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4.10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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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살아있기 때문에 본래 죽어갈 것이 없다!
수억겁 짊어지고 나온 종문서를 태워버리세요!

여러분과 더불어 또 이렇게 한자릴 하게 됐습니다. 법당 안에 들어와 있는 분들하고만 같이 하는 게 아니라 우주 만물과 더불어 같이 한자릴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종교라는 이름을 가지고 이 종교 저 종교 따지지 마십시오. 우리는 전체가 같이 이렇게 한자리를 하고 있는 공식(共食)이며, 공체(共體)며, 공생(共生)이며, 공용(共用)이라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독불장군은 없죠. 종교라는 자체가 바로 생활인 것입니다. 종교가 생활에 연결이 되지 않는다면 그건 종교가 아니고 부처님이 가르쳐주신 뜻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없으면 부처라는 이름도 없을 것이고, 부처라는 이름이 없으면 부처라는 그 길을 따라서 인간의 도리를 배울 수도 없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찾아오시는 분들은 아마 헤아릴 수 없이 참자기를 만났다고 봅니다.
그런데 죽은 영령(英靈)들이나 산 사람들, 유체, 무체 이 모두가 차원이 높고 낮은 이런 문제들에 얽혀서 돌아가고 있습니다. 어디서 온 줄도 모르고 그냥 묵묵히 당해야만 하는 그러한 그 고(苦)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여러분한테, 보지도 못하고 또는 알지도 못하고 어디서 이렇게 고통이 왔는지도 모르는 여러분한테 길을 인도하는 나 자신도 어떤 땐 참 답답한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만, 그걸 답답하게 생각을 해서도 아니 되겠죠. 왜냐하면 몰랐을 때의 내 모습들이니깐요. 내가 언제적부터 알았겠습니까만 지금에 당해서는 여러분이 모르니까 답답해지죠. 죽은 사람 산 사람들이 그렇게 결부돼 있고, 태로 낳는 거나 알로 낳는 거나 또는 화(化)해서 낳는 거나 습한 데서 낳는 거나 모든 것을 한데 합쳐서 덩어리가 돼가지곤 항상 돌아가니까 여러분은 그 고통을 면할 길이 없습니다. 항상 되풀이하는 말 같지만 열 마디 백 마디를 되풀이하더라도 여러분이 침착하게 잘 들으셔서 그것을 응용하실 수 있다면 처음에는 그 고통이 삼분의 일로 줄어들고 나중에는 그 삼분의 일마저도 없어지지 않나 이렇게 봅니다.
여러분이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고 온 줄도 모르고 어디로 가는 줄도 모르고 있는 이 자체가 어디에서 나오는 거냐? 지난번에도 얘기했지만, 되풀이합니다. 여러분의 그 고(苦)덩어리, 여러분은 지금 그것을 이렇게 생각하십시오. 지난번에 금왕지원에서도 얘기했습니다만 여러분은 어머니 아버지한테서 살과 뼈를 빌려서 집을 짓고 나왔습니다. 그런데 묘한 것은 여러분은 이 세상에 나오기 이전에 자기가 했던 것만치 기록된 문서를 짊어지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나올 때는 부모에게서 몸만, 집만 받아가지고 나온 셈이니 그 의식 자체의 덩어리, 고덩어리는 자기가 한 것대로 고스란히 짊어지고 나온 것입니다. 짊어지고 나온 것이 고정되지 않았다면 또 별 문제인데, 자기가 수억겁을 거쳐 오면서 짊어진 그 종 문서를 태워버리지 못하니 독 안에 들어도 못 면한다 이겁니다. 예전에 종 문서가 있다면 그 집의 하인 노릇을 자식 대대로 내려가면서 꼭 해야 되는 그런 문제가 있었죠.
