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2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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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봄처럼 여유있게 어깨를 쭉 펴고 사세요!
나오는 대로 자기 안에다 놓고 행하면 그대로예요!

업과 습이 밝게 녹아지려면


메말랐던 가지에 새싹이 움트고 만물이 소생하는 봄입니다. 스님께서는 항상 봄처럼 밝고 따뜻하게 살라고 하십니다. 그렇지만 예전부터 쌓아 온 습이 순간순간 나올 때는 ‘내 공부가 이것밖에 안 되는가.’ 하고 물러서는 마음이 생깁니다. 어느 한 가지 경계를 넘고 나면 또 다른 습이 나오고, 몰랐던 새로운 습이 나오기도 하고 그래서 항상 맡기고 되놓습니다만 그런 것들이 상당히 힘이 듭니다. 봄 햇살에 어둡고 침울한 마음들이 다 녹아지듯 제 안의 업과 습이 밝게 녹아질 수 있는 방법을 설하여 주십시오.


여러분과 더불어 같이 봄을 맞이한 듯 날씨는 따뜻해진 것 같습니다. 될 수 있으면 우리 공부하는 사람들이, 사철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한마음에 봄을 지니고 항상 봄처럼 그렇게 여유 있게 어깨를 쭉 펴고 사실 수 있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습과 업이 많아서 녹이기가 힘들다고 했는데 힘들 것이 하나도 없어요, 내가 생각할 때는요. 지워서 없애는 게 아니고 내가 지금 생활하고 나한테 닥치는 것을 그대로 공부의 재료라고 생각하셔야 합니다. 그걸 끊어 버렸다고 해서 안 나오는 게 아닙니다. 자꾸 나와야 내가 습득을 하고 내가 알게 되고 내가 경험을 하고 이렇게 되는 거지요. 만약에 그게 나오지 않는다면 그건 목석이 되는 거죠. 그러니까 습이 나온다고 애를 쓰지 마시고 습이라고 생각지도 마세요. 나오는 대로 그대로 거기 놓고 행하면 그대로 되는 거지 무슨 습이 이렇게 많아서 내가 이걸 없앤다, 이걸 끊어야 되겠다 합니까. 이런 생각조차도 하지 마세요. 습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습인 것이지, 습이라고 생각 안 하면 습이 아닌 겁니다.
여러분은 살아오면서 그 습이란 말을 아주 쉽게 자꾸 하는데요, 나는 그래요. 살아 있는 동물이라면 어떠한 거든지 보면, 들으면, 하면 할 수 있는 그러한 재능이 있다고 볼 수 있겠죠. 그런데 그것을 나쁘고 좋고 그것만 아니까, 나쁜 거는 하지 않고 좋은 것만 합니다. 또 나쁜 거를 불의에 당했을 때 그거를 그대로 그대로 그냥 ‘아, 이 주인공 놈이 다 그대로 하고 그대로 해결하고 그대로 넘어가는구나!’ 그냥 이렇게 편리하게 생각하세요. 그 이름에 그냥 막혀 가지고 쩔쩔매지 말고요. 좋은 생각이 나와도 습이라 그러는 거예요, 이거는. 아니, 좋은 생각을 해서 습이라고 안 그랬더라면 좋은 행이 그대로 나오고 좋은 경사가 있을 텐데도 불구하고 ‘요건 또 습이구나. 요거, 이거!’ 이렇게 생각을 하기 때문에 그냥 습이 되는 거죠.
내가 항상 얘기하죠. 그 뭡니까? 저 무학 대사가 꿈 해몽한 이치요. 이성계의 꿈 얘기 한 거 있죠? 만약에 무학 대사가 그 꿈을 그대로 나쁘게 해석을 했다면 나쁘게 됐을 겁니다. 그런데 좋게 해석을 하고 좋게 이끌어 주니까 그냥 지금 말로 대통령이 되지 않았습니까? 그러니까 사람들이 만약에 꽃이 활짝 피었다가 그냥 우수수 다 져 버리는 꿈을 꾸었다고 한다면 ‘아이구, 이젠 죽었구나! 이젠 죽었어!’ 하고 모두 탄식을 할 겁니다, 아마.
그래서 꿈도 생시고 생시도 꿈이니 절대로 꿈이 이렇다고 해서 언짢아할 일이 없고, 바꿔서 자꾸 써라. 구정물이 들어오면 바꿔서 새 물로 쓰고 이렇게 자꾸, 맛없는 걸로 들어오면 맛있는 걸로 바꿔 먹어라. 이게 자유자재입니다. 그런데 왜 자유자재하질 못합니까? 돈이 들어서 자유자재 못합니까, 누가 막아서 자유자재 못합니까? 그렇게 하라는데도 어떤 양반들은 꿈을 꾸고선 “아이구, 꿈을 이렇게 꿨으니까 이거를 어떡하면 좋습니까.” 이러는 거예요. 이렇게 답답할 수가 없어요, 그거 한 생각이면 바꿔 쓸 거를 말입니다. 하여튼 지금 말하고 지금 얘기하고 그러는 사람이 그 주인공 놈이니까, 그냥 주인공 놈이 과거도 살았고 현실도 살아나가니까 그저 과거 것이든 현실 것이든 그냥 닥치는 대로 그냥 ‘주인공, 네놈이 해결해!’ 하고 다 거기다 맡기세요. 내가 있다고 세우지 말고요.

