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4.10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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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음의 불씨는 우주를 쓸어안고도 남음이 있어!
우리는 영원한 인등을 항상 켜고 있는 겁니다!

같이 한마음 한뜻으로 애써주신 데 대해서 감사드리면서 법회를 시작하겠어요. 처음 오신 분들은 주지 스님이나 여러 스님들한테 여쭤보시고 또 먼저 공부하시는 분들한테 물어보셔서 잘 지도 받기를 바랍니다. 주지 스님한테 여쭤보시면 초발심에 대해서 잘 가르쳐주십니다.
그러니까 게을리 하지 마시고 늙었으나 젊었으나 이 모습을 가지고 있을 때에 마음의 차원을 기르지 못한다면 그 모습은 또 좌천이 될 수도 있어요. 그러니 여러분이 여직껏 인간의 모습을 가지고 나오기 위해 얼마나 애를 썼다는 것을 하다보면 스스로 아실 때가 올 것입니다.
우리 부처님께서도 그 한 티끌 같은 불씨가, 마음의 불씨가 아니었더라면 그렇게 사방천(四方天)을 밝히고 오온이 스스로 밝아서 돌아가고 그러지 못하셨을 겁니다. 오온이 밝아서 스스로 돌아가니 칠보가 가득 차서 어디에고 손이 안 닿는 데가 없고 어디에고 발이 안 닿는 데가 없고 눈이 안 닿는 데가 없고, 나 아님이 없고 내 자리 아님이 없고 내 보물 아님이 없고 내 아픔 아님이 없는 거죠. 모든 일체 유생 무생(有生無生)을 조화로써 한 점의 상투 끝 동곳에 바로 그 빛을 가지시고 우리들한테 항시 비춰주시는데도 여러분이 몰라서 항상 그렇게 헤매서야 되겠습니까?
우리들이 우리 마음의 불씨를 밝혀서 그 줄을 잡으면, 그 줄을 잡는다는 것은 반야줄이라고도 하고 일심줄이라고도 합니다. 또 예전에 말씀하시기는 여의주라고도 했습니다. 그 여의주를 잡지 못하면, 모든 걸 여의고 줄을 잡지 못한다면 금강주를 얻지 못한다는 얘깁니다. 금강주에 의해서 화광주나 서광주나 흑광주, 야광주, 이 다섯 가지의 광주가 한데 합쳐서 스스로 돌아가는데, 금강주를 얻지 못한다면 이 우주의 삼라만상 또는 보이지 않는 생명들, 보여지지 않는 모습들, 그 천차만별로 돼 있는 중생들을 한생각에 건지지 못합니다.
그렇게 오고 감이 없이 늠름하신 부처님의 뜻을 우리가 못 받고 있는 것은 부처님께서 49년을 설해 놓으셨어도 우리가 금강경 한 번을 제대로, 천 독을 했다 하더라도 그 말씀 첫머리, 중간, 끄트머리 이 세 마디만 보면 벌써 다 알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거를 모르고 천 독을 하고 삼천 독을 한다 한들 그건 헛 읽은 것입니다. 그런 걸 비유해서 한번 얘기해볼까요?
여기에 지금 컵도 있고 안경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안경이다 컵이다 이러는 것은 이름이고 모습일 뿐이지 속의 진의는 무엇이냐는 얘깁니다. 모습과 이름이 헛거가 아니지만 여러분 앞에는 헛거예요. 왜 헛거냐? 사람이 한번 생각을 잘 돌려서 그것을 깨달으면 그게 법륜(法輪)이 스스로 굴러서 바로 법의 양식이 되고 그대로 실상의 법의 도리가 되지만 그렇게 돌아가지 못하고 깨치지 못해서 항상 그거를…. 그러니 중생이라고 부르고 사량이라고 하고 또는 아무리 굴리려 해도 아니 되니까 자유인이 되지 못한다 이겁니다.
우리는 부처가 되려고 하는 것도 아니고 또는 어떠한 것이 되려고 하는 것도 아니란 얘깁니다. 스스로 자기가 사람 되기 위함이요, 사람 노릇 하기 위함이요, 나와 남이 둘이 아님을 알기 위함이요, 나와 남이 둘이 아니게 나투기 위함이야. 그래서 공생(共生)·공용(共用)·공체(共體)로서 같이 돌아간다는 진리를 알기 위해서지 ‘우리가 무엇이 된다 안된다, 나는 이만큼 알았으니까 성문이다, 연각이다, 무슨 보살이다.’ 이런 문제가 거기 붙지 않는다는 얘깁니다.