그런데 지금은 그 제도가 다 폐지되고 없다 하더라도 여러분은 여러분 차원 그대로 종 문서를 면치 못한 채 지금 살고 계십니다. 그 문서를 짊어지고 나온 데서 옴쭉을 못하니 그거는 종 문서와 한가지라 이 소립니다. 스스로 그 고덩어리 속에서 의식 자체가, 즉 말하자면 수십억 개가 차례차례로 들락거리면서 나고 들면서 자기를 괴롭히는데 그 고는 말로는 형용할 수 없으리만큼 괴롭습니다. 자기를 괴롭히기 위해서 식구들을 괴롭히고 식구들을 괴롭히기 위해서 자기를 괴롭히고, 이 자체가 수없이 보이지 않는 데와 보이는 데가 연결이 돼서 돌아가니 너무도 기가 막힌 일입니다.
그러니 뼈를 빌리고 살을 빌려서 집을 짓고 나왔으나 그 집 속에는 자기가 나오기 이전의 업식을 받아가지고, 종 문서 즉, 기록 문서를 받아 짊어지고 나왔으니 옴짝달싹할 수 없단 말입니다. 그러니 거기서 들락날락하면서 들이고 내면서 바깥에서는 악의 세균을 끌어들이고 안에서는 안에대로 반란을 일으키고, 또 바깥에나 안에나 그러한 파워를 일으키는 문제들이 병고를 일으키고, 가난을 일으키고, 괴로움을 일으키고, 외로움을 일으키고, 허무감을 일으키면서 수없는 그 나날을 하루도 편안할 날이 없이 즐거운 거는 잠시 잠깐이고 그저 걱정, 근심 이런 것만이 주어지게 합니다. 젊었으면 젊은 대로 늙었으면 늙은 대로, 여자는 여자대로 남자는 남자대로, 애는 애대로 말입니다.
그러니 여러분한테 일러드리는 것은 생활에 직결이 돼 있기 때문에 이런 소리를 반복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반복을 했지만 여러분은 열 마디를 들어도 그것이 가슴에 와서 닿지 않는 그런 사람들이 많아서 “나는 믿는데도 그것이 안됩니다.” 그럽니다. 전자에 역대 조사들이나 부처님이…, 내가 거짓말하는 건 아닙니다. 절대로 거짓이 아닙니다. 부처님께서 안 하면 안 하고 하면 하고 그렇게 됐던 것은 부처님께서는 몸을 갈아서 재로 만들어서 뿌렸어도 그 재도 남지 않았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여러분과 더불어 같이 살아계십니다. 또, 내가 여러분한테 길잡이 노릇을 한다 하더라도 여러분이 그것을 무조건 믿어주셔야 한다 하는 것은 뭐냐? 현실의 생활에 직결돼 있고 생활에서 그건 부정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살면 죽고 죽으면 살고’ 이랬는데, 예전에도 얘기했죠. ‘본래 살아있기 때문에 본래 죽어갈 것이 없다.’ 이런 말을 했죠. 여러분은 영원한 것입니다.
몸뚱이는 집과 같아서, 우리 밥해 먹는 솥과 같아서, 음식을 만들어 내놓는 오븐과 같아서 그런 것이 부서지면 새 걸로 갈 뿐입니다. 여러분이 물건을 사다가 간수를 잘 해서 잘 쓰면 조금 오래 쓸 거고, 간수를 못 하면 얼른 망가지고 얼른 갈아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자기 몸뚱이를 부모한테서 받았지만 자기 거라고 해서 마음대로 굴립니다. 그리고 부모가 뭐라 하면 “그런 건 왜 참견을 합니까?” 이러거든요. 상관하지 말라는 거죠. 그 물건을 받은 것도 잘 보존을 함으로써 부모에게 효도도 할 수 있으며, 충성하고도 우리 부처님 법도 따를 수 있는 그런 지혜로운 착한 마음이 나오게 됩니다.
