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 가는 길에 눈이 오고 있었다. 봄에 눈이라…. 비행기에 탑승할 때도 눈발이 휘날렸다. 구름사이 푸른 하늘로 햇살이 내비치고 있는데…. 축복받은 여행의 조짐을 알리는 하늘에서 뿌려주는 꽃눈이라 상상하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여행길에 올랐다.
공항에 집합해서 느낌노트와 틱낫한 스님의 책 ‘기도’를 받았다. “이번 여행의 주제는 내가 웃으니 꽃이 피네요”라고 하시며 “자신의 틀을 넓히는 만큼 행복해지고 성숙되는 것”이라는 마가 스님의 법문으로 명상여행이 시작되었다.
출국 수속을 밟고 25번 게이트에 모였다. 옆자리에 있는 사람들과 인사를 하며 우리는 마음을 열어갔다. 대기실에서 그대로 앉아 눈을 감고 손바닥으로 자기 머리, 뺨, 팔 등을 만지면서 손에 닿는 다른 감촉들을 느껴보며 그 다름을 알아차리는 감각으로 걷기명상을 했다.
대기실은 넓고 길어서 걷기명상을 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곳곳에서 내딛는 고요한 한걸음 한걸음이 우리의 여정을 곱게 수놓아가기 시작했다. 여행으로 들뜨고 흥분된 기분대신 잔잔한 행복감이 밀물처럼 밀려왔다.
약 6시간이 걸려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에 도착했다. 숙소에 도착하자 자정을 훌쩍 넘긴 시간이었지만 우리는 일층 식당홀에서 눈을 감고 호흡을 느껴보며 잠시 명상을 배웠다. 다음날 아침에 발표할 숙제도 받았다. 나의장점 15가지 쓰기였다.
시간은 많이 늦었지만 방에 들어서니 풍성한 과일바구니가 반기고 있었고 낯선 여행지의 첫날밤이라 즐거움으로 피로한 줄 모르고 방짝 보살님과 열대 과일을 맛보며 담소를 나눴다.
귀여운 새소리에 잠을 깨어 아침공양을 마치고 짐을 챙겨 로비로 내려왔다. 시간이 있어 정혜심 보살님과 호텔 주변을 산책했다.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꽃들이 산들거리고 있었다.
순례를 나서기 전 호텔 로비에서 장성호 거사님의 나의 장점 15가지를 듣고 세 분의 강원 비구니스님과 선방스님 한 분께서 <자비경>을 노래로 지어 불러 주셨다.
스님께 이런 표현은 실례가 될지 모르겠지만 노래하시는 네 분의 비구니 스님은 너무 순수하고 사랑스러우신 모습이어서 달려가 꼬옥 안아드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왕궁과 국립박물관을 관람하기위해 버스에 올랐다. 창밖 풍경은 대사관과 호텔을 제외하고는 많이 낙후된 모습이었다. 그와는 달리 왕궁과 박물관은 한때 번영했던 문화와 세력의 유물들이 고스란히 잘 보존되고 있어 그 화려함이 캄보디아 서민의 삶과 대조적이었다.
씨엠립으로 떠나기 전 점심공양을 들었다.
공양을 하기에 앞서 식사명상을 배웠다. 눈을 감고 밥을 떠서 입에 넣고 천천히 씹었다. 어떤 맛을 느끼며 혀는 어떻게 움직이는지 이는 어떻게 음식물을 씹는지 잘 살펴보라고 마가 스님께서 일러주셨다. 주의를 기울여 식사를 하니 음식이 더 달고 맛있었다. 거기에 간간히 담소하는 공양시간은 화기애애했다.
공양이 끝나고 각지에서 혼자 오신 분들의 소개가 있었다. 멀리 제주도에서 오신 여연심 보살님, 서울에서 오신 전법심 보살님, 괴산에서 오신 모계수 보살님, 울산에서 오신 장순경 보살님. 함께 ‘만남’을 부르며 우리의 소중한 인연을 서로의 가슴에 물들였다. 다음으로는 부부가 함께 오신 분들의 소개가 있었다. 네 쌍의 부부가 오셨는데 서로의 장점 다섯 가지를 얘기하며 따뜻이 포옹하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씨엠립에 도착해 톤레삽 호수로 향했다. 우기였으면 물에 잠겼을 흙길을 먼지 풀풀 날리며 한참을 달렸다. 길가에는 가는 나무다리가 받쳐진 엉성한 집들이 늘어서 있었다. 한 평 남짓 나무 움막엔 3대가 살고 있는 집도 있었다.
풍요로움과 현대문명의 안락함에 길들여진 우리의 눈으로 보았을 땐 한없이 가난하고 불편한 생활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미소 지으며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행복지수가 세계10위 안에 든다는 캄보디아…. 더 많이 가졌으면서도 행복 보다는 불행을 더 많이 느끼는 우리 국민과 비교가 된다. 우리는 누구나 행복을 찾고 있는데 과연 그 행복은 어디에 있는 것인지, 어떻게 얻을 것인지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아시아에서 제일 큰 호수답게 톤레삽은 바다처럼 까마득한 수평선이 있었다. 작은 배를 타고 수상촌을 둘러보았다. 대부분이 베트남의 보트피플이라고 했다. 노 젓는 배를 타고 와서 과일과 음료수를 파는 아이들이 안쓰러웠다. 수상촌에는 학교도 있었고 심지어 배 위에서 돼지도 기르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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