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후반 영국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세계의 차 시장에 일본이 차 수출에 끼어들기 시작하였다.
1858년, 일본은 220년 동안의 긴 쇄국에서 벗어나 세계를 향해 문호를 개방하고 영국, 미국, 러시아 등과 통상을 체결하고 수출 품목으로 차(茶)를 내세운다. 세계 차 시장에 대한 아무런 정보가 없었던 일본은 영국에 녹차를 수출했다. 하지만 영국인을 비롯하여 유럽인들의 미각은 이미 홍차에 익숙해져 있어 녹차가 수출 상품에서 경쟁력을 갖지 못했다.
이때 영국은 일본의 개항장에 영사를 보내 차 생산에 관한 현지 조사를 시작해 정보를 수집한다. 차의 생산량과 차의 제조법 등 차 산업에 대한 전체적인 상황을 파악했다. 조사 결과 일본차는 영국에 적합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영국에 수출된 일본차는 주로 다시 미국이나 다른 나라로 수출됐다.
일본은 이러한 어려운 상황에서 세계 차 시장을 개척해 나가기 위해 많은 정책을 펼친다. 일본 정부는 차업 장려 정책을 펼쳐 녹차에서 홍차 제조 중심으로 하는 차 산업 구조를 바꾼다. 하지만 홍차는 일본 내에서 수요가 없었던 까닭에 만들어지지 않아 홍차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는 상태였다. 중국인 홍차 기술자를 고용하여 홍차 만드는 법을 배우고, 1874년 홍차를 만드는 법을 각 지방에 배포해 홍차 만들기를 장려하였지만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일본 정부는 정보 수집을 위해 각 나라마다 사람을 파견하여 홍차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여 세계의 차 시장에 계속 문을 두드린다. 산업 장려 요원을 인도의 홍차 생산지로 보내 재배에서 만드는 기술까지 직접 배워 일본에서 실험 재배하여 성공을 거두게 되자 교습소를 설치하여 홍차 생산 증대와 보급에 힘쓴다. 이러한 제품을 세계 만국박람회 때 마다 홍차를 출품했다.
하지만 호주에서 판매된 일본차에서 이물질이 발견되면서 팔리지 않았고 수출에 타격을 주었다. 일본 정부는 차업 조합을 결성하여 준칙은 만들어 차에 종사하는 제조자와 판매업자들에게 준칙을 지키도록 단속했다. 홍차의 품종, 거래 방법, 가격 등에 대하여 몰랐기 때문에 직접 수출하기보다는 외국인을 통하여 거래하여 이익을 많이 남길 수가 없었다. 외국상인들이 일본 각지에서 차를 사들여 일본에 차 공장을 설치하여 다시 가공하여 판매하기도 했다.
한편 19세기 중엽 이후 교통, 해운, 전신의 발달로 시장경제에서 가장 중요한 정보 수집이 발달하게 되었다. 1851년 해저전선이 도버해협에 설치된 이후 유럽과 신대륙만이 아닌 상해와 일본의 나가사키사이에 전신망이 연결되어 정보화 시대가 시작되었다. 오랜 쇄국으로 인하여 정보에 뒤떨어져 있던 일본은 영사관을 두어 민간상사와 기업 등과 긴밀한 관계를 맺으면서 통상정보를 교환하고 정보 수집활동을 했다. 영사관에서는 중국의 생산지와 차 생산량과 제다 방법에 이르기까지 자세히 보고했다. 홍차, 녹차와 다양한 종류의 차에 대하여 이름과 만드는 방법까지 영국과의 상거래에 필요한 내용을 자세히 기록하여 보냈다.
이처럼 일본은 영사관에서 시장조사와 현황보고는 물론 상거래 지침서까지 보내 홍차 수출을 위해 노력하였지만 인도, 실론의 홍차와의 경쟁에서 밀리게 된다.
■이창숙(동아시아 차문화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