우리가 지금 항상 결부되고 있는 시급한 문제는 자식은 부모가 빨리 죽으면 안 된다, 또 부모는 자식이 나를 두고 빨리 죽으면 안 된다, 죽는다면 또 얼른 죽었으면 좋겠는데 질질질질 끌고, 그냥 재산을 다 없애고 자식들은 자식들대로 놔두고 이렇게 해서 풍비박산을 만드는 이런 병고에 휘달리고 가난에 휘달리고 이래서 식구가 다 병이 들듯이 ‘이렇게 된다면 아니 된다’ 는 철저한 그런 생각에서 고통을 받죠.
언젠가 한번은 어느 분이 내게 이렇게 말을 해왔습니다. 지금도 그럭하고 있죠. “스님, 병명이 영 나오질 않고 모른다고 그래가지고는 몇 달을 기다려보라고 해서 기다려봤더니 폐암이라고 그럽니다. 이것을 어떻게 했으면 되겠습니까? 살려주십시오. 우린 육남매나 됩니다. 그런데 출가는 하나도 시키지 않았습니다. 나는 두 살 때 어머니를 잃고 아버지가 새장가를 들어서 사셨는데 처음 들어온 새어머니가 너무해서 외할머니 손에 자라서 이렇게 여직껏 살고 있었습니다만 살다가 이십 안쪽에 또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외숙모 손에 자라다 보니까 무지한 고통과 아픔을 겪으면서 죽으려고도 수차례 했지만 죽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살다 살다가 고생을 하다가 겨우 인제 집이라도 한 칸 지니고 살 만하니까…, 웬 자식들은 또 제가 모자라서 그랬던지 육남매나 되고, 이렇게 고생을 하다가 그 자식들도 기르질 못하고 아내도 고생만 시키다가 이제는 어떻게 해야만 옳을지 모르겠습니다.” 하는 말을 하면서 눈시울도 찌푸리지 않으면서 눈물을 줄줄 흘렸습니다. 전자에 내가 그 사람의 부모가 돼가지고 일찍 그 자식들을 두고 죽은 것 모양 얼마나 딱하고 불쌍했던지 모릅니다.
그랬는데 그 순간에 불쌍해서 그 집에 가서 보니까 그 할아버지, 할머니, 삼촌, 고모, 이런 사람들이 전부 윗대에서 6·25 때 방 안에다 잔뜩 가둬놓고 불을 질러서 전부 태워버린 거야. 응? 그런데 그 영령들은 비슬비슬하면서 그 의식을 그냥 가지고 있기 때문에 타버리는 흉내를 내면서 그 집의 방에 잔뜩 와 앉았더라 이거야. 이런 건 끔찍한 일이지만 그것을 보지 못하는 여러분은 얼마나 괴로움을 당해야만 합니까! 물론 선조 대로 그것을 잘못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얼마나 그들도 죽겠으면 그 집의 방에 죽들 와서 앉았겠습니까? ‘날 좀 아픈 것 좀 낫게 해줄 수 없느냐?’ 해서 어디로 갈 데는 없고 인연이 그렇게 돼 있으니까 자식이라는, 손자라는 인연이 의식이 그렇게 돼 있으니까 그렇게 와 있을 수밖에는 없죠.
그런데 아버지는 그 아들을 위해서 아무리 애를 쓰려고 그래도 아버지가 해놓은 게 없고, 아버지가 지금 시쳇말로 하면 기술도 없고 배운 것도 없고, 그래서 도저히 그 아들을 살릴 도리가 없어. 그래서 만약에 그분네들이 열 분이라 할지라도, 백 분이라 할지라도, 한 분이라 할지라도 여러분한테 항상 가르치죠. 주인공에 모든 것을 ‘주인공만이 해결할 수 있다’는 그 믿음을 가지고 거기다 맡겨라. 이렇게 되면 이 물그릇에다가 물 열 방울을 갖다가 넣으니까 이게 (법상 위의 물컵을 들어 보이시면서) 두드러집디까? 그냥 한 컵의 물입디까? 이걸 대답해 보십시오. 한 컵의 물이죠. 그래서 방 안에 있던 그 조상님들을 내 물 한 컵에다가 다 넣으니까 한 컵의 물이 되더라 이겁니다. 이해가 갑니까? 한 컵의 물이 되니까 그 방 안은 깨끗해지고 그 불쌍한 그분은 용기를 얻게 됐습니다. 그래서 아직까지도 강원도 어디에서 살고 있죠.
