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마음도리를 확고히 안다면 지금 금방 죽는대도 겁나지 않아
(지난 호에 이어서)
우리가 빨리 깨쳐야겠다 해도 그것이 착이 되는 거니까 빨리 깨쳐야겠다 하는 그 말 자체가 아닌, 그대로 자기를 믿으라는 얘깁니다. 욕심이 생겼다는 얘깁니다. 욕심이 생겼는데 내가 항상 말을 하듯이 여기를 뛰어넘을 수 있다면, 자기 자신(自信)이 있다면 그것을 밀고 나가고 자신이 없다면 밀고 나가지 말아야 하겠죠. 이것이 자기 분수에 따라서 판단하고 정하는 것이죠. 그래서 판단을 할 때 처음에는 요기밖엔 못 디뎠는데 나중에는 저기까지 딛게 됐다 이겁니다, 지혜가 넓어져서. 그랬을 때 차츰차츰 뛰어야 되는 거지 이걸 한꺼번에 뛰려면 안 되니까 살면서 체험을, 조그마한 것에서부터 체험을 해나가시라 이겁니다. 체험을 해나가시다 보면 사회적으로나 국가적으로나 세계적으로도 만반의 준비를 할 수가 있다 이겁니다. 여러분을 볼 때 오관을 통해서 오신통(五神通)을 지금 하고 계시면서도 그것을 백프로 활용을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유의 법만 활용을 하지 무의 법은 활용을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하는 것을 욕심 없이, 내가 한다는 생각 없이 해야만이 된다. 즉 습이라는 게 참 무섭다는 얘깁니다. 모든 걸, 선한 일을 했어도 내가 한 일이 아니요, 악한 일을 했다 할지라도 내가 한 게 아닙니다. 두루 편하기 위해서, 대의를 위해서 했다면 악한 일이 아닙니다. 거짓도 남을 위해서 거짓을 했다면 잠시만 거짓으로 한 거지 그건 거짓이 아니겠죠. 그렇기 때문에 모든 것을 다 자기가 잘 생각한다면 남을 이익하게 할 수 있고 또 나를, 나의 중생에게도 이익하게 할 수 있을 겁니다. 타인의 육체나 내 육체나 똑같은 중생이지만 말입니다. 자기 중생을 자기가 이익하게 만들 수 있어야 남을 이익하게 만들 수 있죠.
그러니까 우리가 잘 생각해봐야 할 점이 있다 이겁니다. 잘 생각해야 할 점은 깨달아야만 한다는 거, 그거를 마음으로 규정지어 놓고선 ‘얼마쯤이나 가야 될 것인지?’ 그러지 마시고 우리 생활 속에서 하나하나 체험을 해봐가면서 탁탁 밀고 나가보시라 이겁니다, 의심을 하지 말고. 그렇게 탁탁 밀고 나가다 보면 어떤 거는 자기에게 감촉이 왔단 말입니다. 그 자리에 감응이 와서 느꼈단 말입니다. 점점 점점 점점 아주 굳어지는 겁니다. 굳어지는 반면에 큰 일도 할 수 있는 거예요. 지금 우리나라가 위기에 처해 있다 할지라도 그걸 밀치고 나갈 수 있다 이겁니다.
여러분도 꿈을 꾸어보셨지요. 우리가 살면 좋은 집에 살면서 즐거운 것도 순간 돌아가고, 친구들하고 술을 마시면서 즐겁게 논 것도 순간적입니다. 그렇게 즐거웠는데 그만 돌아서면 순간 허전하고 허황한 게 말할 수 없죠. 또 좋은 집에서 잘 사는 것도 금방 망해서 돌아갔을 땐 그 허전함이 말할 수도 없고요. 꿈에 참 좋은 데 가서 즐겁게 놀고 즐겁게 살고 하는 데도 그게 꿈을 깨고 나면 그렇게 허황될 수가 없죠. 목을 눌러서 죽이려고 하는데 꿈을 깼다. 야! 꿈이기에 망정이지 이거 생시 같으면 죽을 뻔했다고 할 겁니다. 이게 모두가 사람의 생각에 의해서 꿈도 생시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꿈이 생시요, 생시가 꿈이듯이 우리가 허황되지 않은 진실을 알아서 그대로 법을 행하는 것이 부처이자 법신이자 보신(報身)이자 화신(化身)입니다. 용왕도 거기 들어 있고 모두가 다 거기 들어 있는데 왜 그 능력을 내지 못합니까? 그대로 능력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에 공한 것입니다. 공했기 때문에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거지 공하지 못했다면 능력을 그렇게 발휘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부처 된다고 할 수가 없는 거죠. 부처 될 가능성도 없고요. 그래서 ‘짐승들이 사람을 거치지 않는다면 부처가 될 수 없다’라는 얘기가 나옵니다.