단, 그 한 티끌과 같은 한 불씨에 바로 금강주는 있는 겁니다. 오관을 통해서, 이 오관을 통하면 그것이 가고 옴이 없이 보는 천체망원경이니, 이런 문제가 거기에 붙어 돌아가죠. 항상 얘기하지요. 오신통(五神通)이라는 것은 지금 시쳇말로 이름들이 다양하게 붙었고, 전자에는 전자대로 오신통을 천안통(天眼通)이니 천이통(天耳通)이니 타심통(他心通)이니 숙명통(宿命通)이니 또는 신족통(神足通)이니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과학이 발달이 돼서 과학적으로 나온 말 좀 보세요. 컴퓨터니 천체망원경이니 또 천체영사기니 책정기니 탐지기니 무선통신기니…, 이것이 다 오관을 통해서 있는 거 아닙니까?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시쳇말로 해도 전자에 있던 말과 똑같은 얘기죠. 그 말도 아니고 그 말도 아니고 바로 나한테 있다는 얘깁니다, 모두 각자. 나라고 손짓한다고 해서 나인 줄 아시지 말고 여러분 각자가 다 소소영영하게 갖고 있다는 얘깁니다.
그래서 지난번에도 얘기했지만 거론하지 않고 내가 그런 얘기를 한다면 또 어떻게 될지 몰라서 다시 한 번 거론하겠습니다. 화가가 그림을 그리는데 오십 가지 물감과 종이 한 장을 놓고 그림을 그렸습니다. 우리도 지금 한 장을 놓고 그림을 그리고 가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오십 가지 물감이 다 한 붓에 쓰여집니다. 물 그릇 하나를 놓고 찍고 씻고 또 씻고, 여러 물감을 쓰려면 씻어선 또 찍어서 쓰고 이럽니다. 어떻겠습니까? 참 묘하지요.
그러면 진짜 물감은 어떤 걸까요. 또 진짜 물감이 없기 때문에 소소영영하게 찍어다 쓰면서도 하나 쓰면 하나 씻고, 하나 쓰면 하나 씻고 맹물에다가 연방 씻어가면서 그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소소영영하면서도 한 장에다 조화 있게 그려놓은 거를 누가 그렸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은 자기가 여러 가지를 그려놓고 자기가 그렸단 말을 어찌 하겠습니까. 또한 자기마저도 공(空)했어. 물감 오십 가지가 다 공하고 보니까 자기마저도, 그린 사람마저도 공했으니 어찌 ‘나’라고 할 수 있으랴,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서 이루어진 것을 어찌 나만이 했다고 할 수 있으랴 해서 “얘들아, 보거라. 너희들은 그대로 공했느니라. 즉 공(空)이며, 즉 색(色)이니라.” 이렇게 가르쳐주고는, 그 단 두 마디 그걸 깨치지 못해서 우리는 헤매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찰나찰나 말을 하면서 행하면서 또, 봐가면서 돌아가면서 이렇게 오관을 통해서 책정을 하는 거는 내 마음입니다. 이게 옳다 그르다 하는 거는 자기 한마음에 있는 겁니다. 그런데 그 마음이 어디서 생겨났나? 여러분, 수없는 억겁을 거쳐 오면서 여러 생명들과 친우같이 뭉쳤습니다. 한마음 한뜻으로 뭉쳐가지고 이 몸뚱이라는, 한 인간이라는 선장이 선출된 겁니다.
그러면 여러분 속에 생명이 얼마나 많습니까. 생명도 많고 물질도 많습니다. 가지각색으로 생긴 것, 촌충이니 세균이니 뭐 생김생김이 얼마나 다양하게 생겼으면서도 소임을 제각기 아주 정교하게 맡아가지고 지금 잘하고 있습니다. 정맥이니 동맥이니 하는 것도 다들 그렇게 다양하게 맡아가지고 진행하고 있는데 그 대표자인 선장은 누구냐? 여러분, 사람이라는 그 한 마디의 마음입니다. 한 점의 마음입니다. 그 생명이 한데 합쳐진 대표인 하나의 마음입니다.