맡겨도 되지 않는데…


스님께서는 모든 문제를 만들어 낸 그 자리에 맡기기만 하면 그 자리에서 해결이 난다고 하셨는데 저는 그게 잘 되지가 않는 것 같습니다. 왜 맡겨도 일이 해결이 되질 않는 것인지요?


처음에 공부를 시작하는 분들 중에 “아, 주인공에다가 관했는데도 안됩니다. 잘되다가 안됩니다.” 이러거든요. 세상에는 사람이 태어났어도 그대로 있는 사람이 없어요. 물건도 그대로 있는 물건이 없고요. 말도 한마디 했으면 그대로 그걸로만 고정되게 말을 하는 것도 없고요, 보는 것도 그렇고 모두 일체 만법이 다 고정됨이 없죠. 그런데 어찌 되는 것만 되고 안되는 거는 없으리까. 왜냐하면 안되는 것도 있어야 그 시련 속에서, 되는 거 안되는 거 그 가운데서 깨닫죠. 자기가 작업을 하면서 그 한 구멍으로 들고 나는 데에 지금 행을 하는 겁니다. 그 행이 없다면 자기 성품을 발견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 작업이라야만이 자기 성품을 발견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세상에 나와서 여러분이 하고 있는 것을 여러분한테 되놓아라.’ 이 소립니다. 여러분이 모두 하고 왔지요, 그리고 여러분이 지금 하고 있지요. 그런데 어찌 딴 사람한테 미루어서 또 딴 부처님을 찾고 이러겠습니까? 여러분이 행하고 저지르고 잘하고 못하고 이런 것이 여러분이 과거로부터 행을 하고 여기까지 왔으니까, 또 지금 하고 가고 있으니까 모두 벌어진 겁니다. 예를 들어서 여러분도 자식들에게, 자손들한테 이렇게 말을 하지 않겠습니까? “네가 저지른 거는 네가 거두어라.” 하고 아마 훈계하실는지도 모르죠. 대신해 줄 수가 없는 도리가 많죠? 어떻습니까? 그런데 여러분이 저지르고 여러분이 행하고 과거로부터 행하고 왔던 거 지금도 행하고 가는 거, 그걸 여러분이 하고 있지 누가 딴 사람이 하고 있습니까?
여러분이 가다가 발부리를 차여서 피가 나도 여러분이 각자 “아이고!” 하고, 자기가 그 순간에는 자동적으로 보현신이 돼서 자기를 어루만진단 말입니다. 딴 사람이 대신 와서 아파 줄 리가 없죠. 딴 사람이 만져 주기는 할지언정 아파 줄 수는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모든 생활 자체에서 아프고 좋고 나쁘고 이런 모든 것을 여러분이 겪고 살아가고 있으니까, 행하고 있으니까 여러분이 행한 거 여러분한테 모든 것을 되놓고 ‘네가 잘못했으니까 네가 해결해라. 네가 잘못했으니까 네가 거둬라. 너만이 거둘 수 있어!’ 이렇게 놓는 겁니다. 거기에서 숙달이 되고 거기에서 미묘한 법을 발견해 낸다면 감응이 되겠죠. 이것이 차차차차 감응이 돼서 커진다면 이게 바로 성품을 발견해 내는 도립니다.
무조건 “나는 주인공에 관(觀)했는데도 왜 안되느냐?” 하시는데 하! 진짜로만 했으면 왜 안되겠습니까. 만날 자기 이외의 주인공으로 아니까 그렇죠. 진짜 자기라는 걸 어찌 모릅니까? 자기가 하고 자기가 거두는 걸 어찌 모릅니까? 세계적으로 종교를 모두 믿고 있는데 가만히 보니까 전부 타신에게 기도하고 상대를 보고 믿고 찾게끔 그렇게 배우고 가르치고 있어요.
