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이 차의 제국이 된 배경은 동인도 회사가 영국 엘리자베스 1세로부터 동인도 무역의 독점권을 부여 받고 아시아 무역에 집중하면서 부터다. 초기에 수입된 물품은 주로 후추와 인도의 옥양목을 비롯한 섬유제품이었다. 하지만 영국 내 직물 생산업자들의 반대로 인해 희소성이 높은 차의 수입이 급속히 증가하게 됐다.
차가 무역의 주요 품목으로 부상하면서 영국은 차에 대한 특별한 경제 정책을 펼친다. 회사 소속의 선박들은 선박마다 공간을 할당 받아 개인적인 차 거래를 했다. 선장들은 가급적 많은 양의 차를 자기 배에 싣기 위해 경쟁을 벌였는데, 이것은 1톤 분량의 차에서 얻은 이익이 몇 년간의 월급에 해당할 정도로 많았기 때문이다. 선장과 상인들의 적극적인 차 무역으로 차의 공급량은 증가되지만 품질은 저하되기도 했다. 차의 양을 늘리기 위하여 불순물을 첨가하기도 했다. 이런 혼합 행위에 많은 벌금을 부과하여 처벌했으며, 공식적인 무역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개인적인 차 거래를 금지한다.
한편 동인도 회사는 런던의 템즈강가 항구에 차 시장을 열어 차만을 위한 전문 경매장을 설립한다. 대형 상선이 도착할 때마다 경매가 열리게 되지만 자주 열리지는 못하고 3개월에 한 번 정도 열리게 되었으며 차의 수입량이 많아지면서부터는 거의 매주 열리게 되었다.
품질이 낮은 차는 가격이 저렴하여 주로 일반 사람들이 구입했으나 여전히 일반인이 마시기에 차는 비싼 음료였다. 17세기 말 차의 가격은 커피에 비하여 5배 정도 고가로 팔렸다. 18세기에 중국에 무역 거래소가 설치되면서 차의 공급량이 증가하여 자연히 가격이 떨어지고 시장은 확장됐다. 또한 경쟁국인 네덜란드를 무너뜨리기 위해 17세기 초부터 차에 수입관세와 소비세를 부과했으며 네덜란드에서 차 수입을 금지하기도 했다. 결국 네덜란드는 해상활동이 쇠퇴하면서 1795년 네덜란드의 동인도 회사가 해산 되고 영국이 차 무역 전체를 통제하게 된다.
이런 무역 정책과 함께 영국의 차 소비에 영향을 준 배경은 왕실에서 차를 마시게 된 것이다. 찰스 2세와 결혼한 포르투갈 존 4세 국왕의 딸 캐서린은 차 애호가로, 차 문화를 가지고 영국 왕실로 들어왔다. 지참금으로 포르투갈의 무역 주둔지와 많은 양의 금과 설탕과 한 상자의 차를 가져왔다. 작은 중국 도자기 잔에 담긴 차를 마시는 왕비의 모습이 다른 귀족 부인들 사이에서 우아한 모습으로 전해졌다.
이처럼 차는 값비싼 ‘귀족 부인의 음료’가 되었다.
당시 커피와 차를 함께 판매하는 커피 하우스는 여성들이 자유롭게 출입하기 어려운 곳이었다. 값비싼 차를 하인들에게 사오게 하기 싫었던 여성들의 심리를 알아차린 토마스는 커피 하우스 옆에 따로 차 가게를 열었다. 가정에서 뜨거운 물만 부으면 마실 수 있는 마른 찻잎 뿐 만아니라 잔에 음료로도 팔았다. 귀부인들은 비싼 값의 차를 구입하고 매혹적인 차 한 잔을 마시기 위해 가게에 줄을 섰다.
이처럼 차는 가정에서 마시는 품격 있는 하나의 의식이 되었고 차를 준비하는 방법과 신분에 따라 다르게 제공되는 차와 다기 세트는 귀족 부인들의 사교에 필수품이 되었다. 차와 함께 곁들이는 음식들이 중요한 화제가 되기도 한다.
■이창숙(동아시아 차문화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