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인도 회사가 차 무역을 독점하던 시기에 대량의 차는 대부분 배로 운반됐고 시간도 오래 소요됐다. 중국 광동에서 런던까지 6개월 이상 걸렸다. 4, 5월에 만든 차는 배 출항 시기를 맞추다보면 6월경에 출발해 다음 해에 도착했다.
하지만 독점권이 폐지되면서 차 무역은 자유로운 경쟁시대를 맞이한다. 차 상인은 물론 선박회사들의 경쟁으로 배의 속력이 빨라지게 되었고 1840년 후반부터 클리퍼(clipper)라는 쾌속 범선이 출현하게 됐다. 영국의 레인디아 호는 광동을 출발한지 4개월 만에 런던에 도착해 사람들에게 그 해에 만든 차를 맛 볼 수 있게 했다. 그동안 묵은 차를 마실 수밖에 없었던 차 애호가들에게 신선한 한 잔의 차 향기는 영국의 차 시장 뿐 아니라 선박회사에도 많은 변화를 주었다. 선박업자들에게 더 빠른 운송을 위한 쾌속선을 만들게 한 것이다.
미국은 오리엔탈호라는 크고 속력이 빠른 범선을 만들어 많은 양의 차를 싣고 97일 만에 런던에 입항했다. 종전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많은 양의 신선한 햇차를 사람들에게 제공하게 됐다. 이렇게 되자 더 많은 차 애호가들이 생겼으며 어떤 차들은 프리미엄까지 붙어 상인들의 경쟁을 더욱 부추겼다.
이러한 상황은 영국의 선박 업주들에게 클리퍼 제조에 열정을 쏟게 했다. 영국과 미국의 경쟁으로 많은 쾌속선이 출현하게 되었고 쾌속선의 질이 향상되어 차의 신선한 맛과 향기를 잘 보관하면서 빠르게 운송하는 것을 중요시하게 되었다. 영국 내의 차 소비량도 증가하게 되어 1880년대 후반기의 1인당 차 소비량이 2kg으로 증가됐고 홍차 붐이 일어났다. 또한 이색적인 ‘티 클리퍼 레이스(Tea Clipper Race)’가 유행하게 되어 종전에 여성들만이 선호 했던 차를 남성들도 선호하게 되었다. 티 클리퍼가 도착하는 달에는 좋아하는 클리퍼에 돈을 걸고 자기의 클리퍼가 해안가에 나타나기를 기다리며 제일 먼저 도착하는 클리퍼를 보면서 열광했다.
선박회사들은 더 빠른 클리퍼를 만들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다. 하지만 1869년 수에즈 운하가 개통 되면서 티 로드(Tea road)가 5000마일이나 단축되었지만 기선만 통행할 수 있었다. 티 클리퍼로 제작된 범선이 한 번도 차를 싣지 못하는 비운을 맞이하는 커티 샤크(Cutty Sark)라는 클리퍼도 있었다. 이 배는 팔려 다니면서 이름도 바꾸는 신세가 되었지만 훗날 그 배를 아끼는 영국인에 의해 영국으로 돌아와 지금은 그리니치 부둣가에 전시되어 있다.
이러한 차의 운송 경쟁은 차 품질에 영향을 미치면서 차와 어울리는 문화를 형성하여 세계 차 시장에도 영향을 미치게 됐다. 1884년 개최된 런던 만국박람회에서 품질이 좋은 홍차를 소개하면서 영국은 국제 차 시장의 주도권을 가지게 됐다. 특히 시카고 박람회에서는 실론티 전시관은 멋진 실내 분위기를 연출하여 높은 홍차 판매 실적을 가져와 실론티의 성공을 이끌었다. 여름철에 열린 미국의 세인트루이스 만국박람회에서도 뜨거운 홍차가 인기가 없게 되자 얼음을 잘게 부수어 찻잔에 홍차와 섞어 사람들에게 제공하였다. 이를 계기로 아이스 홍차가 탄생됐다.
■이창숙(동아시아 차문화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