그러니 우리가 물속에서도 헤매고 물속에서 나오려고 그렇게 안간힘을 쓰고 회오리바람이 불고 파도가 치고 이러는데도 죽고 사는 걸 헤아리지 못합니다. 또 자식을 낳고 알을 낳고 자기 몸을 던져서 죽어 버리고 이러는 시련을 겪으면서 진화가 돼서 땅 위로 올라왔어도, 땅 위에서도 지금 물주머니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이런 형국이 돼 있는데도 불구하고 딴 형상을 믿거나 딴 데 이름을 믿거나 허공을 믿거나 이렇게 하겠습니까? 만약에 그렇게 한다면 부처님께서도 ‘공덕이 하나도 없느니라. 이득이 하나도 없느니라.’ 했습니다. 그래서 ‘너부터 먼저 알아라.’ 한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을 먼저 알게 하기 위해서는 도저히 그 방식이 아니라면 안 되기 때문에, 구멍은 한 구멍이니까 그 한 구멍에다 놓고 가게 하지 않으면 안 되죠. 주인공 탓을 하지 말고 가만히들 생각해 보세요. 즉 자기 탓이죠. 주인공이라는 것은 이름입니다, 이름! 여러분의 이름! 왜냐하면 고정됨이 없이 끝없이 돌아가니까. 보는 거 듣는 거 모두가 고정됨이 없으니까 주인공이라고 했던 겁니다. 그래서 모두 주인공 죽는 법은 없죠.
이 주인공에서 나오는 거 주인공에다 되놔라. ‘네가 저지른 거라면 네가 해결을 할 수밖에 없잖아! 네 머리가 잘못 돌아가서 잘못된 거라면 너만이 해결할 수 있다.’ 하고 그 모든 거를 거기에 맡겨 놓는다면 이 몸속에 있는 모든 의식들이 털구멍을 통해서 나가서 다 조절을 하는 겁니다, 둘로 보지 않으니까. ‘주인공!’ 하면 전체 거기 하나로 묶어져 있는 거니까 말입니다. 개별적인 자기를 내세우는 게 아니라 포괄적인 자기가 되는 거죠. 몸속의 생명의 의식들도 모습들도 다 자기가 되는 거죠. 주인공 하나로 말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성품의 발견을 할 수가 없어요. 그렇지 않다면 감응도 될 수가 없고요. 만약에 타신을 찾아서 어떠한 일이 생긴다 보인다 들린다 이런다면 그건 미치는 발광쟁이가 되죠. 내면에 자기 주장자에 의해서 공부하는 사람들은 절대적으로 잘못되는 일이 없어요. 정의정당하게 생활을 하게 만들죠.
그러니까 여러분이 “나는 관했는데도 왜 안됩니까? 나는 관하는데도 안됩디다.” 이런 말은 절대 하지 마세요. 왜냐하면 자기가 자기를 모르고 주인공 따로 있는 줄 알고 그렇게 재주를 부리는 짓을 하니까 그게 안되죠. 진짜로 자기인 줄 알아야 됩니다, 진짜로 말이에요. 그래서 과거에 살던 자기가 현실에 사는 자기와 둘이 아닌 주인공이 바로 자기를 이끌어 나가는 겁니다. 이끌어 나가게 만드는 거죠.
고인 물을 그냥 둔다면 썩어 버리지만 자꾸 새 물이 들어오고 고인 물이 나가고 이렇게 한다면 그 물은 아주 청수가 되는 겁니다. 마음을 내지 않는다면 목석이 되는 것이고 또는 발전이 없어요. 그러나 마음을 내면서 자꾸 굴리면 바로 물리가 터지고 지혜로운 생각이 자꾸 넓어져서 자기의 성품을 발견하는 거죠.

