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주인 자체가 바로 실참!
여러분과 같이 항상 한자리를 하고 있지만 또 오늘 새삼스럽게 이렇게 눈동자를 마주치면서 한자리를 하게 됐군요. 주인공(主人空)은, 주인공이라고 하는 이름은 고정관념과 고정 행, 고정된 말이 없고 모든 것이 고정됨이 없기 때문에 공(空)이라고 했던 겁니다. 색(色)이면서도 공이고, 공이면서도 이렇게 보이는 색이 역력하다고 하는 뜻에서 바로 공이자 색이고 색이자 공이라는 소리를 했던 겁니다. 그 반면에 우리가 간편하게 공의 뜻을 그대로, 우리는 주인공에서 고정됨이 없는 뜻을 표현할 때 현대에 비교해서 말씀을 한 번 더 드리고자 합니다. 그리고 나중에 말씀을 또 드리죠.
지금 여러분이 생활을 하고 있는 이 시점에서 발전소가 있다면 그 발전소에서 용량대로 용도대로 자기가 쓰고 싶은 대로 전력을 쓰고 있지 않습니까? 누구나가 다 자기 용량대로 자기의 용도대로 지금 쓰고 있습니다. 안 그럴까요? 이거를 비교해 보십시오. 수천수만 가지로 용도는 많습니다. 전력의 용도도 자기가 쓸 만큼 쓰고 있습니다. 많이 쓰는 덴 많이 쓰고, 적게 쓰는 덴 적게 쓰고, 그릇대로 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전력은 어디서 나오나요? 발전소에서 나옵니다. 발전소에서 나오는 그 전력을 가지고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용도대로 그냥 쓰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인공이라고 한 것입니다. 고정관념도 없고 고정 행도 없다. 자기가 그릇대로 용도대로 쓰는 것이다. 우리가 숨을 쉴 때에 들이쉬고 내쉬는 것이 잠시도 쉬는 사이가 없고, 잠을 자도 쉬지 않고, 일을 해도 쉬지 않고, 일어나도 쉬지 않고, 앉아도 쉬지 않는 거는 바로 숨 쉬는 일입니다. 이것이 바로 진리의 근본의 표현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우리 자가발전소는, 인간의 마음의 근본 자가발전소는 원자력의 자가발전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원자력의 자가발전소는 광력이나 전력이나 자력 등이 합쳐서 나한테 있단 말입니다, 모두 각자 여러분한테. 그렇기 때문에 용도에 따라서 빛이 나가려면 빛이 나가고, 능력이 나가려면 능력이 나가고, 모든 점에서 광선 또는 자석이, 모든 것에 의해서 밀치려면 밀치고 당기려면 당길 수 있는 그런 용도의, 모든 용량이 거기에 규합돼서 있는 겁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그 광대무변한 보배의 힘을 가지고도 자기가 지금 현재 자기 무명체를 가지고서 쓰지 못하는 것뿐입니다.
왜 무명체라고 했을까? 금(金)이 빛을 내지 않았기 때문에 광이 나오지 않으니까 무명체라고 한 것이죠. 실상이 되지 못하고 중생이라고 그랬죠. 중생은 중생이로되 금이 빛나듯이 빛이 난다면 으레 남도 충전시켜 줄 수도 있고, 나도 언제나 용량에 따라서 충전해서 쓸 수 있는 겁니다. 자기 자성에서 그렇게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그런 힘을 여러분이 다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자성(自性)의 자가발전소는 꺼진다거나 켜진다거나 하는 언어가 붙지 않는 자립니다. 여러분이 하나하나 걸리고 가시는데 예전에 이런 점이 있죠. 무명천(無明天)이 있다면 환상천(幻相天)이 있고, 환상천이 있다면 삼중천(三重天)이 있고, 삼중천이 있다면 바로 인천(人天)이 있고, 인천이 있다면 도리천이 있고, 도리천이 있다면 도솔천(兜率天)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냐? 그 이름은 각각 일곱 가지의 이름이지마는 천(天), 천 했습니다.