그러나 사람이 살고 죽고 그걸 떠나서 인간으로서 은혜를 알고 진정한 사랑을 안다면, 조상과 부처와 둘이 아니라는 그 뜻을 알게 됩니다. 부처도 조상이요, 조상도 부처다 이런 소리가 있죠. 그건 뭐냐 하면 부처님의 뜻은 모두가 자식이요, 모두가 자기요, 모두가 자기 부모니깐 자기 물 한 컵에다가 다 집어넣어도 두드러지지 않고 이 물을 다 준다 하더라도 줄지 않는 그러한 묘법의 법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처님의 속을 뚫어지게 알 수 있고 그런 것을 체험을 하고 알 수 있어야지, 자기가 체험을 안 하고 자기가 깨닫지 못하고 자기가 승화시키지 못하고 자기가 나투지 못하고 둘 아님을 모르고 이러한 문제를 경험해보지 못한다면 이러한 이치는 까맣게 모릅니다.
과거도 없고, 미래도 없고, 현실도 없다 이랬죠? 왜 그런가? 왜 그런가? 한 찰나의 살림살이기 때문이다. 여러분한테 항상 말하죠. 우리의 살림살이는 한 찰나요, 한 인생 살아나가는 것은 한 철이라고. 여러분이 한 찰나의 살림살이를 지금 하고 가는 겁니다. 요리 변덕, 조리 변덕, 변덕쟁이거든. 변덕쟁이, 도깨비장난, 귀신 장난감 이렇다고. 그러니까 그걸 말로 하려니까 그렇지 여러분은 변동이 무쌍해. 그렇기 때문에 아무 생각 없이 공(空)에 들어서 가만히 있다면 그건 목석인 거야. 또 너무 말을 하고 너무 아는 척을 해서 한데 떨어뜨린다면 그건 귀신이야.
그러니까 모든 것은 정상적으로 그냥 화가 나면 화가 나는 대로 내는 거야, 그냥. 거기도 걸리지 마라. 생각이 자꾸 나걸랑은 그대로 그냥 주인공에서 나오는 거니까 버려두라고. 버려두는 거지. 왜? 자기가 이렇다 저렇다 할 자리가 아니야. 아무것도 붙지 않는 자리라고. 그런데 여기서, 괜히 고(苦)덩어리 속에서 그 의식이 들고 나면서 괴로움을 주고 또 즐거움을 주고 이러니까 즐겁더라도 빙긋이 웃고 말고, 괴롭더라도 빙긋이 웃고 말고, 거기서밖에 해결 못하니까. 이열치열, ‘네 속에서 나온 거는 네 속에서 해결해야지 딴 속에서 해결 못한다. 나는 거기에 속을 필요가 없어. 네가 무체(無體)로서, 즉 말하자면 큰 부처로 보이더라도 난 거기에 속지 않아.’ 이렇게 속지 않으셔야 돼요.
여러분은 그 전자의 종 문서에 의해서 자기가 한 것대로 짊어지고 나온 데서 들고 나는 것에 속지 마시라 이겁니다. 아무리 좋은 것이 있다, 좋은 소리가 들린다 하더라도 거기에 속지 말고, 말하자면 세 가지를 똑바로 보시라는 겁니다. 하나는, 나도 마찬가집니다. 말·뜻·행 이 세 가지가 동일하게 진실한지를 알게 되면 그냥 따르라고 그랬지, 믿으라고 그런 게 아니야. 따르라 이거야. 왜 따르라고 그랬느냐, 그건 당신네들 주인공 안에 나와 더불어 같이 모두 일체 만물만생이 다 같이 한자리를 하고 있기 때문이지.
