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외되는 마음의 상처
K씨는 요즘 하루하루가 참으로 소중하게 느껴진다고 한다. 이제 70대 말인 그는 최근 들어서야 비로소 죽음을 제대로 준비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아무리 절에 다녔어도 막상 내생이 있다는 것이 실감나지를 않았어요. 그래서 늙어가는 것이 슬프기만 하고 화도 나고, 애들에게도 짜증을 많이 냈지요. 내가 바란 만큼 대접을 안 해주니까, 얼마나 소외감을 느꼈는지 말도 못했어요. 아무튼 늙는 게 서럽고 죽음이 솔직히 두렵고 무서웠어요.”
작년에 남편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아들은 어차피 새 집으로 이사를 계획하고 있었다. 홀로 되신 어머니를 모시고 살겠다고 했다. K씨는 혼자 살 엄두도 나지 않아 아들이 이사하는 새 집으로 함께 들어가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새 집에서 그를 위해 준비된 것은 단지 조그만 방 하나였다. 방에는 장롱 하나만 달랑 있었다. 평생 쓰던 물건과 가구들을 거의 다 가져갈 수 없었다. 새 부엌의 살림살이들은 수십 년 손에 익은 그릇들이 아니라 며느리 것이었다. 남의 집 같았다. 게다가 아들은 매일 늦게 들어오고 손자들도 학원에 가거나 자기 방에 들어가 컴퓨터만 하는 것이었다. 자신은 이 집에 아무 필요도 없는 존재 같았다. “정말 그 때 마음은 ‘어머니는, 할머니는 이제 곧 가실 분’이라는 취급을 받는 것만 같았어요. 나도 이제 쓸모없구나, 가는 날만 남았구나 하는 생각이 덜컥 들었어요.” K씨는 서러운 생각에 자꾸만 눈물이 흘러내렸다.
죽음은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
어느 날 K씨는 이렇게 좌절하며 죽음을 기다리고 살 수만은 없다고 결심했다. 우선 죽는 것이 끝이 아니고 바로 아기로 태어날 것이라는 부처님 말씀에 확신을 갖기로 했다. 그러자 본인의 업에 따라 새로 태어날 부모도 정해지고 운명도 정해진다는 사실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왕이면 좋은 집에 태어나고 싶었다. 죽을 때 마음 상태에 따라 다음 인연이 정해진다. 가능하면 맑고 선한 마음이 되어 모든 악업을 지우고 좋은 인연만 남기고 싶었다.
그러려면 이생에 지은 업들을 참회해야 할 것 같았다. 미워했던 사람들이나 잘못했던 일들을 떠올리며 절에 갈 때마다 하나하나 참회하기 시작했다. 아들 내외에게도 원망하는 마음을 바꾸어 감사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래, 요즘 부모 모시기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 자기들 새 집 이사하며 나를 받아준 것도 고맙지 뭐.’ 그랬더니 애들에게 미소가 지어지고 따뜻한 말이 나왔다.
K씨가 마음을 바꾸어 웃고 다니니 집안 분위기도 달라지고 다들 좋아하게 되었다. 며느리는 “어머니, 어머니는 정말 긍정적인 분이세요. 저희들을 참 잘 배려해 주시고요. 저도 나중에 어머니 같이만 되었으면 좋겠어요”하면서 주위에 자랑까지 하게 되었다.
K씨는 가끔 다음 생의 모습을 그려보고 있다. 어떤 부모일까, 형제들은, 하면서 선업(善業)을 쌓아야 한다는 생각에 봉사도 더 많이 하게 되었다. 매일 절에 나가며 즐겁게 생활하게 되었다. 물론 힘들 때도 많지만 ‘죽는 게 끝이 아니다. 다음 생이 기다리고 있다. 잘 살아야지’ 하며 스스로 마음을 다스려가게 되었다.
날마다 좋은날
한 생이 전부이고 끝인 줄 아는 중생의 마음은 늙고 죽는 것에 좌절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생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다음 생이 계속된다고 확실히 알고 있는 사람은 여유가 있습니다.
끝이 또 다른 시작이므로 오히려 더욱 열심히 정진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보살의 원력과 희망을 가지고 정진하여 하루하루, 한 생 한 생을 소중히 발전하는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날마다 좋은 날’은 바로 우리의 마음과 노력에 달려 있습니다.
■황수경(동국대 선학과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