그 마음이 잘 이끌어가지고 나침반을 잘 놔서 책정을 잘해야만 오신통을 제대로 굴리는 겁니다. 오신통을 제대로 부린다 이거야. 내가 오신통에 말리는 게 아니라 내가 오신통을 제대로 부린다는 얘깁니다. 그 오신통을 제대로 부려야 바로 거기에서 금강주는 빛이 밝고 또 거기에 하나만 모자라도 아니 되기 때문에 야광주도 필요하고, 흑광주도 필요하고 서광주도 필요하고 화광주도 필요하고. 다섯 가지의 광주를 금강주가 몰아서 같이 굴러가면서 하기 때문에 금강주가 제일이다 할 수도 없고 야광주가 제일이다 할 수도 없습니다.
말하자면 눈이 제일이다 할 수도 없고 귀가 제일이다 할 수도 없고 몸이 제일이다 할 수도 없고, 어떤 거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전부 한데 합쳐서 금강주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그 금강주에는 모든 일체의 부처와 조사와 중생들이, 보이지 않는 중생 보이는 중생들이 다 그 안에 들었거늘 어찌 자꾸 이것저것 찾으면서 바깥으로 헤매고 돌아야만 되겠습니까.
우리가 또 한 가지 말하자면 문화적으로 볼 때도 예전에 선조들이 해놓으신 것이 유래가 되고 또 보물이 되고 모르는 사람들에게 지침이 되고 주춧돌이 되고 방편으로도 되는데 그건 있어야 하겠죠. 그런데 그걸 버리라고 하는 게 아닙니다. 모든 거 하나하나가 그 한 점에 다 있으니 각각 보지 마라 이 소립니다. 여러분, 알아들으시겠습니까?
왜 각각들 봅니까. 미륵보살이니 관세음보살이니 각각 보고 전부 각각 행하니, 동서(東西)가 둘이라고 자꾸 볼 수밖엔 없겠지요. 그러나 동서는 둘이 아닙니다. 바로 한 점에 동서가 다 들어 있으니 동서를 따로 찾지 말고 물질을 따로 찾지 말고 따로 보지 말라는 얘깁니다. 소소영영하게 물감을 꼭꼭 찍어다가 쓰면서도 다시 씻고 또 찍고 다시 씻고 이렇게 하는 그 소소영영함. 우리 지금 살아서 돌아가는 이 생활 자체가 바로 소소영영하면서도 그것이 한마음의 뜻으로서 금강주에서 나가는 일이라 이 소립니다.
이 말의 뜻을 잘 아신다면 삼천 년 전에 부처님께서 제자들과 많은 중생들에게 설법하신 그 자리나 우리 오늘 여기 이 자리나 앞으로 올 자리나 똑같습니다. 하나도 틀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바깥에서 지금 물질과 모습과 이름만을 보고 살기 때문에 그 속의 진의를 모르고 50%의 미완성으로 보이지 않는 세계의 그 편안함을, 편안하면서도 자유스러운 거를 모르고 있는 겁니다.
진짜 편안하고 자유스러운 거는 이 몸뚱이가 오고 가는 게 아닙니다. 몸뚱이가 오고 가려면, 우주정거장 하나 세운다 한다면 수십 년 동안 만들고 폐하고 또 만들고 폐하고 이렇게 해가지고 수없이 고난을 겪고 실험을 하고 재정을 무수히 들여서 해도 될까 말까 하는 그런 문제들이 놓여 있는 판국입니다. 그리고 여직껏 했다는 자체가 사람과 사람이 경쟁에 의해서, 억겁을 거쳐서 경쟁으로만 나왔기 때문에 그 습이, 아직까지도 꼭지가 덜 떨어져서 사람을 죽이려고만 하는 물건을 확대했다는 얘깁니다.