아까 병에 대해서도, 가난에 대해서도, 우환에 대해서도, 괴로움에 대해서도, 허무감에 대해서도 얘기했죠? 그것이 내가 그러는 게 아니라 내 속에 들은 고(苦) 덩어리에서 나오는 거니까 거기에 속지 말고, 모든 것은 나를 테스트하는 거니까 거기에서 나오는 거 거기에다가 놓고, 병이라고 생각하지 마라. ‘이렇게 공부할 수 있는 계기로 인도해주는 내 주인공이 감사하구나.’ 생각을 해라 이거야.
여러분이 한생각을 그렇게 한다면 이 오장육부 모든 세포에서 한마음 한뜻으로 바로 진화가 돼가지고서는 오히려 보살로 화(化)해서 수호신이 돼가지고 나를 보살피고, 보신(報身)이 돼가지고 보살피고, 보현보살(普賢菩薩)이 돼가지고 보살피고, 약사보살(藥師菩薩)이 돼가지고 보살피고 아, 이러니 내 몸은 어느 새 낫는 줄 모르게 다리도 낫고 어느 새 눈이 밝아져서 ‘이거 이런 줄도 모르게 이렇게 됐어?’ 하게 되죠. 이렇게 하게끔 된다면 여러분은 스스로 자비의 칼로써 즉, 자루 없는 칼이 우주 법계를 꿰뚫어서 죽은 세상 산 세상을 넘나들면서 나와 같이 괴롭고 외롭고 고독하고 가난하고 아프고, 그런 사람을 위해서 서로가 내가 돼 준다면, 그거는 전부 건질 수 있는 그런 여건이 여러분 앞에 주어진다는 얘깁니다. 우리가 옛날 얘기 하는 게 아닙니다. 지금 현실에 그렇게 연결이 돼서 돌아가고 있다는 얘기예요.
또 한 가지는 전에 어느 분이 날더러 이런 얘기를 했어요. “스님, 스님이 그렇게 잘 아신다면 왜 지금 노사분규나 또 학생들이 이렇게 벌낫 휘두르듯 하고 미친 듯이 이렇게 날뛰게끔 하고 나라가 위태하게 합니까?” 이러거든. 모르는 그 사람한테 내가 무슨 말을 해야 되겠습니까? 내가 부처님 법은 이러이러하니까 이렇다 이럴 수도 없고, 그래서 이런 말을 했죠. 나쁜 거 좋은 거 이런 거를 모조리 체로 쳐서 골라내려면 모든 국민들이 나쁜 거 좋은 거를 다 알아야 그때는 스스로 체에 쳐져. 그러니 자기가 나쁘면 국민들을 우롱하게 되고 국민들에게 나쁘게 된다면 스스로 체에 쳐져서 그냥 밀려서 저 땅으로 내버려지게 돼 있고, 알쭌하게 알맹이, 요 가루는 다 이렇게 체로 쳐지고 아, 그 무거리는 다시 찧어서 먹게끔 또 된다 이거야.
이것이 바로, 한 솥에 죽을 쑤어서 죽이 펄펄 끓을 때에, 부글부글 끓어오를 때에 그 방울방울이 나오지 않습니까? 그렇게 나오는 것처럼 모두 이 세상 돌아가는 게 그러한 거라. 이 나라에선 이렇게 나오고, 저 나라에서 저렇게 나오고 한 나라에서도 내가 잘나고 내가 못나고 이렇게 모두 팥죽 솥에서 팥죽 끓어오르듯이 오르는 겁니다. 그럴 때에 만약에 팥죽 쑤는 사람, 주걱을 든 사람이 있다면 그저 그냥 불룩하게 올라오는 건 치고, 안 올라오는 건 올리고 흥, 그거 주걱이 다 하는 거죠, 뭐. 그래서 그 주걱은 오르는 건 때리고, 안 올라오는 건 오르게 그저 평등하게 하면서, 체로 거르듯이 그냥 주걱으로 휘 휘 저어서 맛있게 끓여서 다 먹을 수 있게끔 해놓을 때까지는, 바람이 어디로 불든지 그것이 상관이 없다 이 소립니다. 그거는 오히려 바람을 불게 해야 체로 거를 수 있지 않나 이렇게 봅니다.
