으로 가게 만들지. 이렇게 묘한 법입니다. 강도가 칼을 들었다 하더라도 칼을 떨어뜨리는 법입니다. 이렇게 묘한 도리를 여러분이 몸뚱이 있을 때 알아야지 몸뚱이 없고는 알 수가 없습니다, 부딪침이 없기 때문에.
그래서 내가 항상 그러잖습니까. 죽어서도 중생의 의식이 그냥 있어서 여기서 그냥, 그림자 쫓아다니듯이 나와서 와글와글하니 한 발짝도 떼놓을 수 없지. 또 강을 건너가려 하니 그 영혼이 자기가 이 몸뚱이가 있는 줄 알고 의식이 그대로 있기 때문에 빠져 죽을까봐 건너가질 못하잖아. 배가 올 때를 기다리니 몇천 년을 그 강가에서 거닐고 있다 이 소립니다. 그리고 그 블랙홀이라는 불바퀴 속을 넘어서야 되는데 타 죽을까봐 못 들어가죠. 마음이라는 게 타 죽는 게 어딨고 타 죽지 않는 게 어딨습니까? 그래서 죽는 것이 죽는 것이 아니고, 사는 것이 사는 것이 아니다 이 소립니다. 영원한 것입니다, 알고 보면.
개미 하나 그러는 것도 신기하죠. 그런데 만물이 다 나와 더불어 같이 놀게 되고 같이 작용을 하게 된다면, 하늘을 보고 기가 막혀서 앙청을 하고 땅을 보고 통곡을 해도 시원치 않을 겁니다, 아마.

▲질문자4(男): 제가 금방 이 자리에 나오기 전에 질문을 해야겠다 하는 생각을 하고 난 뒤에 일어섰습니다. 일어섰을 때에는 별 생각 없이 나왔는데 현재 제가 느끼는 거는 심장 뛰는 것만 느껴지고 다른 아무런 생각이 없어요. 그런데 불현듯이 한생각이 떠오릅니다. ‘이게 뭣고?’ 그런 생각이 딱 떠오르지마는 ‘이게’가 뭔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분명히 제가 여기 오게 된 그 어떤 인연은 있을 거라는 확신은 있지만 아직 그걸 모르겠습니다. 그래 그걸 의심을 하면서 화두처럼 참구를 해야 하는 건지, 그렇지 않으면 그것조차도 주인공에 맡긴다는 마음으로 그런 생각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할는지 법을 설해주십시오.
▲스님: 참선이라고 하는 것은, 이 뭣고도 그 자리에 놓는 것입니다. ‘이 뭣고’라는 말에 착이 붙으면 끊어질까봐 두렵고 또는 무기공에 떨어질지도 모릅니다. ‘이 뭣고? 이게 뭘까?’ 하는 것에 10년이 걸리고 20년이 걸리는 겁니다. 당당히 ‘네가 있으면 네가 있다는 것을 증명해라!’ 하는 것하고 ‘이게 뭣고?’ 하는 것하고, 수박을 놓고 ‘이게 뭣고?’ 하고 있는 거하고 그냥 칼로 탁 잘라서 먹어보는 거하고는 의미가 다릅니다.
그깐 놈의 거, 이래도 한 세상 저래도 한 세상인 것을 칼로 잘라서 죽으면 어떻고 살면 어떻습니까? 이왕지사 배낭 지고 한번 나왔다가 이 모습은 원점으로 돌아갈 건데, 맛을 봐야 먹고 싶기도 하는 생각이 들지 맛을 보지도 못했는데 어떻게 먹고 싶은 생각이 나겠습니까? 그러니까 무조건입니다, 무조건. 일체 만법이 벌어지는 이 세상이 전부 자기로 인해서 생긴 거니까, 자기만이 자기가 있다는 것을 증명 받아가지고 세상이 둘이 아니게 돌아가는 이 이치를 꿰뚫어서 알기 위해서는 또 놓고 뭉쳐 놓고 뭉쳐 놓고 그렇게 해나가야 됩니다.
나를 발견했다고 해서 무의미하게 그냥 나라는 존재를 세우고 그렇게 보임(保任)을 하지 않으면 역시 또 미(迷)해지니까요. 세상의 도리는 너무나 즐겁고 좋은 세상입니다. 남을 원망하고 남을 탓하기 이전에, 자기로부터 생겼다는 그 점을 상세히 아실 것 같으면 이 세상이 즐겁기만 합니다. 가다가 정히 그것이 사사로이 쓰이는 게 아니고 남이 불쌍해서 쓰인다거나 또는 피치 못할 일이 있어서 쓰인다거나 이런다면 가차없습니다.
엊그저께도 이사를 가는데 비가 오면 그게 다 그냥 젖는 겁니다. 이게 잘사는 집이 이사를 가는 것 같으면 괜찮아. 못사는 사람이 이삿짐을 그 차에다 실어가지곤 거기에 사람도 타고 이래야 할 텐데 비가 오면 엉망이란 말이야. 그래서 “이사하는데 이사 갈 동안만이라도 비가 안 오게 좀 해주세요.” 그러기에 “날더러 ‘해주세요’가 아니다 네가 해라. ‘나 갈 동안까지 비가 안 오게 해야지 비가 오면 어떡하느냐.’ 하고 하라.” 그랬어요. 그랬더니 그날 텔레비전에선 비가 억수같이 쏟아진다고 했다는데 이사할 동안은 비가 안 와서 잘 갖다 놓고 나니 그날 저녁에 비가 오더랍니다. 하하하. 이렇게 사람이 비를 피해서 다니는 게 아니라 비가 사람을 피해주는 겁니다. 둘이 아닌 까닭입니다. 그걸로 한 가지를 체험한 겁니다. 모든 게 다 그렇습니다.
질문할 사람 또 없습니까?

