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적·생태적 상상력 풍부하게 활용
시인이랍시고 종일 하얀 종이만 갉아먹던 나에게
작은 채마밭을 가꾸는 행복이 생겼다
내가 찾고 왕왕 벌레가 찾아
밭은 나와 벌레가 함께 쓰는 밥상이요 모임이 되었다
선비들의 亭子모임처럼 그럴듯하게
벌레와 나의 공동 소유인 밭을 벌레詩社라 불러주었다
나와 벌레는 한 젖을 먹는 관계요
나와 벌레는 無縫의 푸른 구멍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유일한 노동은 단단한 턱으로 물렁물렁한 구멍을 만드는 일
꽃과 잎과 문장의 숨통을 둥그렇게 터주는 일
한 올 한 올 다 끄집어내면 환하고 푸르게 흩어지는 그늘의 잎맥들
문태준(1970~) 시집의 표제시인 ‘가재미’는 병원에서 암투병중인 어머니로 상징되는 ‘그녀’와 ‘그녀’의 아들로 상징되는 화자인 ‘나’가 교감하는 아름다운 시이다. ‘그녀’를 열 네 번이나 반복하며 ‘그녀’의 현재와 일생을 반추한다. ‘그녀’가 산소마스크를 쓰고 누워있는 모습을 바닥에 납작 엎드려 사는 ‘가재미’로 비유한다. 그 ‘가재미’ 옆에 화자인 ‘나’도 가재미로 나란히 누워 사랑을 표시하고, ‘그녀’도 ‘나’를 적셔준다. 병환중인 어머니와 아들의 아름다운 사랑의 방식이 나란한 수평의 관계로 완성된다. 이런 걸작을 만들어내는 문태준은 다른 많은 시에서 불교의 선적 상상력을 창작방법으로 동원한다. 그의 명작 ‘극빈’이 그렇다.
열무를 심어놓고 게을러
뿌리를 놓치고 줄기를 놓치고
가까스로 꽃을 얻었다 공중에
흰 열무꽃이 파다하다
채소밭에 꽃밭을 가꾸었느냐
사람들은 묻고 나는 망설이는데
그 문답 끝에 나비 하나가
나비가 데려온 또 하나의 나비가
흰 열무꽃잎 같은 나비 떼가
흰 열무꽃에 내려앉는 것이었다
(후략)
이 시는 섬세하고 아름다우며 열무꽃이나 흰 나비처럼 환하다. 그러면서 “뿌리를 놓치고 줄기를 놓치”는 게으름의 미학과 “발 딛고 쉬라고 내줄 곳이/ 선잠 들라고 내준 무릎이/ 살아오는 동안 나에겐 없었다”는 자성의 인식이 만나는 구조를 갖는다. 화자가 게으르기 때문에 현실적 실리를 놓쳐서 얻은 심미적 아름다움은 채소와 꽃으로 비유되며, 이 꽃마저 나비에게 주어버리는 ‘극빈’의 경지에 도달한다. 그런데 그 도달하는 방법이 “내 열무밭은 꽃밭이지만/ 나는 비로소 나비에게 꽃마저 잃었다”는 선적 상상이다. 그의 많은 시에는 사람과 벌레가 수평관계를 맺듯이 생태적 상상력도 풍부하다. 그중에 ‘벌레詩社’가 빼어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