정말이지 이 권도법(權道法)이란, 대권도법(大權道法)이란 우리가 무시할 수 없는 참, 광대무변하고 묘하고 그렇게 귀중하고 보배인 것입니다. 누구는 부처님이 왜 자기가 태어난 데를 그렇게 망가뜨려 놓고 그랬을까? 예전에도 그런 소리를 들었습니다만 그거는 망하게 만든 게 아닙니다. 그 나라가 만약에 밥 짓는 솥이라면 그 밥을 짓는 사람들이 솥을 망가뜨린 거지, 부처님이 그 솥을 망가뜨린 게 아닙니다. 그래서 그 솥을 망가뜨려 봐야 ‘밥 지을 때 참 필요한 게 솥이구나.’ 하는 걸 알게 만들기 위한 그것도 길잡이의 한 방편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러니 우리나라의 문제도 여러분이 이 주관만 튼튼히 세워서 진실히 맡겨나간다면 다 해결이 되어진다고 봅니다. 주인공이라 하는 것은 찰나 찰나 돌아가기 때문에 전체 돌아가는 거를 주인공이라고 하는 겁니다. 당신이 없으면 뭐가 있겠습니까? 근본이 당신이지. 응? 이 세상에 아무리 위대하다, 우주의 어떠한 것이 위대하다고 할지라도 아주 조그맣고 하치못한 여러분의 마음의 근본이 제일 귀중하고, 보배인 것이고 높습니다. 그 조그마한 보이지도 않는 그것이 바로 우주를 삼킬 수도 있으니까 말입니다.
지난번에 말씀드렸죠? 달세계나, 은하계나, 어떠한 태양계도 바로 둘이 아닌 까닭에 지금 현재에 양 개체가 합류화된다면 전자와 원자, 양자가 같이 혼합이 돼서 중성자가 된다면, 그 위력이 우주를 집어삼키고도 남음이 있는 위력이 생긴다 이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자기를 발견하고, 자기를 승화시키고, 체험하고 이래서 둘이 아님을 깨닫고, 둘이 아니게 나툼을 깨닫고 그렇게 된다면, 둘이 아니게 나툼을 깨닫는다면 부처님이 말씀하시기를 육십이견(六十二見)도 그렇지만 삼십이응신(三十二應身)이 충만하다 하는 것도, 그건 숫자가 아니라 과거심(過去心), 현재심(現在心), 미래심(未來心), 삼세심(三世心)을, 삼세 대천세계(大千世界)를 넘나들면서 자유권을 갖는 것을 뜻합니다.
그런다면 지금 태양계나 어떠한 은하계도 그 중성자의 뜻이라면 은하계의 법왕이 내가 될 수 있고 태양계의 법왕이 내가 될 수 있어. 그래서 그 자료를 마음대로 가지고 응용할 수 있기 때문에 모든 구름과 안개도 전부 내 통신기가 되고, 바로 내 신장이 되고, 내 제자가 되고, 내가 되고 이렇게 해서 모든 우주 법계의 모든 것을 평등하게 해나갈 수 있는가 하면, 평등하게 하려니깐 아까도 주걱이 하듯 그 주걱으로써 모든 일들을 해나갈 수 있게끔 하기 위해서 바람도 일으키고, 바람을 일으켜야만이 체로 쳐지니까 말입니다. 이렇게 해서 그 국난을 면하게 하고 안타까운 걸 면하게 하고 또는 우리 국내의 재정이나 또는 국내에 어떠한 문제가 닥쳐오는 것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그러한 여건이 된다고 봅니다.