공부 욕심은 필요할 것 같은데…


스님께서는 이 공부를 해 가면서 잘해야 되겠다, 빨리 해야 되겠다 이런 생각까지도 다 놓으라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걸 놓으면서도 나름대로 욕심은 있어야 되지 않나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그리고 일체를 맡겨 놓고 관하여 보는 그 수행에 있어서 어떤 대목에서는 아주 편한 마음으로 지켜보라고 하셨고 또 한편으로는 그 관하는 것을 몸부림치듯이 하라고 표현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가르침 주십시오.


욕심이 있고 없고 간에 자기 분수대로 자기가 능력대로 지금 살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죠? 거기에는 자기의 능력의 한계가 있기 때문에 더하고 덜함도 없겠죠. 지금 자기 능력대로 살고 있는 겁니다. 그 능력대로 살고 있는 그 자체를 그대로 자기가 하고 있고 자기가 살고 있으니까 아까도 얘기했듯이 주인공, 자기한테 되놓는 겁니다. 현재 자기가 과거 자기한테 그냥 다 놓듯이, 현재 자기와 과거 자기가 둘이 아니게 바로 삼심(三心)이 일심(一心)으로 공(空)했으니까 주인공입니다. 그러니 자기가 하고 가는 거 자기한테다 놓는다는 겁니다.
그러나 더할 것도 없고 덜할 것도 없이 그냥 자기가 하고 자기가 그냥 하고 있는 자체, 자기가 공했으니까, 주인공이니까 그대로 그대로 놓고 아주 편리하게 편안하게 그대로 ‘네가, 네놈이 하는 거니까 너만이 해결할 수가 있고, 너만이 잘못된 거를 다시 바꿀 수가 있고, 너만이 건강하게 이끌 수가 있고, 너만이 화목하게 이끌어 갈 수 있다.’ 안 그렇습니까? 아주 냉정하게 판단해 보십시오. 자기가 살고 있고 자기가 해야 할 일이고, 자기가 화목을 도모해야 하고 하는 것이 바로 자기인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자기 주인공을 얍삽하게 보진 마십시오, 포괄적인 자기니까요.
그리고 또 관하는 것에 대해서 물었는데, 아이, 생각해 보세요, 글쎄. 몸부림 안 치게 생겼나. ‘네놈으로 인해서, 네놈으로 해서 이게 전부 저질러진 일인데 네놈이 해결하지 않으면 어떻게 해? 네놈이 있다는 것을 알려 주는 것도 너 아니야!’ 하고서 몸부림치지 않으면 어떡할 겁니까? 그리고 아주 냉정하게 판단해 보세요. 뭐 딴 놈이 거기 개재하는 게 아니니깐요. 과거에도 그놈이 살았고 현재에도 그놈이 지금 하고 가는 겁니다. 그러니까 주인공 놈이, 그놈이 지금 모두 하고 가는 거죠.
내가 여러분한테 가르칠 때 부처님더러 요놈 조놈 하라고 가르치는 게 아닙니다. ‘제놈이 한 거니까 제놈한테다가 모든 걸 맡겨라!’ 요거 작업부터 해야만이 정말 신성한, 청정한 부처가 나온다 이런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밥도 안 해 놓고 밥을 먹어서 배부르려고 한다면 되겠습니까? 다 씻어서 밥을 해서 다 해 놓고 숟가락으로 떠먹을 때, 떠먹는 과정도 있어야 되겠죠? 그래야 떠먹을 때 맛을 알죠. 이건 해 놓지도 않고 먹으려고만 한다면 어찌 그게 먹어지겠습니까?
여러분, 그저 살아생전에 어차피 이 세상에 나온 것을 한번 선의 칼을 뺀 거와 같이 생각하시고 절대로 그냥 끼울 수는 없다고 모두 생각하십시오. 그래서 몸부림치면서 ‘네가 그렇게 진화시켜서 이렇게 인간으로도 형성시킨 거는 감사하지만 전부 일을 저질러서 요렇게 살게 만들어 놓은 것도 너고 물주머니에서 한 발짝이라도 나가게 하는 것도 너 아니야.’ 하고선 그냥 그저 제놈한테다 제가 한 일 다 놓으세요. 그런데 안 놔진다고 그러죠? 사회에 나가서는 뭐 어떠니 저떠니 하고 안 놔진다고 그러죠? 지난번에도 내가 그런 소릴 들었는데 안 놔지는 게 뭐 있습니까? 그대로 하는 거지. 그대로 생각 없이 그냥 닥치는 대로 그대로 해 나가라는 거지, 누가 잘한다 못한다 이거 따지고 살랍니까? 회답을 아주 말끔하게 씻어지게 하진 않았지만 공부한 것도 말끔히 씻어져서 공부가 된 것이 아니니까 그렇게 되겠죠. 그러니까 그저 잘 그렇게 해 보신다면 좋은 소식이 있을 겁니다.

