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3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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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인과를 벗어나는 법
K씨가 절에 다니게 된 것은 3년 전 남편이 일자리를 잃게 된 후였다. 애들 학비와 생활비를 감당하기 힘들어 화장품 방문 판매를 나서게 되었다. ‘남의 돈 벌기가 이리도 힘드는구나.’ 마음으로 울며 지내던 어느 날 발길이 우연히 닿은 곳이 절이었다. 경내에 들어 선 순간 갑자기 마음이 가벼워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무거운 화장품 가방의 무게도 느끼지 못한 채 법당까지 가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을 따라 절을 올리는데 그렇게 마음이 편안해질 수가 없었다. 마냥 좋아서 한참을 앉아 있다가 집에 왔다.
저녁 식사를 한 후 이야기 끝에 “오늘 절에 갔었어요”라고 하였다. 아무 생각 없이 한 말이었는데 남편은 발끈했다. “절에는 뭐 하러 가! 거기서 뭐가 나온다고. 그 시간에 돈이나 벌지.” K씨는 화가 났다. “아니 절에 간 게 뭐가 잘못이에요? 마음 편하고 좋기만 하던데” “안 돼. 앞으로 다시는 가지 마.” 어이가 없었다.
그래서 남편 몰래 절에 가게 되었다. 어느 날 저녁 경전을 읽다가 깜빡 잊고 그냥 놔두고 부엌에 들어가게 되었다. 어느 틈에 왔는지 남편이 난리가 났다. “이게 뭐야. 당신 또 절에 갔어?” 이런 식으로 절에 가는 것을 싫어하였다. 초하루나 보름법회에 가는 것을 알고는 아침부터 나가지 않고 지켰다. 오전 법회시간에 못 가게 점심까지 차려내라는 것이었다. “그까짓 절에 가면 뭐 해! 돈이 생기기를 하나, 당신 사람이 달라지나, 무엇 때문에 가는 거야!”하고 구박했다. 도반들이 집에 전화를 하면 “우리 집 사람은 절에 안 가니까 연락하지 말아요!”하고 호통을 쳤다.

말로는 이길 수가 없이 막무가내였다. K씨는 부처님께 간절히 기도하게 되었다. “부처님, 저 사람의 마음을 좀 돌려주세요. 왜 절에 못 가게 하는 지 도저히 알 수가 없습니다. 제가 무얼 잘못한 건지요.”
K씨는 그날도 남편 몰래 절에 갔다. 참선한다고 앉아 있다가 깜박 잠이 든 것 같았다. 비몽사몽간에 어떤 장면을 보았다. 예전, 전생의 장면 같았다. 자신은 남자이고 부잣집 주인이었다. 현재의 남편은 자기 집 하인이고 다른 하인들도 여럿 있었다. 문간에 어떤 스님이 오시니까 하인들이 기쁘게 마중을 가려고 하는데 자기가 가지 말라고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다. 일해야지 무엇 하느냐고 호통을 쳤다. 하인들은 겁에 질려 가지 못했다. 스님은 합장을 하시더니 그냥 가셨다. 장면이 계속 바뀌어도 스님만 오시면 못 본척했다. 하인들에게는 항상 거만하게 굴면서 막 대하는 모습이 영화장면처럼 나오고 있었다.
“전생인지 어떻게 아느냐고요? 그냥, 알 수 있어요. 뭐라고 말할 수 없지만 확실해요. 그런데 바로 저 자신이 그토록 스님을 멀리 하다니. 우리 집 남편에게 그렇게 심하게 대했다니 기가 막혔어요. 얼마나 분하고 속상했겠어요.”
인과응보라더니, K씨는 현재 남편이 자신에게 대하는 것은 오히려 정도가 약하다고 생각되었다고 한다. 그 후로는 남편이 구박하면 ‘그래, 내가 하인으로 막 대했었지’하며 ‘미안해요, 여보, 부처님, 죄송합니다’하며 마음을 다스려갔다. 같이 싸우는 대신 따뜻한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 말을 하면서 원망하는 마음을 갖지 않았다. 절에 가서는 진심으로 참회하며 열심히 기도 정진을 하게 되었다. 어느 날 남편이 “‘당신, 사람이 변하는 것 같은데, 부처님 말씀이 좋기는 좋나 보지” 하더니 “나도 절에 한번 가볼까” 하는 게 아닌가.

우리는 수억 겁을 진화해 오면서 안 되어 본 것이 없고 안 해본 일도 없다고 한다. 따라서 자신의 전생을 알지 않고서는 누구에게도 큰소리치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어느 전생에 무명(無明)으로 인해 아상(我相)에 젖어 상대에게 어떤 업을 지었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놓고 놓아 내가 녹아야 상대를 녹일 수 있다”고 하셨다. 갈등하는 상대가 있을 때 그와의 인과에서 벗어나려면 상대만 탓하기 전에 자기 마음부터 바로 보고 다스려가야 할 것이다.
■황수경(동국대 선학과 강사)
2008-02-27 오전 11: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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