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또다시 부처님 오신날을 맞는다.
해마다 맞이하는 부처님 오신날이지만, 자칫 그 본래의 의미보다는 형식적인 축제에 그치고 있지는 않는지, 우리가 지금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돌아보지 않는다면 이 날의 의미는 반감된다.부처님께서는 우리 인류에게 지혜와 자비, 그리고 평화의 길을 가르쳐 주러 이 땅에 오셨다. 반야부의 공사상이나 화엄의 사사무애를 비롯해 팔만사천 대장경의 광대한 경전말씀도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이를 본질적으로 설득코자 하신 내용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가 서있는 지금 여기의 현실을 직시해 보아야 한다.
오늘날 지구촌의 초고속 변화가 과연 지구인들의 오늘과 내일을 밝고 슬기로운 방향으로 움직여 가고 있는지 여부를 들여다 보아야 한다.
생활의 편의와 자본의 위세를 절감하는 가운데 환경오염, 전쟁, 기아 등 부정적 요소들은 여전히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심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리고 보다 더 큰 문제는 지금 지구촌 사람들은 그런 질문조차 할 겨를이 없으며 그런 말을 귀담아 들으려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우리 불교를 포함해 수많은 종교인들이 앞다퉈 외치는 자비와 평화 역시 이 세계에 얼마나 굳건히 자리잡아가고 있는지를 돌아보면 낙담의 수준을 결코 넘지 못한다.
여기서 우리는 가장 먼저 부처님의 뜻을 이 사바세계에 펼치는 여래사로서의 본분과 사명감을 다시금 깊이 곰씹어 보아야 한다.
나 자신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얼마나 열심히 실천궁행하고 있는지 매일매일 살피고 또 살펴야 한다. 부처님의 이름을 빙자해 자기를 위로하고 호사를 꾀하고 있지는 않는지 돌아 보아야 한다. 부처님 제자가 부처님 뜻을 자기내면에 제대로 심지 못한다면 불교는 아무리 좋은 법을 가지고 있어도 자기조차 설득하지 못하는 종교가 되고 말 것이다.
우리 불교교단과 각 종단에서도 마찬가지다.
부처님 오신 날이면 으레 누구나 깨달으면 부처가 될 수 있다든지 중생은 누구나 본래 부처라든지 하는 차원 높은 법문을 사회를 향해 떠벌리면서도 정작 교단내외에 부처님의 지혜, 자비 평화의 이념이 제대로 실현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 과연 누가 공감하고 부처님 법을 따를 것인가.
불교적 이념이 종단적으로 용해되어 있지 아니한 종단은 사회적 신뢰를 얻을 수 없는 법이다.
끝으로 불교적 이념을 우리 사회에 심는데 보다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사회적 제문제를 남의 불 보듯 해서도 안되며, 자기이익을 위해 어설프게 사회운동이나 봉사를 흉내내서도 안된다. 불교적 이념을 구체적인 시민운동으로 활발히 전개해 나갈 때 지상정토와 불교포교는 저절로 이루어 질 것이다.
이제 사람들은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들려주려 하지 말고 하나라도 확실하게 보여주어야 한다.
이같은 우리 내적인 변화가 가시적으로 보이지 않는다면 앞으로 불교는 우리 사회에 더욱 발붙이기 힘들어질 것이며 부처님 오신 날의 의미도 나날이 퇴색되어 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