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 출가한 예비 승려인 사미와 사미니들이 받는 열 가지 계율 가운데 ‘때가 아니면 먹지 말라’는 ‘불비시식(不非時食)’이라는 것이 있다. 음식 먹을 때가 아니면 수행자는 아무 것도 먹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절집에서 흔히 말하는 ‘오후불식(午後不食)’이 바로 이것이다.
천인(天人)은 아침에 식사를 하고 짐승은 오후에 먹으며 귀신은 야밤에 음식을 먹는다고 한다. 부처님께서는 점심때 한 끼 공양만 하셨다. 제자들은 부처님을 따라서 오후가 되면 음식물을 먹지 않았는데 이것이 인연이 되어 ‘불비시식’이란 계율이 생겼다.
그러나 부처님 당시에도 부처님의 아들인 라훌라처럼 어린 사미승이나 몸이 약하고 병이 있는 비구는 오후에도 음식물을 먹어야만 했다. 이런 스님들은 어쩔 수 없이 계를 지키지 못하게 되니 옛 스님들은 지혜롭게 방편을 베풀어 저녁밥을 약석(藥石)이라 하였다. 오후의 음식은 배불리 먹기 위한 것이 아니라 쇠약한 몸을 치료하는 약으로 생각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것도 부처님 법에는 어긋나는 줄 알아 약석을 받게 되는 스님들은 부끄러운 마음을 가졌다.
부처님의 율법에 비구로서의 삶은 가사와 장삼과 옷 세 벌에 만족하고, 아침에 죽 한 그릇 낮에 밥 한 그릇 두 끼니만 먹게 되어 있다. 때가 아니면 아무 것도 먹지 말아야 하는 것이 절집의 법도인데, 먹을 것을 아무 때나 찾아 먹고 좋은 옷만 골라 입는다면 뒷날 그 과보를 어떻게 감당해 낼 수 있겠는가? <선가귀감> 63장에서 말한다.
故曰 要識披毛戴角底 . 卽今虛受信施者是. 有人 未飢而食 未寒而衣 是誠何心哉. 都不思 目前之樂 便是身後之苦也.
그러므로 말하기를 “털을 덮어 쓰고 머리에 뿔을 이고 있는 소에 대하여 알고 싶은가? 신도들의 시물(施物)을 헛되이 받아쓰는 수행자의 뒷날 모습이다”라고 한 것이다. 어떤 수행자는 배고프지 않아도 음식을 먹고 춥지 않아도 옷을 더 껴입기만 하니, 참으로 어떤 마음으로 이러한고? 눈앞의 쾌락이 바로 뒷날의 괴로움이 된다는 것을 조금도 생각하지를 않는구나.
법창(法昌) 선사는 <치문경훈>에서 이르기를 “그대는 털을 뒤집어쓰고 머리에 뿔을 이고 있는 소에 대하여 알고 싶은가? 그것은 바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평소 남을 제멋대로 부려먹는 사람들이 그 과보로 받을 다음 생의 모습이니라. 그대는 혀를 뽑아내는 발설지옥(拔舌地獄)에 대하여 알고 싶은가? 그것은 바로 어리석은 중생들을 속이고 나쁜 길로 끌어들이는 사람들이 다음 생에 그 과보로 받을 지옥의 모습이니라. 살이 터서 쩍쩍 갈라지는 차가운 얼음 지옥과 모든 것이 푹 삶아지는 펄펄 끓는 가마솥 지옥에 대하여 알고 싶은가? 그것은 바로 신도들의 시물을 함부로 받아썼던 사람들이 다음 생에 그 과보로 받을 지옥의 모습이니라[爾要識披毛戴角底 便是爾尋常亂作主宰者是 爾要識拔舌地獄底 便是 惑迷途者是 爾要識寒氷 湯底 便是爾濫膺信施者是]” 하였다.