우리가 참 실질적으로, 내가 이렇게 말하면서도 말입니다, 역시 부처는 말이 없는 것이 부처입니다. 우리가 또 설법을 하는 거는 ‘말씀’입니다. 말씀! 그리고 부처님이 말씀하신다고 하고 듣는다고 하는 것도 말씀입니다. 즉 교법이죠. 그건 유의 법이죠. 그리고 말없이 걸레를 빨아서 탁 닦는 것도, 말없이 걸어가는 것도, 말없이 행하는 것도 모두가 부처가 하는 일이죠. 그런데 말을 하는 것도, 말을 안 하고 하는 것도 그것이 둘입니까? 누가 했습니까?
그렇게 여러 가지를 하고 돌아가는데, 이걸 되풀이해서 말하는 것은 지금 잘 생각해보시란 뜻입니다. 여러 가지로 자꾸 변해서 돌아가면서 행하는 이 생활 속에서 하나하나 해가면서 일부러 지어서보다도 생활 속에서 그냥 문득문득 다가오는 대로 하는 겁니다. 이건 장난으로 하면 안 됩니다. 실생활 속에서 무엇을 하든지 내가 이런 거는 이렇게 해야 되지 않나 할 때 한번 해보는 거, 하나하나 해보다 보면 거기에서 완벽하게 자기에게 능력이 생기는 겁니다. 자신이 생겨요. 그랬을 때 모든 것을 자신 있게 해나갈 수 있다는 얘깁니다.
지금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문학적으로나 과학적으로나 철학적으로나, 사회 정치적으로나 모든 것을 볼 때 과학이 철학이고 철학이 과학이고 과학이 문학이고 이것이 둘이 아니게 돌아갑니다. 그리고 물질과학으로서 우리의 다섯 가지 능력만 해도 이 도리를 체험해서 아신다면 우리나라에 급작히 미사일이 건너와서 폭파될 처지라 하더라도 ‘여기는 안 돼! 못 와!’ 하고 못박으면 못 오게 됩니다. 근본적으로 그렇게 자꾸 체험을 하다 보면 느낌이 옵니다. 느낌이 오게 되고 안으로 굴리게 됩니다. 이게 참선입니다. 안으로 굴리게 되고 자꾸 돌아가다보면 느낌으로 무슨 소리를 들어도 ‘아, 이건 이렇게 되는구나!’ 하는 것을 즉각적으로 알게 되는 겁니다. 알게 됐을 때에는 ‘여기는 안 돼! 못 와!’ 하면 미사일이라도 그건 못 오는 겁니다.
예를 들어서 누가 5년 후에 이렇게 된다 하고 예언을 해 놓은 것을 들었는데 ‘그렇게 해선 안 돼! 5년 있다가 하면 이게 될 법한 일인가?’ 이렇게 해놓으면 5년 있다가 그 말이 한데로 떨어지게 되는 거죠. 그래서 예언자는 소인이라고 한 게 그런 데서 오는 거다 이겁니다. 이건 자신이 자신을 발견해서 자유스럽게 그냥 자활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예언을 한 걸 지워버릴 수도 있는 그런 능력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나는 어저께도 없고 내일도 없이 하루살이로 사느니라.’ 왜? 없어서 그런 게 아닙니다. 연결됐기 때문입니다. 마음과 마음이 전달돼서 연결이 돼 있기 때문이죠. 내가 콩씨 얘기도 많이 했고, 바닷물이 흘러 들어오는가 하면 흘러나가고, 흘러나가서 다시 돌아서 또 흘러 들어오고 이러는데 두드러지지도 않고 줄지도 않는다고 그랬죠. 그것이 바로 지혜입니다. 그리고 사람 사는 마음으로써 전달되는 한마음입니다. 그러니까 한마음으로서 우리가 일을 행해나갈 때 미사일이든 폭탄이든 그게 마음대로 못하죠. 절대로 마음대로 못합니다. 무전도 그렇습니다. 우주간 법계에 그 무전줄이 있어서 ‘이거는 안 돼!’ 하고 차단을 시켜놓으면 그건 안 되는 법입니다. 급할 때 쓰는 겁니다. 이것을 신통이라고 하는 거죠?
