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4.12 (음)
> 종합 > 기사보기
경허 선사(5)
묻되, 달마가 서쪽에서 온 뜻은?
답하되, 사자는 사람 물고 개는 흙덩이를…

경허 스님이 충남 천장암에 머물 무렵, 계룡산에 태평상인(太平上人)이란 지혜와 덕을 갖춘 스님이 있었다. 경허 스님의 명성을 들은 태평상인은 서산 부석사에서 스님을 만나게 되었다. 태평상인이 경허 스님이 있는 방문을 활짝 열고 들어서자마자 물었다.
“달마가 서쪽(인도)에서 온 뜻이 무엇입니까?(如何是祖師西來意)”
말이 떨어지자마자, 경허 스님은 대뜸 주장자를 들어 후려쳤다.
태평상인이 다시 말했다.
“때리려면 때려도 좋소이다. 그러나 조사서래의를 맞힌 것은 아니지 않소이까?”
이 말을 들은 경허 스님이 곧 되짚어 말했다.
“무엇이 조사서래의인가?”
이번에는 태평상인이 주장자로 경허 스님을 후려갈겼다.
얻어맞은 경허 스님이 말했다.
“사자는 사람을 물고 한나라 개는 흙덩이를 쫓거든(獅子咬人 漢盧逐塊).”
이 말을 듣고 태평상인이 공손히 말했다.
“법은(法恩)이 망극합니다.”
경허 스님은 웃으면서 법당으로 걸음을 옮겼다.

‘조사(달마)가 서역에서 온 뜻’이란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 즉 불법의 대의를 말한다. 불조(佛祖)의 뜻이 무엇인가, 깨달음이란 무엇인가, 부처란 무엇인가 등과 같은 질문이다.
<오등회원(五燈會元)>에는 “모름지기 사자가 사람을 물듯이 하되, 한(漢)나라 개가 흙덩이를 쫓는 것 같이 쓸데없는 것을 배우는데 정신을 쏟지 말라”는 말이 있다. 대주혜해 선사는 경전(이론)에만 집착하는 수행자를 한로축괴(漢盧逐塊)라 경책하고, “경ㆍ율ㆍ논은 자성의 쓰임일 뿐이다. 그것을 읽으며 외는 사람이 바로 자성 그 자체다(經律論是自性用 讀誦者是性法)”고 일깨우고 있다.
부처(自性)는 경을 읽거나 외는 그대 자신이다. 경전과 이론은 자성을 깨닫기 위한 방편일 뿐이다. 언어나 문자의 방편에만 매달리는 수행자는 흙덩이를 쫓는 개일 뿐이다. 매순간 불법을 쓰고 누리면서도, ‘불법이 무엇인가’ 하고 질문하는 것은 소를 타고 소를 찾거나 세종로에서 서울 찾는 어리석은 행위라는 것이다.
불법의 대의를 묻는 태평상인의 질문에, 경허 스님은 말과 생각을 떠나 문득 때리는 행위로 자성의 전체작용(全體作用)을 드러냈다. 하지만 태평상인은 이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조사서래의를 맞히지 못했다’는 잠꼬대 같은 말을 하고 있다. 이에 경허 스님은 다시 똑같은 질문을 태평상인에게 하니, 그 역시 똑같은 방(奉)으로 응수한다. 태평상인이 짐짓 알면서도 경허 스님을 시험한 것일 수도 있지만, ‘불법이 이것이니 저것이니 분별하며 흙덩이를 쫓는 개가 되지 말라’는 경허 스님의 경책에 그는 진심으로 감사의 뜻을 표한다. 깨달은 사람의 언행은 그 어떤 것도 자성의 작용을 온전히 드러내는 반면, 말만 익힌 사람은 어떤 언행을 나타내도 확신이 부족한 모방에 불과한 것이다.
임제 스님은 “부처를 찾으면 부처를 잃을 것이다”, “문자에 속지 않으면 그 마음 그대로 살아있는 조사(祖師)다”라고 했다. 밖에서 찾으면 찾을수록 멀어진다. 똥 덩어리 찾아 헤매는 개가 아니라, 스스로 주인 되어 당당한 사자(부처)로 살아가는 것이 대장부, 여장부의 삶이 아닐까.
김성우 객원기자
2008-02-15 오후 11:26:43
 
 
   
   
2024. 5.19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원통스님관세음보살보문품16하
 
   
 
오감으로 체험하는 꽃 작품전