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70. 4.28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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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순례의 꿈-김경희 서울 도선사 신도
저에게는 오랜 소망이 있었습니다. 자식들이 결혼하여 제 곁을 떠나고 직장을 퇴직한 후 몸과 마음이 자유로워지면 우리나라 금수강산 방방곡곡에 산재된 명찰을 순례하는 것이었습니다. 북쪽에서 남쪽 끝까지….
그렇지만 직장과 소홀히 할 수 없는 엄마역할까지 바쁜 생활에 젖어 살다보니 생각만 간절할 뿐 실천하기란 여간 힘든 꿈이 아닐 수 없었지요.
오랜 나의 염원에 부처님의 가피가 내리심인지 도선사에서 108산사순례의 대장정을 떠난다고 하신 겁니다. 이 순례불사 소식을 듣고 저처럼 힘든 여건 속에 있는 불자에게는 너무나 좋은 기회를 마련해주신 것 같아 설레고 뜨거운 감동을 가눌 길 없었습니다.
오늘은 제 꿈을 이루어가는 두 번 째 사찰 통도사를 순례하는 날입니다. 입재식 하는 날 저는 기도했습니다. “부처님! 108산사 순례기도법회를 무사히 모두 마치고 회향하는 날까지 삼재팔난 만나지 않고 한 곳도 빠짐없이 참석하여 제 꿈을 이룰 수 있도록 가피를 내려주옵소서.”
우리지역 차량은 망우역에서 오전 6시 30분 출발했습니다.다른 때 같으면 새벽잠에 빠져있을 시간이지만 소풍전날 아이의 심정이 되어 잠을 설쳐도 졸리지 않았습니다. 새벽을 열고 서서히 어둠을 밝히는 여명 속으로 고속도로위의 자욱한 안개가 순례단을 반겨줍니다. 그 모습이 미명 속에 살아가는 중생의 삶 같기도 하고, 안수정 등을 잊게 하는 무릉도원처럼 고요하고 신비하기도 합니다. 순례 후 귀향길에는 이 안개가 모두 걷혀 있겠지요.
고운 옷 갈아입고 가을을 알려주는 산자락과 맑고 푸른 하늘이 맞닿은 곳에 솜구름이 몽실거리고 부드러운 아침햇살이 순례차량 60대 장정의 길에 부처님의 자비처럼 비추어 주고 있었습니다. 차량 속에는 봄볕에 꼬박꼬박 조는 병아리마냥 노보살님들이 부족한 수면을 취하고 있고, 젊은 보살님들은 차창 밖을 묵묵히 쳐다보며 마음속의 염원을 읊조리는 것 같기만 했습니다. 카세트 테이프로 들려주는 스님의 독경과 목탁소리가 청정하게 가슴을 파고 듭니다. 오늘은 음력 8월 26일 우연의 일치인지 제 딸 수련이의 생일이기도 합니다.
비록 엄마의 정성과 사랑이 담긴 생일상은 차려주지 못하고 왔지만, 그 대신 부처님께서 우담바라 한 아름을 딸에게 내려주셨음을 마음으로 느끼고 있었습니다.
기도를 올렸습니다. “엄마가 되게 해주신 것 감사합니다. 자식들에게 존경 받는 엄마가 될 수 있도록 저를 지켜주시고, 자식들이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천수천안의 자비와 지혜의 가피를 주시옵소서.”
순례차량이 평사휴게소를 지나 통도사에 가까워오니 차안이 잠과 침묵에서 깨어난 보살님들의 말소리로 웅성거립니다. 누렇게 익은 곡식을 보고 즐거워하는 참새들의 합창 같습니다. 나는 허수아비가 되어 듣고 웃음 지었습니다. 중생의 각박한 삶 속에서 자주 느낄 수 없는 <반야심경>의 행복함이 밀려옵니다.
순례차량이 60대라는 말을 듣고 그 대단한 불심에 너무 놀랐는데 그 많은 차량에서 내린 순례단의 행렬은 입에서 함성이 나올 정도였습니다. 수천 명이 장관을 이루고 있었기 때문이죠. 녹야원의 불제자들이 이렇게 많았을까요? 넓은 장삼을 펄럭이시며 그 많은 순례단을 일일이 챙기시는 주지 스님의 모습이 녹야원에서 설법하시는 부처님처럼 성스럽게 다가왔습니다. 구도의 길을 떠나는 순례자의 경건함을 느끼며 스님의 인솔 하에 불보종찰 통도사에 도착하니 그곳에 주석하시는 주지스님 이하 여러 스님과 신도들이 먼 길을 달려온 순례단을 너무 반갑게 반겨주셨습니다. 불법은 이렇듯 너와 나 분별을 만들지 않고 하나로 이어주시는 것에 감사하며 불법처럼 국법이 이루어질 때 국태민안의 태평성대가 될 수 있다는 도선사의 호국도량심이 상기되는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2500여명을 한꺼번에 수용하는 대설법전에서 통도사 주지스님의 환영설법과 108참회기도를 마치고 낙관식이 시작되었습니다.
신도들이 많은 까닭에 낙관은 나중에 천천히 받기로 하고 기다리는 시간을 활용해 사찰 곳곳을 다니며 참배했습니다. 열반하신 대덕고승의 가르침이 곳곳에 향기처럼 배어있고 유구한 역사를 간직한 국보까지 볼 수 있는 108산사순례의 불사에 동참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많은 가피를 입은 듯 감사함이 솟구쳤습니다. 부처님의 진신사리와 가사가 봉안된 금강계단을 올라서면서 간절히 염원했습니다.
108배를 하고 있는데 경내 낙관식 행렬이 갑자기 박수와 환호를 지르는 것입니다. 그 소리를 따라 하늘을 보니 흐렸던 하늘사이로 나타난 태양이 방광을 하고 있었습니다. (끝)
2008-02-16 오후 8:0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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