그래서 오신통이라 하는 건 신통입니다. 신통은 급할 때 쓰는 겁니다. 무전기도 급할 때 쓰는 거고, 미사일이라는 것도 급할 때, 한생각이면 다 돌아간다는 뜻입니다. 급하면 급한 대로 다 탐지기도 쓸 수 있고, 컴퓨터도 쓸 수 있는 거죠. 그러니까 모든 것을 그렇게 쓸 수 있게끔 만든 장본인이 누구냐 이겁니다. 그런 생각이 이 오신통으로 들어오고, 눈으로 귀로 상응하고 서로 받아들이고 이러는 그 자체가 누가 만들었느냐는 얘깁니다. 그거 생각나기 이전 영원한 자기 생명이, 그 근원이 바로 그렇게 융합하고 또 돌아가게 만드는 거 아닙니까? 그런 일을 보고 듣고 받아들이고 내주고 하게끔 만드는 거죠. 그러니까 그 근본이 아니라면 오신통을 할 수가 없는 거죠. 오신통이라는 것은 말로 오신통이지만 우리가 그렇게 한번 생각을 해서 체험을 한 번씩들 해보시면서 공부를 하셔야 돼요. 그래야 위급해도 당황하지 않습니다. 피난처가 따로 있습니까? 내 앉은 자리가 피난처지. 육신이 아무리 돌아다니면서 피하려고 애를 써봐도 되지 않습니다.
생활면에 있어서 체험을 해본 분들은 거기에서 또 능력을 얻는 수도 많습니다. 또 남을 위해서도 조그마한 체험이라도 해보시고 자꾸자꾸 들어간다면 처음에는 조금 조금 먹다가 나중에는 큰 바다의 물을 다 삼켰다고 하는 수가 있습니다. 그럼 삼키기만 하면 되느냐. 아닙니다. 삼켰다 내주고 내줬다 삼키기도 하는, 아주 다양하게 자활할 수 있는 그런 자유인이 될 수 있는 사람이라야만이 그걸 진짜 사람이라고 했고 부처라고 했고 선각자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 이날까지 살아가면서 몸에 대해서나 가정에 대해서나 타인으로 인해서나 또는 내가 봐서나 들어서나 이것을 한 번이라도 체험했던 분들이 있다면, 또 거기에 의심이 나는 게 있다면 물어주십시오. 질문해주십시오.
빨리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왜 우리가 알아야 하는지 여러분이 더 잘 알 겁니다. 시대로 봐서도 그렇고요, 이 조그만 조막댕이만한 나라에 또 세계적인 올림픽도 한다고 그러죠. 가난한 집안에 말입니다. 손님네들이 많이 온다고 그러죠. 참, 이것도 한 가정 일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다가 또 사람이니만큼 남이 잘된다면 좋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고 모략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렇게 한 가정에서 그렇듯이, 한 사람에게 그렇듯이, 한 나라에 그렇듯이 그러한 문제들이 있으니까 여러분으로 하여금 모든 것을 나를 내세우고 하기 이전에 스스로 하게 할 수 있다면 그것이 이 한국에 얼마나 이익이겠습니까?
또 여러분이 어느 회사에 나가도 그렇고 회사를 운영하셔도 얼마나 이익이 되겠습니까? 그걸 쓰지도 않고 그냥 그대로, 그냥 다니기만 한다면 그것은 목석인 겁니다. 목석! 생각을 좀 달리 해보고 다녀야죠. 공부하시는 분들이 여기 와서 듣고 그런가 보다 하고 그냥 가고 또 살면서 그냥 왔다 갔다 이렇게만 하면 안 됩니다. 내가 책보를 끼고선 학교에 그냥 왔다 갔다 하기만 하고 강의 들은 내용을 다시 한 번 공부 안 해보면 되겠습니까? 여러분이 생활 속에서 꼭 해봐야죠.
