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아함경>에 보면 부처님께서도 탁발을 나갔다가 공양을 받지 못하여 빈 발우 그대로 가지고 돌아오시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부처님께서 마가다국 어느 조그만 마을 주변에 있는 숲 속에 계실 때의 일이었다. 마을에서 젊은 남녀들이 서로 선물을 주고받으면서 즐겁게 노는 축제가 벌어지는 날이었다.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그날 아침에도 부처님께서는 마을로 탁발을 하러 들어가셨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흥겨운 축제에 마음을 다 뺏겨버려 아무도 부처님께 공양을 올려야 한다는 생각을 미처 하지 못하였다. 공양을 받지 못한 부처님께서 돌아오시는 길이었다. 신통력이 있는 악마가 부자처럼 모습을 바꾸고 나타나 말하였다. “부처님이시여, 오늘 공양을 받으셨습니까?” “받지 못하였다.” “그러면 다시 마을로 돌아가십시오. 이번에는 공양을 받을 수 있도록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자비로운 미소를 지으시며 그 제안을 거부하고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공양을 받지는 못했더라도
우리는 즐겁게 살 수 있으니
공부하는 기쁨을 음식 삼아서
거침없이 자유롭게 살아가리라.
수행자의 삶이란 신도들의 시물에 연연하여 옷이나 밥을 잘 입고 잘 먹기 위해서 사는 삶이 아니다. 깨달음의 큰길로 거침없이 나아가는 훤칠한 대장부의 삶이니 <선가귀감> 64장에서 말한다.
故曰 寧以熱鐵纏身 不受信心人衣 寧以洋銅灌口 不受信心人食 寧以鐵 投身 不受信心人房舍等.
그러므로 말하기를 “차라리 뜨거운 철판으로 몸에 두를지언정 신도들의 옷을 받아 입지 않을 것이요, 차라리 녹인 구리물을 입에 쏟아 부을지언정 신심 있는 이들이 주는 음식을 받아먹지 않을 것이며, 차라리 펄펄 끓는 가마 속으로 뛰어들지언정 믿음 깊은 사람들이 제공하는 집이나 거처를 받아쓰지 않을 것이다.”라고 한다.
시물(施物)에 대한 과보를 조심하도록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가르침을 내리신 <중아함목적유경(中阿含木積喩經)>을 보면 더 자세한 이야기들이 나온다.
“비구들이여! 힘센 장부가 시뻘겋게 불에 달군 철판을 몸에 두르는 것과, 신심 있는 사람들이 베풀어주는 좋은 옷을 받아 입는 것 가운데 어느 편이 더 좋겠느냐? 또 불에 달구어진 쇳덩어리를 입안에 넣는 것과, 신도들의 정성이 담긴 맛있는 음식을 받아먹는 것 가운데 어느 쪽이 더 낫겠느냐? 또 힘센 장부가 머리를 잡아끌어 시뻘겋게 타오르는 철판 위에 눕히는 것과, 신심 있는 신도들이 제공하는 좋은 침실이나 침구에 편안히 누워 있는 것 가운데 어느 편이 더 좋겠느냐?”
비구들은 “부처님이시여! 당연히 나중에 말씀하신 것이 훨씬 편하고 더 좋지 않겠습니까?”라고 대답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시뻘겋게 달군 철판이나 쇳덩어리로 육체에 고통을 주는 일은 죽거나 죽을 뻔 하는 고통을 받을 뿐 그 과보로 죽은 뒤에 지옥에 떨어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계법을 파계한 수행자가 욕심 때문에 부잣집이나 명문대가의 예배와 공경 공양을 받는 일은 영원히 지옥에 떨어져 거기에서 벗어날 기약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대들은 인과를 알고 언제나 이렇게 생각해야 한다. 우리가 출가하여 도를 닦는 것은 결코 헛되거나 쓸데없는 일이 아니니, 반드시 그 과보로 커다란 즐거움과 행복을 가져다주는 깨달음을 얻게 될 것이다. 이 깨달음으로 모든 중생을 제도하여 이 세상을 부처님의 세상으로 만들 것이다. 깨달음을 얻지 못한다면 온갖 시물(施物)이 다 커다란 빚이 될 것이니 축생의 몸으로 되갚아야 할 것이다. 이것이 세상의 이치로서 인과법(因果法)이니라.”
부처님께서 말씀을 마치시자 그 자리에 있던 60여명의 비구가 그 동안 잘못 살아온 자신의 생활을 크게 뉘우치고 환속하여 세속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서산 스님은 말한다.
梵網經云 不以破戒之身 受信心人 種種供養 及種種施物 菩薩 若不發是願 則得輕垢罪.
<범망경>에서 말하기를 “파계한 몸으로 신도들의 온갖 공양과 시물을 받지 않아야 하니, 보살이 이 원을 세우지 않는다면 경구죄(輕垢罪)를 얻느니라.”고 하였다.
경구죄는 대중 앞에서 참회를 하면 지었던 죄를 면죄 받을 수 있는 가벼운 죄를 말한다. 보살계에 십중사십팔경계(十重四十八輕戒)라는 열 가지 중요한 계와 마흔여덟 가지 가벼운 계가 있다. 열 가지 중요한 계를 범했을 때는 부처님 교단에서 쫓겨 날 수도 있는 무겁고 엄한 처벌을 받아야 할 바라이죄(波羅夷罪)가 성립하고, 가벼운 계를 범했을 때는 많은 대중들 앞에서 참회를 하고 대중들이 이의 없이 그 참회를 받아들이면 가벼운 처벌로 끝나게 되는 경구죄를 얻는다고 한다. 그 죄가 가볍더라도[輕] 맑고 깨끗한 부처님의 행을 오염시켰으므로[垢] 죄가 된다는 것이다[罪].
‘인생난득(人生難得)’이요 ‘불법난봉(佛法難逢)’이라 하였다. 사람의 몸을 받기가 어렵고 부처님의 법을 만나기 어렵다는 말이다. 그렇게 받기 어려운 사람의 몸을 받아서 그렇게 만나기 어려운 불법을 만났는데, 수행자가 도리어 파계하고 사람의 몸을 잃게 된다면 그 과보가 어떠하겠는가? 다시는 불법을 만날 기약이 없을 것이니, 그것이 참으로 애달픈 일이 되지 않겠는가?
삼악도에 떨어져서 오랜 세월동안 온갖 고통을 받아도 사람의 몸을 받지 못하는 중생들은 재물과 세속의 삶에 대한 지나친 욕심을 버리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오지 말라고 막는 이들이 없어도 하늘나라로 가는 사람들이 적은 까닭이 무엇 때문이겠는가? 세속의 탐욕스러운 마음을 자신의 중생들이 보물로 삼았기 때문이다. 아무도 원치 않는 삼악도에 떨어져 온갖 고통을 받는 사람들이 많은 까닭이 무엇 때문이겠는가? 이 몸뚱이와 오욕(五欲)의 즐거움을 중생들이 허망한 마음의 보물로 삼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옷과 맛있는 음식으로 보호하고 길러주어도 깨달음을 얻지 못한다면, 뒷날 허망하게 흩어질 이 몸뚱이란 수행자에게는 아무런 이익이 없는 법이다. 아무리 아끼고 사랑하여도 지수화풍의 인연이 흩어지면 홀연히 사라질 이 목숨이란 그렇게 오래 보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수행자라면 이 사실을 염두에 두고 머리에 붙은 불을 끄듯 열심히 정진하고 또 정진해야 할 것이다.
■원순 스님(송광사 인월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