즉 그것을 알고 보면 동그라미 일곱 개를 그려놓고 어떤 것이냐 하면, 그것이 다 어떻게 될까요? 그래서 도리천이라고 한 놈이나, 환상천이라고 한 놈이나 다 한 놈이 하지마는 그래도 물맛은 물맛대로 나는 것이고, 산맛은 산맛대로 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들맛은 들맛대로 나고, 맛있는 건 맛있는 거고 맛없는 건 맛없는 거라 이 소립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은 천이로되 둥근 천이며, 한마음이며 근본입니다, 전체가.
그러나 ‘사람은 고정관념으로써 있지 않고, 고정 행이 없으니 맛도 천 가지 만 가지 맛이 나네’ 하는 소립니다. 만 가지 맛이 나! 그럼 아까 전력을 용도에 따라서 만 가지를 쓴다고 했죠. 그와 같이 자기 그릇대로의 씀씀이를 쓰고 있는 겁니다. 가정집에서는 전기를 얼마 쓰고, 또 공장에서는 모터를 돌려야 될 테니까 얼마를 쓰고, 용량에 따라 아주 자유스럽게 여러분이 다 쓰고 있는 겁니다. 그와 같이 지금 우리도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걸 쓸 줄을 모른다는 얘깁니다. 왜냐하면 이 무명천에서 색(色)을 보고 너무 취해. 사랑, 애정, 욕심, 착, 이건 뭐 하나서부터 열까지 끄달리는 거야, 끄달려. 그러니 그걸 볼 수가 있나요?
그래서 모든 것은 포함해서 ‘거기서 나오는 거 거기다 놔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것을 비유할 때 어떻게 놓습니까? ‘아니, 사람이 사는데 놓고 어떻게 삽니까? 사랑도 할 수 없고, 돈도 가질 수 없고 다 버리게 되면 뭘 가지고 삽니까?’ 이러거든요. 누가 사랑을 하지 말랬나, 돈을 갖지 말랬나요? 사람이 누구나가 다 육신이 자기 실참이 아니란 뜻입니다. 자기 주인 자체가 바로 실참이요, 실상이라는 것을 우리가 분명코 안다면 우리는 바로 그 용량을 아주 맛있게 쓸 겁니다.
예를 들어서 회사를 하든지 장사를 하든지, 가정에서나 무엇이든지 그렇습니다. 요거를 했으면 요거 했다는 생각도 없이 그냥 놓고 또 딴 걸 합니다. 딴 거 할 때, 요거 용량의 기계를 썼으면 그 스위치는 저절로 자동적으로 꺼야 합니다. 꺼집니다, 쉬니까! 이거를 또 돌립니다. 이거를 돌려서 쓰고 저거를 돌려서 쓸 때, 안방에서 불을 켜고 쓸 때에 거기 사람이 있지 않으면 불을 끕니다. 끄고 사람이 이쪽으로 오면 또 불을 켜고서 씁니다. 이해가 가십니까?