자수(慈受) 선사도 <치문경훈>에서 이르기를 “배고프지 않은데도 음식을 먹고 춥지 않은데도 옷을 더 껴입는구나. 때가 몸에 끼지 않았는데도 목욕을 하고 피곤하지 않은데도 잠을 자는구나. 도에 대한 안목이 밝지 않아 번뇌를 다 없애지 못하였으니, 어떻게 신도의 시주 은혜를 갚을 수 있겠느냐?[未飢而食 未寒而衣 未垢而浴 未困而眠 道眼未明 心漏未盡 如何消得]”라고 하였다. 서산 스님은 말한다.
智論 一道人 五粒粟으로 受牛身하여, 生償筋骨하고 死還皮肉이라 하니 虛受信施라 報應이 如響하니라.
<지론>에서 “옛날 어떤 수행자가 곡식 다섯 알을 무심코 땅에 버려 그 과보로 소의 몸을 받아서는 살아생전에 뼈 빠지도록 일해 주었고 죽어서는 고기와 가죽으로 그 빚을 갚았다”고 하였으니, 신도들의 정성스런 시물(施物)을 헛되이 받는 과보는 메아리의 울림처럼 분명할 것이니라.
<지론>은 인도의 용수 보살이 지은 <대지도론>의 준말이다. <대품반야경>을 해석한 것인데 구마라집이 번역하였다. <중론> 등 용수의 논저가 대부분 ‘공(空)’의 입장에서 정리된 것인데 반하여 이 저서는 ‘제법실상(諸法實相)’의 긍정적인 측면을 중시하여 보살이 갖추어야 할 실천적인 덕목을 강조하고 있다. 중국과 한국의 화엄종과 천태종 사상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 <대지도론>에서 나오는 교범발제( 梵鉢提) 비구의 이야기를 서산 스님은 하고 있다.
부처님의 제자 교범발제는 비구로서 아주 오랜 과거세에 남의 밭에 있는 곡식을 몇 알 따서 잘 익었는가를 알아보고는 그냥 땅에 버린 적이 있었다. 그 과보로 전생에 소로 태어나 밭의 주인인 농부의 집에서 살아서는 일을 하고 죽어서는 고기로 그 빚을 갚았다. 교범발제는 전생에 소로 살아서 전생의 버릇이 많이 남아 있었으므로 소처럼 항상 먹은 음식을 토해 올려 되새김질을 하였다고 한다. 작은 일의 인과응보(因果應報)도 이처럼 어김이 없으니, 신도들의 정성스러운 시물(施物)을 수행자로서 본분을 다하지 못하고 헛되이 받아쓰는 일은 뒷날 참으로 무서운 과보를 받게 될 것이다. <무소유>의 저자로 유명하신 법정 스님께서도 한국불교의 미래를 많이 걱정하시면서 이 부분에 대하여 말씀하신다.
“세상에 공것이란 결코 있을 수 없다. 공것이라면 우주질서인 인과관계(因果關係)도 뒤죽박죽이 되고 말 것이다. 오늘날 한국불교의 가장 큰 폐단은 놀고먹는 풍조에 있다. 놀아도 세 끼 밥을, 잠을 자도 세 끼 밥을 거저먹는다. 인간 생활의 가장 기본적인 구조가 이처럼 불합리하게 짜여 있기 때문에 무위도식(無爲徒食)하는 무리가 나올 수밖에 없다. 세상에서는 세 끼 밥을 못 먹어서 갖은 비극이 범람하는데 승가에서는 오히려 제때에 먹지 않는다고 걱정을 한다. 이와 같은 부조리가 개선되지 않고서는, 날이 갈수록 치열해 가는 현대 사회에서 한국불교의 종단에 종교로서의 기능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는 승가의 ‘백장청규(百丈淸規)’ 정신은 모든 인간의 기본적인 양심이자 생활태도이다”
일일부작(一日不作) 일일불식(一日不食),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는 청규로 유명한 백장 스님은 나이가 들었어도 쉬지 않고 매일 밭에 나가 일을 하였다고 한다. 이 모습을 보고 제자들은 노스님이 걱정이 되고 안타까워 하루는 일하는 연장을 감추었더니, 그 날은 굶었다고 한다. 맑고 깨끗한 수행자라면 시물(施物)을 두려워하고 백장청규의 정신을 이어받아 올곧은 수행자로서 본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원순 스님(송광사 인월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