관심과 사랑도 착인지요?


저희들이 생활하는 과정에서 늘 가족이나 회사나 나라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사랑을 하고 아껴야만 되는 그런 경우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부분들이 스님께서 말씀하시는 착이라는 것과 다소 혼동이 되기도 합니다. 물론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맡기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더욱 잘 알고 있습니다만 관심과 사랑도 착인지 그것에 대해서 가르침 부탁드립니다.


글쎄, 자식들 때문에 안달을 하든 또는 사업 때문에 안달을 하든, 정치 때문에 안달을 하든그걸 자기가 왜 걱정을 해요? 그렇게 안달하고 사는 것이 바로 주인공 놈이 하는 거라니까요. 어때요? 누가 그렇게 하지 말라는 사람이 있나요, 그렇게 하라는 사람이 있나요? 닥치면 닥치는 대로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는 거는 당연하겠지요. 그러나 이 주인공을 믿고 하는 사람들은 열 번 뛸 거 한 서너 번밖에 안 뛰거든요.
그대로 주인공이 하는 겁니다. 왜 자기가 괜히 끼어들어서 주인공 따로 또 두고 그럽니까. 그럼 자기 따로 있고 주인공 따로 있는 게 되잖아요. ‘자기가 하는 거 그대로 습이 돼서 이렇게 뛰는구나! 이거 주인공한테 다 놓지 않고 이렇게 뛰는구나!’ 이렇게 생각하지 마세요. 그냥 하고 있고 뛰고 있는 그 자체가 바로 그냥 주인공이 하는 겁니다. 이해가 안 가요? 그냥 애들을 위해서 걱정하는 것도 또 사업을 위해서 뛰는 것도 그대로, 그대로 하는 것이 주인공 놈이 하는 거라니까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러니까 주인공 놈이 하는 것인데, 예를 들어서 채찍질을 하기 위해서 ‘주인공, 이렇게 지금 하고 가는 일, 너만이 해결할 수 있고 잘 이끌어갈 수 있잖아!’ 하고 거기다가 되놓는 것은 자기더러 자기가 하는 소리예요. 그러니 현재 자기를 주인공하고 둘로 보질 말아요. 둘로 본다면 ‘나는 이렇게 뛰는데, 주인공한테 이렇게 맡기지 않고 나는 뛰는데….’ 이렇게 생각이 들거든요.
주인공이 그렇게 뛰고 지금 가고 있지 않습니까. 몸뚱이는 주인공 시자니까. 마음의 시자거든요. 그러니까 마음과 몸뚱이와 생명과 셋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주인공이라고 했으니까 합쳐서 주인공입니다. 주인공이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한다고 해서 나는 착이 있고 이렇게 놓지를 못하고 뛴다고 생각질 말고, 그대로 주인공이 그렇게 하고 있다는 거를 그냥 시인하고 넘어가라 이 소리예요. 그러면 아무 걱정이 없잖아요. 둘로 볼 것도 없고요.

