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사이 선사가 선종과 함께 茶 유입
‘끽다양생기’ 저술하며 음다 풍습 정착
시대마다 나라마다 역동적으로 변화된 다양한 모습의 음식문화는 그 민족의 정체성을 가장 잘 드러낸다.
일본은 위치와 지형적인 요인으로 북방과 남방의 양계문화가 들어와 복잡한 형식 문화를 띄고 있다. 또한 아시아 대륙의 최동단에 위치하고 있어 중국ㆍ한국의 문화적 요소를 많이 반영하고 있으며 차 문화 역시 이러한 맥락을 같이한다.
일본의 다도(茶道)문화는 일본을 가장 잘 표현하는 문화이다. 일반적으로 차가 일본에 유입된 시기는 8세기 초로, 당나라에 사절단으로 건너갔던 유학승들에 의해 전파됐다. 당에 갔던 승려들은 장안(長安)에서 학식과 견문을 넓히고 귀국할 때 많은 생활 방식과 차씨, 차 심는 기술 등도 가지고 들어온 차의 개척자들이다. 하지만 이때는 차를 마시는 풍토가 일반인에게까지 성행하지 않았고 귀족이나 승려들 사이에서만 유행하였다.
헤이안 시대(794~1192)는 일본이 당나라를 모델로 국가 체제를 성립하는 시기이다. 귀족의 모든 생활양식이 당나라 풍으로 변모하여 생활에 이용됐다. 음식도 일정한 형식을 갖추어 먹기 시작했다. 지식인과 유학승들은 당나라에 드나들면서 많은 문물과 불교 경전, 기타의 생활 용품을 가지고 들어왔다. 승려들의 왕래로 인하여 동물성 식품보다는 식물성 식품을 주로 먹게 되는 등 식생활에 변화를 가져왔다. 음차(飮茶)풍속도 승려들 중심으로 발전되었으며 마시는 방법은 중국 당나라 때와 마찬 가지로 차를 끓여 생강과 양념을 넣어 먹었다. 차의 양이 제한적이어서 주로 귀족과 일부 승려들만 마실 수 있었고 민간에까지는 보급되지 못 하였다. 이런 초기의 차 마시는 풍조는 견당사 폐지로 인하여 중국과의 왕래가 끊어지면서 정착되지 못하고 침체기를 맞이하게 된다.
다시 차 문화가 활기를 띠기 시작한 시기는 가마쿠라 시대(1192~1333)이후다. 남송(南宋)때 에이사이(榮西) 선사가 선종과 함께 차를 유입하면서 일본에 차를 마시는 풍조가 퍼져나갔다. 특히 에이사이 선사는 <끽다양생기(喫茶養生記, 1211)>라는 책을 저술한다. 차의 효능에서 역사까지 자세히 기술한 이 책으로 인하여 차를 마시는 풍습이 유행하면서 정착하는 계기가 됐다. 에이사이 선사는 14세에 출가하여 젊은 나이인 21살에 중국유학에 뜻을 두고 남송 때 절강에 가게 된다. 그는 강남의 명산대찰을 유람하면서 선종 사찰에서 지내게 되어 선가에서 차를 마시는 풍습에 대하여 직접 몸으로 체험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각 차 산지에서 차 만드는 일에서 마시는 것까지 음차 풍속을 만끽하면서 속속들이 배우고 익힐 수가 있었다.
이렇게 중국에서 24년을 보낸 에이사이 선사는 일본에 돌아와 자신이 체험하고 알고 있는 차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을 책으로 기술하여 차의 보급에 노력했다. 무엇보다도 승려인 그는 선종다도(茶道)의 이치를 깨달았다.
이처럼 일본의 차는 초기에 승려들의 영향으로 선종에 밑바탕을 이루게 됐고 계율 혹은 수행의 식량이 되었다. 남북조 시대에 이르면서 승려와 귀족들 사이에 차의 맛을 감별하는 모임이 유행하게 되었고 점차적으로 무사귀족 사회에서 호화로운 사교 놀이와 예능으로 발전하게 된다.
■이창숙(동아시아 차문화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