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2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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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면에 빠지는 것은 작게 죽은 것과 같다”
三棄睡眠蓋 內心昏闇名爲睡 五情闇蔽 放恣支節 委臥睡熟爲眠 以是因緣 名爲睡眠蓋 能破今世後世實樂法心 及後世生天及涅槃樂 如是惡法 最爲不善 何以故 諸餘蓋情 覺故可除 睡眠如死 無所覺識 以不覺故 難可除滅
세 번째로 수면(睡眠)의 장애에 대해 말해보기로 한다.
만일 사람이 단정하게 좌선을 하면서 마음속으로 탐욕과 진심을 일으키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종일토록 제육의식이 혼미하여 수면에 집착한다면 이는 마치 껌껌한 귀신소굴 속에서 살 궁리를 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어떤 것을 수면이라고 하는가. 안으로 마음이 껌껌한 것을 ‘수(睡)’라 하고, 안이비설신 등 오근이 어두움에 뒤덮여 자기의 의식을 다스리지 못한 채 누워서 자는 것을 ‘면(眠)’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인연 때문에 수면의 번뇌, 즉 ‘수면개(睡眠蓋)’라고 말한다.
이 ‘수면개’야말로 껌껌하게 어두운 마음으로 세월을 부질없이 보낼 뿐만 아니라 금세와 후세에 진실한 법락을 괴멸시키며, 천상에 태어나고 열반을 증득하는 등의 즐거움까지 파괴한다는 점을 알아야만 한다.
수면은 모든 악법가운데서 가장 선하지 못한 악법이며, 여타의 번뇌와 비교했을 때 가장 하열한 번뇌인 것이다.
탐욕 등의 번뇌는 탐욕이 일어나는 순간 각성하면 제멸할 수 있지만, 수면은 껌껌하고 무지하여 인사불성 상태에 놓이게 되기 때문에 이는 마치 살아있다 해도 죽은 사람과 같다. 따라서 수면에 빠져들면 자신의 잘못을 털끝만큼도 깨닫지 못한다.
이를 두고 옛 큰스님은 “깊이 잠이 드는 것은 작게 죽은 것과 같다. 그러므로 수면 때문에 일생을 부질없이 보내는 일이 절대로 있어선 안된다”라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세존께서는 아나율타 존자가 수면에 빠져있는 상태를 꾸짖어 말하기를 “그대는 무엇 때문에 잠을 자느냐. 잠에 빠지는 것은 마치 소라나 조개처럼 한번 잠들면 일천년을 경과하듯이 영원히 부처님 이름조차 듣지 못하게 된다” 고 하셨던 것이다.

如佛諸菩薩訶睡眠弟子偈曰
汝起勿把臭屍臥 種種不淨假名人 如得重病箭入體 諸苦痛集安可眠 如人被縛將去殺 災害垂至安可眠 結賊不滅害未除 如基毒蛇同室居 亦如臨陣兩刃間 爾時云何安可眠 眠爲大闇無所見 日日欺 奪人明 以眠覆心無所見 如是大失安可眠
여러분은 항상 정진을 계속하면서 맹렬하게 반성하여 종일토록 수면에 빠지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이 몸은 마치 죽은 시체와 같아서 갖가지 더러운 물질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알아야만 한다. 크게는 대변, 소변으로 부터서 내지는 팔만사천 털구멍마다 벌레가 굼실거리기 때문에 몸 전체가 청정하지 못하다.
중생들의 몸이 청정하지 못한 것을 요약하면 다섯 종류로 분류할 수 있다.
첫 번째는 종자가 청정하지 못한 것이다. 이 몸은 부모의 사견의 바람으로 인해 음욕의 불길이 일어나 골수에 있는 기름이 흘러나와 정액으로 변하고, 서로 애욕을 경쟁하는 마음 때문에 애욕을 불러일으키는 종자가 된다.
여기에 해당되는 것이 능엄경에서 말하고 있는 “망상이 태를 이루고 흐르는 애욕이 종자가 된다”고 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이 몸이 태어나면서 갖게 되는 최초의 청정하지 못한 종자인 것이다.
두 번째는 태어난 처소가 청정하지 못한 것이다. 애욕의 종자가 엄마의 태속으로 들어간 이후에 결합하고 성숙하면서 열달동안 태의 감옥에서 성장하여 음문으로 부터 태어나는 것을 말한다.
