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처럼 반복되는 새벽이지만 오늘은 제게 깨어있는 것만으로 소중하고 감사한 시간입니다. 귀한 걸음 하여 주시는 스님들을 모시고 정기법회를 열 수 있는 까닭입니다.
스님들은 “자신의 내일이 궁금해지면 지금 자신의 삶을 살펴보면 되고, 또 과거전생이 알고 싶다면 지금 자신이 선 자리를 살펴보면 알 수 있다”고 하십니다. 착한 씨앗을 심으면 착한 열매가 되고, 또 악한 씨앗을 심으면 악한과보가 된다고, 심은 대로 거두는 지극히 당연한 말씀을 듣다보면 그 말씀으로 인해 거울에 비치는 제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십오척 담장에 가려진 채 세상을 바라보는 것조차도 허락되지 않는 자리, 그것이 오늘을 사는 저의 자리입니다.
얼마나 많은 한숨과 눈물이 회한으로 얼어붙고 있는지, 세월이 쌓이듯 마냥 높아져만 가는 하얀 담장이 제게 체념의 삶을 알게 합니다.
어느덧 거울에 비친 제 모습에도 흰 머리카락이 언뜻언뜻 보이는 불혹의 세월. 그동안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저 부끄럽고 참담한 마음에 고개가 절로 발끝을 향하여 집니다.
그렇게 죄송한 마음에 고개조차 들지 못하는 못난 아들에게 늙으신 어머니께서는 “명철아! 네가 하기 싫은 일은 다른 사람도 하기가 싫은 것이란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하시며 부처님 안에서 참회하도록 아들을 위해 기도해 주셨습니다.
아들의 죄업은 바르게 가르치지 못한 당신들의 잘못이라 하시며, 당신들께서도 늙고, 병든 육신이나마 때가 되어지면 세상에 기증키로 하셨다며, 그렇게라도 자식이 지은 업을 나누어 지시겠다는 부모님의 크신 사랑 앞에서 그렇게 저의 아상은 무너져 내렸습니다.
어느새 부처님의 그윽하신 미소와 마주하며 지내온 세월이 벌써 삼년이 되고 있습니다. 부처님의 크신 사랑은 온 생명을 포근하게 감싸 안습니다. 봄날 담장 구석의 이름 모를 풀꽃에 달린 작은 씨눈 하나까지도 빠뜨림이 없는 부처님의 말씀을 이제 제가 어린아이의 마음이 되어 알게 됩니다. 이제는 육신이 머무는 자리가 아닌 제가 바르게 설 수 있는 마음자리를 마주하고 있습니다.
그 자리에서 저의 삶이 새롭게 시작되고 있습니다. 이른 새벽, 아직은 한밤중인 도반들의 단잠을 깨울까, 새벽을 열며 참선하는 도반의 청정함을 깨뜨릴까, 조심조심 차가운 물로 머리를 맑히고 가만히 자신의 자리에 앉아 새 아침을 마중합니다.
월명(月明)의 자리는 모락산을 향하여진 창문과 마주하고 있답니다. 월명은 제 법명입니다. 앉을 때는 이른 시간이기에 어둠만이 먹물을 뿌려놓은 듯 하지만 가만히 숨을 고르고 있노라면 언제 푸른 하늘이 열리었는지 모락산 기슭의 나무들이 담장 안을 굽어보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언제부터인지 알 수 없는 오랜 예부터 그 자리에 머물고 있었을 것을 이제야 제가 마주하며 미소 짓게 됩니다. 햇빛에 반짝이며 흔들리는 나뭇잎들의 모습이 마치 어린아이들이 까르르하고 웃는 모습인 듯 마음을 흐뭇하게 합니다. 잔잔한 행복이 번져오는 이 아침에 다시금 부처님께 귀의하는 마음을 새겨봅니다. 바른 법을 구하고자 절벽에서 한걸음 더 내딛는 설산동자의 마음을 닮고자 합니다. 마주하는 모든 인연에 감사함으로 오직 선함만을 지키고자 합니다. 향나무가 저를 상하게 하는 도끼날에조차도 향내음을 묻힌다는 말씀은 바라밀의 참뜻을 생각게 합니다.
부처님! 한 마음 돌이키니 저 두터운 담장마저도 그릇된 습을 경계해주는 감사함이 됩니다. 언젠가 부모님 곁으로 돌아가면 꼭 효도하겠다고 수십, 수백 번을 되뇌었지만 이제는 부모님께도 그렇게 말씀드리지 않습니다. 제가 하루를 사는 동안에 하는 말과 행동이 부모님의 뜻에 따르도록 하며 부처님의 가르침 안에서 호흡한다면 이미 부모님과 함께 하는 삶임을 아는 까닭입니다.
부처님께 소중히 여김을 받는 사람, 이웃에게 행복한 미소가 되어지는 저이고자 서원합니다. 오늘 제가 내딛는 한 걸음이 얼마나 큰 행복함인지 귀한 인연을 베풀어주신 님들께 감사 올립니다.
치우침이 없는 자리에서 보이는 세상을 제게 인도해 주신 스님과 법사님들, 보살행을 베풀며 어려운 이웃들과 나누는 삶의 행복을 가르치시려 자매의 연을 맺어주시고 한결같음으로 찾아주시는 귀하신 그 뜻이 이제 제 삶에 나침반이 되고 있습니다. 이제 제가 크신 그 뜻을 받들며 머무는 자리에서 부딪치는 모든 인연에 불법을 전하는 정토행자가 되고자 서원합니다.
부처님의 가피 안에서 더불어 함께 수행하는 모든 님들이 그대로 모두가 성불하시길 두 손 모아 합장발원 올립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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