또 회사에 나가는 사람, 은행에 다니는 사람, 뭐 기자면 기자, 또 어떤 직업을 가진 사람이든지 누구라도 말입니다. 학교에서 내가 공부를 못하면 찍힌다 했을 때 열심히 해야 하듯이 모든 게 다 공부란 말입니다. 학교 공부만 공부가 아니라 생활 속에서 모두들 수시로 공부를 하게 되어 있는 거예요.
그러니 하나하나 자기가 해나가야지 누가 해 나가겠습니까? 그렇다면 하나하나 그게 체크가 되는 거라, 자기가! 감응이 오는 거라. 이거 내가 이렇게 하려고 그랬더니 그대로 돌아가는구나. 그대로 돌아가면 자신이 생긴단 말이에요. 그래서 큰 것도 하고 작은 것도 하고 닥치는 대로 하는 거예요. 그런데 그거를 해보지 않은 사람, 그냥 물색 없이 왔다 갔다 하고는 해보지 않는 사람. ‘이거 뭐, 내가 힘이 없는데, 아이 내가 뭐 이런 일을….’ 그냥 아예 생각조차도 해보지 않는 겁니다, 자기가 분명코 해야 할 일인데도 불구하고. 그게 목석 아닌 목석이죠. 우리 유의 법만 취하고 사는 사람들, 좀 무의 법을 활용해봐라 이겁니다. 마음으로써 나도 살고 남도 살 수 있는 일이다 이겁니다. 그것이 바로 이익 중생 아닙니까?
그러니 여러분이 오늘서부터는 학교에서 공부했으면 집에 가서도 공부하는 겁니다. 집에 가서 앉아서 공부하는 게 아니라 생활면에서 오고 가며 직장에서 어떠한 일이 있다, 이러한 일이 있을 법도 한데 미리 잘못돼가지고 그걸 방치하려고 하지 말고 내가 생각해봐서 요런 일은 요렇게 되고 저런 일은 저렇게 되고 이렇게 나가야 되겠다, 이것은 이렇게 되면 안 돼! 하는 것을 못박아놓을 수 있는 대로 못박아놓고, 천천히 차근차근히 시험을 해보는 겁니다, 오는 대로. 그대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분이 있는데요, 그분이 차근차근히 이렇게 하다보니까 그게 실감이 나는 거죠. 그러니까 어느 일이라도 해낼 수 있다라는 자신이 생기는 거예요. 그러니 자기에게 이익하지만 남도 이익하고 또 나라도 이익하고 모두가 이익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뿐입니까? 체험하는 공부를 하게 되면 나라 위태한 것도 막을 수 있다는 얘깁니다.
예전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그렇습니다. 모두 기복으로만 그저 왔다 갔다 말만 모두 성하고 나 자신은 생각해보지 못하고 흉보고 잘못한다 잘한다, 정도다 사도다 하고 비판하고 다니다보니까 자기는 영 돌아다볼 사이가 없는 거죠. 이러다 보니까 공부들을 못하는 겁니다. 그래서 예전에 오백 년 역사에도 어쩔 수 없이 그냥 급할 때나 맛을 조금씩 본 겁니다, 남이 해줘서. 그리고 그것을 이렇게 해야 되는 거다 하고 실질적으로 가르쳐줬어도 받아들이지 않고 그냥 너 잘났다 그러고 해서 몹쓸 일들이 저질러진 것이 우리의 역사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지금부터 여기 오는 분들만이라도 우리는 이 나라를 아주 융성하게 한 자리 올려놓을 수 있는 그런 능력을 가지게 될 겁니다. 그리고 삼국을 통일시킬 수 있었던 건 뭐냐 하면 세계를 통일시킬 수도 있다 이 소립니다. 왜? 각각 있으면서도 마음이 한마음으로 돌아가서 서로가 서로를 위해서 보람 있게 살 수 있는 그런 연결이 된다는 얘기죠. 마음과 마음이 그렇게 전달돼서 연결이 된다면 죽이려고 단추를 누르지 않을 겁니다. 칼을 들이대지도 않을 겁니다.
그래서 무기를 만들어 죽이려고 하지 않고 불국토를 이룰 수 있게 우리 인간들이 대성황을 이룰 수 있는 지구를 만들 수 있는 그런 역할을 하게 이끌고가는 겁니다. 그래서 여기 앉아서도 여러분이 소련으로나 중공으로나 유럽으로나 어디를 막론해놓고 마음을 던져놓게 되면은, 어떻게 돼야 된다고 던져놓게 되면 그것이 다 돌아가게끔 돼 있는 겁니다.