지금 현실의 얘기도 다 못하는데 옛날 얘기나 하고 있겠습니까, 응? 그러니 여러분이 우선적으로 내 몸과 내 가정, 내 사회에 나가서 일하는 거부터 자유자재할 수 있게끔 한다면 그것은 우주 법계를 탐험도 할 수 있고, 탐험이라는 것은 가고 오고 하면서 되는 게 아니라 내 마음의 거울로 비추어 본다면 전체를 볼 수 있고 그래서 심안의 눈으로써 본다 하는 뜻입니다. 그러니깐 가고 옴이 없이 내가 될 수 있고, 가고 옴이 없이 오고 갈 수 있고 그러기 때문에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주걱이 된다 이 소립니다.
그것은 주장자라고도 하지만, 옛날에는 주먹을 내밀고 주장자를 들고 이렇게 말을 하고 가르치기 위해서 방편을 썼지만, 옛날하고 지금은 다릅니다. 옛날에는 설법을 하고도 시조처럼 끄트머리에 읊고 그렇게 했지만 지금 시대에는 그렇게 해서는 될 수가 없다는 얘깁니다. 지금 우리 생활 속에서 실천을 하고 실천을 하면서 생각하고, 생각하면서 뛰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로 이렇게 변천해 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옛날에 무명 입었다고 무명옷 입는 타령들만 한다면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 그것으로는 미비합니다. 그전에도 얘기했듯이 옛날에는 명주로 바지 저고릴 해 입었는데 지금 실크로 아주 날씬하게 해 입고들 다닙니다. 그런데 그걸 부정하겠습니까?
사람들이 알아듣지도 못하는 말을 이렇게 하는 것은 그저 오븐이라면 음식을 해서 여러 가지, 오늘은 이 음식을 해 먹고 내일은 이 음식을 해 먹고 여러 가지로 다양하게 재료가 갖추어가지고 있으니까 그저 다양하게 해 먹을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 오븐 바깥에서 빙빙빙빙 그 음식 맛도 못 보고 음식도 해 먹을 수도 없고, 그 오븐 바깥에서 빙빙빙빙 이게 음식 해 먹는 오븐이라더라 하고선 빙빙 돌아봤자, 십년을 돌아봐도 이십년을 돌아봐도 마찬가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여러분의 그 톡톡한 자기의 보배를 가지고 있고 갖추어가지고 있는 질량을 마음대로 사용해서 음식을 해 먹을 수 있는 것이니까 닥치는 대로, 자기 소용 닿는 대로, 용도대로 전기도 많이 쓰려면 많이 쓰고 적게 쓰려면 적게 쓰는 용도가 여러분 앞에 닥쳐와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용도대로 쓰시란 말입니다. 여러분이 만약에 전력을 보지 못하고 전깃줄만 보고 전기 들어오는 것만 본다면 그렇게 해도 좋습니다. 그러나 전력이 있다는 건 믿으셔야죠. 안 그렇습니까? 전력이 있기 때문에 여기 불이 들어오고 전깃줄이 가설이 돼 있다는 걸 아셔야죠. 가설이 된 거, ‘아이, 저거 뭐 줄만 있고 뭐 전기, 저렇게 하는데 전력이 있긴 뭐가 있어?’ 이렇게 믿지 않으신다면 안 됩니다.
우리는 생활에서 연결이 되고, 생활에서 아주 맞돌아가고 있습니다. 죽느냐 사느냐도 맞돌아가고 있고 생사가 맞돌아가고 있고, 천당 지옥이 맞돌아가고 있고, 살고 죽고가 맞돌아가고 있단 말입니다. 맞돌아가는데, 맞돌아가기 때문에 귀신이고 선신이고 따로 없고, 중생 부처가 따로 없고, 천당 지옥이 따로 없고, 여자 남자가 따로 없고, 동서남북이 따로 없고 모두가 그러한 도리를 우리는 깨닫고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앞으로 우리들이 겪어온 그 하찮은 오백년 역사를 또다시 겪지 않고도 우리는 좀더 생동감 있고 좀더 위력 있고, 좀더 승화시켜서 앞으로의 역사를 가져오게끔 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됐으면 합니다.
오늘은 이걸로써 마치겠습니다.
2008-02-26 오후 1: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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