이것이 우리들의 생활 속에서 하나하나 놓고 가는 방법 그대로입니다. 그대로 놓고 가는데도 불구하고 놓을 수가 없다고 그러는 겁니다. 왜 여러분이 놓을 수가 없다고 그러는지 난 모르겠습니다. 하나 하고는 돌아서선 딴 거 하면서도, 그거는 놓고 벌써 딴 거 하면서도 놓을 수가 없다는 겁니다. 왜 그럴까요. 난 이상스러워요. 그것을 알게 돼야 우리가 인천도 환상천에 속해 있지 않고, 환상천도 인천에 속해 있지 않고, 모든 것이 사방이 탁 터지게끔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놓고 가야 하느냐? 그 용도에 따라서 아까 씀씀이를 쓴다고 했는데 거기는 얼마든지 내 그릇대로 용량대로 쓸 수가 있지 않겠습니까? 전기를 지금 쓰고 있듯이. 자기 살림의 차원대로, 생활수준대로 씀씀이가 크면 큰 대로 작으면 작은 대로, 우리는 그대로 놓고 지금 돌아가는 겁니다. 우리 인간은 탑돌이 하는 거와 같습니다. 쉬지 않고 말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따라서 우리가 한번 옛날 얘기 삼아, 그건 옛날 얘기가 아니라 지금 시점에서 우리나라를 볼 때도 그렇고, 우리가 지금 살아나가는 생활 속에서도 그렇고 모든 것이 지금 현실이라고 봅니다. 현실만이 있는 것이 아니고 미래도 현실이고 과거도 현실이니까. 삼중천이라고 하는 그 자체도 몸으로 비교해본다면 바로 그것이 예전에 ‘과거심 불가득(過去心不可得), 미래심 불가득(未來心不可得), 현재심 불가득(現在心不可得) 어떠한 떡을 자시렵니까?’ 한 그 뜻도 거기에 있습니다. 여러분이 뭐 알아야, 어디 끈을 붙잡을 수 있어야 뭐가 어떻게 터지든지 말든지 하죠. 그러니까 여러분이 이해가 가게끔 나와 더불어서 애를 쓰는 겁니다. 참, 공부하려고 애를 쓰시는 여러분을 볼 때마다 눈물이 핑 돕니다, 감사해서요.
옛날에 아주 불여우같이 만날 남을 해롭게만 하던 사람이 하나 있었고 또 한 사람은 부처님 법을 배워서 선신으로서 아주 충만한 두 사람의 친구가 있었더랍니다. 한 사람은 아주 악으로다 공부를 했고, 한 사람은 선으로다 공부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그렇게 살다가 죽어서 이 세상에 또다시 나오게 됐는데 아, 그거는 안 내보내려고 그랬는데 어떻게 빠져나갔거든요. 악으로다 쓰는 사람 말이에요. ‘주먹은 가깝고 법은 멀다’는 그런 속담 있죠. ‘한 도둑 열 놈이 지키지 못한다’는 얘기가 있듯이 말입니다. 재주가 좋아서 빠져나가서 이 세상에 몸을 받아 났거든요.
그런데 같이 태어났는데 여자로 태어났습니다. 하나는 부잣집에, 정말 여우로서 행동을 아주 나쁘게만 하는 그 친구는 자기가 자발적으로 부잣집으로 태어나게 됐고 하나는 가난한 집에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자기가 전자에 그렇게 나쁜 짓을 했다는 걸 이 사람은 모릅니다. 또 한 사람도 자기가 전자에 그렇게 잘했다는 것을 또 모릅니다. 그랬는데 서로 알게 되었습니다.
가난하니까 하루는 사냥을 나갔습니다. 그 시절에는 사람이 지금처럼 많지도 않았고 귀한 때였지, 이렇게 많은 시절은 아니었던가 봅니다. 비유해서 얘기하는 겁니다. 지금 현실에 우리가 어떻게 지내고 있고, 지금 우리나라가 어떠하며 우리는 공부를 어떻게 하고 있으며, 공부하는 사람들이 어떠한 태도를 취해야 되는지 그것을 얘기하는 겁니다. 그래서 사냥을 하러 나갔는데 나쁜 사람들이 그 왕을 죽이려고 말입니다, 즉 말하자면 딴 나라의 신하들이 그 왕을 죽이려고 말입니다, 그쪽에서도 사냥을 나왔는데 이쪽 왕을 죽이려고 달려드니까 신하들이 그냥 있겠습니까? 서로 싸움이 났는데 이쪽 착한 왕이 죽게 됐더랍니다.