▲질문자5(男): 이사 얘기가 나와서 저도 공부삼아서 이사에 관한 말씀 좀 여쭙겠습니다. 저도 아까 말씀드린 분처럼 가난한 이사인데 그 세세한 이야기는 못 드리겠고요, 이사 가는 것을 빨리 들어가기는 해야겠는데, 제 마음에 어떤 결정이 안 나고 별로 마음이 내키지 않았습니다. 가고 싶은 마음도 있고 또 선뜻 가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고 그래서 항상 스님이 지도하신 대로 주인공에다 이제 턱 맡겨놓았는데, 저한테 이사를 권했던 분들이 “이사를 언제 가려느냐? 갈래 안 갈래?” 자꾸 물어보거든요. 그런데 저도 잘 모른단 말입니다. 아직 제가 잘 몰라요, 맡기고만 있지 모르는 상태란 말입니다. 그렇다고 그분들한테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럴 수도 없고 참 난감합니다. 그래서 제 스스로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이것이 도대체 어떻게 해야 되는 노릇인가? 저 스스로도 주인공한테 맡겼는데 이거 잘못 맡겨졌는가? (대중 웃음) 그 여러 가지로 좀….
▲스님: 맡기는 도리도 이렇습니다. 맡기기만 해서도 이게 딱! 침을 딱! 정면에 찌르는 소리가 못 됩니다. 정히 급하면 ‘당신만이, 당신만이 가게 할 수 있고, 또는 가고 안 가고 하는 것을 정하지 못한다고 하는 내 마음이 정돈되어서 정할 수 있도록 당신만이 할 수 있다.’라고 맡기세요. 그렇게 해놓고 ‘여기 그대로 눌러앉는 게 좋겠느냐, 가는 게 좋겠느냐?’ 하고 잘 생각해봐서 눌러앉고 싶으면 그냥 눌러앉아도 됩니다.
오히려 가는 거보다도 댁에서는 눌러앉는 게 더 좋을 거 같지 않아요? 하하하. (대중 웃음) 아는 사람이 더러 이렇게 서로 마음도 알아주고 돌보아주니깐 말입니다.