그러나 그 한 점에, 살리는 칼도 있고 죽이는 칼도 있는데 여직껏 살리는 칼이라고 하면서도 죽이는 칼이었습니다. 그러니 죽이지도 않고 살리지도 않는 그런 태평성대의 중도에서 그 빛이 온 누리를 비춰서 평등하게 혼동이 오지 않도록 하면서 잘 이끌어나갈 수 있고 지속될 수 있는 진리를 숭상하면서 우리가 한마음의 불씨로써 만법을 응용할 수 있고 활용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우주적으로도 응용할 수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여러분은 물질과 모습, 이름을 겸해서 응용하지만 무슨 삼강오륜이다, 손자병법이다, 호국불교다 하는 게 다 그 속에 있는 것입니다. 오광주를 가지고 굴리면 하나도 버릴 게 없어. 그러니 우리가 앉아서 지금 세계를 보듯이, 앉아서 전부 응용할 수 있고 활용할 수 있는 것을 뜻해서 예전에 선조들이 구룡이라고 써놨듯이, 그것은 삼광주를 얻었기에 스스로 용(用)을 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용으로 그려놓으면 용인 줄 알고 거북이로 그려놓으면 거북이로 알지 마십시오. 종이와 먹으로 사람이 글씨를 쓰고 그림을 그려놓은 것도 다 그림이자 모습일 뿐이지만 그 속에는 숨은 우주의 법칙이, 그대로 열쇠가 다양하고 자연스럽게 있다는 걸 아셔야 됩니다. 어디고 열쇠 없는 데가 없습니다.
그래서 사방천이 밝았는데 어찌 칠보가 가득 차 있지 않겠는가. 그러니 어찌 아니 닿는 데가 있으랴. 너 아님이 없으니 어찌 중생 부처가 따로 있으랴. 모르는 중생은 과거의 나였고, 아는 부처는 현재의 나요, 미래의 부처들은 바로 미래의 나이니라. 그러니 부처 아닌 게 하나도 없더라. 그리고 나 아님이 없으니 작은 데는 작은 그릇대로 들어가주고 큰 그릇에는 크게 해서 들어가주고. 그러니 안 맞는 데는 하나도 없어.
그렇게 둥글게 모든 게 다양하게 맞기 때문에 부처님 오신 날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우리는 영원한 인등을 항상 켜고 있는 겁니다. 부처님 오신 날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영원한 오늘, 오늘조차도 내세울 수 없는 내 마음의 등불, 이 등불로 앞장을 설 수 있고 밝혀줄 수 있지만 이 등불이 없다면 컴컴한 암흑 속에서 우리는 헤매고 돌지 않으면 안 되는 신세로 억겁을 거쳐온 그 습을 하나도 떼지 못할 겁니다.
종 문서는 내려놓고 다니나요? 짊어지고 다니지. 작년 콩씨를 심었을 때 그 콩나무로 다시 화(化)한 것뿐이지. 그리고 콩나무는 콩씨를 또 짊어지고, 보이지 않는 콩을 짊어지고 가기 때문에 여러분이 종 문서를 짊어지고 다니는 거지 과거의 업이 있어서 짊어지고 다니는 게 아니다 이겁니다.
과거의 나를, 나 나기 이전을 찾지 말고 나 있는 데서 찾으라는 거야. 모든 화두도, 자기가 나왔기에 색이 공이요 공이 색이지 자기가 그대로 그릇이 빈 그 자체가 바로 화두며 자기가 거기에서 한 점의 불씨를 얻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여러분은 모두 딴 데서 오는 것같이, 딴 데서 주는 것같이 생각을 하는데 물론 자기 불씨가 밝아져야 그 불씨를 보고서 부처님께서도 같이 한마음이 돼주시겠지만 암흑세계에서 그대로 돌고 부처님의 불빛을 보려고 안 하는데 어찌 부처님이 자꾸 도망가는 놈을 붙잡아다가 ‘이 불빛을 봐라, 불빛을 봐라’ 하겠습니까?
여러분도 자식을 기르고 계시지만 자식을 기르는 데도 억지로 할 수 없는 일이 여간 많지 않습니다. 말로 하고 모습으로 야단을 치고 그래서 되는 게 아닙니다. 내 한마음 주인공이라는, 이름 해서 그 한 점의 마음에다 전화통 돌리듯이 거기다 맡겨 놓고 ‘아, 내 한마음이 바로 애의 한마음이니 내 한마음이 이러한데 애의 한마음도 자기 육신을 끌고 길잡이가 돼서 잘 갈 수 있을 거다’라는 걸 진짜로 믿으면 그대로 나와 같이, 내 맘과 같이 생각한다면 잘 갈 것을, 괜히 말로 욕하고 때리고 온통 야단을 벌이니까 집안만 혼란해지고 일은 일대로 제대로 안되고 가정은 파괴가 되고 언제나 상을 찌푸려야 하고 그러니 복은 들어오지 않고 공덕도 될 수 없고 이러니 어떻게 할 겁니까?