그런데 그 착한 여자가 보니까 도저히, 자기가 그때 문득 생각나는 게 ‘아하! 저 사람은 아주 착하고 이 세상에 정말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인데’ 하는 생각이 들면서 ‘자기는 할 수 있다’라는 생각도 없이 그냥 그 왕의 칼을 쓱 뽑아서는 그냥 친 겁니다. 그대로 다 무찌르고 다 쫓아버린 겁니다. 그 여자는 가난하게 살았기 때문에 손도 말이 아니고 얼굴도 말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 왕은 자기의 생명의 은인이니만큼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왕비로 맞기 위해서 데리고 갔습니다. 가서 목욕을 시키고 해서 왕비로 맞이했습니다.
그랬는데 그 나쁜 여자는, 이 왕을 죽이려고 하던 상대 나라의 왕비가 된 겁니다. 그 두 친구, 하나는 선이고 하나는 악이었던 그 친구가, 다시 여자로 태어나서 왕비가 된 겁니다. 그런데 대립이 졌습니다. 자기네들도 모르게 대립이 되는 겁니다. 시험이 되는 겁니다, 이제. 그러니 그렇게 악하게 살던 사람은 또 악하게 그렇게 하고, 선하게 살던 사람은 선하게 남을 구제하고 그러는데 나라가 위태하게 됐습니다. 예를 들어서 그쪽의 악한 나라의 왕비는 자꾸 임금을 악하게만 끌고 갑니다. 그런데 이쪽 왕비는 선하게만 끌고 갑니다.
그런데 악한 그쪽에서 백지 한 장을 활에다 매어서 보냈단 말입니다. 끌러 보니깐 글씨가 하나도 없어요. 신하에게 다 보여도 이 글자를 도저히 알 수가 없는 겁니다. 그러니 어떡합니까? 무엇이 어떻게 됐는지, 무엇을 어떻게 하라는 건지, 어느 때 쳐들어온다는 건지, 안 쳐들어온다는 건지 도대체 알 수가 없는 겁니다. 이걸 몰라가지고는 도저히 안 되겠으니까 걱정을 하면서 내실로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왕비한테 걱정스러운 듯이 그런 얘기를 했습니다. 그러니까 “그 백지를 제게 좀 보여주셨으면 어떻겠습니까?” 했습니다. 왕비는 아주 겸손하고 뭐든지 모르는 척하고 살아요. 알지만 그러한 내색도 없이 했습니다. 남편한테도 자기가 그런 능력이 있다는 것을 영 내비치지도 않게끔 자꾸 다짐을 하고요. 사람이 값싼 데다 쓰는 게 아니라 급할 때 쓰는 것이지, 아무 때나 쓰는 게 아니다라는 얘깁니다. 그래서 신하더러 가지고 들어오라고 해서 부인에게 보였죠. 그 임금은 부인의 말을 100%로 믿고 갑니다, 얼마나 착한지. 이 부인이 참, 보살이죠. 이거는 정말 누구 말마따나 관세음보살이지 보통 문제가 아니죠. 그래서 보더니 “아무개야, 물 한 그릇 떠 오너라.” 그러거든요. 물 한 그릇을 넓은 데다 떠 오니까 이 물에다가 이 종이를 넣고 “아주 정성스런 대왕의 피 한 방울이 여기 들어가야만 이 글씨는 보입니다.” 하거든요
이건 무슨 뜻이냐? 피를 정말 넣어서 넣는 게 아닙니다. 그걸 아셔야 됩니다. 정성입니다. 내 마음으로 진짜로 믿고 이것을 생각을 하느냐 안 하느냐 문제입니다. 자기 나라의 임금이라면 생명을 걸고 임금노릇을 해야 돼요. 몸을 사리면 임금 노릇을 못하죠. 그래서 칼을 가져오라고 해서 자기가 손수 오른손 손날 부근을 잘랐습니다. 조금 해가지고 한 방울 떨어뜨리니까 그것이 퍼지면서 그 백지, 물속에 넣은 백지 속에서 글씨가 나오되 ‘이 글자를 못 읽으면 내가 너희 나라를 쳐서 삼키겠노라.’ 하고 써 있었던 거예요, 이게. 그래서 그냥 백지에다가 아무 소리 없이 그 부인이 ‘무(無)’ 자 하나 썼는데 그것도 보이지 않는 백지예요. ‘무(無)’ 해서 그냥 보냈어요. 그러니 그쪽에서는 쳐들어올 수가 없었던 겁니다. 이게 지금 글씨를 써서 보내도 문제인데 글씨를 쓰지 않았어도 글씨를 탁탁 알아내고 이걸 답을 했으니, 거긴 의인이 있다는 얘깁니다. 그러니 그 나라를 칠 수가 있어야지. 아무리 여우 아니라 불여우라도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단 말입니다.