재사 지내는 도리에 대해서


선원에 다닌 지 얼마 되지 않은 신도입니다. 다른 절에서는 재사를 지낼 때 의식도 그렇지만 재사 상도 많이 장만을 해서 지내는 것 같던데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지요? 재사 지내는 도리에 대해서 설하여 주십시오


여러분의 마음이 문제입니다. 스님들이 절에서 보통 이렇게 차려 놓으면 스님들이 어느 만큼 차려 놨다는 걸 영령들이 알고 있는 겁니다. 그럼 영령들이 들어와서 뭐부터 보느냐 하면 스님들 마음부터 보거든요. 마음부터 읽는단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스님들이 상 차려 놓은 거하고, 돈 얼마 가져온 거하고, 돈 얼마 놓은 거 그것만 알고 있다면 거기 들어와서 그렇게만 알겠죠, 뭐. 영명(靈明)하죠.
그러나 이 마음 도리를 공부하는 사람들의 목탁 소리는 우주 법계에까지 들립니다. 그래서 문이 탁 열렸으니깐 상을 안 차려 놨어도 그렇고 차려 놨어도 그렇죠. 모든 게 내 거 아님이 없고 하나도 버릴 게 없는데 아니, 그 영령들이 그 스님들의 마음에 탁 가서 하나가 됐는데 뭐를 바라겠습니까? 바랄 게 하나도 없죠. 그러니까 그대로 거기 한데 합쳐져도 두드러지지 않고 자동적으로 풀려서 제도가 돼도 줄지 않는다 이거죠.
이 도리를 모르는 사람들은 제사 지낼 때, 여기서 천도재를 지낼 때 물건을 많이 사다가 상에 온통 쌓아 놓고 지내야만 잘 지내 주는 걸로 아니 이 노릇을 어떡합니까? 그렇다고 해서 물건을 안 사면, ‘아이, 물건도 안 사는데 뭐 돈 이것만 해도 되고 안 내도 되지, 뭐.’ 이렇게 생각을 한다 이겁니다. 그거는 절대 아닙니다. 왜냐하면 부모가 모습을, 항상 얘기하듯이 일차적으로 그렇게 독사의 무명을 타고났거나 또는 어떠한 짐승의 모습을 가지고 이 세상에 태어나서 헤매고 있는 그런 지옥고를 범했을 때, 이 공부 하면서 그것을 면해 주기를 바라고 모든 거를 합니다. 사람의 모습만 가지고 나오는 게 아니라 자기가 산 대로 지은 대로 콩 나고 팥 나듯이, 그렇게 가지각색으로 모습을 쓰고 나오는 것이 지옥고입니다. 오간지옥고니 하는 그 오간지옥이란 것은 땅속에서 파먹고 땅속에서 바깥에 나오지도 못하는 것이 오간지옥입니다.
그러니 그 지옥고에서 벗어나려면 단 하나의 그 마음, 즉 영령을 탁 건져서 내 마음과 둘이 아니게 해 놓는다면 금세 제도가 되는 거죠. 인간이 된 거죠. 그렇게 될 수 있게끔 하기 위해서 여러분이 천도재를 지내고 또 지내고 또 지내게 되는데 어머니의 아버지의 형제의 그 무명을 벗기기 위해서 지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건너가지 못하는 것을 건너가게 하기 위해서 지내는가 하면, 한 발자국도 떼어 놓지 못하고 업식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사람을 건지려고 지내기도 합니다.
