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5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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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태준(시인)
어머니와 시골절, 초파일 풍경

어머니는 부처님오신날에 동네에서 가까운 용화사엘 간다. 쌀 두어 되와 초를 보자기에 싸서 들고 간다. 용화사는 작은 시골절이다. 걸어서 반 시간 남짓 걸린다.
나의 어머니 뒤에는 봉산댁이 뒤따라 간다. 두 분 사이 간격은 늘어나지도 줄어들지도 않는다. 봉산댁 뒤에는 백발이 성성한, 동네서 가장 연만한 점방집 할머니가 뒤따라간다. 간격은 점점 벌어진다. 어머니와 봉산댁은 자꾸 뒤돌아본다. 점방집 할머니는 잔뜩 구부린 허리를 연신 편다. 행복하고 싱그런 행렬이다. 너그럽고 평화로운 한 줄이다. 그들의 얼굴에 초여름 햇살이 내린다. 절에 가는 그들이 부처 같다. 코는 내려앉고 귀는 어둡고 눈은 흐리되 역시 부처 같다.
나도 어릴 때 시골절엘 갔다. 용화사에 가서 미륵부처님을 뵙고 절을 올렸다. 어머니는 뭐라 뭐라 들릴 듯 말 듯한 말을 중얼거렸다. 나는 그 조근하고 얼금얼금한 소리가 세상에서 가장 경건한 말씀이라고 지금도 생각한다. 제일로 간곡한 기도라고 생각한다. 법당에는 어머니뿐만 아니라 인근 동네서 온 보살들이 미륵부처님 앞에서 모두 다 중얼거렸다. 그 중얼거림은 빛나는 비밀 같은 것이어서 다른 기도자들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긴 은하 같은 마음 속 말씀이었다. 손가락을 퉁기는 짧은 시간이라도 부처님을 독신(篤信)하여 마음이 바뀌지 아니하면 그 복이 끝없어서 헤아릴 수 없다 했으니, 둥글둥글하게 몽돌처럼 웃는 보살들은 기도를 하는 것 자체로써 이미 소원을 원만하게 성취했다.
어머니는 시골절에 가기 며칠 전부터 채식을 했다. 소찬으로 절욕의 식단을 차렸다. 식구들의 밥 짓는 양을 줄여 묵은 밥을 두지 않았다. 절에 가기 전에는 솥에 물을 끓여 목욕을 깨끗하게 하신 다음에야 갔다. 그 며칠 동안은 다른 사람의 잘못을 입에 담지 않았다. 큰소리로 말하는 법도 없었다. 경전의 말씀처럼, 어머니는 말을 할 때 종(鐘)이나 경쇠를 고요히 두들기듯 했다. 거친 말을 하지 않았다. 어머니의 그런 덕에 부처님오신날을 전후한 그 며칠간은 낮고 허름한 우리 집이 맑은 시내 같았다. 어머니는 이런 방법으로 당신의 마음과 몸을 정갈하게 했다. 거울의 얼룩을 빠짐없이 닦아내듯이.
또 어머니는 정해진 집 없이 떠돌며 구걸하는 사람이 우리 집엘 찾아오면 따뜻한 음식을 내어놓았다. 어느 해인가는 바가지를 들고 음식을 구걸하는 사람이 마당에 들어섰는데 그때에도 어머니는 식구가 함께 먹던 밥상 둘레 한쪽을 그에게 내 주었다.
시골절에서 보살들과 어머니가 절하는 모습은 잊지 못하겠다. 몸과 마음과 호흡을 조심하면서 부처님 앞에 절을 올리는 그 모습. 아주 공손하고 지극하게 몸을 무너뜨리며 절을 올리던 그 모습. 절하는 모습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다. 절 할 때의 몸은 가장 멋진 물러섬을 보여준다. 엎드림은 자기를 항복시키고, 몸과 마음의 인색함을 넘어선다. 그 모습은 서글서글하고, 외관과 내심이 스스로 구족한 것이어서 그 뜻 또한 무량하다.
나의 어머니는 시골의 평범한 노모(老母)이다. 계율에 계합하는 조행(操行)의 덕목을 잘 알지 못하지만, 어머니는 당신 성심껏 신앙한다. 올해도 한결같이 어머니는 시골절에 가고 있을 것이다. 믿음이 없는 사람이 네 가지 꿀을 주더라도, 믿음이 있는 사람이 주는 야생의 쌀밥보다 못한 것이라고 했다. 나는 어머니의 그 종교로써, 어머니가 주는 야생의 쌀밥으로써 나의 망념을 걷어낸다.
부처님오신날 무렵 어머니의 마음은 위대한 경전이다. 마음의 독실함으로 엮은 큰 책이다. 나는 어머니의 등 뒤에서 조용히 어머니를 뒤따라 가고 싶다. 뒤따라가는 것만으로도 큰 감화를 받을 것이다.
2008-03-01 오후 12:3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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