그래서 참 그 나라를 잘 이끌어가고 있는 도중에, 그 악한 도술로써 임금을 죽였단 말입니다. 죽인 게 지금으로 치면 안락사, 즉 도술로다가 죽였단 말입니다. 우리가 지금도 그냥 죽을 때가 돼서 죽으면 삼중천이나 저런 데 가서 이름이 다 통하는데, 환상천이다 하는 거는, 아직 죽을 날짜가 되지도 않았는데 죽은 사람들은 그런 데 들어가서 이름이 박히지 않고 그냥 거기 몰켜서 때를 기다리고 있는 그러한 장소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죽긴 죽었는데 가만히 보니깐, 이건 도저히 안 되겠어. 그래서 신하들더러 이 앞뒤를 아주 철저하게 지키게 해놓고 자기는 “내가 이 자리에서 몸을 움죽거리지 않고 죽은 거같이 보일 테니까 모두가 장사를 지내자고 하더라도 절대로 나를 장사 지내지 말아다오.” 그러고선 혼백을, 남편의 혼백을 찾으러 가는 겁니다.
우리들이 지금 사는 이런 데는 무명천이라고 하는데 환상천을 거쳐서, 인천을 거쳐서, 삼중천을 거쳐서 보니까 거기 이름이 들어와 있질 않아. 그래서 물었더니 거기에서 일러주었습니다. 아직 여기에 들어오지 않은 사람은 거기 가보면 알 수 있다고요. 즉 아까 얘기한 환상천을 얘기하는 거죠. 그래서 환상천에 가서 모든 것을 조사한 끝에 혼백을 찾았습니다. 모든 부처들이 사방천에서도 도와주고 참 도리천에서 도솔천에서 한마음이 돼서 도와주었기 때문에 그 혼백을 찾아서 가지고 나오는데 무엇을 생각했느냐 하면, ‘아하, 내가 이렇게 갔다가 나올 수 있었던 거는, 환상천도 무(無)고 이 무명천도 무다.’ 이거야. ‘모두가 무로 돌아가서 내가 직접 이 혼백을 가져오는 것이고, 조끄마한 좁쌀 알갱이 하나만한 그 원동력이 이 세상을 싸고도 남는구나!’ 하는 그런 생각을 했더랍니다.
그래서 자기가 과거생도 알았고, 자기가 어떻게 해 나온 것도 알았고, 후일에 어떻게 될 것도 알았고, 나라가 어떻게 될 것도 알았고, 모든 걸 거기에서 비춰봐서 다 알게 되고 그때에 눈도 뜨고, 즉 말하자면 불가에서 말하듯이 천안통으로 모든 걸 알았답니다. 그래서 그 남편의 혼백을 가져와서 자기도 살고 남편도 살고, 그래가지고서 나라를 일으켜 세우면서 참, 어떻게 행을 했을까?
