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력과 경력 위조 문제가 온 세상을 뒤덮고 있다. 신정아 前 동국대 교수의 허위학력 의혹 제기는 이제 그 범위를 넓힐 대로 넓혀 정치권과 종단까지 뒤흔들고 있다. 이를 지켜보는 불자들의 마음은 안타깝기만 하다. 한 순간의 욕망이 지어낸 거짓이 종국에는 범죄로 이어지는 이 엄연한 인과의 고리를 바라보며 누구나 오탁악세의 요지경 속을 벗어날 수 없다는 좌절감마저 느낀다. 인간에게 희망은 없는가? 바야흐로 근원적인 물음을 던지지 않을 수 없는 단계다.
그런 가운데 조계종 법계위원회가 희망적인 결단을 내렸다. 법계 심사에서 해당자의 범죄 기록 유무를 따지고 경력과 호적관계까지 철저하게 검증을 하겠다는 것이다. 도를 이루는 데는 행정적 원칙이라 할 법계가 중요하지 않을 수 있지만 한 종단의 인적 질서가 유지되는 데는 매우 중요한 장치다. 법계는 스님들의 경력과 업적 등을 망라해 승가 내부에서 정한 계급적 질서이기 때문이다.
이 법계는 그동안 시간성에 의존된 경향이 있었다. 어느 품계를 받고 일정 시간이 지나면 다음 단계의 품계로 올라가는 데 까다로운 심사를 거치지 않았다. 종단 내부에서 큰 물의를 빚거나 징계를 받지 않을 경우 ‘좋은 게 좋은 것’이란 식으로 인식됐던 부분이다. 그러나 이번 법계위원회의 결정은 그런 관례를 부정하고 있다. 품계가 갖는 권위를 철저하게 지키는 기본적인 방법은 품계에 걸 맞는 대상자에게만 품계를 주는 것이다.
이번 법계위원회의 결단이 시류적인 것이 아니라 종단의 근간을 튼튼하게 지키는 힘이 되길 기대한다. 승단을 유지하는 내부 골격이 반듯하지 않고서는 급변하는 세속의 현실에 ‘당당한 승단’은 유지될 수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