▲질문자6(男): 스님, 저는 이제 스님을 두 번째 뵙습니다. 지난 7월에 우연히 『도(道)』라는 책을 보고 그 다음에 『무(無)』라는 책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스님을 찾아뵙고 공부를 해야겠다 하는 마음이 들었는데, 지금 가만히 보니까 묻는 자체가 상당히 어리석은 질문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우선은 주인공에게 모든 걸 맡기라고 그러셨는데 지금 개구리 찾아 나선 아이들이 상당히 오랫동안 엄마 곁에 가질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엄마들이 주인공을 몰라서 그런지 또는 아이들이 주인공을 몰라 그런지, 이것을 어떻게 알려주실는지 알고 싶습니다.
▲스님: 무슨 애들이?
▲질문자6(男): 대구에 아이들이 개구리를 잡으러 간다고 집을 나가가지고 지금 아마 100일 가까이 된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 다섯 아이들의 어머니 중에는 혹시 스님을 아는 분도 있을 것이고 모르는 분도 있을 겁니다. 또 제가 알고 있기로는 신문에 보니까 많은 분들이 납치를 당해가지고 집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주인공들을 전부 믿는다면 자기가 가고자 하는 곳에 갈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또 지금 아이들은 엄마를 많이 보고 싶어 하고 부모는 자식을 보고 싶어 할 겁니다. 그래서 보는 이들이 더 안타까워하고 있는데 이건 어떻게 돼서 이렇게 됐는지 자세히 말씀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스님: 그것이 그냥 그렇게 된 게 아닙니다. 그것이 다 인연 따라서 온 업보라고 볼 수 있겠죠. 독 안에 들어도 못 면한다 이 소리입니다. 예를 들어서 말하면, 물에 빠져 죽을까봐 붙들어서 방에다 앉혀놓았는데 목말라서 죽겠다고 그래서 물 한 그릇 떠다주니까 코를 박고 죽었대요. 그거와 마찬가지로 독 안에 들어도 못 면하니까 그래서 이런 공부를 하시라고 그런 겁니다.
팔자니 운명이니 하는 거, 또 영계성이니 유전성이니 하는 것도 모두 대처할 수 있는 것은 이 공부밖에 없습니다, 마음의 공부. 물론 세상이 바뀌어지고 온통 땅이 부서진다 하더라도 그 애들은 잘 있을 겁니다. 세상이 이렇게 되든 저렇게 되든, 모두가 잘 있다기만 하면 되느냐 이러겠지만, 하여튼 잘 있으면 언젠가는 만날 날이 있겠죠. (대중 박수)

▲질문자7(女): 전번에 스님께서 KBS에 오셨을 때 먼 빛으로 뵈었고 가깝게 뵈오니까 너무 감개무량합니다.
▲스님: 예.
▲질문자7(女): 다름이 아니옵고 어느 자식이든 다 사랑하지 않겠습니까마는 제가 참 아끼고 사랑하는 딸이 지금 한 10개월째 두드러기가 심하게 나고 있습니다. 약도 많이 먹고 했는데도 아무 차도가 없고 그런데 제가 금방 머리에 스쳐가는 생각이, 제가 한 20년 전에 집에 바퀴벌레가 너무 많아가지고 그걸 제가 불에 태운 일이 있거든요. 그것이 머리에 싹 스쳐가면서 가슴이 막 떨리고 이렇거든요. 스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스님: 뭘 태웠다고요?
▲질문자7(女): 저 바퀴벌레요, 그런 걸 제가 태운 일이 있거든요. 그래서 지금 그게 머리에 스쳐가는….
▲스님: 그것이 인간의 양심이죠. 허허허. 그게 인간의 양심인데, 바퀴벌레 몸은 비록 없어졌으나 그 바퀴벌레가 타 죽을 때 그 애틋한 쓰라림 그런 것도 이 공부를 하시게 되면 둘이 아니게 되는 겁니다. 그럼으로써 그것은 씻은 듯이 나을 겁니다. (대중 박수)

