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씨는 절에 열심히 다니며 스스로 신실한 불자라고 생각했다. 몇 년 전 청년회에서 알게 된 법우와 결혼할 때 이제 둘이 함께 더 열심히 절에 다니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이를 가진 후, 곧 엄마가 될 거라고 생각하자 마음이 달라졌다. ‘이제 나만의 가족을 가지게 되었구나’ 하면서 왠지 절에서는 마음이 멀어졌다. 예전과는 비할 수 없이 걸음이 뜸해졌다.
날이 갈수록 신랑에 대해서도 나의 남편으로만 보려는 마음이 들었다. 신랑은 꾸준히 청년 모임을 나가고 있었다. “당신은 절에만 열심인 것 아니에요? 혼자 있는 게 얼마나 힘이 드는데….” 처음에는 달래던 신랑도 나중에는 화를 내게 되었다. “당신은 정말 변했어. 예전의 당신이 아니야. 절에는 나보다 더 열심히 다녔는데 왜 요즘은 안 가는 거지? 그리고 나까지 가지 말라는 말이야?” 신랑은 태어날 아기에게 훌륭한 부모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다면서 같이 하자고 하였다. 그 말에는 마지못해 동의하였으나 L씨의 관심은 기도나 수행보다 집안 살림과 꾸미기에 있었다. 아들이 태어난 뒤로는 정도가 더 심해졌다.
이제 두 사람은 매일 한번 이상 말다툼 없이 넘어가는 날이 드물게 되었다. L씨의 요구는 언제나 더 많은 시간을 집에서 함께 보내자는 것이고, 신랑은 절에도 같이 나가고 기도도 열심히 하자는 것이었다.
어느 날 신랑이 당분간 일요일에도 회사에 나가야 한다고 하였다. 새로운 해외 업무 계획이 나와 그 준비로 일요일에 시간을 내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중요한 일이라고 하니 어쩔 수 없었다. 쉬지도 못하고 일하는 신랑에게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신랑은 일요일에도 아침 일찍 나갔다가 저녁에야 돌아왔다. 그렇게 두 달이 넘은 어느 날 모처럼 절에 갔다. 잘 아는 스님을 뵈었다. “신랑이 대단해. 일요일에도 나와 종일 기도하고 봉사하지 않나.” L씨는 귀를 의심했다. “일요일에요?” 아니, 회사에 간다더니, 그 사람이 거짓말을 했단 말인가. 충격을 받아 잠시 정신이 없었다.
“사실 신랑은 이야기하지 말라고 했는데 우리 보살 걱정이 좀 많은 게 아니요. 결혼 전에 기도하고 봉사하는 훌륭한 불자였던 보살이 변했다고. 자기 잘못이 아니냐는 거야. 이대로는 견디기 어렵다고 하면서 백일기도를 부탁했어요. 일요일에는 보살 대신 108배와 기도를 하고 봉사도 해 보겠다고 했어요. 정말 열심히 하고 있어요. 그런데 보살은 어떻게 할 거지? 계속 부처님을 외면하기로 했나?” 가슴이 쿵 내려앉는 것 같았다. 부처님을 외면하다니…. 내가 언제 이렇게 되었지.
법당에 가서 절을 올리니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신랑이 나 대신 이렇게 절하고 봉사하며 어떤 심정일까를 생각하니 가슴이 아팠다. 나는 왜 그 사람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을까. 오죽하면 거짓말까지 했을까. 그 날 밤 신랑에게 “미안해요. 다 내 잘못이에요. 같이 기도할게요” 하며 울었다. 그는 고마워했다. “당신을 위해 정말 열심히 기도했어”하면서 목이 메었다. “부처님이 우리 백일기도를 들어주셨구나”하며 기뻐했다.
L씨는 참회하며 점차 예전의 신행생활로 돌아가게 되었다. 둘 사이도 좋아지게 되었고 다투는 일이 줄었다. 아이도 절에 가는 것을 좋아하며 사람들의 귀염을 받고 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봉사하는 마음으로 지내니까 이렇게 가정생활이 좋을 수 있다는 걸 몰랐어요. 신랑이 바로 부처님이었어요.” 환하게 웃는 얼굴에 평화로운 행복감이 느껴졌다.
가정에서 불심은 집안의 뿌리와 같다. 뿌리를 외면하고 나 위주로 집착하면 잘 살 것 같지만 결국은 다툼과 공허함만 가져오기 쉽다. 진정한 가정의 행복을 위해서는 부처님의 마음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매사에 나를 앞세우는 그 아집을 발견하라. 발견해야 벗어버릴 수 있다”고 하셨다. 나만을 생각하는 마음을 내려놓고 부처님의 자비로 서로를 바라보고 마음을 다스려가는 가정에는 웃음과 사랑이 충만하게 피어날 것이다.
■황수경(동국대 선학과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