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내면을 향한 깊은 응시
조용미는 1962년 경북 고령에서 태어나 1990년 <한길문학>으로 등단하였다. <삼베옷을 입은 자화상>은 그의 세 번째 시집이다. 그의 시집에서 불교 어휘를 빈번하게 만날 수 있다. 많은 절을 순례한 흔적이 시에 보인다.
시 ‘적막이라는 이름의 절’에서는 ‘적막이라는 이름의 절에 닿으려면 오랜 기다림과 설렘이 필요’하며, 이러한 적막을 통과하고 나야 ‘꽃과 열매를 함께 볼 수 있다’고 한다. ‘불멸’에서 화자는 사나사 석탑 옆에 쓰러져 있는 반송을 보고 ‘반송은 제 광기를 다스리지 못했거나 태풍이 제 광기를 절 마당의 소나무에게 물어 보았다’고 한다.
‘바람은 어디서 생겨나는가’에서는 개태사에서 만난 ‘뿌리째 뽑혀 쓰러진’ 향나무를 보며 바람의 근원을 생각한다. ‘두웅 습지’에서 화자는 두웅 습지를 화엄세계, 연화장 세계라고 한다.
화자는 습지에서 오랫동안 웅얼거리며 서 있다가 ‘범패와 법음이 울려 퍼지는 소리’를 듣는다. 인취사에서 만난 파초의 꽃을 등으로 비유한 ‘파초등’에서는 ‘파초가 절집 마당에 있는 이유를/ 이제야 알겠다/ 저렇게 한 송이의 등을 전하고/ 조용히 사라지는 일’이라며 사람들의 무지를 두들겨 깨운다. 시인은 이렇게 절을 헤매다가 어느 별밤에 무진등을 만난다.
별은 무진등이다
다함이 없는 등불,
꺼지지 않는 무진등
내 안에 다함이 없는 등불
꺼지지 않는 무진등이 하나 있다
숨겨놓은 말들에
하나씩 불을 켠다
내 몸은
그 등불의 심지다 - ‘무진등’ 전문
무진등은 한 개의 등불로 수많은 등불을 켤 수 있는 등이고, 한 사람의 법으로 백 천 사람을 교화하여도 다함이 없는 데 비유한다. 1연에서는 별을 무진등으로 비유한다. 2연에서는 무진등을 내면화 하고, 3연에서는 말들에 불을 켠다며 추상어인 말을 감각화 한다. 4연에서는 화자의 몸이 등불의 심지로 비유되고 있다. 이 시 전체 대의는 사람이 바로 무진등이라는 말이다.
다른 시 ‘거울 속의 산’에서는 마주 선 사람의 업보를 보여 준다는 ‘업경대’를 핵심 시어로 사용하고 있다. 이러한 업경대가 화자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청동 거울의 뒷면’에서도 ‘업경대를 들여다보듯 천천히 동경을 들어’ ‘청동거울 안의 나를 보고 싶다고 한다.’
‘매월당’에서는 ‘성주산 어귀 골짜기마다 깊숙이 꽃을 감추고 있는 화장골 지나 꽃고개 너머/ 몸 안에 사리를 감추고 살았던 매월당 만나러’ 무량사에 가기도 한다.
개심사 입구 세심동에
끓는 물속에 담가진 얼음처럼
몸이 녹아내렸다
뜨거운 찻잔 속에서도 나는
아주 녹지 않는 얼음이었다
아기부처가 그려진 현등이 꿈결인 듯
먼 행성처럼 빛을 내뿜고 있는
밤의 정수사
내가 얼음의 몸을 가졌음을
뜨거운 물속에서야 알 수 있게 되었다
꽃잎들이 나비무 바라무를 추며
허공을 내려오는 봄밤,
뜨거운 찻잔 속에서도 나는
아주 녹지 않는 얼음이었다라는가.
- ‘밤의 정수사’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