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사랑 위험한 사랑
“인간의 여러 언어를 말하고 천사의 말까지 한다 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울리는 징과 요란한 꽹과리와 다를 것이 없다.” 이 말씀은 성경중 고린도서 앞쪽(전서)에 나온다. 아무리 훌륭하고 뜻있는 일을 하더라도 그 대상에 관해 염려하고, 아끼고, 보호하며, 예뻐해 주는 사랑이 없으면 시든 꽃과 같이 아름다움과 의미가 사라지고 약해진다는 뜻이리라. 사물의 겉에 드러나는 모습보다 속에 들어있는 마음이 더 중요하다는 말로도 이해할 수 있으리라.
<잡아함>은 여러 짧은 경전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중의 한 경전인 ‘부경’에서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어떤 사람이 아침에 삼백 가마솥의 밥을 다른 이에게 보시하고 낮과 저녁에도 그렇게 하였다고 하자. 또 다른 사람은 소젖을 짜는 잠깐 동안이나마 모든 중생에 대해 사랑하는 마음을 닦아 익혔다면, 앞사람이 보시한 공덕은 뒷사람의 백분, 천분, 억만 분의 일도 미치지 못할 것이요, 셈이나 비유로도 견주지 못할 것이다.”
애욕 즉 사랑의 번민을 떠나야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하여 설사 독사의 아가리에 남근을 넣을지언정 여인의 몸에 넣지 말라고 하는 무서운 계율을 만들었다는 부처님의 입에서 어찌 저런 간지러운 말씀이 쏟아져 나왔을까 싶지만 가장 부처님다운 말씀이라는 평가를 받는 그 중에서도 원형에 제일 가까운 <잡아함>의 말씀이다.
아무리 많은 물질적인 것을 베풀었다고 해도 잠시 사랑하는 마음, 아끼는 마음, 위하는 마음을 베푼 것에는 견줄 수 없다는 말씀은 참으로 우리의 가슴을 울리는 인간적인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사랑하는 행위는 다른 행위들처럼 마음으로, 말로, 행동으로 나타난다.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도 웃음으로, 쓰다듬음으로, 손잡음으로, 다독여줌으로, 따뜻하게 안아줌 등으로 나타난다.
그런데 정보화시대의 최고 가치는 빠름(速)과 양(量)이라는 생각을 가진 이들이 사랑의 행위를 왜곡시키고 있어서 큰일이다. 걸러지지 않은 정보를 아무렇게나 퍼다 나르면서 수익을 얻는 이들이 그들이다. 안방극장에서, 신문에서, 잡지에서, 인터넷에서 왜곡된 사랑의 행위를 아무렇지 않게 드러내면서 판단력이 제대로 길러지지 않은 우리의 아들딸들을 무방비상태로 노출시키고 있는 것이다. 인터넷 게임을 통해 마음 내키는 대로 찌르고, 베고, 쏘아서 죽이고 상대의 마음은 아랑곳 하지 않고 성(sex)적으로까지 폭행을 가하는 것이 어느덧 우리의 청소년들에게 자주 일어나는 일이 되어버렸다. 이미 고등학교 담장을 넘어 중학교 교정은 물론 초등학교 교정에서까지 잘못된 성의 물결이 넘치고 있다.
이렇게 되어버린 근본원인은 교육의 본질이 ‘지식을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이미 갖추어져 있는 불성(佛性)과도 같은 위대한 능력을 끄집어내는 것’이라는 것을 망각한 서구에 토대를 둔 이들의 잘못된 교육체계에 있다고 할 것이다. 여러 곳에서 원인도 찾고 대안도 찾아야 할 것이지만 부처님의 후예로서 고민하고 부처님께서 여러 해결책을 당시의 인도사회에 제시하셨듯이 요즘의 우리사회에 제시할 대안은 무엇인가를 진지하게 모색하는 것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불자들의 몫이다.
우리의 감각기관은 만족할 줄 모르기 때문에 만족을 위해 적게 자극할 것을 가르쳐야 한다.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이 다 웃으며 받아들이는 사랑의 방법을 활용해야 사랑의 행위를 나누는 이들이 누구나 행복한 사랑이 될 것임도 부끄러워하거나 감추지 말고 가르쳐주어야 한다. 더구나 사랑은 때려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알려주어야 한다. 맑은 영혼에게 주어야 할 것은 사랑이지, 사랑이지. 아무리 꼭 안고 오래 걸어도 전혀 느낄 수없는 무게를 가진 맑은 영혼 가진 이여 그 맑은 영혼을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 오로지 사랑으로만 대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