이에 관해 성석론(成釋論)에서는 “이 몸은 연꽃도 아니고 전단향기를 따라서 나오지도 않았다. 단지 더러움 가운데서 자라나 음문을 통해서 출현했다”고 하였다.
세 번째는 외부모습이 청정하지 못한 것이다. 사람의 몸은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내외중간이 서른여섯 가지 물질로 화합해서 이루어져있는데, 그들 낱낱의 물질이 청정하지 못하다. 아홉 개의 구멍으로부터 더러운 물질이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모습은 마치 자루에 있는 물질이 새어 나오는 것과 같다. 이 문제에 관해서는 ‘능엄경’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네 번째는 자체의 모습이 청정하지 못한 것이다. 이 몸의 근본은 더러운 업을 따라 태어나서 더러운 물질에 의탁하여 그 성질이 본래 청정하지 못한 것이기 때문에 새롭고 청정하게 변화시키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 때문에 자체성질이 청정하지 못하다고 한다.
다섯 번째로는 최후까지 청정하지 못한 것이다. 이 몸은 업보가 다하여 사대가 흩어지면 끝내 그 어떠한 실체도 없는 공의 모습일 뿐이다. 이러한 이치로 몸을 관찰하면 이 몸은 끝내는 필연적인 죽음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이를 두고 끝까지 청정하지 못한 것이라고 한다.
이처럼 사유한다면 우리들 자신은 명칭만 있지 그 명칭에 걸맞는 실제라고는 없는 임시적 호칭에 불과할 뿐이다. 따라서 현재 있는 그대로가 허깨비변화와 같은 것이어서 실제있는 것이라고는 없는데, 어떻게 집착하여 떨쳐버리지 못하면서 종일토록 잠만 잘 수 있겠는가.
수면은 비유하자면 마치 사람이 결박을 당한 채 형장으로 끌려가면서 죽음을 앞두고 있는 것과도 같은데, 어떻게 편안하게 잠을 잘 수 있겠는가.
따라서 수행자라면 수면이야말로 매우 껌껌한 모습이어서 일체 보이는 바가 없기 때문에 사람을 속이고 총명한 정기를 빼앗아간다는 점을 분명히 알아야만 한다.
사람은 수면을 취하기 이전에 삼라만상이 목전에 나타나면 모든 것이 영력하고 분명하게 보이겠지만, 한번 수면에 빠져들게 되면 온 대지가 껌껌해서 자기의 마음을 덮어버리게 된다. 때문에 일체 보는 사람도, 보이는 대상도 없게 되는 등 큰 잘못이 일어나고 있는데 어떻게 거듭 수면에 탐착할 수 있겠는가.

如是等種種因緣 訶睡眠蓋 警覺無常 減損睡眠 令無昏覆 若昏睡心重 當用禪鎭杖 之
여기에선 수면의 허물을 알았다면 반드시 급하게 방편법으로써 물리쳐야 된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이와 같은 갖가지 좋지 못한 인연은 모름지기 수면 번뇌를 꾸짖어야만 하는 것인데, 수행자라면 스스로 경각심을 일으켜 삼계의 의보정보가 모두 똑같이 물속에 어린 달이나 허공에 피어난 꽃처럼 결국 실제하지 않는 무상이라는 것을 알아야만 한다”고 하였다.
수행인은 반드시 수면을 줄임으로써 혼침을 없애야만 한다. 수면은 마군의 세력이 지나치게 광대하기 때문에 스스로 분발하는 마음을 일으켜 엄격히 다스리지 않는다면 제멸하기가 매우 어렵다.
혼침한 수면으로부터 마음이 가벼워지기 위해서는 모름지기 올바르게 사유하여 법상을 분별해야만 한다. 내 마음을 코끝에 집중하거나, 두 눈을 크게 뜨거나 하는 등의 수행방법을 통해서 수면의 마군으로부터 항복 받을 수 있다.
만약 수면에 대한 마음이 지나치게 일어나면 마땅히 참선을 통해서 진압해야 한다. 또는 주장자로 두들기거나, 자신을 스스로 후려치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후려치게 하는 것 등도 수면의 마군을 제거하는데 좋은 방법들이다.
■중앙승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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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2-25 오전 10:0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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