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K씨, 어제 괜찮았어요?” 월요일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동료가 물었다. K씨는 영문을 몰라 “뭐가요?” 라고 되물었다. “뭐라니요, 우린 모두 배탈이 나서 혼났는데 K씨는 아무렇지 않았다는 거예요?” “아, 예” 하면서 비로소 토요일 회식자리가 생각났다.
모처럼 팀 단합대회를 한다고 해서 토요일 저녁에 일곱 명이 모였다. 팀장이 소문난 한식집을 알아 두었다고 자랑해서 모두 기대하게 되었다. 과연 들어가는 현관에 유명인 누구누구가 왔었다고 사진까지 걸려 있었다. 팀장이 호기 있게 한정식을 주문하였다. 질 좋은 음식재료와 맛에 비하면 값이 비싸지도 않다면서 또 자랑했다. 드디어 기다리던 음식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기대하던 맛이 아니었다. 야채는 신선하지 않고 전은 바로 만든 것이 아님을 금방 알 수 있었다. 나물도 냉장고에 오래 넣어 두었던 것이 틀림없었다. 찌개는 너무 짜고, 도대체 회사 앞의 늘 가는 조촐한 한식집보다 훨씬 못하였다.
묵묵히 공양하던 사람들이 점점 “이거 음식이 왜 이렇지?” 하며 한두 마디씩 하기 시작했다. 소개한 팀장도 표정이 굳어지고 있었다. 팀장이 종업원에게 “여기 일품이라는 묵은 김치 좀 주세요”라고 했더니 “묵은 김치는 다 떨어져서요, 오늘은 다른 김치인데요”하고 퉁명스럽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 서비스까지도 형편없는 것이었다. 이제 팀장은 앞장서서 불만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내가 속았다, 아니 예전엔 좋았을 텐데 경기가 어려워 변한 것이다 등등. 그 때부터 공양을 마칠 때까지 한 시간 동안 온통 밥상은 사람들의 불만과 실망, 원망의 소리들로 가득차고 있었다. 음식을 공양하는지 불평을 공양하고 있는지 모를 정도였다.
그 가운데 K씨는 달랐다. 한마디도 불평하지 않았다. 오히려 감사하는 마음으로 공양하고 있었다. 맛이 좋아서가 아니었다. 음식이 좀 이상하다는 것은 남들과 똑같이 알고 있었다. 음식공양을 할 때 항상 기도를 하며 마음을 내는데 그것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디에서 어떤 식사를 해도 공양이 나오기 전부터 “감사합니다, 부처님. 이 음식을 위해 수고해주신 모든 분들의 은혜에 감사합니다. 그 분들의 모든 업장이 녹아지고 발보리심하소서” 하고 마음속으로 발원한다. 동시에 몸속에 있는 자생중생 세포들에게도 “감사하게 공양하고 건강하게 부처님일 하자” 하며 마음을 낸다.
특히 음식이 맛이 없거나 입에 맞지 않을 때는 더 간절히 마음을 낸다. 분별심을 놓으며 수미산만한 업을 녹여야 하는 불자가 아닌가. 어차피 먹게 된 인연이라면 무조건 긍정적인 마음, 감사하는 마음으로 공양하자는 생각이다. 사실 북한이나 지구 다른 곳에서는 여전히 기아로 죽어가는 사람들이 많은데, 별 탈 없이 먹을 수 있다는 자체가 삼보의 지극한 은혜 아니겠는가. K씨는 그날 회식에서도 음식이 예상과 다름을 알아차리고 정신 차리며 마음을 다스려가고 있었다. 불평하는 구업(口業)은 커녕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으로 가득하였다.
다른 사람들은 전부 배탈이 났지만 K씨는 무사했다. “만일 음식을 잘못 만들었다면 그것은 만든 사람의 업입니다. 왜 저까지 거기에 얽혀 불평하는 악업을 지어야 합니까. 오히려 잘못한 이의 업을 안타깝게 여겨주는 관세음보살 같은 자비심은 못 가질망정요.” K씨는 그래도 배탈까지 피해갈 줄은 몰랐다면서 “일상의 모든 것을 한 생각 굴림의 공덕으로 몰록 녹게 하는 무위행을 실천하라”는 말씀을 되새기게 되었다고 한다.
■황수경(동국대 선학과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