그런데 영령들의 의식은 체가 없습니다. 체가 없기 때문에 열도 되고 백도 되고 스물도 되고 이럽니다. 돌아가셔서 천도재를 했으면 아이, 제사(祭祀)도 안 지내야지 왜 지내느냐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식 된 도리죠. 잘됐든 못됐든 자식이 된 도리예요. 묵은 빚 갚아야죠, 은혜를. 자기가 은혜를 못 갚으면 자기 대에서 또 자기 은혜를 갚지 않습니다. 그렇게 돼 있습니다, 아주. 그러니 허명무실하게 떠넘기지 마십시오. 그렇기 때문에 제사 지내는 것도 여기 상을 차리지 말라는 게 아닙니다. 단 한 가지라도 뜻있게 해서 이 세상의 중생들을 다 먹이고도 떡 한 그릇이 되남도록 해라 이런 겁니다. 물과 초, 향 그거면 족하지 뭐가 더 필요하냐! 모든 빗방울이 바다로 들어간들 빗방울이라고 하겠습니까? 바다의 물이라고 하지. 수만 개의 영령들을 한마음에다 집어넣어도 두드러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럭하면 더 집안이 깨끗하고 더 청정합니다.
천도를 스님들한테 청하되 무엇을 많이 차려 놓는 걸 바라지 마십시오. 제사 지낼 때 찹쌀가루를 해서 뚱그렇게 그냥 부쳐서 아홉 조각 아니면 일곱 조각, 일곱 조각 아니면 세 조각 이렇게 해서 놓고, 초 향 물 이렇게만 해 놓고 지내신다면 그것으로써 족합니다. 환란이 없어져요. 왜냐하면 나물 먹고 떡 먹고, 뭐 이거 먹고 저거 먹고 이렇게 하는 의식들은 벌써 그건 아주 하의 중생들의 얘깁니다. 여기서 벗어나려고 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조상들을 벗어나지 못하게 하고 그냥 떡, 밥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만듭니까? 그 의식을 떠나지 못하게 만듭니까? 그래서 그렇게 해 놓고 마음속으로 예배를 올리면, 그리고 절 삼정례(三頂禮)를 할 때에, 맨 끄트머리에 모든 것을 한데 모아서 내 한마음 주인공에 모든 걸 맡겨 놓고 일어난다면 아주 그것이 극히 좋은 일입니다.
예전에 외국에서 천도를 시켜 달라고 그래서요, 초하고 물하고 향 하나 하고 이렇게 해서, 그거 아니라도 되는데 그거라도 방편으로 하는 거죠. 그러면 그날 저녁에 틀림없이 나타나서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더라는 거죠. 벌써 영령들은 알거든요. 그렇게 해서 지내 주고 다녔어요. 그 뭐 다니면서 목탁 들고 다녀요, 무슨 뭘 들고 다녀요? 그리고 외국에 나가 있을 때 한국에서 천도해 달라고 보내도 ‘알았다’고, 그게 천도지 뭐 다른 건가요? 내 마음이면, 이 마음이라는 이 자체는 아주 작다면 작고 없다면 없고, 있다면 이 삼천대천세계를 싸고도 남는 겁니다.
2008-02-19 오후 4:2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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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감으로 체험하는 꽃 작품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