그분은 몸으로서 그렇게 한 게 아니라 악하게 하는 사람을, 즉 말하자면 왜, 애들 만화영화 있죠? 만화영화로만 보시면 안 돼요. 그게 현실로, 무전통신기와 광선, 레이저 광선이 있는 거를 보세요. 그게 그걸로만 돼 있는 게 아니거든요. 그러니까 앉아서 신하들은 다 놔주고 나쁜 사람들은 다 쳤답니다, 그 부인이 말입니다. 앉아서 그렇게 하고, 삼국을 통일하는 데도 역시 뒷전에서 많은 도움을 주고 나서서도 봐주었다는 얘깁니다. 나중엔 온데간데가 없어졌다고 그렇게 말은 합니다마는 절로 들어가서 고승이 됐다 합니다.
그때에는 칼이나 창으로 싸우고 했지마는 지금은 어떤 세상이 되었습니까? 공중에서 싸우지 않으면 지금 육군이나 또는 공군이나 해군이나 군부가 있다 하더라도 압도적인 문제가 있다면 우린 삽시간에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 논의가 지금 세계적으로도 그렇지마는 다른 어떤 혹성에서도 그럴지 모릅니다.
이거는 여러분이 모르기 때문에 내가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마는,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도리를 알아야 앉아서도 해결할 수 있다는 점을 아셔야 됩니다. 수백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한 사람을 죽여야 할 때에 그건 죽이는 게 아니다 라는 겁니다. ‘무명만 쳤을 뿐입니다’ 하는 겁니다. 그러면 그 마음을, 즉 혼백을 또다시 내보내서 수련을 시키는 것이 되기 때문에 부처님은 죽여도 살리는 거, 살려도 살리는 거 그렇단 말입니다.
마음이 떠나면 인연이 없다 합니다. 마음이 떠나면 어떻게 인연이 있겠습니까? 인연 없는 중생은 어찌 할 수 없다고, 건질 수 없다고 한 것이, 마음에서 떠나면 인연이 없는 겁니다. 구제가 되지 않고요. 또 지금 현시대에 우리가 어떻게 용도에 따라서, 환경에 따라서 지배받고 있는가 하는 문제, 지난번에도 얘기했지만 미국에서도 아주 우리 반쪽을 사이좋게 소련과 더불어 나누어 가진 겁니다. ‘나는 반을 가질 테니 너도 반 가져라.’ 무슨 물건처럼 말입니다. 사탕 반 조각 쪼개듯이 말입니다. 얼마나 기가 막힌 일입니까? 우리 국민으로서 생각한다면 대의적인 생각을 떠나서 국내에서 태어난 국민으로서는 참 처참한 문제입니다. 그래서 이 도리를 열심히 공부하셔야 될 겁니다.
또 깨치지 않았다 하더라도 급하면 나올 수 있다는 것은 요령만 알면 된다, 급하면 되게 돼 있습니다. 우리가 그 용도에 따라서 크면 큰 대로 쓸 수 있고 작으면 작은 대로 쓸 수 있습니다. 육지에서 쓸 거면 육지에서 쓰고, 공중에서 쓸 거면 공중에서 쓰고, 물에서 쓸 거면 물에서도 쓸 수 있습니다. 앉아서 보조를 할 수 있다는 얘깁니다. 직접 보조를 할 수 있는 내가 될 수 있다라는 얘깁니다. 여러분이 이 소리를 그냥 흘려버리지 마십시오.
우리가 살아나가려면 가시밭도 자갈밭도 아주 험한 진 구덩이도 나옵니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왔습니까? 저뿐이 아니라 여러분과 더불어 같이, 옛날에 수억겁 전에 사람 하나 만나기가, 사람 하나 되기가 힘들었거든. 그때에 사람이 몇백 리에서 하나 났으면 또 몇백 리 건너에서 하나 나고, 여기서 나고, 저기서 나고 그렇게 수두룩하게 난 게 아니라 백 년에 하나 나기 어려울 만치 그렇게 어려웠단 말입니다. 그렇게 만나고 지금까지 내려와서 형성된 이 인간의 밟힘이 얼만큼 아팠었나. 어떻게 살아왔나? 지금까지 모습을 바꿔가면서 진화돼서 이날까지 왔던 거라면 그냥 갈 수는 없죠. 수억겁 전년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그것이 진화돼서 지금 짊어지고 있다는 얘깁니다. 잠재의식 테이프에 살아온 것이 다 나오게 돼 있어요. 어디서 오고 어디로 가는지가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걸 알게 되면 모두 둘이 아니고, 모두가 형제고 부모고 자식입니다.
