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2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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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다성 센노리큐
센노리큐, 다도 정리 및 규격화된 다실 완성
엄격한 형식 현실사회와 융합 위해 정식화

일본인들은 전통문화를 창시하거나 집대성한 사람의 기념일에 각 지역 사람들이 모여 초상화나 상(像)에 절을 하고 추모하는 관습이 있다. 센노리큐(1522~1591) 기일이 되면 사람들은 그와 인연이 있는 차 도구를 모아 기념 차회를 여는데, 어떤 기념일보다 성대하게 치러진다. 이것은 센노리큐가 다도 보급에 많은 공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의 열정적인 기백과 정신 때문일 것이다.
당시에 일본은 분쟁으로 사회가 혼란스러웠다. 혼란스런 사회에서 센노리큐는 차를 마시는 방법을 통해 정신성을 고양하고자 했다. 차 마시는 방법을 다도(茶道)로 정리하여 규격화된 다실을 만들었다. 다실의 크기는 다다미 2장반(대략 한 평이 조금 넘음)의 크기로 표준을 삼고 실내는 아주 정갈하다. 손님이 앉는 위치에서 화로와 꽃꽂이와 도코노마에 족자 등을 설치한다. 실내의 출입구는 아주 작게 만들어 들어갈 때는 허리를 구부리고 고개를 숙이고 들어가야 한다. 외형은 초가로 중간에는 두꺼운 나무로 기둥을 하고 지붕 위에는 대나무와 풀로 덮어서 만든다. 이것은 사람들에게 어렵고 힘들던 때를 잊지 말고 기억하라는 교훈적인 의미이며, 몸으로 느끼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일본의 다실은 소박함 속에 긴장감이 있다.
다실 입구는 석등, 담장, 로지, 세수간 등은 사람들이 안에 들어오기 전에 아주 고요한 아취를 느끼게 한다. 사람들로 하여금 안정된 규칙을 지키게 하여 평화로움을 갖게 하는 것이다. 주인과 손님은 차를 마시면서 좋은 글을 생각하고 아주 조용한 기분으로 빠져들게 한다. 규범적인 도(道)를 중시하는 사상이 의식화되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차탕(茶湯)의 새로운 표현으로 정신, 수양이라는 말이 강조되는 다도(茶道)라는 말이 생겼다. 즉 정신적 내면화에 가치를 두는 미의식이 싹트는 시기로 호화롭기보다는 소박하고, 완벽하기보다는 결함이 있는 것에서 아름다움을 찾고자 하였다. 다실은 화목하고 평화로운 분위기를 나타내고 존경심을 유발하여 사람들에게 깨달음을 갖게 하는 장소가 되었다. 아무리 부유한 사람도 계급이 높은 사람도 다도 중에는 소박하고 검소해야 한다는 것을 직접 몸으로 느낄 수 있게 했다.
센노리큐는 당시 자기 민족의 화합과 서로간의 존경심이 이루어지기를 바랐다. 일본 치도(治道)의 기본정신을 다도(茶道)를 통하여 찾고 반성을 하게 한 것이다. 서로 사상이 통하고 맑고 고요한(淸寂) 상태에서 더러움과 외견을 없애고 화합과 공경심(和敬)에 도달하기 위한 것이다. 이런 정신의 상태에 도달하기 위해 센노리큐는 특정한 분위기를 갖춘 다실을 만들었다.
전쟁과 폭력이 화경(和敬)이라는 말과 어울리지 않듯 그의 할복은 당시의 사회를 잘 보여준다. 이처럼 일본의 다도는 창조되는 시기와 과정 중에 피(血)의 대가를 치렀다. 다도는 센노리큐 이후에 독특한 격식이 만들어져 더욱 발전됐다. 하지만 형식상 엄격한 조건과 사제지간에만 가르치는 방법, 직계가족에게만 가르쳐 주는 형식으로 이어졌다. 여성들에게 가르치는 것은 제한되었다. 이런 정신은 일본의 현실사회와 융합하기가 힘들었다. 따라서 후에 일본은 다도를 정식화하여 보급에 노력하였고 센노리큐의 다도는 최대의 유파로 전해지고 있다.
■이창숙(동아시아 차문화연구소 연구원)
2008-02-27 오전 11:3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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