옛날에 이런 말이 있었죠. 시어머니가 빨래를 아주 옥같이 해놓는데, 며느리가 아무리 따라서 하려도 옥처럼 되질 않아요. 그래서 그걸 가르쳐달라고 그랬는데 영 안 가르쳐주거든요. 죽을 때서야 ‘꼭꼭’ 하고 죽더랍니다. 꼭 짜면은…, 허허허. 그런 거와 마찬가지로 여러분한테 나는 그렇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여러분의 능력은 그대로 있건만 여러분이 그것을 인정하고 믿어주지를 않습니다. 자기를 자기가 믿지를 않아요, 우선적으로. 그러니 어떡합니까? 첫째 믿지 않죠? 믿지 않기 때문에 용을 하지 못하죠? 용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현실로 나오지 않죠? 실감나지 않지? 그렇게 되니까는 절망에 빠지는 수가 많고 자기가 자기를 죽이는 수도 많고 망하는 수도 많고, 이거는 말도 못하죠. 삶의 보람도 없고 그냥 허황되기만 하죠.
이 도리를 안다면 내일 죽고 지금 금방 죽는대도 하나도 겁이 나지 않는 겁니다. 마음이 무슨 착잡하거나 또 허황되거나 하는 생각이 하나도 없는 거예요. 그렇게 떳떳한 거예요. 왜 그러냐? 금방 몸은 벗었으나 금방 내가 그대로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걸 아시려면 오늘서부터는 체험을, 사는 데서 체험을 자꾸자꾸 하세요. 작으면 작은 대로 크면 큰 대로 말입니다. 대부분 남자분들은 나가서 일하시면서 그 일하는 장소에서 해나가셔야 될 겁니다.
그리고 한 가지 부탁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에 왜 미리 막지 않느냐 이런 것이 있습니다. 공부를 하는 사람들은 공부를 시키려면 미리 막아두지 않는 법이 있습니다. 또 공부를 하는 사람은 아픈 걸 금방 낫게 해주지 않는 법도 있습니다. 또 이 몸을, 옷을 벗기고 죽여서 그 사람을 살리는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여러분은 생활하면서 그렇게 하지 말고…, 자신들이 하는 거니까. 예를 들어서 어느 회사를 하는데 다른 사람은 새 기계를 들여놓고 해나가기 때문에 내가 들여놓은 기계 가지고는 도저히 상대할 수가 없어. 밑져서 할 수가 없는 거거든. 그렇다고 문을 닫게 되면 벌써 손해야. 그러니 이것을 한생각 내서 다시 설치하게끔 만들거나 기계를 다시금 똑같을 수 있게 조립을 하거나 한생각 내면 웃사람들이 다 마음을 내게끔 돼 있다 이거야. 돼 있는 연후에 가서 말만 띄우면 되는 거라. 심부름만 하면 되는 거지. 주인의 심부름만 하면 되는 거라.
이렇게 떠넣어줘도 모르시면 안 됩니다. 이렇게 밥숟가락을 떠넣어 드려도 먹을 줄을 모른다면 이걸 어떡합니까? 왜 내가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마는 이것은 바로 지금 우리가 살아나가는 이 사회가 너무나 복잡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모든 일에 대해서 급하게 서두르지 마시고 서두르는 마음 없이 그냥 그대로 대처해야 될 겁니다.
나는 아주 귀찮을 때가 있죠. 여러분도 그럴 거예요. 다니는 회사에 무슨 큰 일이 생긴다면 큰 일이니까 아예 그냥 다 자기 생각대로 할 수 있는 능력이 거기에 있으니 그대로 해보시면서 잘 굴려가면서 체험하면서 자기를 믿을 수 있게끔 만드십시오. 자기를 자기가 못 믿어서 모두들 못하시니까 자기를 자기가 진짜로 믿게끔 만드십시오. 신념이 가게끔요.
여러분 중에 말씀하실 거 있으면 말씀하시고요, 그렇지 않으면 오늘 이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위 법문은 1985년 3월 17일 정기법회에서 설법한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한마음선원 홈페이지(www.hanmaum.org나 한마음선원)에서도 같은 내용을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