우리가 인간으로서만 그렇게 된 게 아니라 미생물에서부터 말입니다, 그건 뭐 중간은 말 안 해도 여러분이 잘 아시겠죠. 지금도 피를 흘리고 수많은 짐승들이 그렇게 쫓기고 쫓고, 또 우리도 역시 쫓기고 쫓고 밀려나고 이렇게 살아나오는 이 시점에서 지금 여러분이 이 자리에, 한자리에 지금 태어나서, 한국이라는 이 자리에 태어나서 한 국민으로서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 어떻게 생각을 하고 어떻게 행을 하고 어떻게 말을 하고 어떻게 살아야만이, 우리가 참 정당하게 또 편리하게 화목하게 웃으면서 살 수 있을까? 그리고 어디서 무엇이 어떻게 쳐들어온다 하더라도 콧방귀 탁 뀌고 껄껄 웃으리만큼 돼야 되지 않겠습니까?
모두가 둘이 아닌 그 뜻을 그냥 말로만, 이론적으로만 듣지 마시고 우리 그 잠재의식 테이프에 다 감긴 그것이 착 나오는 대로, 저 스크린 돌아가듯이 나오는 그것을 잘 생각해보세요. 얼마나 자기가 처참하게, 나와 더불어 같이 걸어왔나를 여러분이 잘 아신다면, 누구를 보고 그냥 악하게 할 수가 없고, 누구를 보고 남이라고 할 수도 없고, 누구를 보고 때릴 수가 없고, 누구를 보고도 그렇게 할 수가 없을 겁니다.
그러면 무지렁이같이 그냥 순해 터진 양처럼 그렇게 사느냐? 아닙니다. 요만한 거 하나, 싸래기 반토막 하나 에누리가 없이 살면서도 그렇게 선명하게 살 수 있는 겁니다. 아까도 얘기했듯이 만 가지 맛이 나도록 말입니다. 과일이 만 가지 맛이 난다면 만 가지 향내도 날 것이고 또 무르익는다면 여러분이 전부 말없이 그것을 먹을 것입니다. 제 나무에서 제 과실이 열리게 해서 무르익게 해서, 바로 자기가 맛을 본다면 그 과실 하나에서 맛이 만 가지가 나는 것을 볼 때, 우리가 산에 가면 산맛이 나고 들에 가면 들맛이 나고 꽃을 보면 꽃맛이 나고 죽은 사람하고 얘기할 수 있어야 꽃하고도 얘기할 수 있는 거죠. 나무하고도 얘기하고, 벌레하고도 얘기하고. 죽은 사람들 전체, 전부와 얘기할 수 있어야 회전이 되고 말고 할 거 아닙니까? 그래야만이 앉아서 뭘 어떻게 하든지 하죠.
오늘 여러분과 이렇게 눈을 맞대고, 이마를 맞대고 같이 한자리에 앉아서, 수억겁 전년에도 이렇게 같이 있었는데 지금도 이렇게 같이 있습니다. 우리가 부처님이, 석존이 여기 계시다 할지라도…, 왜 멀리 두십니까? 내 주인공 하면 그 속에 석존이나 일체제불이 다 계신 것을, 일체 조상들이 다 계신 것을 구태여, 왜 멀리 바깥으로 내놓고선 찾습니까? 그러니 여러분이 잘 깊이깊이 생각하셔서 기복을 떠나시면서 자성(自性), 자신을 아셔야 될 것입니다.
오늘은 이걸로써 끝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