▲질문자8(女): 저는 스님을 뵙게 되어서 얼마나 감개무량한지 모르겠습니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고 하지만 저의 남편이 어쩌다가 그런 직업을 붙들었어요.
▲스님: 무슨 직업요?
▲질문자8(女): 돼지 새끼를 잡아서 식당에다가 넣었거든요. 그런 직업이거든요. 이제껏 그런 일을 해나왔는데 그로 인해서 잘못되어서 그랬는지, 죄를 받아서 그랬는지 항상 마음에 그렇게 걸려요. 저는 통 건강했거든요. 그랬는데 어째 갑자기 아파가지고 병원에 가니까 암으로 나왔어요. 그래서 제가….
▲스님: 그럴 거 같으면 이렇게 생각을 하세요. 그 돼지 새끼가, 모습을 돼지로다가 태어났으니 사람으로 인도환생을 시키면 외려 잡은 것이 더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가 되지 않을까요. 그러니 생각 차이란 말입니다, 이게. 그러니깐 주인공에다 맡기시면서 모든 게 한마음으로 돌아가서 인도환생을 할 수 있게끔, 당신밖에 할 수 없다고 이렇게 하시면 병에도 영향이 많이 좋아질 겁니다.
▲질문자8(女): 장어 같은 거 먹어도 괜찮습니까?
▲스님: 장어 같은 거 잡으랬습니까, 어디? 하하하.
▲질문자8(女): 장어 같은 거 그런 거 고아서….
▲스님: 예, 고아서 그 물을 먹어도 좋은데 절대로 산 거는 하지 마세요. 그리고 산 거를 토막 칠 때에 토막 쳤던 그 자리를 먹으면 누구든지 병이 들어요. 그건 전부 몰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깐 절대로 산 거를 죽이지 마시길 바랍니다. 정신분열이 된 사람들을 보면 산 짐승들을 많이 죽였기 때문에 자손들을 갖다가 둘씩 셋씩 정신병자로 만들고 또는 불구자로 만들고 이런 사람들이 허다합니다. 현실에 알고 그렇게 했다면 알고 받게 마련이고, 모르고 지었다면 모르고 받게 마련입니다.
▲질문자8(女): 그러니까 직업이 그러니까 앞으로도 그런….
▲스님: 직업에 귀천이 어딨습니까? 돼지를 갖다가 사람으로 만든다면 좋죠. 그런데 돼지를 백 마리를 죽였다고 해도 한 사람만 나게 할 수도 있는 겁니다. 하하하. 그런 법이 부처님의 묘법이죠. 영은, 이 영혼이라는 건 그냥 백, 이백, 천 개를 갖다가 한데 모아서 하나의 사람으로 만들 수도 있다는 결론입니다. 그런 문제가 불가사의한 문제들이지만 그거는 무심(無心)의 도리, 도법이기 때문에 중용을 하는 사람이라면 다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거를 죽일 때마다 모든 거는 주인공에 맡기시고, 잘되게 해달라는 게 아니라 ‘당신만이 해결을 할 수 있다.’ 이렇게, 그냥 아주 간단하게 뭐 천도를 시켜달라는 둥, 뭐 환생을 시켜달라는 둥 이렇게 지저분하게 하지 마시고, 자식들하고 먹고 살아야 하니 당신만이 처리를 해주실 수 있다고, 당신만이 할 수 있다고 그렇게 관하세요.
내가 애들더러는 그럽니다. “친구야! 이 친구만이, 네 친구만이 이거를 해줄 수 있다. 한마음만이 이거를 해줄 수 있다. 주인공만이 이거를 해줄 수 있다.” 만날 이렇게 사람 봐서 말을 하죠.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관하는 거 일러준 대로 하세요.
또 질문하실 게 있습니까? 그럼, 그만하면 한 얘기만 하고 그만두죠. 옛날에 제가 들은 얘기입니다마는, 어느 한 스님께서 아마 3월달이 생신인데 어느 날인지, 그것도 이제는 너무 오래돼서 잊어버렸습니다. 제자들이 다 모이지는 못했지만 모여앉아 있는 데서 이렇게 물었답니다. “첫째, 대장부가 방귀씨 눈을 왜 틔우지 못하는가? 둘째, 대장부가 귀신 방귀털을 더하고 덜함도 없이 먹여서 싹을 틔우지 못하는가? 셋째, 대장부가 거미줄에 얽힌 발목을 왜 끊어버리지 못하는가?” 이렇게 말씀을 하셨답니다. 한 사람도 대답이 없었답니다. 그래서 하신 말씀이,

산천은 두루 푸르른데
대장부의 살림살이가
한 손 들어 하늘을 꿰어 돌고
한 발 들어 땅을 디디니
일곱 발짝 떼어놓는 사람
그렇게 많지 않구나!

하더랍니다. 허허허. 그럼 만약에 여기 여러분이 그때 그 당시에 계셨더라면 어떻게 대답을 했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스님들이 공부하는 데는 물러서지 않는 담력이 필요합니다. 밤중에 두려움이 없는 것도 내 마음을 발견해야 두려움이 없어지는 겁니다. 둘이 아닌 까닭에 두려움은 하나도 없는 거죠. 그래서 대담하게 나설 수도 있는 건데, 하하하. 어떻게 대답을 하시렵니까? 모두 웃고만 계시니깐 모두 도인들만 계신 모양이야. 하하하.
그럼, 이걸로써 끝을 마치겠습니다. (합장하시며) 요다음에는 내가 설법을 하기 이전에 여러분이 자청해서 질문을 하도록 하십시오.
2008-03-01 오후 4:3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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