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심리학자인 에리히 프롬은 정신분석과 선(禪)불교를 비교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세계에서 인간의 위치, 즉 인간의 분리성ㆍ고독성ㆍ무력성 등 이 모든 것에 대해 생각해 보면 이러한 것은 견딜 수 없도록 무거운 짐이어서 그 압박 때문에 인간은 산산이 찢기게 될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권력이나 돈을 추구하거나 우상에 의존하거나 자기애적인 보상적 기제에 의해, 즉 불구가 됨으로써 이런 결과를 회피하는 데 불과하다고 했다.
즉 인간은 태생적인 한계 때문에 누구나 잠재적인 정신 이상자라는 것이다. 프롬은 이러한 인간이 잠재적인 정신 이상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하고 근본적인 해결책은 세계에 대한 충실한 생산적 반응이며, 그 최선의 형태는 개오(開悟)라고 말했다. 프롬은 정신분석과 선의 외면적인 유사성을 다음과 같이 보았다.
첫째는 욕망의 극복이다. 즉 선의 목표에 이르는 하나의 조건은 소유욕이나 명예욕 등 어떤 형태의 욕망이든 그것을 극복하는 것이며, 정신분석에서도 탐욕적이고 잔학하고 인색한 지향성에서 적극적이고 독립적인 지향성으로 발전되어 감으로써 건전한 품격을 가꾸어 나간다.
둘째는 귄위로부터의 독립이다. 프로이트는 종교를 비판했다. 그 주요 이유는 종교의 본질이 본래 도움을 받거나 벌을 받던 부친에게 의존하는 대신 신에게 의존하려는 미망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불교는 신도 없고 어떤 형태의 비합리적 권위도 없는 종교다. 불교의 주요 목적은 바로 인간을 모든 의존으로부터 자유롭게 하는 것이며, 자기가 아니면 어느 누구도 자기의 운명에 대하여 책임질 사람이 없다는 것을 강조한다.
셋째는 안내자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선불교에서는 스승이 수행자로 하여금 자신의 경험을 통해 목적에 달성하게끔 이끈다. 정신분석학에서도 환자가 분석가로부터 완전히 자유를 획득하는 지점까지 안내의 역할을 한다. 우리는 어느 누구도 타인의 영혼을 구제해 줄 수 없다. 인간은 오직 자신만이 자기를 구제할 수 있다. 선불교에서도 정신분석에서도 다른 사람이 스스로를 구제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기 위하여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이다.
넷째는 한쪽으로 몰아가는 것이다. 선에서는 화두를 주어 수행자가 인습적인 사고 속으로 도피하려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정신분석가도 이와 비슷한 작업을 한다. 분석가는 환자가 더 이상 도피할 수 없을 때까지 환자의 자기 합리화를 하나하나 빼앗아 결국에는 환자의 마음을 채우고 있던 허구를 깨뜨리고 실재를 경험할 수 있게 한다.
위와 같이 비교하면서 프롬은 선과 정신분석은 무의식적인 것을 의식화하는 동일한 목표를 가지고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선에서 말하는 깨달음은 세계에 대한 직접적이고도 완전한 파악, 나 자신과 우주와의 관계 자각, 즉 ‘우주적 개오’인 반면, 정신분석학에서는 억압상태의 극복, 본능(id)을 자아(ego)로 대치시키는 것, 즉 ‘인간 개체 내의 개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