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2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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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은 불법의 근본 송두리째 파괴
二棄瞋 蓋 瞋是失佛法之根本 墮惡道之因緣 法樂之寃家 善心之大賊 種種惡口之府藏 是故行者於坐禪時 思惟此人現在惱我 及惱我親 讚歎我寃 思惟過去未來亦如是 是爲九惱 故生瞋恨 瞋恨故生怨 以怨心生故 便起心惱彼 如是瞋 覆心 故名爲蓋 當急棄之 無令增長
여기에서는 진심(嗔心)의 불길이 사람을 태우는데 있어서 가장 해롭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고인은 말하기를 “한 생각 진심이 일어나면 백만의 장애문이 열린다”고 하였다. 또 “진심의 불길이 일어날 때마다 법신 공덕을 무더기로 다 태운다”고 하였다.
이를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진심이 불법의 근본을 송두리째 파괴한다는 것이다. 또 진심이야말로 악도에 떨어지는 인연이며, 법에 대한 즐거움을 마치 원한 맺힌 집안처럼 대하며, 선심에 대한 큰 도적이라는 점이다.
우리가 평소에 갖가지 악한 말로 상대방을 꾸짖거나 비방하는 것 모두가 진심이 구업으로 발현해서 일어나는 것이다. 그 때문에 진심이야말로 나쁜 말로 악업을 간직하는 창고라고 말하였다.
우리가 마땅히 알아야할 것은 꾸짖고 욕하는 말이야말로 수행하는데 있어서 중대한 과오라는 점이다. 이를 두고 고인은 말하기를 “한마디의 말이 나라를 일으킬 수도 있고, 한마디의 말로 인해 나라를 잃을 수도 있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구업으로 죄 짓는 것을 삼가하지 않으면 안된다. 수행자는 좌선할 때 정념이 일어나기 이전 스스로 사유해야 한다.
진심은 현재의 시간대에서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는 과거에 내 감정을 위배했던 환경을 인식하고 진심을 일으키는 것이고, 두 번째는 다른 사람이 현재의 시간에 나와 친척까지도 괴롭히는 것이고, 세 번째는 나와 원한이 맺힌 집안을 찬탄하면서 이간질 시키는 경우 등이다.
또한 현재 뿐만 아니라 과거의 시간대에서도 나와 나의 친척을 괴롭히는 등 세 종류의 진심이 있었고, 미래에도 역시 그럴 것이다.
이와 같이 세 종류의 진심을 과거ㆍ현재ㆍ미래 삼세로 유추해 계산해보면 바로 아홉 종류의 진심이 성립하게 된다.
이 같은 아홉 종류의 진심을 따라서 노여움이 일어나고, 노여움을 따라서 번뇌가 일어나고, 번뇌를 따라서 원한이 일어나고, 원한과 노여움이 무더기로 일어나 마침내 우리가 본래 지니고 있는 진실한 마음을 거의 다 덮어버리게 된다. 그래서 진심이 본심을 덮는다고 해서 ‘진에개’라고 이름을 붙였다.
진심의 해독이 이와 같다는 것을 알았다면 수행자는 이를 급히 버리고 진심이 다시는 증가하면서 자라나지 못하게 해야만 한다.

如釋提婆那以偈問佛
何物殺安樂
何物殺無憂
何物毒之根
呑滅一切善
佛以偈答言
殺瞋則安樂
殺瞋則無憂
瞋爲毒之根
瞋滅一切善
如是知己
當修慈忍以滅除之
令心淸淨
처음 질문에서 “어떤 물건이 안락함을 죽이고 어떤 물건이 근심 없음을 죽이는가” 라고 말하였다.
안락은 열반에 해당되고, 근심 없음은 보리를 지적한 것이다. 여기에서는 위없는 열반적정의 즐거움이고, 위없는 깨달음의 법락을 말하고 있다.
우리가 청정한 열반의 이치에 도달한다면 항상 고요한 지혜 광채 속에서 안온하고 쾌락할 것이며, 그 자리는 삼계 내의 견혹(見惑) 사혹(思惑)과 삼계 밖의 진사혹(塵沙惑))과 근본무명혹(根本無明惑)인 오주지(五住地)번뇌를 멀리 여읜 곳이다.
만일 안락함을 살해한다면 그와 반대로 안락하지 못함을 얻게 되고, 근심 없음을 해친다면 다시 근심이 있게 된다.
이 게송은 그 의미를 도치법 문장체로 나타냈다.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안락하지 못함은 생사의 세계이고, 근심이 있다고 함은 번뇌에 비유한 것이다. 어떤 물건이 탐진치 삼독의 뿌리이며, 어떤 물건이 일체 모든 선 공덕법을 소멸시키겠는가. 이 같은 질문에 대해서 부처님은 게송으로 답변하셨다.
마땅히 알아야만 한다. 여래께선 크게 자비하시어 중생이 구하면 반드시 감응하신다. 이는 마치 거대한 종이 쳐주기를 기다렸다가 종을 치는 만큼 소리가 울리는 이치와도 같다.
그러므로 부처님은 즉시 답변으로 말씀하시기를 “진심을 없애면 안락하고, 진심을 없애면 근심이 없다”고 하셨는데 이는 바로 진심이 번뇌임을 지적한 것이다. 만일 진심을 제거할 수 있다면 청정한 열반의 이치를 얻을 수 있고, 또한 근심하는 마음까지도 멀리 떠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진심은 모든 독의 근원이며, 그러한 진심이야말로 일체 선 공덕을 제멸한다는 것을 알아야만 한다. 이 문제를 두고 옛날 큰 스님은 말하기를 “진심은 마음속의 불과 흡사하여 모든 공덕림을 태울 수 있다. 수행자가 보리도를 행하고자 한다면 진심을 경계하고 진실한 마음을 보호하라” 고 하셨다.
수행하는 사람이 이를 알았다면 마땅히 자비와 인욕의 마음으로 수행하여 진심을 제멸함으로써 자신의 마음을 청정하게 해야만 한다.
이상에서 말한 진심은 비록 많기는 하지만, 그것을 총체적으로 요약하면 세 종류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첫 번째는 올바른 이치가 아닌 데서 일으키는 진심이고[非理瞋], 두 번째는 이치를 순종하는 데서 일으키는 진심이고[順理瞋], 세 번째는 시비 논쟁의 진심[諍論瞋]이다.
지금 여기에서 말하고 있는 자비와 인욕도 역시 세 종류가 있다.
중생을 인연으로 한 자비[生緣慈]를 닦는다면 올바른 이치가 아닌 데서 일어난 진심을 대치할 수 있고, 정법의 인연으로 닦는 자비[法緣慈]라면 이치를 순종하는 진심을 대치할 수 있고, 마지막으로 아무런 조건 없는 자비[無緣慈]를 닦는다면 시비 논쟁에서 일어나는 진심을 대치할 수 있다.
이처럼 세 가지 자비심을 닦는 방편에 의해서 ‘진에개’를 멀리할 수 있다.
진심이 다한다면 무엇 때문에 내 마음이 청정하지 못하고 지관을 성취하지 못할까 근심하겠느냐.
■중앙승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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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2-18 오전 10: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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