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선 조계종성보문화재위원
지난 2월 10일은 또 다른 의미에서 국치일(國恥日)이었다. 한 나라의 수도인 서울 한 복판에 자리하고 있는 국보 제1호 숭례문이 어이없게도 불에 타 무너졌기 때문이다.
무너져 내리는 건물의 잔해를 지켜보면서 온 국민의 마음도 새카맣게 탔고 또한 대한민국의 자긍심도 무너져 내렸다. 누구를 탓하기에 앞서 이 시대를 사는 우리가 부끄럽기 짝이 없다.
화재 이후의 뒤처리 과정은 더욱 실망스럽다. 사회에 대한 개인적 불만으로 문화재 방화라는 어처구니없는 짓을 저지른 방화범이 “인명 피해는 없었고 문화재는 복원하면 되지 않느냐”고 강변하는 꼴이나, 200억을 들여 3년이면 복원할 수 있다고 서둘러 성난 민심을 달래려는 문화재청 관계자나, 복구비를 국민성금으로 하면 좋겠다는 대통령 당선자나 모두 오십 보 백보가 아닌가.
숭례문 중건을 위해 국민들은 자원봉사 문의를 하고, 네티즌들이 목재 찾기 운동을 하는 등 국민이 하나 돼 숭례문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런 거센 소용돌이 속에서 눈에 띄지 않게 우리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일이 나라 밖에서 이루어졌다. 영국 런던에 한국문화원이 문을 열었다. 유럽에서 파리와 베를린에 이어 세 번째 정식으로 개원한 것이다.
영국 문화원 본부, 캐나다 하우스, 영국미디어체육부, 내셔널 갤러리 등이 운집한 트라팔가에 아시아 국가의 해외문화원이 처음으로 들어선 것이다. 한류의 확산과 한국문화의 홍보거점이 마련된 것이다.
문화관광부는 올해 안에 인도ㆍ이집트ㆍ스페인 세 곳에 해외문화원을 추가로 개원할 예정이라 한다. 현재 12곳에 개원한 해외문화원을 2013년까지 총 30개소로 확충할 방침이며, 선진국 중에서 벗어나 중동, 아프리카 등 다양한 문화권별 진출을 위한 전략지를 선별할 계획도 세워놓고 있다.
또한 해외문화원을 중심으로 관광공사, 문화콘텐츠진흥원등 문화ㆍ관광 기관을 통일 장소에 입주시켜 문화거점화하는 코리아센터로의 전환도 꾸준히 추진 중이다. 현재 코리아센터는 로스앤젤레스, 베이징, 상하이 등 3곳에 운영 중이다.
이제 우리 문화도 우물 안 개구리를 벗어나 세계 속에 그 위상을 다져가고 있다. 참으로 반갑고 뜻 깊은 일이다.
21세기는 문화의 세기라고 한다. 세계 여러 나라는 자국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고 있다.
한 나라의 브랜드 가치를 결정짓는 데는 다양한 요소가 있겠지만 그 중심에는 그 나라가 지닌 문화가 있다. 전통문화를 바탕으로 한 새로운 문화의 창조. 이것이 미래를 가꾸는 핵심이다. 법고창신(法古創新)이 우리에게 주어진 새로운 화두이다.
숭례문을 되살리는 일, 그것은 단지 옛 모습 대로 건물을 짓는 데 있지 않다. 겉모습만 닮았다고 복원이 되는 게 아니라, 숭례문에 담겨 있던 역사상과 문화상을 살피고 이를 오늘에 되살리고자 하는 우리의 진실한 노력과 지혜가 함께 깃들어야 한다.
숭례문의 비극은 우리 시대의 참극(慘劇)이다. 그러나 절망하지는 말자. 오히려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야 하겠다. 그 첫걸음은 우리 모두가 우리 전통문화에 대한 인식을 새로이 하는 데 있다. 우리가 우리 것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아낄 때 그 가치는 더욱 빛나고 소중한 존재가 된다. 새로운 인식을 바탕으로 중지(衆智)를 모아 이를 제도화해야 한다.
이제까지 관행적으로 해왔던 일회성 선심공약에 그쳐서는 결코 안 된다. 철저하게 현재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그 바탕 위에 장ㆍ단기 계획을 마련하고, 과감하게 실행에 옮겨야 한다.
가장 기초적인 문제부터 차근차근 시작하여 법률적인 보완, 획기적인 예산확보와 탄력적인 운영, 전문인력의 양성과 활용 등 구체적인 사항을 실행에 옮겨야 한다.
문화는 국력이다. 그리고 문화는 국가의 품격이며 아울러 국민의 행복감을 고취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