그리고 또, 그거 한 가지뿐만 아닙니다. 업보니 인과니 유전이니 또는 우환이니 이러한 문제 등등, 또 병고니 팔자 운명이니 이런 거 모두 여러분이 지어서, 모든 게 지어서 오는 것이지 누가 갖다 줘서 받는 게 아니에요. 오늘부터라도 다시 정신을 차려서 주인공이라는 그 자체! 여러분이 내가 주인공이라고 그러는 것도 이름이라고 깔보려거든 아예 당신 이름을 불러! 성을 부르든지! 김씨면 김씨, 박씨면 박씨! 다 당신이 이날까지 살아왔잖아! 그러니까 네가 다 알아서 하고 안되는 일도 네가 알아서 하고 잘되는 일도 네가 알아서 해! 안되는 거 되는 거 다 거기다 놓는다면, 맡겨놓고 참 믿는다면, 물러서지 않는다면 바로 거기에서는 홀연히 자기의 생명수의 근원이 스스로서 나올 거라고.
자기가 자기 길잡이가 돼야지 남이 길잡이가 돼서는 아니 됩니다. 초발심에서 여러분을 이끌어주는 길잡이, 그리고 내내 길잡이입니다, 같이 하고 있으니까. 그러니까 여러분이 따로 있다, 둘이 있다, 또 육신이 꼭 와줘야 된다, 가줘야 된다 이런 모든 걸 떼십시오. 육신은 고달픈 거고 한계가 있는 겁니다. 그러나 한마음의 그 불씨는 우주를 쓸어안고도 남음이 있는가 하면 다양하고 편리하게 달나라에 가려 해도 감이 없이, 오고 감도 없이 전체를 볼 수 있고 전체를, 즉 열쇠를 가지고 있을 수 있고 또 자유롭게 조화를 할 수 있고, 이끌어갈 수 있고 그러한 열쇠를 우리는 갖게 되는 것입니다.
가고 오는 데도 그렇지만, 부처님께서는 ‘보는 것만이 도가 아니니라. 듣는 것도 도가 아니니라. 남의 속을 아주 잘 안다고 해서 도가 아니니라. 그것만 가지고 늘어지지 말아라. 착을 두지 말아라. 또 남이 지나내려온, 억겁을 거쳐온 숙명을 안다고 해서 도가 아니니라. 가고 옴이 없이 네가 맘대로 다닌다고 해서 도가 아니니라.’ 하셨습니다.
그 다섯 가지를 다, 네 마음을 깨쳤다면, 탄생했다면 그 다섯 가지를 배우기 위해서 전력을 다해서 안으로 보임(保任)을 다시 하면서, 다시 체험을 하면서 안으로 굴려서 다섯 가지도 다 익혀서 네가 부려야만이 그것이 바로 마음의 금강주로부터 누진을 통해서 다 부리는 것이고 그때는 진짜 가만히 있으면 부처요, 생각을 하면 법신(法身)이요, 움죽거렸다 하면 화신(化身)이야. 그러니 보현 문수는 스스로 따르고 결국 자기, 자기라! 그래서 삼십이상(三十二相)이 그대로 밝아서 보살행을 할 수 있다라는 얘깁니다.
이것은 자기가 가보지 않으면 몰라! 물속에를 들어가 보지 않으면 몰라. 딴 사람들처럼 물속에 뭘 입고 들어가 봐도 깊이나 알지 다른 데 깊이는 몰라. 척 생각하면 다 알도록 돼 있는, 알아도 아는 척 안 할 때에 하는 것도 모르게 할 수 있는, 누가 모르라고 그래서 모르는 건 아니거든. 모두 모르니깐 모르는 거지. 그런데 모르는 거를 또 알려고 애쓸 필요는 없다 이거야.
그러니깐 세계를 조절할 수 있고 우주를 조절할 수 있는, 즉 말하자면 삼광주를 얻는다면, 삼각원형을 이뤄서 밝게 돌아갈 수 있다면, 즉 스스로 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대천세계(大千世界)와 중천세계(中千世界) 소천세계(小千世界)를 한 손에 넣고 한 점으로써 모든 것을 다, 닿으면 닿는 대로 태울 수 있고 닿으면 닿는 대로 소소영영하게 코치할 수 있고 같이 돌아갈 수 있으니 얼마나 다양하고 얼마나 편리한 법인가를 여러분이 잘 증득하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이걸로써 마치겠습니다.
86년 5월 18일
2008-03-01 오후 1:0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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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감으로 체험하는 꽃 작품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